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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크

영화 < 저 하늘에도 슬픔이 >를 아시나요

by 신사임당 2014. 4. 22.

지금 40대 이상인 분들은 어린시절 봤던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기억하실 겁니다. 

<엄마 없는 하늘아래>와 함께 쌍벽을 이뤘던 최루 영화의 결정판. 

그 시절 흑백 TV로 이 영화 보면서 눈물 콧물 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목만으로도 애잔한 이 영화의 원 필름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21일 전해졌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 영화 필름의 원본을 대만에서 발견해 복원했다는 겁니다. 


이 작품은 초등학교 4학년 학생 이 윤복의 수기를 바탕으로 1965년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신영균, 조미령, 황정순 등 당대 스타들이 총 출동했던 작품인데 서울에서만 28만명이 넘는 관객을 기록했습니다. 

지금으로 환산한다면 1000만명에 해당한다고 하니 그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시 영화 포스터입니다



1965년 제작된 이 영화는 대구에 살던 초등학교 소년 이윤복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알콜중독으로 무위도식하는 아버지, 이런 환경에 절망해 가출한 어머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껌을 팔아가며 소년가장으로서의 힘겨운 삶을 일기로 썼는데 

이를 담임선생님이 출판하며 전국에 소년 이윤복의 이야기가 알려졌습니다. 






소년 이윤복의 이야기는 1964년 12월 20일 한국일보 사회면에 소개됐습니다. 





이후 책으로 나오고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전국에 뜨거운 감동을 전했습니다. 

영화의 흥행으로 그에게 온정의 손길이 답지하고 엄마와도 함께 살게 되면서 

삶에 주름이 좀 펴지는가 했으나 

결국 생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서른 여덟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래 기사는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에 보도됐던 내용입니다. 


 동아일보  1990년 1월26일 


지난 66년 전 국민을 눈물바다로 몰아넣었던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의 실제 주인공 이윤복씨(38·당시 13세)가 

25일 오후4시 만성 간염으로 대구 경북대병원에 입원한지 16일만에 눈을 감았다.

울산 효성알미늄을 거쳐 지난 84년 유한킴벌리에 입사한 뒤 작년 1월1일부터 

대구영업소 영업사원으로 근무해온 이씨는 1952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이정희씨(68)와 박차옥씨(66)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씨는 

술주정뱅이에다 노름꾼인 아버지의 구박과 생활고에 못이겨 

명덕국교 1학년때 가출해버린 어머니 대신 구두닦이와 신문팔이 껌팔이를 하면서 번 돈으로 

아버지의 술값과 노름밑천을 대고 두 여동생과 남동생을 어머니처럼 보살핀 착하고 어진 소년가장 이었다.

이씨의 이같은 사연이 알려지게 된 것은 4학년이던 62년 봄,

학생들의 일기장을 검사하던 담임 이명자교사가 

어린아이 답지않게 또박또박 생활일기를 써내려간 윤복군의 글솜씨와 기막힌 사연에 놀라

 전체 교사들에게 사정을 알리고 

윤복군을 돕기 위해 이듬해 일기장 내용을 그대로 옮긴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펴내면서였다.

이 책은 나오자마자 불티나게 팔려 윤복군은 더이상 구두닦이를 하지 않아도 됐고 

2년후 영화로 만들어져 관객 30만명 동원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씨는 그후 어머니를 다시만나 같이 살게됐고 각계의 온정으로 판잣집 신세를 벗어나 

내당동에 집 한칸을 마련하고 넉넉한 생활을 하면서 

경북중학교와 능인고교를 졸업,군복무를 마친후 76년 효성알미늄에 취직했다.

그러나 생활능력이 없는 아버지 대신 또다시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던 이씨는 

지난 80년 살던 집이 빚쟁이에게 넘어갈때 충격을 받아 회사를 그만둔 채 한동안 방랑생활을 했다.

82년 대구에서 우연히 알게된 이병숙씨(30·당시 22세)와 결혼한 이씨는 

84년 유한킴벌리에 입사한 뒤 딸 규영양(8·산격국교 1년) 아들 명진군(4)과 함께 4식구가 

1백50만원짜리 사글세 단칸방에서 어렵지만 단란하게 살아왔다.

『평소 성격이 원만해서 친구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족과 함께 시내 나들이를 나갔을때 좀 피곤해 했을뿐 평소에는 건강했는데…』 

영안실 빈소를 지키던 미망인 이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유한킴벌리 이종대 대표이사가 보낸 대형조화 한개만 덜렁놓인 썰렁한 빈소에는 

이씨 어머니의 오열과 비보를 듣고 서울 부산 울진에서 달려온 동생들의 형과 오빠를 부르는 소리만 울려퍼질뿐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목메어 불렀던 이씨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이윤복씨의 사연을 세상에 알렸던 담임선생님은 2007년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기사입니다. 


 세계일보 2007년 8월23일 


1965년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의 실제 주인공 이윤복군의 담임교사였던 

김동식 목사가 20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선셋 카이저병원에서 급성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고인은 가난에 찌든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제자 이윤복군(당시 대구명덕초등 4년)이 쓴 일기를 세상에 알렸고, 

이 일기는 김수용 감독에 의해 ‘저 하늘에도 슬픔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영화는 제5회 대종상 특별장려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숙자씨와 기연·기희·기향·기경·기정씨 등 5녀가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USA) 총회서부노회장으로 치러지는 발인 예식은 23일 오전 11시30분 

황순정 ‘주안에 교회’ 담임목사의 집례로 장지인 글렌데일 포레스트런에서 열린다.




그런데 두 기사에서 선생님 성함이 다르네요... 

이건 다른 기사를 뒤져봐도 잘 못찾겠더라구요. 


복원된 이 작품은 다음달 열리는 한국영상자료원 창립 40주년 기념 영화제에서 일반인들에게 상영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