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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토크

70년대의 센세이션 김추자와의 만남

by 신사임당 2014. 5. 28.

김추자씨가 돌아왔습니다. 원조 디바, 전설의 디바라는 수식어가 관용적으로 따라붙는 그는 70년대를 주름잡았던 톱 여가수입니다. 

사실 저같은 40대만 해도 이름으로만 들었을 뿐 그의 노래를 즐기던 시대와는 좀 떨어져 있습니다. 

 

27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컴백 기자회견은 100명에 가까운 기자들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뤘습니다. 

33년만에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를 기다리는 설렘과 기대감이 기자회견장을 후끈 달궜지요.. 

예정된 2시에서 5분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웨이브 진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검은색 정장, 흰 블라우스에 선글라스 차림으로 누군가가 당당하게 들어서더군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의 그에게선 굉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저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들국화의 보컬 전인권씨를 보는 듯한 느낌도 살짝 들었지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무대에 선 그는 좌중을 압도하는 듯한 포스로 카메라와 회견장 곳곳을 응시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도 함께 했습니다. 

김추자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팬들에게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전했습니다. 

 “33년만에 나왔습니다. 그동안 살림살이 하고 애 키우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왔는데, 

오늘 이렇게 여러분을 모셔놓고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이날을 기다리느라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를 오랜 세월동안 많이 사랑해준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더 늦기 전에 무대로 다시 돌아온 김추자입니다. 

30년 이상을 평범한 아내로 엄마로 살다가 다시 무대에 선다는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도 들고 흥분이 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저는 새로운 앨범 제작에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가수로 좋은 노래 불러 팬들앞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당연한 마음이니까요. 

올해 준비한 앨범이 다시 나와서 다시 노래를 하고 무대에 설 예정입니다. 

긴 세월동안 잊어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찾아주신 여러분에게 멋있는 모습 보여드리기 위해 열심히 콘서트 준비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팬들과 무대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오래동안 기다려주신 팬들에게 다시금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이 타이밍에서 임진모씨의 설명이 곁들여졌습니다.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난지라 그를 모르는 이들을 위해 김추자씨가 당대 어떤 가수였는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저도 오늘 김추자 선생님을 처음 뵙습니다. 25년전부터 계속 찾았는데, 인터뷰를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소원을 이룹니다. 오랜만에 컴백하는 분들은 

옛날 분들에게 잘 알려진 곡을 갖고 리메이크해서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인데 

9곡 모두 신곡이나 다름없어서 놀랍습니다. 5곡은 발표된 곡이고 4곡은 신곡인데 사실상 거의 우리가 잘 모르는 곡입니다. 

이 자체가 경이적입니다. 

김추자 선생의 음악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69년에 ‘늦기 전에’로 데뷔하셨죠. 

‘님은 먼 곳에’가 같은 앨범 수록곡입니다. 선생님은 데뷔 당시 어마어마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한반도 반쪽을 들었다놨다 하는 사회 현상의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남진 나훈아 라이벌전, 조용필 현상, 서태지 광팬 현상 등에  견줄 현상이 김추자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당시 담배는 청자가 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그게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였죠. 

그때만해도 남진 나훈아의 트로트, 최희준 패티김의 스탠다드 팝이 국내 가요계의 두 줄기였습니다. 

그런데 록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퍼졌고 이는 신중현 선생이 주도했습니다. 

신선생은 록, 소울, 사이키델릭 등 새로운 요소들을 한국적으로 선보였고 다양한 실험을 했는데 

이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김추자 선생입니다. 신중현 음악의 성공적인 메신저였지요. 

김추자 선생의 노래는 펑키하고 소울한 흑인음악의 느낌이었습니다. 

팝송에서나 들을 수 있는 서구적 음악을 김추자 선생이 당시에 전달한건데요, 

강력하고 놀라운 댄스로 빠른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김추자 선생은 여자가수 최초로 엉덩이를 흔든 가수입니다. 

얼마나 과격했겠습니까. 그 당시에. 50년대 냉전상황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도발과도 비슷했죠. 

그런데 전 그걸 다시 하실 수 있겠나. 그게 걱정되네요.”



이 말에 김추자 선생은 “당연히 흔들어야죠”라고 답변했습니다. 


임진모씨는 말을 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김추자를 지금까지 그리워할까요. 김추자 선생은 댄스음악 최초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처음 나왔을 때 댄스를 동반했던 김추자의 퍼포먼스는 당시 수요자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단지 춤만 추는게 아니라 음악 자체가 완전히 달랐고 노래도 훌륭했습니다.  

수동적으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를 활용하며 노래했죠. 당시로선 기적이었고 충격이었습니다. 

그 충격이 가요계에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크게 전해졌어요. 그래서 김추자를 그리워하는거죠.”



다음은 질문과 답변입니다. 


 *33년만에 다시 노래를 한다니, 그동안 어떻게 지내온건가. 

 “집안 곳곳, 손 닿는 곳에 채널을 달리한 라디오를 놓고 모든 음악을 고루고루 들었다. 

혼자서 음미하고 따라부르기도 하며 음악을 끼고 살았다. 

요새는 트렌드가 이렇구나, 이 가수는 잘하네 이렇게 느끼고 평가하면서 말이다.

 20년을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가 새로 나오고 누가 그만뒀고 어떤 신보가 나왔는지 변천사도 다 알고 있다. 

나혼자 음악들으며 채점을 매기기도 했고, 어떤 곡은 외국의 무슨 곡을 표절했구나... 이런 생각도 하기도 했고”

 

*복귀에 대해 가족은 뭐라고 하던가. 

 “딸이 예전부터 엄마는 노래 안부르냐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악기를 들고 다니는데 엄마는 목에 갖고 다니니 얼마나 편하냐면서 

엄마 노래를 들어보니 엄마처럼 노래 부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친구들도 유튜브에서 엄마노래를 듣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며 자신이 대접을 받고 다녔다며, 

엄마가 노래를 다시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좀 더 일찍 나갔어야 한다, 늦었다 그랬다. 

그랬더니 딸이 그러더라. 엄마랑 나랑 같이 늙어가는데 뭐가 어떠냐고. 

같이 거울 보면서 엄마는 주름도 없으니까 지금이라도 노래 하라고 격려해줬다. 

그러면서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지 않는다면 나중에 후회하고 뉘우칠 일이될거라며 말이다. 

래서 용기를 냈다. 이런거 저런거 생각하고 적응하려니 어렵긴 했는데 

1년이라도 더 빨리 나오는게 좋겠다 싶어서 이제사 나오게 됐다.“

 

*요즘 음악 어떻던가. 

“예전엔 노래 가사가 님이 그리워, 님이 오시는지... 이런 식이었는데 요즘은 직설적이다. 

니가 없으면 죽음이야, 니가 날 버렸어  이런식으로 말이다. 

인스턴트 사랑의 가사도 많더라. 꼬시기 작전같은 작업송도 많고. 

예전엔 그래도 사랑의 농도가 짙었고 깊은 의미도 있었는데. 가사의 그런 부분은 나랑은 많이 맞지 않더라. 

그래서 가사보다는 멜로디에 초점을 맞춰 주로 들었다. 

신나는 템포면 춤도 추고. 특히 요즘 빠른 노래의 박자와 멜로디에 맞춰 춤을 춰보면서 

내가 지금도 잘 돌아가는지, 쳐지지 않는지 등 체크를 많이 해봤다. 

거울 보면서. 그래서 집에 거울이 많다. 

거울을 보고 서 있으면 음악이 그렇게 하라고 시킨다. 단순히 내가 하는게 아니다. “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앨범 재킷




*노래 할 때 어려움은 없었는지.  

“없었다. 옛날에 했던 것. 그동안 계속 음악을 떨어뜨리지 않고 옆에 두고 살았으니 어색하지 않았다.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릴 때마다 맥놓고 듣는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부르니까 더 좋네, 이렇게 불렀으면 더 좋았을텐데, 

나라면 이렇게 했을텐데... 하는 생각으로 들었다."


*이번 앨범에는 트로트도 있다. 

“원래 내가 창을 했다. 그래서 트로트도 잘 부를 수 있다. 기회가 없어 팬들은 잘 몰랐을텐데 앞으로는 그 쪽으로 음반을 낼 생각도 있다.”


*33년간 열정을 억누르며 살았던건데, 왜 그만뒀던건가.

“그땐 연예계 생활 하기 싫었다. 춘천에서 살다가 서울로 와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나더러 간첩이니 뭐니, 

남산에 왔다 가라느니 어쩐다느니 하고 이야기하더라. 

계속 그런 이야기 하니까 연예계생활이 정말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내게는 결혼생활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어떤 상황도 내가 다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늦기전에, 망가지기 전에 해보고 싶은게 있어서 나온거다. ”


*다음주면 음반이 나오는데 어떤 성적을 기대하나. 또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결과 기대하고 부르는 것은 없다. 내가 잘 불렀으면 좋을 것이고 못불렀으면 안좋지 않을까. 

앞으로는 공연 위주로 활동할 생각이다.좋은 무대가 있으면 서고 싶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무대에서 공연다운 공연을 하며 팬들과 만나고 싶다.”


*신중현 선생의 곡으로 돌아왔는데 신중현 선생은 어떤 의미인가. 

“신중현 선생은 내 목소리를 가장 잘 아는 분이다. 음악에 관한한 나의 베스트 콤비다. ”


*중장년층 남성들에게 로망이었다. 

“중장년층? 글쎄. 내 곡은 요즘 젊은 세대도 좋아할 것 같다. 나만큼 감성적으로 뽑아내는 사람이 있나? 젊은 사람들도 좋아할거다.”





*원조 디바라고 지칭하는데 그 말이 마음에 드나? 

“난 정말 싫다. 디바라는 말이 주는 느낌과 감성은 서구적이다. 우리나라 감성과 맞지 않고 어색하다. 

영어 표현도 싫고. 그냥 난 한국 가수 김추자라고 하면 충분하다. 

그리고 전설의 누구니, 국민적 가수니 이런 말도 너무 듣기 싫다. 전설도, 디바도, 국민가수도 너무 많다. 

과한 그런 표현들은 좋다기보다 우롱에 가깝게 느껴질 때도 많다.”


내내 직설화법과 솔직함으로 정성껏 답변해준 그의 기자회견은 1시간 10분가량 진행됐습니다. 

그의 공연은 6월  28, 29일 이틀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