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뻐꾸기 둥지>라는 드라마가 시작됐습니다. 

이름만으로도 오싹, 묘한 것이 어떤 내용일지 확 감이 오지 않나요. 

익히 알려져 있는 뻐꾸기란 새의 습성 때문일텐데요.

 뻐꾸기는 제 둥지를 갖지 않고 남의 둥지에 알을 낳죠. 

그럼 원래 둥지의 주인은 뻐꾸기 알도 자기 알인줄 알고 소중히 품습니다. 

빨리 부화하는 뻐꾸기는 알에서 깨어난 뒤 원주인의 알을 밖으로 다 밀쳐내 떨어뜨리고 

남의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 하며 잘먹고 크다가 휙 떠나버리는...

태생이 부도덕과 싸가지의 극치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게 또 뻐꾸기라는 새가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운명이라니 어쩔 수 없겠죠.

여하튼 이름만으로도 짱짱하고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막장 복수극 드라마가 화려하게 출발했습니다. 





요즘 막장, 막장 하면서 막장드라마는 아예 그 자체로 보통명사가 됐습니다만 

90년대만 해도 이런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막장은 탄광 갱도의 막다른 곳을 일컫는 말입니다. 

갱도의 끝부분, 즉 광물을 캐내는 막다른 곳이라는 장소적 의미지요. 

여기서 갱도를 더 파나가야 다른 곳으로 움직이며 새로운 광물을 캐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탄광 갱도의 막다른 부분이라는 가치 중립적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생 갈데까지 간 사람 ‘막장인생’이라는 말로 통용되더니 

맥락없는 전개에 자극·선정성으로 범벅된 드라마에 막장드라마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막장은 원래 의미의 막장으로 사용됐습니다. 

당시 땅굴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 때라 어느 탄광 막장에서 얼마나 떨어졌다는 둥, 

어느 탄광 막장에서 자외선으로 측정했더니 어디에 땅굴이 감지됐다는 둥 그런 뉴스들이었죠. 

그리고 탄광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나 비인간적인 노동환경 등을 두고 ‘막장의 분노’와 같은 표현이 

신문지면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고되고 힘든 일을 막장작업같은... 이런식으로 비유하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일이 너무 힘들고 고된데다 목숨을 걸어놓고 막장에 들어가야하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에 

일터인 막장을 자조적으로 빗대 막장인생이니 두더지인생이니 하는 말이 사용되기는 했습니다. 

진폐증에 걸려 죽어가는 탄광 노동자들도 많았죠. 

그들이 말했던 막장인생은 진폐증으로 죽거나 막장에서 유독가스, 

혹은 갱도붕괴로 죽거나 하는 비참한 작업환경을 생생히 드러내는 처절한 현실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갈데까지 갔다는 식의 폄훼하는 의미를 담은 단어는 아니었던건데요..

그러다가 서서히 밑바닥 인생, 전락의 의미로 이 단어가 차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막장이라는 단어에 가치와 평가가 부여되기 시작한거죠. 

그러다가 막장 드라마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2000년대 중반 2007, 8년 정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만일 아니라면,,,,바로잡아야 하니 알려주시길..

당시 인터넷이  뉴스와 화제의 중심 유통 채널이자 소스로 폭발적으로 확산되면서 

많은 신조어와 유행어, 축약어들이 쏟아졌습니다.

디시인사이드도 엄청나게 활성화됐던 것 같고... 


듣보잡이니 안습이니 지못미니 등등의 지금은 고전이 된 유행어도 그당시에 막 나와서 유통됐던 것 같네요. 

막장도 그즈음 나왔습니다. 희망이 없는 상황이라는 뜻으로 막장 인생, 막장** 하는 식의 표현이 많았습니다. 

자극성 강하고 말 안되는 설정이라며 욕을 먹는 드라마에 막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때였고요. 

<문희>나 <조강지처클럽> 등의 드라마에 이런 수식어가 붙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됐던 것 같습니다. 

이 말이 통용되면서 이전에 방송됐던, 비슷한 성격을 가졌던 드라마도 돌이켜 회고하며 ‘막장’이라는 이름을 붙였고요.

 2004년 방송됐던 <왕꽃선녀님> 같은 드라마가 대표적이죠. 


그렇게 막장이 통용되다가 2009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석탄공사 사장이 

막장이란 말을 함부로 쓰지 말아달라는 호소문을 내서 화제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막장은 광산 제일 안쪽에 있는 지하 끝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땀흘려 일하고 있는 곳이라며 

막장드라마, 막장국회 등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막장은 폭력이나 불륜이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나라 유일의 부존 에너지 자원을 캐내는 숭고한 산업현장이자 진지한 삶의 터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그런 의미를 안다면, 이 단어를 아무데나 갖다 붙이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도 

어느새 이렇게 의미가 굳어진 것은 안타깝습니다. 


지금도 불륜이나 폭력,복수, 부도덕, 맥락없는 구성과 말 안되는 설정 등이 나오면 

일단 막장이라고 분류를 해버리지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이제 막장이란건 장르가 되어 버렸다는 생각도 듭니다. 


백번 양보해 부정적 의미의 막장이란 장르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궁금한 건 불륜과 폭력, 복수가 나온다고 막장은 아닐겁니다. 

극성이 강하고 갈등구조가 강한 모든 드라마=막장, 이런 편견은 버려야하지 않을까요. 

전에도 말했는데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얼마나 막장중의 막장이겠습니까. 

그 가족 구성관계만 보는 것 만으로도 말입니다. 






위키를 찾아봤습니다. 

그랬더니 막장드라마란 복잡하게 꼬여있는 인물관계, 현실적으로 말 안되는 설정, 

매우 자극적으로 줄거리를 전개시키는 드라마라는 설명이 나옵니다. 

여기에선 해당용어가 처음 나온 상황을 2007년 sbs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이라고 했네요.

개인적으로는 1998년 쯤인가 방송됐던 <보고 또 보고>부터가 겹사돈이라는 설정을 사용하며

그런 범주에 드는 본격적인 드라마라는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위키의 설명에는 

임성한 작가를 막장 드라마계의 갓마더, 김수현 작가를 막장 드라마계의 원로, 

문영남 작가를 막장 드라마계의 신흥세력이라고 해놨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자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