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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토크

그리운 이름 세르게이 그린코프 예카테리나 고르디바

by 신사임당 2014. 2. 27.

김연아선수 덕분에 우리나라는 피겨변방국에서 여왕을 배출한 나라로 수직상승했죠. 지난 몇년간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줬던 그녀는 레전드, 퀸 등 많은 기록과 이야기를 남겨줬습니다. 그녀에만 빠져있다보니 한동안 피겨에 관한한 피겨=여자싱글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녀 보느라 다른 부분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거죠. 


그런데 그녀가 이렇게 떠나가고 그동안을 돌이켜보니 제가 한때 푹 빠져 있었던 페어 부문 환상의 커플이 생각났습니다. 정말 이들 역시 레전드였고, 두 사람 중 한명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그 자체로 영원성을 간직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마무리되지요. 바로 예카테리나 고르디바와 세르게이 그린코프입니다. 피겨 팬들이라면 다들 기억하실듯. 





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때 카타리나 비트, 그리고 아이스댄싱조인 영국의 제인 토빌, 크리스토퍼 딘에게 푹 빠져 피겨를 지켜봤던 저는 88년 캘거리 올림픽에 출전했던 이들 커플을 보고 말그대로 완전 넋을 놓았습니다. 고혹적이면서도 청순·깜찍한 여자선수와 엄청 키가 큰 남자선수 커플. 처음엔 키 차이가 워낙 많이 나서 그냥 서 있는 모습은 썩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빙판에 나선 이들의 연기가 시작됐는데 이건 뭐 말로 설명이 안될 정도로 한 눈에 사람을 뿅 가게 만들더라구요. 고난이도의 점프나 각종 기술도 멋진데다 놀라운 싱크로...이를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이라고도 한다는데 서커스 같은 기술과 이를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만들어내는 예술성으로 정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 화면 캡처... 화질은 별로,, 그러나 미모는 후덜덜이죠.




세르게이 그린코프는 67년생, 예카테리나 고르디바는 71년생으로 두 사람은 네살차이였습니다. 캘거리 동계올림픽 당시 둘은 스무살, 열여섯살이었죠. 당시 비슷한 나이의 고딩이던 저는 이들을 보면서 저렇게 계속 붙어서 호흡을 맞추면 나중에 다른 사람을 만나 사귀고 결혼하기는 피곤하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릴때부터 서로가 원해서가 아니라 나라에서 시켜서(당시 소련이었던 관계로) 붙어 있게 됐는데 싫은 상대면 얼마나 괴로울까, 동시에 각기 다른 이성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스케이트타기가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이들은 나중에 결혼을 하죠. 

 

커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전설의 아이스댄싱 커플이던 토빌과 딘 역시 부부가 아니었고 이들의 뒤를 이어 아이스댄싱 무대를 제패했던 러시아의 안드레이 부킨, 나탈리아 베스테미아노바 커플 역시 부부는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뛰어난 팀웍과 완벽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도 부부가 아닐 수 있다니(그것도 각자의 가정을 잘 꾸리면서)... 천박하고 수준낮은 제 생각으로는 그저 놀랍기만 했던 기억이.. 특히 아이스댄싱에서 딘, 토빌 커플 역시 레전드 중의 레전드였죠. 이들이 사라예보에서 했던 프리 프로그램 볼레로는 정말 역사상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던 듯... 예술성 부문에서 심판 전원이 만점을 줬던, 코마네치급의 충격을 안겼던 사건이었죠.  고르디바, 그린코프 역시 페어 부문에서 최강의 예술성을 자랑했던 기록적인 팀이기도 합니다.





다시 이들 커플로 돌아와서...... 이들은 캘거리 동계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유럽선수권을 싹쓸이하고 우승하다가 90년 은퇴하고 프로로 전향합니다. 그리고는 91년 결혼해 이듬해 딸을 낳지요. 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피겨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없었기 때문인지 그리 인상적인 기억은 없습니다. 그리고 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때 프로선수도 출전할 수 있다고 규정이 바뀌면서 전설의 커플이 다시 출전합니다. 4년의 공백을 딛고, 게다가 고르디바는 출산한 뒤였는데도 4년전과 전혀 다름없는 신체조건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릴리함메르 당시 이들의 프로그램은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비창과 월광이었는데 기술과 예술 점수 모두 거의 만점을 받으면서 다시 환상의 커플로 귀환해 많은 이들을 황홀하게 했지요.  

이들은 올림픽 후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그리고는 95년 훈련도중에 고르디바를 들어올리던 그린코프가 갑자기 빙판위에 쓰러지며 그대로 세상을 떠나고 말지요. 고르디바와 18개월 된 딸을 남긴 채 말입니다. 그린코프의 나이 고작 스물여덟, 고르디바는 스물 넷입니다. 그린코프의 사인은 심장마비였다고 하네요.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1982년 고르디바와 그린코프가 각각 15세, 11세때입니다. 당시 동구권의 엘리트체육은 국가주관이다보니 우리식으로 따지면 빙상연맹이나 그에 준하는 기구 같은데서 커플로 맺어준거죠. 처음 만난 뒤 4년만인 86년 이들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2년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면서 고르디바는 그때까지 사상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로 기록됩니다. 




 몇년전 오프라 윈프리쇼에 나왔던 예카테리나 고르디바


보통 가수들은 자신이 불렀던 노래의 운명을 따라간다고들 하는데 이들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함께 했던 프로그램이 비극적 사랑이야기인 ‘포카혼타스’였고, 함께 준비하던 프로그램이 베르디의 레퀴엠이었다고 하네요. 

십대 초반 이후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이들이 영원한 이별을 한 뒤 세계의 피겨팬들도 더 이상 이들의 전설적인 연기를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다른 스타들은 아이스쇼 등에서라도 볼 수 있다지만 이제 이들 커플은 그저 유튜브 동영상으로만 그 흔적이 남아 있네요. 아마 그래서 이들의 불꽃같았던 활동이 더 애틋하고 아름답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르디바는 그후 98년 나가노 올림픽 피겨 남자싱글 우승자인 쿨릭과 결혼해서 현재는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역대 전설의 스케이터는.... 아이스댄싱  제인 토빌/크리스토퍼 딘    페어  예카테리나 고르디바/ 세르게이 그린코프     여싱/ 당연히.. 김연아것쥬... 남싱/  딱히 꼽기 힘듬. 



아래는 이들의 페북에 올라 있는 사진입니다. 

Ekaterina Gordeeva & Sergei Grinkov


이런 이름으로 페북 계정이 존재하네요... 누가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이곳에 올라 있는 사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