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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통신

김기춘이 전해 주는 데자뷰

by 신사임당 2013. 8. 5.

청와대 새 비서실장에 김기춘씨가 임명됐네요. 최근 몇년사이 시대의 퇴행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면서 올드 보이들이 중앙무대로 대거 등장했는데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 역시 그 정점에 놓일만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수장학회 1기 장학생, 박정희 독재시절을 대표한 공안 검사,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간부, 박정희 정권에서 청와대 비서관까지 지내다가 대를 이어 대통령이 된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까지 맡게 됐네요. 그 사이 노태우 정부 시절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맡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시절 국회 법사위원장이었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2004년 3월. 헌재 관계자에게 탄핵소추안 의결서 정본을 제출중인 김기춘 국회 법사위원장

 

 

김기춘 하면 떠오르는 사건은 부산 초원복집 사건입니다. 지금 40대 이상이면 누구나 기억에 남아 있을 겁니다.

초원복집 사건이 뭘까요. 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1992년 말, 14대 대선을 사흘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그는 법무장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산지역 기관장들과 초원복집에 모여 김영삼 후보 지원책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감정이 집약된 유명한 말도 거기서 나왔습니다. 당시 국민당은 이들의 모임 정보를 입수해 이들의 대화를 녹음해 폭로했습니다.

 

일단 당시 기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여전하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  언론자유도 제약돼 있던 그 시절, 그들의 모습을 되돌려 봅니다.

 

 

1992년 12월 15일 동아일보

 

국민당의 김동길선거대책위원장은 15일 김영환부산시장 박일룡부산경찰청장 이규삼안기부부산지부장 김대균부산지역기무부대장 우명수부산교육감 정경식부산지검장 박남수부산상공회의소회장 등 부산지역 기관장 7명이 지난 11일 아침 7시 부산시 남구 대연동 초원복집에서 김영삼민자당후보의 당선을 위한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폭로하고 이들의 대화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증거물로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이들 기관장들은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주재한 이날 회의에서 △김영삼후보의 당선을 위해서는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신문사간부들을 매수하며 △상공회의소 등 민간단체들이 유세장 인원동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등에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적극 노력키로 했다』고 폭로했다. 김 위원장은 『이같은 대책회의는 한 부산시민의 제보에 따라 대화내용을 녹음할 수 있었다』면서 『이들중 정 부산지검장과 우 부산교육감을 제외한 5명을 우선 선거법위반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 테이프에 따르면 이들 기관장들은 이날 회의에서 「이번 대선에서 경남 부산이 발전할 기회를 못잡으면 영영 파이다』(김 기무부대장) 「잘못하면 혁명적 상황이 와서 전부 끌려들어가야 할 판」 「부산 경남사람들,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니 하면 영도다리 빠져죽자. 남들이 비웃을 것이다. 당락을 불구하고 표가 적게 나오면 우리는 멸시받는다」(김 전 법무장관) 「팔이 안으로 굽는 것같이 상공회의소 회장은 다 여당권입니다」(박 상공회의소 회장) 「부산지역 호남인표 10%와 군소정당표 3∼5%를 빼면 나머지 85%인데,이중 15%를 정주영이가 가져간다면 ○○은 끝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60대로 떨어지니까 10%미만으로 떨어뜨려야 한다」(김 부산시장)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 일으켜야 돼」(김 전 법무장관) 등등의 대화로 김영삼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이들은 「최근 현대수사하고 나서 많이 좋아졌어… 기가 많이 죽었는데 그대로 나왔으면 큰일날뻔 했어요. 지역신문이 더 단결하면…」(이 안기부 지부장)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원체 삐딱하니까… 숨어서 지금도 하고 있는데…」(김 시장) 「고향발전을 위해서 해달라고 해보십시오. 관리들은 하기 곤란하니까… 업계에서」(김 전 법무장관) 「강회장,좀 바쁘더라도…」 등의 대화로 김영삼후보의 당선대책을 노골적으로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부산시가 지난 10월22일 부산시 전공무원에게 김영삼후보의 지지를 부추기는 내용의 공문을 차용규내무국장의 명의로 하달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부산시는 이 공문에서 「오늘날 여야도 없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선택적 대안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너무 잘알고 있습니다. 구국적인 3당합당으로 국정을 이끌어오신 대통령 각하의 신념을 더욱 계승 발전시켜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를 필승의 의지로 임하여야겠습니다」고 강조,김영삼후보의 지지를 암시,부추겼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또 같은날 부산남구청이 「92년 대통령 선거자금」이란 명목으로 김영삼후보 지원자금 3억4천2백만원을 관내 부녀회 바르게살기협의회 예비군 중대본부 기동대 등에 최고 6천3백만원까지 지급했다고 주장하고 이 자금의 명세서 사본을 공개했다.
◎“특정후보 지지논의 안해”/김 부산시장
이에 대해 김 부산시장은 『기관장들이 모이기는 했지만 특정후보 지지논의를 한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시장은 또 『김영삼후보 지지공문이나 지원자금 문제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국민당을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1992년 12월21일

 

부산지역 기관장 대책회의」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는 21일 이 모임을 주재한 김기춘 전법무장관과 김영환 전부산시장 박일용 전부산경찰청장 이규삼 전안기부 부산지부장 등 4명을 소환,선거법 위반혐의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김 전장관 등을 상대로 이 모임의 성격 및 소집경위,당시 발언동기 등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김 전장관은 이날 검찰에서 『지난번 부산에서 가졌던 조찬모임은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의도가 있는 공식적인 모임이 결코 아니었다』며 『일부 보도와 같은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모임에서 구체적인 선거운동 관련방안이 논의되거나 결론을 내린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날 김 전장관 등에 대한 조사를 끝내고 22일 박남수부산상공회의소회장 등 나머지 참석자들과 모임장소인 「초원복집」주인 박모씨 등을 불러 조사한뒤 다음주초쯤 김 전장관 등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와 관련,지난 2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부터 녹음테이프에 대한 감정 결과 및 녹취서 전문을 넘겨받아 선거법 위반여부에 대한 본격적인 법률검토 작업을 벌였다.
김 전장관은 이날 검찰소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물의를 빚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고 정부에 누를 끼친데 대해 깊이 사죄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국민당측의 고발취하와 관계 없이 계속 엄정하게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와 함께 도청 및 사진촬영 경위에 대해서도 계속 조사해 진상을 규명키로 했다.
그러나 도청부분에 대한 조사는 국민당측의 고발취하 방침으로 고발인인 유수호의원 등이 검찰의 소환에 불응할 것으로 보여 진상규명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검찰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동아일보 1992년 12월22일

 

부산지역 기관장대책회의」에 대한 검찰수사가 이 사건의 본질인 「대책회의」 보다도 「도청」쪽을 더 부각시켜 검찰이 「비켜가기」를 시도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대책회의」와 「도청」부분 수사를 병행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실제로는 「도청」수사만 급진전,일부 관련자들을 조만간 사법처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책회의」에 대해선 모임참석자들은 물론 검찰 관계자들까지 「사적인 모임」임을 강조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검찰수사가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도청범죄의 처벌문제와 관련,현행법상 마땅한 처벌법규가 없어 크게 고민하고 있다.
공중전기통신사업법이나 전기통신기본법,신용조사업법(흥신소)을 적용하기에는 이번 사건 관련자들이 법규에 명시된 일정한 업을 갖거나 종사하는 자가 아니어서 이들 법규를 적용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다만 형법상의 비밀침해(316조)에 대해 대법원의 판례가 과학문명의 발달에 따른 비밀침해행위까지 범위를 폭넓게 인정해주는 점을 감안해 형법을 적용할 가능성도 있으나 법원이 영장청구단계에서 쉽게 받아들일지는 불확실하다.
따라서 검찰은 도청관련자들을 우선 형법상 불법목적을 위한 주거침입죄로 구속해 신병을 확보한 다음 국민당 정몽준의원까지 단계적으로 수사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 사건은 다시 정치권의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큰 파문을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대책회의◁
검찰은 21일 김기춘 전법무장관 등 핵심관련자들을 소환조사한뒤 본격적인 법률검토작업에 들어갔다.
검찰은 김 전장관 등에 대해 그동안 국민당측이 고발한 대통령선거법 제62조(공무원의 선거관여금지) 위반혐의는 구성요건상 성립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려놓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검찰은 이 모임의 소집경위 및 성격에 수사의 초점을 맞춰 이들이 선거운동원이 아니면서도 특정후보의 선거운동에 관여했는지의 여부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검찰은 이와 관련,김 전장관이 당시 모임에서 박남수부산상공회의소회장에게 「언론매수공작」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부분에 대해 과연 그후 이같은 일이 실행됐는지 여부에 대한 확인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이같은 조사결과 등을 토대로 김 전장관 등이 선거법 제36조(선거운동원이 아닌 사람의 선거운동금지)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는지 여부를 가릴 방침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김 전장관의 경우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때 이법조항으로 사법처리가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검찰이 김 전장관에 대해 소환조사 당시 보인 「과잉예우」나 현재로선 재소환계획이 서있지 않다는 「방침」 등으로 미뤄볼때 적극적인 수사의지가 없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찰관계자들은 『김 전장관 등이 이미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고 관련공직자들이 현직에서 해임된 만큼 법적용에 논란이 있을 경우 형사처벌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이같은 검찰태도는 법적용의 형평성문제 등과 관련,거센 여론의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왜냐하면 김 전장관 등에 대한 선거법 위반여부에 대해 검찰이 어떤 식의 결론을 내리든 △이 모임에 주요기관장들이 모두 참석했고 △모임시기 및 대화내용이 특정후보의 지지운동으로 볼 수 있어 국민들의 법감정상 이를 사법처리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키 어렵기 때문이다.
김 전장관의 경우 검찰총장 및 법무장관을 거쳤을뿐 아니라 새정부의 안기부장 물망에도 오를만큼 「특수신분」에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모임이 가능했다는 점을 검찰관계자들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검찰관계자들은 김 전장관 등의 사법처리여부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언급은 일절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부산회의」가 사적인 성격의 모임이었다는 점 등을 강조,이들의 사법처리는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흘리고 있을 뿐이다.
▷도청경위◁
부산지역기관장들의 회식모임에 관한 정보가 국민당에 제공된 것은 지난 5일.
이날 안기부 부산지부에 근무하는 김남석씨가 자신의 강원도 C고교후배인 문종렬씨(국민당 부산지역선거대책본부 강원출신 주민담당·전현대중공업직원)에게 『오는 11일 아침 초원복국집에서 김기춘 전법무장관이 주최하는 기관장회식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제공했다.
이어 6일 김씨는 구체적인 모임시간과 장소를 2차로 제보했고 문씨는 이 사실을 자신의 윗선인 현대중공업 안충승부사장(국민당 경남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에게 보고했다. 이에 따라 안 부사장은 사전준비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7일 김씨와 문씨 2명이 회식장소인 부산 초원복국집을 1차 답사하고 8,9일 안 부사장과 문씨가 복집을 2차 답사한 다음 부산 광복동에서 고주파송수신기 등 일본제 도청장비를 구입했다.
그리고 10일 저녁 안 부사장과 문씨,문씨의 친구 안종윤씨(녹음전문가) 등 3명이 복집지하 내실에 손님으로 가장해 들어가 장롱과 창문틀 등 2곳에 도청장치를 설치했다. 이때 조정진 등 4명은 역시 손님을 가장해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
11일 문씨와 녹음전문가 안씨가 기관장들의 모임시각에 근처 인적이 드문 이웃집 담밑에서 주파수를 맞춰 직접 녹음했다. 이어 「거사」를 끝내고는 안씨가 발각위험을 무릅쓰고 복집의 도청기를 회수했다.
그리고 이날 밤 문씨와 안씨는 서울로 올라가 L호텔에 투숙했고 연락을 받고 찾아온 국민당의 정몽준의원이 『수고했다』고 격려했다는 것.
이에 안씨는 『일이 커질 것 같다』며 정 의원에게 녹음테이프를 건네주는 조건으로 1백억원을 요구했다.
이 1백억원은 안씨가 30억원 김씨 30억원 문씨가 40억원을 갖기로 되어있었다.
안씨의 요구에 정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고 이날 대화내용은 안씨가 녹음해 보관하고 있다고 문씨는 주장하고 있다.
도청내용이 폭로되자 문씨와 안씨는 피신했고 안 부사장도 지난 19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검찰은 20일 문씨를 검거,이같은 사실을 밝혀내고 21일 낮 안씨를 추가로 검거했으며 정 의원에 대해 출국금지조치하는 한편 회의참석자들이 복집을 나오는 장면을 사진 찍은 최충영씨(현대중공업해양사업본부이사)와 현대사진동우회소속 직원 2명도 검거했다.
문씨와 안씨는 도청전에 안 부사장으로부터 경비조로 각각 1백만원씩 모두 2백만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문씨는 또 『도피 2,3일후 안 부사장이 아내에게 1천만원을 전해줬다는 사실을 들었고 이로 미뤄볼때 안씨와 김씨도 1천만원씩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최영훈·송인수>
◎안기부 잡무담당 기능직원/정보제공 김남석씨
【부산】 「부산지역 기관장모임」 정보를 국민당 부산지역선거대책본부 강원출신 주민담당 문종렬씨(전현대중공업 예비군중대장)에게 제공한 김남석씨(43)는 안기부 부산지부 기능직원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경비원 등을 하다 최근엔 잡무를 맡아왔는데 「부산지역기관장들이 11일 아침 7시 초원복국집(부산시 남구 대연동)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사실을 지난 5일경 경비실에서 운전사 등으로부터 듣고 문씨에게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씨는 지난달 초순 고교(강원도C고) 후배인 문씨에게 매수돼 자신이 수집한 안기부내 각종 정보를 문씨에게 전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안기부 부산지부 한 관계자는 『김씨가 우연히 「기관장모임」 정보를 입수했을뿐 말단직원이어서 다른 정보는 입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공정보는 유출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1992년 12월 23일

 

강경방침으로 치닫던 검찰의 「부산지역 기관장 모임」의 도청사건 수사가 22일 밤 방향을 선회,도청실무를 맡았던 국민당 부산지역선거대책본부 문종렬씨(42·전 현대중공업직원)등 관련자 4명을 귀가조치 시킴으로써 불구속 입건으로 사법처리가 마무리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검찰은 문씨에 대해 계속 조사할 필요성은 있지만 아직까지 혐의내용에 대한 사실관계의 확증이 잡히지 않았고 적용법률 검토도 끝나지 않은채 48시간이 돼 일단 불구속 상태에서 돌려보낸뒤 필요할 경우 다시 불러 조사를 벌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사건이 종결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감을 시사하고 있다.
그동안 수사결과 도청을 총지휘하고 금품까지 건네준 것으로 드러난 현대중공업부사장 안충승씨(54)가 이미 외국으로 도피해 있고 귀가조치시킨 문씨가 도청의 실무총책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도청수사」는 진상규명 차원에서 사실상 마무리 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같은 검찰의 입장정리는 도청사건이 기본적으로는 「부산모임」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부산모임」에 대한 법률적 판단없이 「도청」부분만 서둘러 처리할 경우 법적용의 형평성은 물론 국민정서와도 어긋난다는 여론을 의식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당초 「부산모임」수사와는 별도로 「도청」사건도 사생활 침해에 대한 국민적 우려등을 내세워 현행법상 마땅한 처벌조항은 없지만 도청경위도 수사한다는 방침아래 발빠른 행보를 보여왔다.
이에따라 20일 문씨등을 전격연행 조사해 안기부직원 개입과 국민당 정몽준의원의 1백억원 약속사실까지 밝혀내고 엄중처벌한다는 강경입장을 견지했었다.
이같은 검찰수사는 지난 19일 김영삼대통령당선자가 당선기자회견에서 『사생활보호차원에서 도청경위는 밝혀져야 한다』고 밝힌 이후 본격화됐다.그러나 「부산모임」을 주도한 김기춘전법무장관이 21일 출두한 이후 김전법무에 대한 처리와 맞물려 도청부분관여자들만 엄중히 처리할 수 없는데다 적용 법률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제기돼 방향을 바꾼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전직 검찰총수가 연루된 「부산모임」은 극히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면서 「도청」사건만은 강경대처한다는 인상을 주는것도 검찰로서도 큰부담이었다.
이같은 주변상황을 고려,검찰은 이날 도청실무책임자 문씨를 불구속조치키로 한다는 내면적인 방침을 세우고 즉각적인 입건절차없이 귀가조치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즉 조만간 매듭지어야할 김전장관등 「부산모임」관련자들에 대한 처리방향과의 형평성과 정치적 부담감등을 충분히 감안,이같은 방향으로 「도청사건」에 대한 최종적인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중립검찰의 표방과 갖 출범한 3대 임기제 검찰총장인 김두희총장체제의 검찰로서는 「부산기관장모임」사건을 「모임」과 「도청」의 두갈래로 나눠 차등 처리하기보다는 선거후의 상황변화에 따라 일괄처리하는 것이 부담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날 서울지검 이건개검사장과 1차장·3차장이 무려 2시간 가까이 문씨에 대한 신병처리문제를 놓고 숙의한 것도 이같은 결정을 내릴수 밖에 없었던 검찰의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일부에서는 검찰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정치적 결정」이라고 의혹의 눈길을 보이고 있다.
어쨌든 검찰은 도청경위와 주모자등을 밝혀냈지만 「도청수사」가 형식논리에 빠진 의도성수사라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부산모임」에 대한 확실한 성격규명과 함께 국민들이 저항감을 갖지 않는 선에서 사법처리를 해야한다는 부담감은 여전히 안고있다고 하겠다.

 

한겨레 1993년 12월 15이

 

지난해말 막판 대선정국을 엄청난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부산지역 관계기관장 대책회의’ 사건이 폭로된 지 15일로 꼭 1년이 된다.
‘부산초원복집사건’으로도 일컬어지는 이 대책회의 참석자 9명은 한 해가 지난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이 되면 경남 사람들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호남에서 두들겨 맞고 오면 대구·경북도 ‘에이’ 하고 돌아선다”는 등 노골적인 지역감정 조장 발언과 관권개입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이 사건의 주인공들은 그러나 대부분 사건 당시의 엄청난 파문에 비해 큰 ‘후환’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히려 몇몇 인사는 당시 직책에서 오히려 영전해 이 사건의 성격을 새삼 실감케 한다.
“이거 양해라뇨, 제가 더 떠듭니다”라고 노골적인 관권개입 의지를 밝혀 물의를 빚은 박일룡 당시 부산경찰청장은 사건 직후 잠시 직위해제되는 시련을 맛보기도 했으나 두달 뒤 복직돼 중앙경찰학교장에 임명된 데 이어 지난 9월에는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해양경찰청장을 맡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정경식 당시 부산지검장 역시 이 사건이 있고 난 뒤 9개월 만에 대구고검장으로 영전했다.
정 고검장은 지난 3월 검찰 정기인사에서 한직인 대검 공판송무부장으로 좌천한 데다 재산공개 파문 직후 단행된 검찰 2차 인사에서도 계속 유임돼 검찰 안팎에서는 “검사생명이 사실상 끝났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으나, 지난 9월 검찰 수뇌부 인사에서 검사장 정년(8년)을 불과 몇개월 남겨놓고 대구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겨 건재를 과시했다.
이 모임의 주재자였던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은 모임 참석자 중 유일하게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사건 직후 불구속기소됐던 김씨는 지난 4월14일 첫 공판에서 징역 1년을 구형받았으나 이 사건에 적용된 대통령선거법 제36조 1항(선거운동원이 아닌 자의 선거운동)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신청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현재 선고가 무기연기된 상태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김씨는 지난 10월4일 변호사 등록이 허용됐으나 변호사 1백여명이 “과거 공안통치의 주역이며 대표적 정치검사의 변호사개업을 반대한다”는 집단성명을 내는 등 반발하고 나서 곤욕을 치렀다.
더욱이 앞으로 유죄 판결이 확정될 경우 변호사법에 따라 등록이 자동취소되기 때문에 김씨는 변호사로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김씨는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에 개업신고까지 마치고서도 실제로는 변호사 사무실을 내거나 사건을 수임하지 않고 있으며, 공식석상에도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등 사실상 은둔상태를 계속하고 있다.
당시 현역군인으로 유일하게 이 모임에 참석했던 김대균 전 부산지구 기무부대장(당시 대령)은 지난 6월말 전역한 뒤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김씨는 대선직후인 지난 1월 보직해임되면서 기무사 연구위원으로 밀려나 여느 참석자보다 먼저 ‘토사구팽’ 신세가 됐다.
이밖에 김영환 부산시장은 지난해 12월16일 해임된 뒤 별다른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등산 등으로 소일하고 있으며,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은 모임에 참석한 사실보다는 부하직원인 운전기사가 모임계획을 발설한 것이 문제돼 대기발령상태로 있다 올해 안기부를 떠났다.
그러나 우명수 부산시교육감은 한때 전교조 교사들의 퇴진 요구를 받기도 했지만 모임에서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

 

동아일보 1994년 7월30일

 

확실헌법재판소가 29일 구대통령선거법 36조1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이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전법무부장관(55)에게 법원은 무죄나 마찬가지인 공소기각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92년 14대 대선당시 불거져 나온 이른바 부산기관장모임사건은 이날 위헌결정으로 「헌법에는 어긋나지 않은 불상사」로 결론이 난 셈이다.
검찰은 지난해 4월14일 1차공판에서 김전장관에게 징역1년을 구형했으나 같은달 27일 법원이 김전장관의 위헌심판제청신청을 받아들여 일단 재판이 중단됐었다. 법원은 이사건 재판을 곧 재개할 예정이지만 해당법조항의 효력상실로 공소기각판결의 형식적 절차만 남아있다고 볼수 있다.
한편 형사사건의 경우 헌재에서 위헌결정을 내린 법조항은 소급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조항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의 재심청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14대 대선 당시 대선법위반혐의로 모두 3백29명(구속 1백50명, 불구속 1백79명)이 기소됐으며 이중 2백40명에게 이 조항이 적용됐다.

 

 

 

한겨레 1994년 12월 22일

 

서울지검 특수1부 김진태 검사는 21일 지난 92년 대통령선거 직전 부산지역기관장들이 모여 대통령선거 대책 등을 논의한 이른바 ‘초원복국집’ 사건과 관련해 범인은닉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국회의원 정몽준(43)씨 등 4명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각각 징역 1년을 구형했다.이와 달리 김기춘 전 법무장관 등 당시 이 모임에 참가했다 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사람들은 옛 대통령 선거법 36조 1항에 대해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심판을 받아내 지난 8월 공소취소됐었다.
이로써 당시 초원복집 회식에 참가해 대선전략 등을 논의한 참가자들은 모두 명예가 회복됐지만, 거꾸로 도청 관련자들은 모두 실형 구형을 받았다

 

 

1995년 11월 경향신문 자료사진 초원복집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

 

 

한겨레 1994년 12월 27일

 

26일 차관급 인사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인 박일룡 서울경찰청장이 경찰청장에 임명됨에 따라 92년 대통령선거 직전 이른바 ‘초원복국집 사건’으로 불리는 부산지역 기관장회의 참석자들의 화려한 복귀가 또다시 화제에 오르고있다.
고위 공직자로서 망국적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데 앞장선 이들을 철저히 중용함으로써 김 대통령은 “무슨 일을 했더라도 나에게 충성을 한 사람은 뒤를 보살펴준다”는 스스로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선거를 일주일 앞둔 92년 12월11일 아침 6시 부산 초원즉석복국집에서 열린 기관장회의에서는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라”는 ‘특명’이 하달됐다.
참석자는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 김영환 부산시장, 우명수 부산시교육청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검장,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김대균 부산지구 기무부대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강병중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 등 모두 9명이었다.
박일룡 신임 경찰청장은 이때 김 전 장관이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며 경찰의 양해를 구하는 말을 하자 “양해라뇨. 제가 더 떠듭니다”라는 ‘어록’을 남겨 유명해졌다.
박 청장은 사건 직후 직위해제됐으나 두달 만에 비교적 한직인 중앙경찰학교장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9월에는 치안정감으로 승진하면서 서울경찰청장으로 입성한다는 설이 돌았으나 승진만 하고 해양경찰청장에 임명됐다. 올 7월 마침내 서울경찰청장으로 영전한 그는 불과 5개월 만에 경찰총수의 자리에까지 올라갔다.
고비고비마다 야당과 언론의 반대가 있었으나 김 대통령의 ‘신임’이 그것보다 더 강력했던 것이다.
회의를 주도한 김 전 장관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법률전문가’답게 법의 맹점을 찾아 지난 7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아내는 데 성공해 공소가 취소됐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들의 ‘범죄행위’를 폭로한 정몽준 의원 등 4명은 지난 21일 징역 1년씩을 구형받고 선고공판을 남겨놓고 있다. 김 전 장관이 김 대통령 임기 안에 정부 요직에 기용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경식 지검장은 대검 공판송무부장을 거쳐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했다가 지난 9월 대통령에 의해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임명됐다.
김영환 시장은 직위해제됐다가 지난 7월 부산교통공단 이사장으로 복귀했으며, 우명수 교육감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내년 2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우 교육감은 경남고 총동창회장직을 맡고 있다.
또 김대균 기무부대장은 사건 직후 해임됐다가 지난해 6월 예편한 뒤 부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예회복에 성공한 김기춘 전 법무장관은 이 사건 이후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변신하며 뱃지를 달게 되지요. 15대에 이어 16, 17대 내리 영남권에서 국회의원으로 선출됐습니다.

 

2000년 총선 시민연대의 낙선, 낙천 운동이 거세던 당시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도 꼽혔습니다.

당시 시민연대의 낙천사유입니다.

유신헌법 제정당시 법무부 과장으로, 긴급조치권·국회해산권 등 유신헌법 핵심조항이 담긴 초안을 작성함. ②89년 서경원 밀입북 사건 당시 최종책임자인데 재수사시 환전표 등 일부 물증과 진술을 누락한 사실이 드러남③92. 12. 14대 대통령 선거시 초원복집에서 열린 부산지역기관장 비밀회동에 참여하고,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함.

01. 6. 경남 거제에서 워크아웃 상태인 대우조선이 제공한 15인승 헬기를 이용, 낚시를 즐겼고, 당시 동행한 대우중공업 신 모 사장을 위한 탄원서를 제출한 상황이었음

 

 

2001년. 국회에서 정쟁 중단을 요구하며 침묵시위하는 참여연대 회원들 앞을 지나고 있는 모습.

 

 

 

경향신문 2005년 7월 8일

 

한나라당이 7일 3선의 김기춘 의원을 여의도연구소 신임 소장에 임명했다. 박근혜 대표는 "중진이고 훌륭한 균형감각과 경륜을 가진 적임자"라며 추천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수색 짙은 김의원의 경력 때문에 적잖은 뒷말이 나오고 있다. 박대표는 이날 운영위에서 추천 이유를 밝힌 뒤 "정말 투명하게 여의도연구소를 운영하고 싶다. 여의도연구소가 스스로 개혁하고 투명하게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내정했으며 고심도 많이 했다"고 말했고 전여옥 대변인이 전했다.
박대표의 뜻이 확고했던 때문인지 '토'를 다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후문이다. "적재적소 훌륭한 인사. 사심없는 분"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 가운데 "언론에서 당이 혹시나 보수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이성헌 제2사무부총장)는 정도의 '이의'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속 기류는 다르다. 김의원의 '능력'보다는 '경력'에 대한 우려다. 김의원은 1992년 대선때 "우리가 남이가"라는 '명구'를 남긴 '초원복집 사건'의 당사자이다.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한 전력 등으로 17대 총선때 시민연대의 낙선 대상에 올랐다.
때문인지 당 분위기는 "벙어리 냉가슴 앓는 꼴"(한 소장파 의원)이다. 3선의 한 중진의원은 "대표가 '코드인사' 하겠다는데 도리가 없다"고, 이재오 의원은 "신망 받는 외부 전문가 대신 당내 인사를 기용해 외연을 넓힐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대통령에게 비서실장으로 그를  낙점한 이유를 물어보면 아마 당대표시절 가졌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한번 기용한 인사는 믿고 맡긴다는 스타일이라는 것도 그래서 나오는 말일테고요.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조장하며 선거법을 위반하고 퇴행적인 정치공작을 해 오던 구체제 인사, 그런 그에게 수십년이 지나도록 변치않는 생명력을 부여하는 이 상황이 그저 놀랍기만 하네요.

불법선거, 관건선거를 지적했더니 도청을 문제삼으며 본질을 호도하고, 정작 잘못을 저지른 핵심당사자들은 명예회복과 함께 영전하고...

뭔가 비슷한 그림이 겹치지 않나요?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을 고발하고 지적했더니 이 사건은 졸지에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으로 둔갑했습니다. 당시 대통령 후보이던 박대통령은 토론회에 나와 성폭행범들이나 쓰는 수법으로 여직원의 집을 알아냈다고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며 상대를 비난했습니다. 댓글의 증거를 내놓으라며 야당 후보를 공격하기도 했지요.

초원복집 사건이나 국정원 댓글 사건 모두 치명적인 역풍이 일 법한 사건이었습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큰 파장이 이는가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의와 민주주의는 잠시 접어두어도 좋을만큼,  관건선거와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늘상 그래왔던, 별 신경 쓸 일이 아닌 일에 불과했나 봅니다.  '불법도청'과 '불쌍한 여직원 감금'은 큰 '범죄'로 둔갑해  결국 그들은 모두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1994년, 그리고 2013년. 20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고 나아진 게 없는 우리 나라의 모습인가요.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