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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과 탐식

5년만의 미국 여행 정리/서부 2

by 신사임당 2013. 8. 30.

2008년 겨울 서부여행은 충동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미국 초등학교 겨울 방학이 2주에 불과한  짧은 기간이었던데다 나름 단기 체류객 주제에 현지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터라 여행 계획을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현지에서 미국인 교회를 다녔고 그 안에서 이것저것 하던 일이 있어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행사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리저리 미적거리고 있던차에 Hotwire를 검색하다 라스베이거스까지 엄청 싸게 나온 비행기표를 광고하는 팝업창을 발견했지요 아마 1인당 백달러 좀 넘는 파격적인 가격이었던 것 같아요. 내친 김에 렌터카까지 질렀죠.

무조건 라스베이거스 in out이라고 그에 맞게 코스를 짰습니다. 겨울이라 국립공원 중 날씨에 따라 폐쇄되는 곳도 있고 도로가 막히는 곳도 있는지라 될 수 있는대로 그런 변수가 적을만한 곳을 고르느라 고심을 했지요.

그렇게 부랴부랴 12일간의 일정을 잡았습니다

코스는 이렇습니다.

라스베가스-데스 밸리- 레드락 캐년-새너제이-샌프란시스코-1번국도 드라이브- 솔뱅-산타바바라 -말리부 -LA- 팜스프링스- 투싼 -피닉스 -세도나 -그랜드캐년 -라스베가스 입니다.

 

빌린차는 우리식의 아반떼 정도인 도요타 코롤라. 평소에도 싼값에 특급호텔을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라스베가스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호텔들은 priceline.com을 통해 비딩하며 다녔습니다. 그리고 데스밸리는 그 안에서 숙박을 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지요.

 

제가 살았던 비행기를 타고 라스베가스까지 오는데 비행시간만 5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정말 거대한 나라다 싶은게 어마어마합니다. 같은 나라에서 이동하는데도 시차가 2시간이나 늦어져 시계를 맞춰야 했구요. 앞서 말씀드렸듯 저희는 생활비 아껴 여행을 하던 상황이라 밥솥은 항상 들고 다녔습니다.

미국의 고속도로변 식당이나 도심에 들어가도 대체로 햄버거 등 패스트 푸드가 대다수입니다. 쇼핑몰 푸드코트를 가도 피자에 파스타, 중국요리, 튀김류 등 뻔하죠. 유럽처럼 음식문화가 지역별로 발달돼 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지역을 대표할 유명음식도 없는 편이라 웬만하면 다 해먹었습니다. 주요 거점마다 한인마트를 찾아 김치와 반찬, 쌀을 사서 들고 다니는 식이었지요. 삼각김밥틀과 무선주전자, 컵라면, 각종 레토르트 식품, 통조림 류가 일용할 양식이었슴다... 물론 샌프란시스코에선 클램차우더 수프를 먹고 투싼에선 카우보이스테이크 등 특징적인 음식 몇가지는 맛봤습니다만 대부분은 밥을 해먹으면서 다니는 여행이었습니다.

 

 

 

 

라스베가스는 도시가 그 자체로 거대한 테마파크죠. 벨라지오 호텔 앞의 분수쇼를 비롯해 시저스팰리스, MGM, 뉴욕뉴욕 등 호텔 자체로 관광거리인 곳들도 많습니다. 어차피 호텔마다 카지노가 있기 때문에 호텔값은 비싸지 않습니다. 하긴 비쌀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돈 싸들고와서 카지노 해주는 건데 호텔입장에선 무료로 묵으시고 마음껏 도박하다 가십시오... 하는 걸테니까요. 

 

 

 

 

이상의 두장은 제 허접한 솜씨로 찍은 야경이라 도저히 봐줄수가 없네요 ㅠㅠ

 

 

 

 

라스베가스 중심대로인 스트립 주변의 4, 5성급 호텔도 프로모션을 하거나 비수기에 가면 30달러대에 잡을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여러군데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다가 트로피카나 호텔에서 세금포함 33달러에 묵을 수 있다는 팝업창을 보고 눈이 뒤집혀 바로 예약을 했죠.

 

 

벨라지오 호텔 사이트 캡쳐 사진입니다

 

 

짜릿한 탈거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스트라토스피어타워를 빼놓을 수 없겠죠. 한 삼사백미터 타워 상공에 놀이기구가 떡하니 있는건데 타워 꼭대기에 뭔가가 걸쳐져 있는 그것을 타는 겁니다. 설명이 좀 이상한데 놀이기구에 타면 발밑으로는 그냥 허공이 돼버리는...

워낙 고소공포증 심한지라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릿해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저는 까마득히 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이 지경인지라... 나중에 안내책자를 보니 이 건물에서 탈 것은 big shot, X-scream, insanity 등이 있는데 뒤의 두가지는 세게 3대 무서운 놀이기구에 포함된다고 하네요. insanity라니... 정말 보기만해도 이건 미친짓입니다!!!

 

 

 

 

위에서부터 insanity, x-scream, big shot입니다 stratosphere 홈피에서 퍼왔습니다

 

밤의 라스베가스는 장관입니다. 잠들지 않는 도시라는 별명처럼 온 세상이 더 이상 휘황찬란할 수 없을 정도  번쩍거리고 활기로 넘쳐나지요. 물론 제가 찍은 사진에선 허접하기 그지없습니다만... 흑..

 

그런데 아침, 해가 쨍 내리쬐는 이 시간에 도시를 내다보니 슬픔에 빠진듯, 늘어진 듯 그 느낌이 참 묘합니다. 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고 몇시간전의 활기는 사라지고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카지노장 역시 밤에 활기를 띠지만 이른 아침에도 여전히 도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묵었던 트로피카나 호텔 1층에서 봤던 몇몇은 초점없는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더군요. 그중 특히 기억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골리의 단편 외투에 나오는 주인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가 형상화된다면 아마 저런 모습 아닐까 싶게 생긴 남자가 슬롯머신 앞에서 연신 한쪽 팔을 긁으며 흐리멍텅한 표정으로  버튼을 누르고 있더라구요. 처음 이 도시에 왜 왔는지, 얼마를 잃었는지, 그 돈이 저 남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갑자기 꼬리를 물며 궁금해졌습니다. 힘들게 장만한 전재산 외투를 강도에게 빼앗겨 죽은 뒤 유령이 돼 외투를 빼앗아 간 것처럼 저 남자도  그런게 아닐까 하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말았다는....

 

 

 

그 남자를 뒤로한채 호텔을 나섰습니다. 남편과 딸래미와 함께 차 트렁크에 얼음을 가득 채운 아이스박스를 싣고 밥솥과 짐을 실은 뒤 라스베가스 한인 마트로 출발합니다. 거기서 김치와 먹거리를 잔뜩 싸 넣은 뒤  두번째 행선지,  드디어 대자연속 '데쓰밸리'로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