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우리나라 학부모들이라면 누구나 관심 가질 리스트가 있다. 바로 서울대 선정 고전시리즈. 
50선, 100선 등등 버전이 있다. 물론  다른 주체들이 선정한 고전 리스트들도 있는데 대체로 목록을 살펴보면 비슷하다.  좋은 책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게 알아보는 것일테니 말이다. 
나 역시 이런 목록들을 저장해놓고 몇권을 읽었는지 체크해 보기도 했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한적도 여러번이다.
좋은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는 것이야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간간이 그런 생각을 꽤 했었다. 이거 정한 사람들이 과연 이 책을 다 읽어봤을까. 물론 그런 사람들이 완전히 없지는 않겠지만 거의 그렇지 않을거라는 내 생각에 확신을 가졌던 책이 있다. 바로 데카메론이다.


물론 이 책. 너무나 재미있고 많은 역사적 의미를 가진, 사료적으로도 좋은 책이다. 추천할만하다. 그렇지만 성담론에 관한 한국적 풍토에서, 엄숙한 척 하고 성에 관한 권위주의가 판쳐온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이 청소년들에게 권할만한 고전으로 선정됐다? , 게다가 최근도 아닌 이미 오래전에 선정됐다는 것은  이 리스트가 외국 어느 권위있는 기관에서 선정한 것을 받아서 그대로 옮긴 것이지, 결코 이걸 선정하고 추천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봤을 리가 없다는 확신을 더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생리대'도 생리대라고 공개적으로 말 못하는 사회 분위기에다  서구에서 50년전부터 사용됐던 성교육 동화책을 두고도 적나라하고 민망한 물건 취급하는 국회의원들이 큰 소리치는 나라에서 과연 이 책이 그리 오랜 시간 청소년 추천 고전 리스트에 올라 지금껏 그 명맥을 이어왔다는 점은  그동안 방귀 깨나 뀌고 목청 높여온 인사들 중 어느 누구도 데카메론을 안 읽어봤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암튼 데카메론은 읽어봐야 할 재미있는 책이다. 흔히 말하는 고전처럼 지루한 구석도 없고 서사구조도 전래동화, 민담처럼 단순하고 간단하다. 게다가 엄청 야한 이야기들이 많다. 유머와 풍자도 넘친다. 마치 고금소총을 보는 재미와 비슷했다. 예전에 친척집 다락방에서 세로 쓰기로 인쇄된 고금소총을 발견한 적이 있다. 옛날 세로쓰기 성경처럼 읽기 힘든 모양새였지만 표지의 그림이 왠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다락방에 기어올라가 그 작은 글씨로 된 책을 얼마나 마음 졸이며, 정신없이 재미나게 읽었는지 모른다. 
아마 서울대 선정 도서 리스트에 고금소총이 들어갔다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아니 고금소총이 들어갈 수 있었을까. 예전 한국영화 중 19금 작품으로 고금소총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런저런 이미지가 덧씌워졌기 때문에 고금소총은 그 사료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음담패설집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페스트같은 역병이 덮인 올해도 이 책을 다시 읽었다. 페스트가 덮쳤던 그 시기 피렌체에 살던 10명의 남녀가 병마를 피해 피렌체 외곽의 한 공간에서 열흘간 각기 10편씩, 모두 100편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이야기다. 때문에 재택근무, 격리, 혼자 보낼 시간이 많았던 올해 이 책을 다시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재난의 시기에 이 책과 함께 생각나는 것이 페스트, 그리고 비교적 최근 작인 눈먼 자들의 도시.
페스트는 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었지만 이 책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원초적 욕망의 화신들이 펼치는 이 이야기들이 비장미보다는 유쾌함과 해학을 주로 드러내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데카메론을 많이 읽은 사람이 없었거나.

데카메론의 저자는 보카치오다. 아마도 데카메론을 제대로 읽는 대신 막연한 편견을 대중들이 갖게 만들었던 것은 90년대에 한창 전성기를 구가했던 스포츠 신문에 보카치오라는 이름의 만화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40대 이상이면 대략 기억하리라...

보카치오는 단테, 페트라르카와 함께 이탈리아 3대 작가로 꼽힌다. 단테는 서사시, 페트라르카는 서정시, 보카치오는 소설로 각기 주요 활동 장르는 다르다. 페트라르카는 보카치오의 스승이었다. 나이들어 단테에 푹 빠졌던 그는 그런 성스러운 작품에 비하면 자신이 젊은 시절 썼던 데카메론은 너무나 보잘것 없고 세속적인  것으로 여겼다. 고민하다 작품을 불태우기로 한 그를 만류했던 이는 스승 페트라르카다. 경직된 기독교적 가치가 지배하던 시대였지만 진실에 대한 갈망, 다양한 관점과 가치를 존중하는 구도자 스승 덕분에 데카메론이 지금껏 전해온 것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단테의 신곡은 그전까지 희극을 의미하는 '코메디아'라고 불렸으나 보카치오가 이 작품을 읽고 난뒤 이런 신성함을 가진 작품을 그냥 부를 수 없다며 '신성하다'는 의미를 붙여 현재의 '신곡'이 되었다고 한다. 

데카메론에는 남녀상열지사 뿐 아니라 교회, 성직자를 향한 조롱과 풍자도 많다. 이 풍자의 대상이 되는 교회의 모습들은 21세기의 교회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수도원의 모습도 퍽 흥미롭다. 우리가 생각하는 수도원 수도사나 수녀의 모습은 금욕과 청빈의 삶의 표상이지만 중세 수도원은 조금 달랐다고 한다. 수도원의 시초는  종교적인 것 보다 경제공동체로서의 역할이 더 강했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생산 수단을 공유하며 모여 살았던 경제공동체였다는 것이다. 가족을 개별적으로 꾸리게 되면 공동체 재산을 사유화하기 때문에 가족을 형성하고 재산을 세습하는 것은 금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수도원에 머무는 사람은 '독신 서약'을 했던 것이지 '순결 서약'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 덕분에 수도원은 경제공동체로서 지역사회에 큰 역할을 했다. 농사를 발전시켰고 과학, 의학, 문화예술도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풍속의 역사'를 쓴 에두아르도 푹스는 이런 수도원이 타락하게 된 원인을 화폐의 등장으로 꼽았다. 현물은 보관에 한계가 있어서 나눠 먹었지만 화폐가 등장하면서 부를 쌓을 수 있게 됐고 귀족과 결탁해 서로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는 것이다. 

사족 몇개를 붙이자면 성적인 은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것 같다.
이 작품에도 성행위를 의미하며 절 구와 절굿공이, 악마와 지옥 따위의 표현이 등장한다. 야한 상상을 엄청 자극한다. 그렇다고 대단히 노골적인 묘사가 있는건 아니다.


다음은 구윤숙씨가 해설을 곁들여 쓴 '데카메론'에 나오는 대목중에 옮겨놓고 싶은 부분이다. 

국가 이전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고 가족을 제도화하기 훨씬 이전부터 성적 에너지는 줄곧 존재하고 있다.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덕을 전복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아마 이런 야생적 성욕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 사회, 국가로부터 가장 억압받고 있는 것도 바로 성이다. 비근한 예로 폭력적이지도 않고 결론이 교훈적이어도 야한 장면이 있는 영화에는 아직도 빨간 딱지가 붙는다. 에로스는 충동적이다. 고로 위험하다. 그 힘을 가두고 통제하는 자는 이로부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이 왜곡되어 간다는 사실에는 눈이 어둡다. 여성의 에로스는 온통 상품화되었고 아내의 에로스는 가족애로 협소해졌다. 노동자의 에로스는 직장에서 경제적 생산 에너지로 쓰이거나 짧은 휴일을 이용해 상품화된 여가 활동을 구매하는데 소비되고 있다. 요컨대 생산성 높은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할 때 국가는 먼저 에로스의 자연스런 흐름을 다스려야 했다.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관계들은 형벌로 관리하고 교회를 통해 성을 더러운 것으로 위장했다. 이렇듯 성은 점점 말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