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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과 탐식

5년만의 미국여행정리/서부 3 데스밸리

by 신사임당 2013. 9. 22.

 데스밸리. 이름부터 심상찮습니다. 죽음의 계곡이라. 장미희 안성기 주연의 영화 <깊고 푸른 밤>에 주인공이 생을 마감하는 곳으로 등장하는 그 무대가 바로 이 데스밸리 내의 모래언덕 '샌 듄' 입니다.

 데스밸리 하니 떠오르는 이가 가수 이장희씨입니다. 2년전 이장희씨를 인터뷰했을 때 그분 말씀이, 지금까지 여행지중 가장 인상적인 곳이 데스밸리라고 했습니다. 100번도 넘게 다녀왔다면서, 그곳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잊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저희 가족 역시 데스밸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태곳적 원시 자연이 무엇인지, 거대하고 순수한 우주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데스밸리 내의 숙소  stovepipe를 예약한 것은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워낙 숙소가 안나와 며칠간 밤을 지새며 기다렸다가 광클릭으로 겨우 방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별... 버려진 황무지, 죽음의 계곡, 모든 생명체가 말라죽어가는땅을 뒤덮은 별들은  지구상 그 어느 곳보다 낮고 가까이 내려와 맨얼굴을 내보이고 있었습니다.

 

 

데스밸리 입구

 

네바다 95번 가던 중 들른 주유소에 서 있던 간판. 유카산 안내센터 가기전 마지막 주유소임을 알리는 것인데 그 유명한 51구역이 나와 있지요. 공식적으로 미국 공군의 군사훈련지역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외계인과 교신하는 곳이다, 외계인 연구센터다 하는 미스테리한 소문들이 끊임없이 나고 있는 곳. 이 근처에 갔던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보면 접근하거나 무단으로 사진찍으면 발포하겠다는 경고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저 안내판 옆에 이상한 외계생명체로 보이는 건...정말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라는...

 

 

전날 라스베이거스에서 장을 빵빵하게 봐서 트렁크를 채워넣었는데도 온갖 방정맞은 걱정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라스베이거스 공항에서 빌린 차는 토요타의 코롤라. 우리로 치면 아반떼 급 정도인데 겨울인데다 꼬불탕 도로를 달려야 하던 상황이라 4륜구동 suv를 빌렸어야 하나하고 후회가 계속 밀려왔지요. 미끄러지면 어떡하나, 펑크나면 어떡하나.... 그런데 다행히 고속도로에서 우리차만하거나 더 작은 차들도 데스밸리를 향해 죽죽 가는 것을 보며 괜히 안심이 되더군요... 사실 여름이면 데스밸리가 펑크나 엔진이 멈추는 위험이 크다고 하는데 겨울은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된다고 하더라구요. 대부분 도로가 잘 닦여져 있기 때문에 엄한데로만 가지 않으면 되는거죠.

 

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미국은 어떤 목적지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길로 가느냐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시닉 바이웨이가 워낙 좋은 곳들이 많기 때문이죠. 길을 달리는데 그 자체로 내가 영화나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달리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드라이브 만으로도 멋진 관광지인 곳이라 놓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이리저리 정보를 모아 들고 나는 길을 정했고 이 후에 가시는 분들에게도 강추했더니 다들 만족하셨습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한다면 네바다 95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373번으로 꺾어 들어가면 됩니다. 나갈 때는 캘리포니아 190번 도로를 타고 나오다 395번 도로를 빠져 나오면 됩니다. 캘리포니아 1번 국도 이상으로 멋진 곳인데 그것만큼 유명하지 않아서 좀 아쉬운거죠...여튼 395번 도로는 미래소년 코난과 같은 만화영화에 묘사된 원시지구, 태곳적 지구를 연상케하는 곳입니다. 시에라 네바다를 가로지르며 깎일 듯 놓여있는 도로, 옆은 아찔하지만 앞은 더 이상 장대할 수 없을만큼 툭 트여 스펙터클한 전망을 자랑합니다.  

 

 

데쓰밸리 가는 길.. 달리고 달려도 이런 길들....

 

데쓰밸리 입구 들어서기 직전 길 양쪽에 펼쳐진 산들... 멋지죠

 

주변 산이 뭔가 범상치 않은 포스를...

 

 

 

데스밸리는 여름에 여행을 꺼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워낙 기온이 높은 곳이라서 그렇다고 하네요. 이 때문에 타이어 펑크도 잘 나고 에어콘 틀었다가 차가 퍼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해요. 중심을 가로지르는 웬만한 도로는 다 포장돼 있지만 관광포인트마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거나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곳에 갔다가 들은 엽기적인 이야기로는 포장이 돼 있지 않은 한 포인트 몇년전 독일 관광객들이 들어갔다가 실종됐는데 아직까지도 레인저들이 그들의 흔적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워낙 지역이 넓은데다 까딱 비상식량이나 물없이 낙오됐다가 고사할 수 있겠다 싶더라구요. 솔직히 미국의 국립공원은 관광지라기보다는 여행지라는 말이 적합합니다. 몇날 며칠을 한곳에 머무르면서 다 구경하고 걸어다녀봐야 뭘 좀 느껴봤다고 할 수 있거든요. 저희야 뭐 훑고 가는 여행자들이라 사람들 많이 다니는, 기본 코스로만 다녔는데도 시간이 상당히 걸리더라구요. 모험심 강한 사람들이라면 아예 몇주간을 머무르면서 도전할만한 요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멀리 산 봉우리들이 석양에 물들어가는 모습... 이미 웬만한 곳은 산 그늘에 가려졌고 저 멀리 한줄기 빛만 비치는 모습입니다...

 

숙소 근처의 sand dune...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이 저질 사진 솜씨 어쩔...

 

모래 언덕에서 굴러 내려가는 딸래미.. 모래 끝나는 쪽으로는 좍좍 갈라진 바닥 보이시나여...

 

 

미국 국립공원은 들어가는 입구에 안내센터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지도를 받아 대략의 투어 계획을 세우면 됩니다. 웬만한 포인트마다 차를 세우고 걸어가서 구경하는 식의 트레일코스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 유명한 곳을 검색하거나 추천받아 가는 경우가 많지요(다 볼 시간이 잘 안되므로). 또 아이가 있는 경우라면 국립공원마다 있는 주니어레인저를 신청해도 좋습니다. 주니어레인저는 공원마다 운영하는데 아이들에게 과제가 담겨진 액티비티 북을 줘서 그것을 작성해오게도 하고 각종 프로그램에 참가해 강의를 듣게도 하고 있습니다. 국립공원의 핵심을 알 수 있는,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여러가지 방법들인데요 어른들이 참가해도 좋습니다. 형식은 국립공원마다 차이가 있습니다만 영어를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는 아이들이라면 상당히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죠. 이걸 마친 뒤에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게도 하고 선서(자연을 보호하고 잘 가꾸겠다는...)를 하면서 책임감을 갖게도 하고 박수를 쳐주며 격려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통과했다는 의미로 배지나 스티커를 주는데, 아이들이 이거 모으느라 한 집착 합니다. 엄청 동기 유발이 되는거죠. 특히 우리나라 부모님들 어딜 가든 아이들이 뭔가 배우고 남겨오길 좋아하는데 이건 어른, 아이 모두 충분히 만족감을 채워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이들이 원하는 경우에만요...

 

 

데스밸리 내에 꼭 봐야할 코스는 여러가지 있습니다만 sand dune, bad water, 자브리스키포인트, 데블스 드라이브, 아티스트 파레트, 단테스 뷰 등이 있습니다.  숙소가 있던 stovepipe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샌듄은 말 그대로 모래 언덕입니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막이지요. 황량한 황무지 사이에 숨겨진 비경입니다. 나중에 콜로라도주의 유명 국립공원인 그레이트 샌 듄은 데스밸리의 샌 듄보다 몇십배는 더 큰 듯... 어쨌든 여행자들에게 나타나는, 아니 저같은 관광객에게 나타나는 사막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메마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식물과 동물들, 사막 한켠에 졸졸 흐르는 샘에서 목을 축이는 작은 생명체들이 또 다른 우주를 일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브리스키 포인트에서 바라본 산들... 저걸 필설로 어떻게 표현할지... 정말 직접 보면 장대하기 그지없습니다.

 

 

 

아티프스 팔레트를 바라보는 딸래미... 방향을 잘 못 잡아서 카메라에 그 형형색색의 모습을 담아 낼 수 없었다는 아쉬움... ㅠㅠ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사막 관광지에는 스키나 각종 액티비티도 많이 있지만 이곳은 그저 묵묵히 트레킹하는 사람들 밖엔 없었습니다. 나중에 간 콜로라도의 그레이트 샌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가족은 맨발로 모래 언덕을 걷다가 언덕 위에서 아래로 몸을 굴러 내려오기도 하며 모래를 뒤집어쓰고 놀았습니다.

드넓은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자브리스키 포인트와 단테스 뷰, 빨강 노랑 분홍 초록 보라 등의 흙과 암석이 기묘하게 뒤섞여 산을 이룬 아티스트 팔레트, 그 협곡 사이를 돌아가며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아티스트 드라이브,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땅이라는, 여전히 소금이 남아 있는 배드 워터 등도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데쓰밸리를 나오면서 만나게 되는 풍경들.. 어마어마한 광경을 다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 ㅠㅠ

 

 

 

배드워터. 하얀쪽은 여전히 남아 있는 소금. 저 멀리 짙은 색은 그냥 흙밭....살짝 찍어 맛을 본 흰가루에선 쓰고 짠 맛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