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허지웅씨가 손석희씨가 한국의 크롱카이트 같다고 언급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그는 누구일까요. 


월터 크롱카이트. 2009년 세상을 떠난 그는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입니다. 

뉴스의 전설이라는 별명도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심지어 미국 국민들 사이엔  대통령의 말은 못 믿어도 

크롱카이트의 말은 믿을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만큼 신뢰성있는 언론인으로 사랑받았습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앵커라는 말도 그에게 처음 사용됐습니다. 

앵커, 즉 닻을 의미하는 이 말은 뉴스와 시청자 사이에서 이를 전달하고 중심을 잡아준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62년부터 81년까지 19년간 그가 진행했던 CBS 간판 <이브닝 뉴스>는 시청자들에게 ‘월터 타임’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그는 이처럼 신뢰와 사랑을 받는 언론인이 됐을까요. 

그는 케네디 대통령과 마틴루터킹 목사 암살, 최초의 달착륙, 워터게이트사건, 

베트남 전쟁 등 미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며 미국 저널리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그의 원칙은 자신의 역할이 뉴스 전달자이지 논평가가 아니라며 개인적인 판단을 자제했습니다. 

진실을 알려면 사건의 양면을 모두 알아야 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던 그는 

기자는 공정하고 공평해야 한다는 원칙을 평생의 금과옥조로 삼고 이를 바탕으로 보도를 해왔습니다. 

 

그의 이같은 원칙과 보도, 또 최대한 주관적 판단을 자제하는 가운데 

그가 짚어가는 흐름과 방향성은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68년베트남에 다녀온 뒤 그가 “전쟁은 수렁에 빠졌다”고 한 보도 이후 

베트남전에 대한 여론은 종전으로 완전히 바뀌게 됐습니다. 

또 1년 반동안 끈질기게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결과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게 했습니다. 


신중하고 차분한 진행으로 명성이 높았던 그이지만 그가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던 때가 있습니다. 

바로 아폴로 11호 달 착륙 때와 케네디 대통령 암살입니다. 

63년 11월 22일 케네디가 암살되던 날 그는 방영 중이던 드라마 중간에 긴급 속보로 이 소식을 전하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또 69년 7월20일 아폴로11호가 달표면에 처음 착륙했을 때도 놀라움과 감격으로 “오 보이”만을 연발하기도 했었죠. 



뉴스를 진행하던 모습



그는 대중적인 인기만큼 정계로부터의 러브콜도 많이 받았지만 

늘 스스로를 취재 기자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여기서 여러 사람들이 떠오른다는)

크롱카이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여섯살 때 하딩 대통령의 부음이 실린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배달구역을 바람처럼 달리던 신문배달 소년 시절 내 인생의 방향은 이미 결정됐다”고 회고하기도 했지요. 





1916년 미국 미주리주에서 태어난 그는 텍사스대를 중퇴한 뒤 언론인이 됐습니다.

UPI통신의 전신인 UP통신 기자로 2차 세계대전을 취재했고 

CBS로 옮긴 뒤 미국 TV 뉴스 전성기를 주도했던 그는 

역설적으로 신문의 중요성에 대해 자서전에서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TV 저녁뉴스는 뉴욕타임스 신문 1면에 실린 정보량의 절반 정도가 될 뿐”이라면서 

“민주사회에서 책임 있는 시민으로 기능하려면 신문읽기는 선택이 아닌 의무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삶을 보면서 발 뒤꿈치에 대기도 민망하지만 

기자 시늉만 내고 살아온 제 삶을 반성하게 되네요. 

그리고 민주사회 시민들에게 반드시 읽히는 신문을 만들도록,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만들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