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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크

드라마속의 기자

by 신사임당 2012. 11. 27.

새로 시작한 드라마 <전우치>에서 전우치(차태현)는 조보소 기별서리로 나옵니다. 여기서 조보란 조선시대 신문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조보소는 신문사겠지요. 굳이 따지면 국영 언론기관일겁니다. 기별서리는 지금의 기자겠죠. 전우치인 ‘이치’가 왕궁 곳곳을 이리저리 훑고 다니며 정보를 찾아 조보에 글을 씁니다.  추국장에도 드나들며 궁금한 것을 묻고, 허가받지 않은 곳에 들어갔다가 쫓겨나고 문전박대 당하기도 합니다. 도술을 쓰는 전우치가 기자인 기별서리 이치로 활동하는 것은 정보가 유통되는 곳 길목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무언가를 찾기 위함입니다. 바로 원수의 행방말입니다.

 

 

 


많은 정보를 얻고 그것을 통해 활동의 기반을 삼기 위한 주인공의 노력...이라고 정리해보니  언뜻 떠오르는 인물이 있네요. 슈퍼맨 말입니다. 평상시 그는 기자입니다. 데일리 플래닛이라는 신문사에서 클라크 켄트라는 이름의 지구인으로 살고 있었던. 물론 올해 그가 신문사를 그만두는 일이 벌어져 큰 뉴스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그가 기자로 일한 것은 역시 많은 정보와 이슈를 파악할 수 있고 슈퍼맨으로서의 원래 자신에 대한 평가나 제3자의 시각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즉 기자라는 직업이 가진 특성과 속성을 활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이같은 특성 때문인지 영화나 드라마에는 기자라는 직업이 자주 등장합니다. 밥 우드워드, 칼 번스타인처럼 세기의 특종을 통해 부패한 권력의 심장을 찌른 기자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부터 그 반대의 경우까지 무척 다양합니다. 이십수년전 상영됐던 영화 <킬링필드>의 주인공 역시 기자였습니다. 미드 <뉴스룸>도 빼놓을 수 없네요.
 


어떤 사안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 이면을 파헤치고, 반전을 이끄는 매개가 된다는 점에서 기자라는 직업은 매우 강한 극성과 드라마틱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어떤 사건과 역사적 현장의 목격자가 된다는 점에서도 이야기의 중심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에 어울리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그동안 그려진 기자를 한번 볼까요. 제가 다른 직업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묘사하는 드라마의 리얼리티가 어느정도인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기자의 리얼리티를 제대로 그려낸 드라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게 사실입니다. 일단 리얼리티는 제쳐두고 이야기하더라도 기자가 정상적으로 그려진 드라마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연예계를 다루거나 대중스타, 유명인이 극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에는 으레 기자가 나옵니다. 그럼 감 잡으시겠죠. 하이에나처럼 뒤를 캐고 침소봉대하는 연예기자들입니다.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리고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로 그려지기 일쑤인데 아무래도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서 보다보면 지리멸렬한 바퀴벌레같은 존재로 느껴집니다. 게다가 캐릭터도 어찌나 찌질하고 얼띤지, 혹은 비열하고 비상식적인지 모르겠더라구요.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이라면 정말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존재들이죠.


 

기자를 전면에 내세웠던 드라마들로 생각나는게 <스포트라이트> <히어로> 정도가 있겠네요. 스포트라이트는 손예진이 주연했던 영화였는데 방송기자들의 세계를 다뤘죠. 그나마 리얼리티를 많이 그려내려고 노력했다는 이야기가 있긴 했는데 선수들이 보면 음... 할만한, 손발 오그라드는 설정과 분위기가 꽤 있었습니다. 사소한 것도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기자들 끼리는 서로를 누구씨, 혹은 선배로 부르지 김기자, 서기자, 최기자 이런식으로 부르지 않거든요. 그런데 서로를 *기자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오던 것을 편집국에서 보면서 실소했던 기억이 난다는... <히어로>는 그런 면에서 리얼리티를 논하기보다는 그냥 판타지에 가깝다고 할만합니다. 제가 완전 사랑하는 드라마 <유령>에서도 굳이 옥에 티를 꼽자면 최연소 시경캡의 등장인데 최연소 노벨상수상자, 최연소 메달리스트, 최연소 임원 이런 말들은 누군가를 설명하는데 자연스러운 표현이 되겠지만 최연소 시경캡은 많이 생뚱합니다. 남보다 짧은 시간내에 뭔가 성취했을 때 쓰이게 마련인데 기자들이 갖게 되는 직책 캡은 동기중에서 여자라면 당연히 최연소가 될테고, 그렇다고 잠안자고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입사 3, 4년만에 쟁취하는 자리도 아니고 하니까요.. 뭐 그렇다는 겁니다.

 

 

스포트라이트 캡이 지진희였죠... 후덜덜.. 당시 농담삼아 그랬습니다. 저게 리얼리티가 없다는 것은 비주얼부터 증명된다. 지진희같이 생긴 캡이 어디있냐....는 것이었죠. 그러면서 저런 캡 있으면 맨날 하리꼬미하고 맨날 회의하러 들어가겠다는...ㅋㅋ 그랬더니 남자 동료들 역시 '우리가 할 소리'라며 저렇게 생긴 여기자가 어디있냐고 거품을 물었다는...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서 명세빈, <아결녀>의 박진희,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한상진 등도 다 방송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으로 등장했으나 일보다는 그 직업을 가진 주인공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영화 <모비딕>이나 <부러진 화살>은 현실감있게 기자의 생활을 살려냈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도 기자가 나오는 드라마는 대체로 시청률이 안나오는 쪽이었는데 볼거리를 만들기 쉽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렇지만 탄탄한 구성과 이야기만 뒷받침된다면 명작들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외국 작품들에서 보게 됩니다. 아쉽죠. 앞으로 우리 드라마도 작가풀이 더 커지고 제작 시스템이 개선되고 장르물이 발달한다면 기자 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들의 세계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다이내믹한 이야기들이 대중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앞으로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전에라도 좀 더 기자세계를 사실감 있게 그리는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니, 아닙니다. 사실감은 나중으로 넘기겠습니다. 기자를 좀 정상인에 가깝게, 호감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감은 가는 직업으로 그려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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