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를 찍고 팜스프링 등을 거쳐 애리조나 주로 넘어가면서 우리가 향한 곳은 남쪽의 도시 투산입니다. 국내에는 콤팩트 SUV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도시 이름으로는 비교적 생소한 곳이지요. 그러고보니 차 이름 중 도시이름을 붙인 경우가 꽤 여럿입니다. 싼타페, 세도나(기아차 카니발의 미국명), 베라크루즈(이건 멕시코 도시입니다), 듀랑고, 쏘렌토 등등. 캘리포니아남쪽과 애리조나로 이어지는 지역은 거의 대부분 황량한 사막입니다. 모래사막이 아니라 메마른 황무지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지루한 길이죠. 네비게이션 화면은 아무것도 표시돼 있지 않은 단색의 화면에 세로로 줄 하나가 죽 그어져 있는게 전부입니다. 하긴 주변에 강이든 길이든 산이든 뭐가 있어야 표시가 될테니 네비 입장에서도 달리 표현할 길이 없긴하겠죠.
그렇게 쉴 새없이, 아니 가다가 나타나는 휴게소(가보신 분은 알겠지만 exit 나가면 주유소나 간단한 편의점, 숙박시설 있는게 전부입니다)에 들러 기름 넣고 가벼운 맨손체조 하면서 그렇게 주구장창 달렸죠. 전 남편이 운전을 못하는 관계로 저 혼자 운전을 해야했기 때문에 열심히 제 몸을 관리해야했답니다.
이른 아침부터 한 6, 7시간 정도 가다 보니 오후 한창 햇볕이 절정을 이룬 오후에 투산에 도착했습니다. 안그래도 가뜩이나 메마른 땅은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받아 더 메마르고 건조하게 느껴졌습니다.
일전에 류현진선수가 애리조나 원정가서 경기하는 방송을 봤는데 경기내용 보다는 경기장 주변을 둘러싸고 길쭉길쭉하게 솟아오른 애리조나 특유의 선인장 사구아로를 보며 마치 고향사람이라도 만난것처럼 반가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번 가본걸 갖고 그게 전부인 줄 아는 촌닭처럼 저랑 저희 가족들 역시 그 화면을 보며 “사구아로다!!!”하며 반가움에 소리를 쳤었지요.
애리조나 투산에 가까워지면서 평소에 거의 접하기 힘든 희한한 모양의 선인장들이 곳곳에 자라고 있는것을 보면서 우리가 새로운 세계, 이국땅에 와 있구나 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봇대만한 선인장들, 요상 희한하게 생긴 선인장들이 서 있는데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저런 선인장이 그냥 관상수인거지요.. 이곳에서도 사구아로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는게 차량 번호판입니다. 선인장 그림이 들어가 있는 차량 번호판을 보니 애리조나의 상징인 셈이지요.
두둥... 보이시는지... 이 신기한 삼지창 모양의 사구아로... 사막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나타나는 광경들입니다
투산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향한 곳은 소노라 사막박물관입니다. (혹시 가실 분들은 네비 주소 2021 north kinney rd tucson Az 85743)
가는 길이 롤러코스터 처럼 오르락 내리락해서 좀 재미있기도 한 곳이랍니다. 도로에 Dip라는 표지판이 있는데 중간 중간 푹 꺼진 곳을 표해 놓은 거지요. 물론 다 포장은 돼 있는 길이라 위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소노라 사막 박물관과 가까워지면서 사구아로가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 박물관은 이 지역의 독특한 식생, 살고 있는 동물, 곤충들을 한번에 볼 수 있도록 해놓은, 아주 흥미로운 곳입니다. 이름처럼 소노라 사막에 연결돼 있는곳이라 소노라 사막 박물관으로 부릅니다. 소노라 사막은 멕시코까지 연결된 사막인데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샌듄이 있는 모래 사막이 아니라 선인장이 간간이 있는 마른 황무지 입니다. 멕시코 국경 지역이라 국경을 넘어오는 멕시코인들이 이 사막에서 지쳐 쓰러져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네요.
사구아로(saguaro)라고 쓰여있는데 현지 발음으로는 사와로 라고 읽더라구요. 전 그냥 편의상 사구아로 라고 하겠습니다.
소노라 사막박물관에는 300종의 동물과 1200종이 넘는 식물, 그리고 사막 자체의 지형과 역사 등을 한번에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습니다. 식물원과 동물원, 그리고 종합 생태·지형 체험 교실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도 흥미로워할만한 곳입니다. 실내와 드넓은 실외가 펼쳐져 있어서 물과 선크림, 모자 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퓨마, 표범, 맹독성 뱀들 등 맹수와 진귀한 각종 선인장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무대신 선인장 숲을 따라 가족끼리 산책할 수 있는 trail 코스도 많은데 한낮엔 정말 더울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엔 머리가 허연 자원봉사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사막 선인장이나 동물들에 대해 관광객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더라구요. 이건 미국에 살면서 참 많이 부럽다고 느꼈던 것인데 은퇴한 분들의 경험과 에너지가 정말 바람직하게 잘 사용되고 있는 모범적인 모습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럴 수 있다면, 이런 활동이 활성화된다면 훨씬 좋아지고 세대간 갈등도 줄어들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해봤다는.
박물관 내의 동물원 이게 사자인가요.. 뭔가요.. 동물에 넘 약하다는...
역시 이름 모름 --
사구아로를 한 손에 잡고... 카메라 들고 장난치는 딸래미.
이것도 뭔 이름의 선인장인데...
이곳에선 희한한 동식물들을 많이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다이아몬드백이라는 애리조나 고유의 방울뱀입니다. 다이아몬드 무늬의 등을 가지고 있다는데서 이름이 유래한건데 황량한 사막지대에 살고 있답니다. 적이 나타났을 때 꼬리를 요란하게 흔들며 방울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물론 저희들이 갔을 땐 그런 소리를 못들었겠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라는 팀 이름도 여기서 따 온 거라고 하네요. 김병현선수 덕분에 국내 팬들에겐 익숙한 이름이기도 합지요...
이쪽은 사구아로 국립공원내의 드라이브코스입니다
사구아로가 펼쳐진 산.. 이쑤시개를 꽂아놓은 것도 아니고...
사구아로에 발길질을????? 그럴 수 있나요.. 카메라로 장난쳐본거지요..
온통 천지사방에 사구아로로 가득한 사구아로 국립공원은 소노라 사막 박물관 가까이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그 이튿날 사구아로 국립공원을 찾았지요. 드라이브 코스도 있고 산책로도 종류별로 있어 질리도록 이국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높은 언덕에 올라서 바라보는, 사구아로가 가득 자라는 야트막한 산들이 펼쳐진 광경도 잊을 수 없는 장관입니다.
음식문화 빈약하기로 유명한 미국에서 그나마 애리조나는 카우보이 스테이크로 유명한 곳입니다. 유명한 카우보이 스테이크집 피너클 피크(6541 e. tanque verde Rd Tucson)는 미니 카우보이 테마파크인 트레일 더스트라는 곳에 있습니다. 워낙 웅장하고 세련된 관광지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선 규모에서 실망스러울 법한 곳이기도 한데 미국 사람들은 별 볼일 없는 작은 시설을 보면서도 어찌나 감탄하고 감동받길 잘하는지... 뭐 이 트레일 더스트라는 곳이 후줄근하다는 건 아니고 저녁 먹기 전 적당히 한시간 정도 시간을 때우면서 재미있게 둘러볼 만한 곳입니다. 옛 카우보이 활동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거리나 건물들이 서부 영화를 연상케 하는 곳이지요. 당시의 레스토랑이나 사진관, 살롱, 이발관 등이 있고 감옥도 있습니다. 전체를 돌 수 있는 꼬마 관광열차와 마차, 미니 공연장과 기념품 숍 등도 갖춰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곳에선 카우보이와 카우걸들로 분장한 사람들이 권총싸움같은 쇼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보다보면 재미있어서 넋놓고 보게 되기도 하지요. 쇼가 끝난 뒤에는 반드시 열렬한 박수와 함께 팁도 잊지 마시구요. 물론 얼굴 디밀고 사진찍는.. 그걸 뭐라고 하죠? 여튼 그런 입간판 같은 곳도 무지하게 많고 곳곳에서 사진찍기 좋습니다.
레스토랑 안 천정에 넥타이가 걸려 있습니다
트레일 더스트 안에는 이런 대장간도 있습니다.
카우보이 스테이크집은 값도 싸고 서민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곳입니다. 투박한 분위기에 왠지 모를 정감이랄까... 넓직한 식당에 꽉찬 사람들이 어찌나 시끄럽게 떠드는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죠. 종업원들이 카우보이, 카우걸 복장을 하고 손님들을 맞이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곳인데 특이한 장면이 천장과 벽면 곳곳에 잘려진 넥타이가 즐비하게 걸려 있다는 겁니다. 주문을 한 뒤 앉아서 옆을 두리번 거리는데 우리 가족이 앉은 옆테이블에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지더군요. 수엽 텁수룩한 포스 쩌는 카우보이 아저씨가 와서는 그 테이블에 앉은 중년 아저씨의 넥타이를 잡고는 칼로 자르고 있더군요. 넥타이 잘리는 아저씨는 뭐가 재미있는지 계속 낄낄대고 웃고있고 주변 사람들 역시 신기하고 놀라고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다른 테이블에 넥타이를 맨 사람에게도 가서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이내 자르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물어봤더니 명함을 보여주는데 no ties allowed라고 씌여 있더군요. 몇십년전엔가 이 식당이 처음 생겼을 때 수트 차림으로 들어온 손님의 꼴이 보기 싫어서 주인장이 넥타이 풀래, 자를래하고 물어봤다지요. 그런데 그 손님이 어리버리하고 있는 사이 그 넥타이를 잘라버리면서 그게 전통이 됐다는 거 같아요.
그러고보니 넥타이 자르고 나서 사람들이 소리지르고 환호하며 난리도 아니더라구요. 아마 그 동네에서 생일이나 축하받을 일 있는 사람들이 일부러 넥타이를 매고 와 잘림을 당하는 것이 일종의 세레머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튿날 일찍 눈을 떠 사구아로 국립공원에서 선인장이 뿜어내는 정기를 한참 마신 뒤 피닉스를 거쳐 세도나로 향했습니다. 피닉스로 바로 이어지는 큰 길이 있지만 굳이 77번 도로를 타고 마운틴 레먼 한자락을 거쳐 지나가는게 더 좋습니다. 사구아로와는 또 다른 이국적인 식생이 펼쳐진 산들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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