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나는 氣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전세계의 도인들이 다 몰려든다는 곳이라고도 알려져 있지요. 여행자들은 그랜드캐년이나 옐로스톤을 두고 신이 만든 곳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 세도나는 신이 사는 곳이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그 아름다움이 어떤지 감이 오시는지...
투산을 뒤로하고 애리조나의 주도 피닉스를 거쳐 세도나로 향합니다. 피닉스는 큰 도시라 한국인들도 꽤 사는 곳입니다. 한인 식당도 제법 있다고 하는데 굳이 찾아가지 않고 대충 아무데나 들어가 먹는 것으로 패쑤...
여기선 길을 좀 헤매는 바람에 세도나로 가는 길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지도를 기본적으로 본 뒤 네비를 참고삼아 운전을 하는데 남편은 옆에서 네비를 의존하며 지도를 참고해 방향을 훈수합니다. 약간 헤깔리는 길이 나오면 어차피 운전대는 제 손에 있는만큼 제 맘대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그때는 왜 그랬는지 긴가민가하며 남편이 말하는 쪽으로 가면서도 “여기 아닌 것 같은데” 주절거리며 길을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wrong way라는 네비의 기계음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도착 예정시간이 1시간 가까이 늘어집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저 혼자 운전해야 하는데, 짜증이 ‘입빠이’ 몰려옵니다.
거기서부터 삐그덕거리면서 여행이 힘들어집니다.
“지도하나 제대로 못 봐? 힘들어 죽겠구만”
“좀 돌아서 갈수도 있지, 뭘 그것갖고 짜증을 내?”
“운전하는 사람은 나거든? 누가 힘들겠냐고???”
이렇게 되면 순식간에 차 안의 분위기는 싸해집니다.
이전에도 말했듯 남편은 운전을 못합니다. 것도 미국에서 못한다는 것은
어디 다니기를 포기해야 할만큼 미국에서 운전은 필수입니다.
그래서 이 여행기도 그냥 미국여행기 정리가 아니라
운전못하는 남편, 아이와 함께 미국 자동차 여행하기로 해보라는 권유도 받았다는... ㅋㅋ
영어, 달러 이런거 말고 미국서 살아야 하는데 가장 필요한게 뭐냐고 물어보면
아마 십중팔구는 자동차와 운전면허증이라고 할겁니다.
뉴욕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 그냥 일반적인 미국에서의 삶을 이야기할 때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삶의 일부분이나 마찬가지죠.
뭐 한국에선 그렇다고 치고 면허따기가 그렇게 쉽다는 미국에서도 전혀 딸 의향이 없는 사람을 두고
바가지 긁을 필요는 없지요.
그냥 딸래미처럼 남편 역시 내가 운전하는 차에 태워 함께 여행하는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해집니다.
우리 가족이 완전체가 되어 함께 머나먼 타국에서 여행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이고 감사한 일이냐..
게다가 다른 가족들 보면 거의 대부분 남편들이 운전하고 아내들은 운전대 잡아볼 기회가 그닥 없는데
난 30개가 넘는 주를 여행다니면서 다 내 손으로 운전했으니
그런 귀한 경험을 하게 해 준 남편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진심으로요.
한국에선 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 비슷한 일이 발생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말다툼이나 감정싸움이 일어나는 것 말입니다. 그럼 몇마디 툭탁거리다가
결국 남편은 차 세우라며 버럭 합니다.
그리고는 휙 내려서는 택시를 잡아타고 가버리지요.
그렇게 서울서는 호기를 부렸던 남편!!!
미국에 와서 이런 일이 가끔 생기면 전세는 완전 달라집니다.
그전엔 성질도 부리고 휙가버리기도 하다가 이곳에선 입을 꾹 다물어 버립니다. 별로 표정 좋지 않죠.
완전히 퉁퉁 부은 얼굴로 분위기 싸하게 만들며 말한마디 않고 있는겁니다.
어쩌겠습니까. 화는 나겠지만 내가 없으면 꼼짝달싹 못하는 궁색한 처지인거죠.
이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닉스를 거쳐 세도나로 향하는 휑한 도로.
아니 사막은 아니고 산길이라 딱히 휑하지는 않지만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인 도로들이 끝도없이 이어집니다.
중간에 기름 넣느라 한두번 멈추는데 일어나지도, 말한마디도 안합니다.
뒷자리에 앉은 딸래미는 제 할일 하다가 눈치보다가 잠자다가... 주유소에서 기름넣은 뒤 간단한 간식거리 사러
편의점 들르는데 "아빠 왜 저래?"라고 물어봅니다.
그렇게 쎄하고 불편한 길...
아주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두어시간 가량의 그런 드라이빙은 정말 힘들고 진이 빠집니다.
보통 다른 집들도 보면 여행하다가 그렇게 싸움이 나면서 여행이 쫑나거나 분위기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최악의 경우 각자의 교통수단으로 돌아가버리기도 할 수 있고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중 다행이랄까. 미국은 그럴 엄두를 못낸다는게, 죽으나 사나 같이 붙어 있어야 한다는게
다행이지요. 물론 안풀리는 그 시간 동안은 정말 그런 고역이 따로 없지만 말입니다...
지루하기만 한 길이 이어지다가 세도나로 빠지는 구불구불한 산길로 들어섭니다. 20, 30분을 그렇게 달려가다보니
저 멀리 온통 붉은 빛깔의 바위산(?), 흙산(?) 여튼 붉은 빛깔의 산들이 병풍처럼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몹시 오묘하고 놀랍더라구요.
세도나 남쪽 입구 비지터 센터에 차를 세우고 바라본, 푸른 하늘 아래 온통 붉은 기운의 산들이 둘러싼 모습은 무척이나 오묘했습니다.
안내소에서 각종 안내 책자와 필요한 것들을 물어본 뒤 그 멋진 광경을 몇차례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물론 사진은 엉망으로 나옵니다... ㅠㅠ
남편과 딸래미보고 사진을 찍자고 했습니다. 그 멋진 광경을 그냥 보내긴 그랬는지 잡아 끄니 억지로 서긴 섰는데 얼굴 표정은 대박 굳어 있습니다. 애랑 세워놓고 사진 몇장 찍은 뒤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저희가 여행할 때가 겨울철이라 해가 짧았기 때문에 빨리 길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세도나가 워낙 숙박요금이 비싸 한시간 가량 떨어진 플래그스태프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문제는 세도나에서 플래그스태프까지
이어지는 길이 89a라는 도로인데 구절양장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터라 살짝 걱정이 됐습니다.
일단 세도나를 관통하며 대략의 도시 모습을 살피면서 숙소로 향했습니다. 세도나 북쪽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이내 하늘은
어둑어둑해졌습니다.
네비를 맞추고 부지런히 길을 재촉했습니다. 안그래도 겨울인데다 산길이니 어라나 어둡겠습니까. 구불구불 구절양장에 눈까지 잔뜩 내렸던터라 길 양쪽에 눈이 쌓여 있고 도로 자체도 상당히 미끄러웠죠.
초행에 밤길에 구불구불 산길에 눈까지 내렸던.. 최악의 4중고를 극복하며 손에 땀을 쥔 채 운전을 계속했습니다.
왕복 2차선 밖에 안되는 도로인데 맞은편 내려오는 쪽은 또 어찌나 달려대는지...
제 앞차도 좀 천천히 가면 좋겠구만 마치 매일 다니기라도 한 듯 슝슝 잘도 빠집니다.
전 엉금엉금 진땀을 빼며 조금씩 속도도 냈다가 다시 엉금엉금.... 그런데 뒤에선 경적을 울리며 난리를 쳐대고...
아니 누가 미국 사람들이 운전할 때 경적 울리지 않는다고 개뻥을 쳤는지....
도저히 안되겠으면 잔뜩 산을 이룬 눈무더기 옆으로 범퍼를 들이민 뒤 지나가라고 양보해주기라도 하겠는데 그마저도 길이 좁고 눈 쌓인 옆이 낭떠러지라 쉽지도 않더구만요. 정말 내 인생 최대의 긴장된 순간 중 하나 였습니다.
앞뒤로 하도 쪼여대니.. 물론 운전하다가 정말 짜릿짜릿한 스릴감을 느끼며 긴장된 적은 있었지만
세도나에서 플래그스태프로 향하던 이 때는 마치 스릴러물이나 공포영화에서 쫓기는 주인공이 된 느낌이라 그래야 하나 뭐라해야하나...
그 기분 아시겠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평온하던 여행길에 또 다른 종류의 위기(?) 가 닥치다보니
어느새 쎄 하던 차안의 분위기는 서로에 대한 가족애(?)로 하나가 됐지요.
조심하라며 긴장을 풀어주고 차창을 열어 뒤를 보며 길 상태도 말해주고, 피곤할까봐 뒷목도 주물러주고
딸래미는 육포를 뜯어서 힘내라며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애정 넘치는, 모범적이 가족의 전형이지요.. 여행은 이런것인가 봅니다. ㅋㅋㅋㅋㅋㅋ ^^.
정말 천신만고 끝에 그 꼬불탕한 산길을 빠져나오고 나니 좀 편안해진 도로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잡아놓은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온통 눈이 쌓여있고 양옆으로 치워놓았지만 길은 미끄럽고 질척했습니다.
저희가 머물렀던 숙소가 Ramada inn 이었는데 근처에 온갖 종류의 체인 숙박업소들이 줄을 지어 있었습니다.
큰 월마트와 쇼핑센터도 있길래 도대체 이 동네에 왜 이렇게 모여있나 싶었더니 근처가 그랜드캐년, 그리고 세도나가 가까이 있어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priceline. com 과 같은 비딩 사이트에서 세도나는 웬만해선 비딩이 안될 뿐 아니라 좀 괜찮다 싶은 숙소 가격은 1박에 150달러를 넘더라구요. 그랜드캐년도 공원내 랏지가 있지만 역시 잡기가 쉽지 않고요. 숙소 안으로 들어왔더니 로비부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호텔에서 해가지고 나온, 차갑게 식은 밥을 꺼내고 3분 미역국, 3분 짜장을 꺼내 김치와 먹으니 꿀맛이 따로 없습니다.
거기에 컵라면까지. 롤러코스터를 탔던 애리조나의 두번째 밤도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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