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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는 왜 부활절이 다른가 한국정교회. 가톨릭이나 개신교는 익숙하지만 아무래도 국내에서 정교회는 낯설다. 지난 4월 8일은 정교회의 부활절이었다. 부활절이면 같은 부활절인데 왜 정교회의 부활절인지 궁금할 수 있다. 원래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축하한 부활절은 이달 1일이었다. 부활절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아남을 기념하는 날로, 전세계 기독교도의 최대 축일이다. 기독교는 크게 3가지 분파가 있다. 가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정교회다. 원래는 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1054년 동서교회가 분리되어 로마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정교회로 자리잡게 됐고. 이후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가톨릭과 개신교가 나뉘게 됐다. 다시 부활절 이야기로 돌아가자. 부활절은 매년 날짜가 달라진다. 날짜를 계산하는 .. 2018. 4. 9.
데뷔 50주년 가왕 조용필, 인맥으로 보는 음악 인생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은 가수 조용필을 지칭하는 수식어는 많다. 가왕, 국민가수, 최고의 명창 등등. 하지만 그저 ‘조용필’이라고 칭하는 것이 그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과잉된 수식어가 넘쳐나는 것이 싫다”면서 “그냥 ‘조용필’ 그대로가 좋다”고 했다. 그의 삶도 그렇다. 오로지 음악뿐이다. 그를 알고, 오랫동안 만나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오로지 음악 이야기만 한다”며 “때문에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라며 불평 아닌 불평을 한다. 음악 아닌 다른 분야를 기웃거리는 것은 고사하고 눈길조차 준 적이 없다. 그가 만나고 교류한 사람들은 모두 음악이 바탕이 됐고, 그의 음악을 살찌우고 한국 대중음악을 탄탄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됐다. 직·간접적으로.. 2018. 4. 9.
미셸 우엘벡을 끊을 수 없는 이유 미셸 우엘벡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으나 결론적으로는 잘 안됐다. 특정 작가나 감독, 배우에게 꽂히면 그걸 덕질하는 수준으로 파는 편인데 미셸 우엘벡의 소설은 거진 읽은 것 같다. 읽을 때 마다 아 끊어야지, 이건 좀 아니지 않아, 이러면서도 자꾸자꾸 손이 가다 지금에 이르렀다. 최근에도 그의 책 을 다시 읽었다. 우파 아나키스트라고 자처하는 그는 극단적 자유주의자로 봐도 무방하다. 현란한 지적 배경을 바탕으로 온갖 지식과 ‘썰’을 풀어내는 그의 화자들은 자기 비하적인 태도를 취하며 무심한 듯 툴툴거린다. 허무하고 냉소적인 특유의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비루한 척 하지만 그 바탕엔 은근한 깐족거림이 깔려있다. 아무튼 현실로 본다면 썩 기분좋은 방식은 아닌데도 그가 풀어내는 썰을 듣고 싶어 견딜 수.. 2018. 4. 5.
최초 기록 써온 일식 셰프 김선미 셰프가 선망의 직업으로 떠올랐지만 여성 셰프는 여전히 드문 존재다. 그 중에서도 일식은 거의 ‘금녀’의 분야로 인식돼 왔다. 초밥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나 일류호텔 일식당에서 초밥을 만드는 여성 요리사를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본다면 대다수가 고개를 갸우뚱할 가능성이 높다. 초밥 종주국인 일본에서 초밥집을 방문해본 이들도 마찬가지다. 무라카미 시게오의 만화 는 초밥 장인이 되는 꿈을 꾸는 여성 ‘사치’의 이야기다. 만화 도입부에서 초밥 장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치에게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며 말한다. “여자한테 초밥은 맞지 않는다니까!” 여성에게 초밥 만들기가 금기시됐던 이유로 꼽혀온 것은 체온이다. 배란 때문에 여성의 체온이 높아 손이 더 따뜻하기 때문에 신선한 생선을 만져서는 안된다는 것. 그런 믿음이.. 2018. 4. 3.
4.3에서 개신교는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4.3과 관련해 제주도민들에게 악몽과 같은 이름은 서청, 즉 서북청년회 혹은 서북청년단이다. 육지에서 경찰 보조로 제주에 내려와 도륙과 만행을 일삼았던 이들이다. 말 그대로 북한의 서북지역 출신들이 중심이 돼 결성됐다.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많은 이들이 이를 피해 월남했다. 공산정권에 의해 탄압받으면서 월남한 이들은 자연히 뼛속부터 공산당에 대한 적개심이 사무쳐 있었다. 당시 정권은 이들을 지배의 도구로 활용했고 이후 이 세력 자체가 힘을 키우고 성장하면서 한국의 주류 기득권이 됐다. 역사적 기록에 보면 서청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것이 4.3 진압이다. 47년 총파업 후 미군정에 의해 ‘빨갱이 섬’으로 낙인찍힌 제주도에 정권은 서청을 파견한다. 빨갱이 때려잡는 일이 존재의 이유였을 이들에게 ‘빨.. 2018. 3. 25.
4.3 진상규명, 그리고 사람들 4.3 진상규명 과정, 그리고 사람들 왜 이렇게 오래도록 묻혀 있었을까. 그것은 파란만장한 우리 현대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군사독재 권위주의 정권 기간 동안 이 사건은 지하에 꽁꽁 묻혔다. 그들의 치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면서 4.3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로 모든 것이 중단됐다. 진상규명을 하려든 이들이 구속돼 옥고를 치렀고 유족들 역시 고초를 겪었다. 게다가 경찰은 모슬포 지역 예비검속 희생자 유족들이 세웠던 ‘백조일손 위령비’를 부숴 땅에 묻어 버렸다. 20년 가까이 군사정권이 집권하며 이에 대한 논의가 금기됐다. 1978년 소설가 현기영이 ‘순이삼촌’이라는 소설을 발표했지만 그 역시 이 소설을 썼다.. 2018.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