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쓰리데이즈> 보고 계신가요?
대통령과 미국 및 자본 등으로 엮인 거대 권력, 암살시도와 긴박한 추격전.
안방극장에선 좀체 볼 수 없는 스케일 큰 드라마가 찾아왔습니다.
한회에도 몇번씩 쫄깃거리는 심장을 쓰다듬으며 넋을 놓고 빠져들게 되는 이 드라마는
김은희 작가의 작품입니다.
여느 드라마와는 결이 다른 작품을 선보여 온 그는
한국형 장르물의 대가로 불리며
독보적인 지위를 굳히고 탄탄한 팬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전 작품인 <싸인> <유령>에서도
가공할만한 반전을 펼치며
매회 시청자들과 치열한 두뇌 싸움을 펼쳤죠.
대부분 그의 승리였습니다.
디테일한 단서들을 던져놓지만
뻔하고 예측할 수 있는 전개와 결말을 거부하며
늘상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으니까요.
싸인의 한 장면. 이 포스팅에 있는 모든 사진은 SBS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입니다
예전에 <유령>이 끝난 뒤 그의 집필실을 방문해 가졌던 인터뷰입니다.
경향신문 2012년 8월7일자
‘한국 드라마는 김은희 전과 후로 나뉜다.’
김은희 작가(40)의 서울 여의도 집필실 벽 한쪽엔 팬이 보낸 이 같은 글귀가 붙어 있었다.
“인터넷에서도 이 같은 찬사가 쏟아지더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쑥스러운 듯 웃음을 띤 채 “아유, 이건 보지 마세요”라며 서둘러 떼냈다.
그런다고 딱히 달라질 건 없다. 국내 안방극장이 ‘김은희’가 나타나기 전과 후로 나뉘는 것은 분명하니까.
지난해 방송됐던, 시체를 해부하며 사인을 밝히는 법의관을 다룬 드라마 <싸인>.
그리고 현재 방송 중인 사이버 수사관과 온라인을 통해 일어나는 범죄를 그러낸 <유령>.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이 두 작품 전까지 장르물에 관한한 한국 드라마는 불모지였다.
‘미드’(미국드라마)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눈높이까지 충족시키는 그의 작품은
한국형 장르물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은 사건을 중심으로 또 다른 사건을 엮고 해결해가는 과정을 파헤친다.
그 사이 사이에 인간관계의 재미가 얽히고 굵직한 사회적 메시지도 관통한다.
직장에서 연애하는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 불륜이나 출생의 비밀 등 ‘자극성 드라마’에 질려있던 시청자들은
“미드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장르물”이라며 환호를 보내고 있다.
9일로 예정된 <유령>의 종방을 앞두고, 지난 4일 그의 집필실을 찾았다.
- 이번에도 남자주인공을 죽이나요.
(지난해 <싸인>에서 그는 남자주인공 박신양을 죽게 만드는 결말로 많은 시청자들을 공황상태로 몰았다.)
“많은 고민을 했어요. 이렇게 하면 예상했다고 할 것 같고, 저렇게 하면 이민을 고민할 정도로 시달릴 것 같고….
뭐가 됐든 내일이면 알게 될 텐데요.”
- 특별히 장르물을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요.
“이쪽에 관심이 많다 보니 그래요. 아마 로맨틱코미디는 시켜도 못할 거예요.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데서 성취감을 느끼게 마련인데, 다행이죠.
제 작품이 드라마 장르를 다변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사이버수사대의 활동이 흥미롭긴 하지만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애초에 의도했던 것은 소설 <빅 픽처>처럼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직업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경찰로 정했던 거죠.
막연히 경찰청을 찾아 이것저것 들어보다 사이버수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됐어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 특정인이 쓰던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
그 사람의 취미나 관심사, 생활패턴 등 정신적인 궤적을 훑어볼 수 있다고요.
부검이 사람의 육체를 통해 그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이라면 디지털 기기는 정신적인 부분이라는 데서 흥미로웠어요.”
- 취재나 공부해야 할 부분이 엄청났을 텐데요.
“<싸인> 때는 법의학 책을 읽고 공부했는데 이번에는 그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서점의 서가 3개가 관련 서적이라 책을 읽고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했어요.
사이버수사대 분들의 전적인 도움이 있었죠. 그분들과 MT도 함께 갔고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짜놓고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디테일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 꼼꼼하게 자문을 받았어요.
사실 저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사진도 못 올릴 정도로 디지털 기기에 어두워요.
연출을 맡은 감독님 역시 저와 마찬가지로 트위터도 못하거든요.
이번에 같이 작업하면서 ‘정말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니까요(웃음).”
- ‘미드’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많던데 즐겨 보셨나요.
“재미있는 건 다 봤어요. 특히 <엑스파일>은 제 인생의 드라마로 꼽을 만한 작품이에요.
제임스 캐머런, 리들리 스콧, 피터 잭슨의 작품들도 좋아하고요.
국내 드라마 중에서는 <여명의 눈동자>랑 김정수 선생님 작품을 정말 좋아했죠.”
- 극 중 죽은 남대표의 부인이 김은숙으로 설정돼 있어요.
비슷한 시기에 방송된 <신사의 품격>에는 네 남자주인공의 첫사랑으로 김은희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데
두 작가가 합의하신 건가요.
“원래는 더 대단한 걸 계획했어요. 김도진의 건축사무소가 해킹을 당해 김우현이 김도진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장면,
그리고 그 반대로 김도진이 사이버수사대를 찾아오는 장면을 각각 <신사의 품격>과 <유령>에 집어넣을 생각이었죠.
둘이서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대본이 늦어지면서 이번엔 서로 이름만 쓰는 걸로….
김 작가에게 좀 미안해요. 제 드라마에는 죽는 사람들밖에 없어서요.”
1998년 SBS에 방송작가로 입사해 ‘사수’이자 훗날 남편이 된 영화감독 장항준을 만났다.
시나리오 데뷔작은 2006년 개봉한 영화 <그해 여름>이다.
드라마는 2010년 tvN에서 방송됐던 <위기일발 풍년빌라>에 이어 지난해 방송됐던 <싸인>까지 장 감독과 함께 집필했다.
이번이 첫 단독작품이다.
- ‘미친소’ 곽도원씨는 <유령>이 발견한 최고의 스타였어요.
“캐스팅에 어려움이 좀 있었어요.
<범죄와의 전쟁>을 보고 꼭 캐스팅하고 싶었는데 그전에 영화만 하신 분이라
드라마라는 장르에 출연하는 것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셨어요.
드라마 쪽이 영화와 달리 워낙 진행상황이 전쟁통 같잖아요.
게다가 다른 영화 스케줄과도 겹쳐 있었는데 정말 다행이죠.
굉장히 까탈스러운 배역이었는데 배우로서의 역량과 아우라를 200% 이상 보여줬어요.”
- 이번 작품을 통해 가장 중점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요.
“이름 석자만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잖아요.
특히 인터넷 아이디라는게 뒤에서는 익명성을 갖게 마련이고
경우에 따라 폭력성을 갖거나 실체와 전혀 다르게 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기능도 있고…. 어쨌든 한 사람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 다음 구상도 하셨는지요.
“생각하는 건 여러 개 있는데 이거 하나는 확실해요.
제가 처음 생각하고 제시하는 안은 공중파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항상 ‘까인다’는 점이죠(웃음).”
<싸인>은 법의학을 소재로 했고 <유령>은 사이버 수사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을 다뤘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내용이었고 주변에서 흔히 보기 힘든 소재들이었지요.
그것을 이야기에 엮어내고 화면으로 구현해내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작업이었을지 조금은 상상이 됩니다.
저런 소재로 기사 쓰는 것도 무지하게 어려운 일이라서 말입니다...
세 드라마를 죽 훑어보니 세 편 모두 출연했던 배우가 장현성씨라는 것도 재미있네요.
<싸인>과 <유령>에선 각각 적군과 아군(유치하지만 그렇게 표현하겠습니다)이었고
이번 <쓰리데이즈>에선 아직 잘 모르겟습니다.
현재로선 악의 화신처럼 보이지만
뭔가 사연이 있어 보입니다.
4회 초반에 공수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처럼 나왔는데
아마 그때 그 사건으로 동료들을 다 잃고 혼자 살아남는 처참한 경험을 했다던가
그래서 오해가 됐든 뭐가 됐든
대통령에게 총을 겨눈 현 상태에서는
끔찍한 음모를 꾸미고 무고한 사람을 죽였던 악의 축을 향한 처단이라는
믿음을 갖고
대통령을 저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요건 좀 딴 이야기지만
이 작품들에 등장했던 여주인공들의 연기는 대체로 좀 아쉬운 편이었습니다.
<싸인>에서 김아중씨, <유령>에서 이연희씨,
뭐, 다들 톱스타이고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긴 하나
연기 9단의 내공 빵빵한 배우들 사이에서 보여준 이들의 연기는
상당히 '존재감'을 발휘했죠. 우리가 흔히 아는 의미의 존재감이 아닌 얼마나 빈약한지를 보여주는
그런 부정적인 의미의 존재감입니다.ㅠㅠ
<쓰리데이즈> 박하선씨의 연기도 아직까지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 보입니다.
<하이킥>의 박선생 캐릭터와 겹쳐지는데다 드라마의 전체적인 톤에서 이물감이 살짝 들게 만들더라구요.
현재는 좀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보게 되는데 차츰 나아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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