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 블로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근래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는 말 중 하나인데요 쉽게 말해 내부고발자라고도 하지요. CIA에서 활동했던 전 직원 스노든이 미국의 개인정보 수집 비밀프로그램의 존재를 폭로하면서 세상이 시끌시끌 합니다. 그의 고발은 오바마 정부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주게 됐습니다.
미국 역사를 보면 세상을 뒤흔든 내부 고발자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의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 부국장이 있지요. Deep Throat (깊은 목구멍? 이랄까요. 이 단어에서 내부 목소리라는 그 의미가 전달되지 않나요. 여튼) 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건데 당시에는 딥 스로트라고 불리던 이 제보자가 2005년에야 밝혀졌습니다. 펜타곤 페이퍼를 고발했던 엘스버그, 위키리크스에 문건을 넘긴 매닝 등도 있습니다.
1992년부터 3년동안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마니풀리테, 즉 깨끗한 손이라는 운동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운동 역시 정치자금요구에 시달렸던 한 중소기업인이 양심선언을 하면서 비롯됐습니다. 이 사건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검찰이 유력 정치인과 대기업 총수 등을 대대적으로 수사해 1천명 이상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선거에서 정권이 바뀌기도 했습니다.
국내는 어떨까요.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내에서도 굵직한 내부자 고발 사건이 있었습니다. 14대 총선 부재자 투표에서 군대에서 조직적으로 부정선거가 자행됐음을 알렸던 이지문 중위,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토지에 대한 감사가상부의 지시로 중단됐다고 폭로했던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 민간인에 대한 보안사의 불법사찰을 폭로했던 윤석양 이병, 재벌그룹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비리를 고발했던 현준희씨, 관건선거를 고발했던 한준수 연기군수 이들의 이름이 기억나시는지요.
최근 몇년사이에도 4대강 사업이 대운하 사업의 전초라고 밝혔던 건설기술연구원의 김이태 박사와 삼성의 비자금 조성을 폭로했던 김용철변호사도 있습니다.
이들의 폭로 내용은 하나같이 내부 고발자가 아니고서는 알기 어려운 내용이고 이들의 고발이 있지 않고는 절대 고쳐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 때문에 역사의 진전과 개혁을 위해서 내부 고발자는 보호돼야 하고 이들을 법으로 보호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사회에서 내부고발자들은 격려보다는 '배신자'라는 오명과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실제로 그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파면에 감옥살이까지 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현준희씨는 오랜 싸움 끝에 12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정의와 양심이 살아 움직일 수 있을가요. 물론 내부 고발은 사적인 이해관계나 복수심에 따른 것이어선 안될겁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내부고발을 복수나 사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으로 폄훼하며 깎아내리는 것이 지배적인 분위기입니다. 공범의식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역사를 움직이고 발전시켰던 것은, 우리 사회의 공익과 정의에 산소를 공급해 왔던 것은 이들의 '무모함에 가까운 용기'였음이 분명합니다.
한겨레 1990년 5월16일
◎본지에 사본제공 기밀누설 혐의/검찰 “정부 공신력에 손상”감사원 감사관이 자신이 조사한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감사내용을 언론기관에 알렸다는 이유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관련기사11면>
검찰의 감사관에 대한 구속은 공무상 비밀누설죄의 적용범위,언론자유보장 등을 둘러싸고 큰 논란을 빚고 있다. 대검 중앙수사부(부장 최명부 검사장)는 15일 감사원 감사관 이문옥(50)씨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지난해 8월 상사의 명령을 받고 한일개발 등 23개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에 관한 과세실태 감사반 반장으로 감사를 실시하던 중 14일 뒤 감사중단 지시를 받고 그때까지 감사자료를 토대로 한 보고서를 작성,사본 1부를 보관해 오다 최근 <한겨레신문>에 이를 제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가 보관한 보고서 사본에는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비율이 43.3%에 달해 은행감독원이 발표한 1.2%보다 휠씬 높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같은 내용은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소유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켜 이씨가 구속된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이씨는 지난 14일 휴가를 끝내고 사무실에 출근했다가 감사원 감찰실에서 조사를 받고 이날 오후 11시30분께 중앙수사부 수사관들에게 넘겨졌다. 검찰은 이씨가 조사한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비율 43.3%는 14일간의 짧은 기간에 조사한 부실한 내용이고 23개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구별기준이 은행감독원이 5백2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기준과 달라 이씨의 조사내용이 공개됨으로써 정부와 은행감독원의 공신력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어 이씨를 구속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겨레신문>에 자신의 감사보고서를 제보할 당시 14일 만에 감사가 중단된 것은 재벌의 로비를 받은 고위층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밝혔었다.
이씨는 검찰에서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당당하게 진술하고 ‘감사활동이 외부 입김으로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감사중단 사실과 관련,“이씨는 과잉감사로 물의를 빚지 말라는 주의를 받고 그때까지의 감사결과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말하고 “감사원 관계자를 불러 이씨의 주장대로 감사가 외부작용으로 중단됐는지 여부를 가릴 것”이라고 밝혔다.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일보 19920년 3월23일
육군 모부대 소속 이지문 중위(24)는 22일 하오 9시30분께 서울 종로구 종로5가 경실련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18일부터 20일사이에 실시한 14대총선 사단군부재자투표에서 공개투표 기표검열 등의 선거부정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이중위는 여당지지율을 80%이상 끌어올리기 위한 사병정신교육이 실시됐으며 일부 중대에서는 중대장이 기표소앞에서 1번(민자)을 찍을 것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이중위는 91년 2월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ROTC 29기소위로 임관한뒤 육군보병 9사단 소대장으로 복무해왔는데 기자회견을 끝낸뒤 수방사헌병대에 의해 연행됐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의 기자회견 모습
한겨레 2007년 10월30일
기자회견 이틀 전인 27일 저녁에 만난 김용철 변호사는 초췌한 모습이었으나, 그동안 삼성과의 인연을 맺으며 겪었던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낸다는 홀가분함도 엿보였다. 삼성의 구조적인 비리를 털어내려면 내 한몸을 바칠 수 있다는 결연함도 묻어 있었다. 그가 삼성의 비리를 폭로하기로 작정한 계기는 지난 9월, 법무법인 서정으로부터 받은 사직권고였다. 서정 쪽은 “삼성 이학수 부회장을 만나 삼성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근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그는 재벌이 로펌의 인사문제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하는 분노가 치밀어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삼성에 다니며 고액 연봉을 받고 대우를 잘 받았다는데 왜 양심선언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정당한 대우를 받았고, 내 재산을 공개하라면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은 순기능이 많지만 역기능도 만만치 않고, 이런 역기능이 임계점에 달했지만 자정능력은 없다. 바꾸려면 삼성 밖에서 민심이나 여론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삼성 쪽은 ‘돈을 요구하려고 기자회견을 했다’고 의심한다. 이에 대해 그는 “돈 때문이라면 굳이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했겠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면 ‘삼성에 대한 한풀이 아니냐’는 물음에는 “울분도 있었지만, 단지 한풀이는 아니다. 다섯 달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주선한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그에게 먼저 양심 고백을 요구했다. “신부님에게 양심 고백을 하면서 스스로 결함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비록 결함 많은 사람이라도 그 말이 옳다면 받아들여져야 한다.”
김 변호사는 법조인으로 제대로 살려고 했지만 삼성 때문에 어그러졌다며, 그 악연을 털어놓았다. 그가 밝히는 악연은 1997년 입사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원 교육을 마치자 구조조정본부의 ㅇ아무개 전무가 ‘삼성중공업의 유령 노조 사건’을 맡으라고 했다. 당시 대법원에서 노조 설립 신고만 한 채 활동하지 않았던 삼성중공업 노조를 ‘유령노조’라고 판결해 파기환송한 사건이다. 패색이 짙자, ㅇ 전무는 상대 변호사를 회유하라고 했다. 나는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삼성에 다니면서 양심의 갈등 때문에 2~3일씩 출근하지 않은 채 방황한 게 여러 차례였다고 했다.
그가 삼성을 떠난 이유를 놓고 그와 삼성 쪽의 말은 엇갈리지만, 그 계기가 2003년 대선자금 수사라는 데는 양쪽 말이 일치한다. 삼성 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대선자금 수사 때 법무팀장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대선자금 수사는 낡은 관행을 털어버릴 역사적인 수사라고 생각해 검찰에 협조하자고 했다. 삼성 고위층도 말로는 동의했다”며 “그래서 검찰에 (삼성이) 첫번째 수사 대상만 안 되게 해주면 수사에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와 검찰의 ‘조율’은 삼성에 시간을 벌어준 꼴이 되었다. 검찰이 다른 기업을 수사하는 사이 삼성의 주요 임원진은 국외로 출국하는 등 잠적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검찰과의 조율에 대해) 김 변호사 말이 대체로 맞다”고 확인했다.
김 변호사는 “검찰 동료나 후배들에게 거짓말을 한 사기꾼이 되고 말았다. 삼성 고위층에게 ‘왜 약속을 어겼느냐’고 따졌더니 ‘삼성은 돈 준 것을 먼저 불지 않는 빛나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그 일로 고위층과 얼굴을 붉히며 많이 싸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때부터 회사 안에서 ‘검찰 스파이’로 분류돼 법무팀 업무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출근을 안 하기도 하고 사표를 내려고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말렸다. 대선자금 수사가 끝나가자 삼성은 그를 대신해 이종왕 변호사를 영입했다. 그리고 그에게 계열사 부사장 자리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회사는 전무에서 부사장으로의 승진이라고 했지만, 그는 사표를 택했다.
삼성을 떠난 뒤 그는 ‘경고’도 받았다. “구조조정본부의 ㄴ 간부가 ‘삼성을 떠나서 나쁜 이야기를 하면 불행해진다’고 경고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의 은밀한 부분을 알고 있는 구조본 출신이 제 발로 걸어 나간 것 자체를 삼성은 배신으로 본 것 같다”며 “퇴사 뒤 특히 기자와의 접촉에 삼성은 늘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난 투사도 뭣도 아니다. 단지 내가 원하는 것은 삼성의 긍정적인 변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혼자 나선다고 삼성이 변하겠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종교인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남아 있다. 반은 회유, 반은 협박인 메시지다. 김 변호사는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까지 ‘미친 짓을 왜 하느냐’며 전화했다. 그럴수록 나는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로 여겼다”고 말했다.
제기동 성당에서 정의구현 사제단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용철 변호사
서울신문 2008년 11월 15일
정치권 등 외부압력으로 감사를 중단하게 됐다며 내부 고발을 했다가 형사고발당했던 전직 감사원 주사가 대법원 판단을 두 차례나 받은 끝에 12년 동안 펼쳐오던 법정 다툼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법원 1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 감사원 주사 현준희(55)씨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감사원 제4국에서 일하던 현씨는 1995년 모 그룹이 서울 인근 스키장 근처에 콘도를 지으려는 과정에서 당시 정권 실세를 통해 건교부 등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제보를 받고 감사에 착수했다. 콘도 사업허가가 잘못된 것이고 관련 공무원의 금품수수 등 유착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윗선에 보고했지만 감사 중단 지시가 내려왔다. 이에 현씨가 항의했으나 묵살되자 1996년 4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일을 폭로하는 양심선언을 했다. 파면된 현씨는 감사원의 고발로 구속됐으나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무죄가 선고됐다. 이후 2002년 대법원이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가 4년에 걸친 심리 끝에 2006년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다시 무죄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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