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이보다 더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할 수 있을까요. 


전 요즘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는 올해로 회장에 취임한지 만 10년이 됐습니다. 금강산 관광사업, 개성공단 사업이 재개되리라는 희망적인 뉴스가 전해지는 요즘 현회장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앞뒤가 꼭꼭 막힌 절벽 한가운데 서 있었을 지난 수년간의 시간을 그는 어떤 힘으로 이겨왔을까요. 


현회장은 2003년 고 정몽헌 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까지만 해도 3자녀를 둔 전업주부였습니다. 정몽헌 회장이 삼성과 함께 한국 재계를 이끌어가던 쌍두마차 현대그룹을 이끌 적통으로 인정받던 당시만 해도 새 시대를 열어가는 기대와 포부에 차 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왕자의 난을 겪으며 상처를 입고 마음고생을 해야했지만 몇년 뒤 닥칠 엄청난 일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정몽헌 회장은 현대가 후계자로 대북사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1998년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끌고 방북하는 역사적 ‘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개발이라는 꿈만같았던 일들이 현실로 이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불법자금을 북한에 송금한 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데다 경영난 등이 겹치면서 정몽헌 전 회장은 2003년 8월 계동 현대사옥 회장실에서 투신하며 삶을 마감했습니다. 졸지에 남편을 잃게 되면서 회장직을 맡게된 사연도 안타깝지만 이후 그의 삶도 시련과 우여곡절의 연속입니다.

시숙, 시동생과 경영권 다툼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경영권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관광객 사망으로 금강산 관광도 중단됐지요. 여기에 남북 관계가 경색으로 개성공단 사업까지 막히면서 그는 어떤 심정이 들었을까요.

2000년대 초중반 대북사업을 추진하며 연일 신문 앞면에 오르내리던 현대아산은 현재 명맥만 유지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출도 급감했고 직원들도 많이 떠났습니다. 경기나 천재지변이 사업의 발목을 잡았다면 극복하고 해결하는 방법이라도 찾으며 희망을 쌓아가겠지만 남북관계라는 움쭉달싹할 수 없는 변수 앞에서 무엇을 할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었겠지요. 


그 와중에 현대그룹의 상징이자 숙원이던 현대건설은 시아주버님인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닥친 불황탓에 현대상선 등 주력계열사도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으며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경영권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길고 깊은 어둠속에 다시 희망의 소식이 한줄기 빛처럼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북사업이 극적으로 재개되고 이를 발판으로 남북간 화해 무드가 조성돼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금강산,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간의 끈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어마어마하게 큰 평화의 자산입니다. 있을 때는 좀체 느끼기 힘든 공기같은 존재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몇 년 전 그를 조명했던 책 <이기지 못할 도전은 없다>는 제목처럼 현회장의 최근 10년이 모진 도전으로 점철돼 있지만 이를 당당하게 이겨내고 새로운 도약을 통해 그가 우리 역사와 경제에 큰 역할을 해 주길 바랍니다.


하나 더 붙이자면 지난 2005년 김정일 위원장은 현회장과의 면담 당시 백두산(사업)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만 지금은 잊혀져있다시피 하지요. 현대그룹의 도약과 함께 이 약속이 지켜지는 그 날이 오기도 바래봅니다.

 


 경향신문 2003년 8월5일자 3면

 

대북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던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느닷없이 왜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을까. 그의 자살에 납득되지 않는 구석이 없지는 않지만 일단 ▲대북송금과 관련한 사회 일각의 따가운 비난 ▲현대비자금 수사에 따른 심리적 압박 ▲대북사업 이후 거듭된 현대그룹 경영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대북사업 비난여론 부담=정회장의 투신자살 배경 중 가장 설득력 있는 대목이다. 그는 특히 현대아산의 주력사업인 금강산 관광사업이 보수진영으로부터 '북한 무기구입 등 체제지원'이라는 공격을 받게 되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정회장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대북사업에 대해 국민의 따가운 질타와 비판이 잇따르자 심각하게 고민해왔다"고 밝혔다.


유족과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임직원 앞으로 보내는 유서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김윤규 사장에게는 '명예회장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라고 말해 대북사업에 대한 애착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그는 부인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나의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주기 바란다'고 한 유언은 대북사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자부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비자금 수사에 대한 압박감=대북사업 비난과 함께 유력한 투신자살 배경으로 꼽히는 요인이다. 정회장은 대북송금사건을 둘러싼 특검과 현대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측은 "최근 12시간씩의 검찰 조사를 세차례나 받으면서 스트레스가 누적됐다"고 전했다.
현대그룹 주변에서는 유서 중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는 대목에서 '어리석은 행동'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대북사업과 별개로 정치권에 정치자금을 제공한 행위를 의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현대측이 박지원 전 장관에게 자금을 건네준 사람으로 지목된 김영완씨가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당시 정회장 및 박장관 일행과 동행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등 검찰 수사가 좁혀지는 상황이었다. 이런 정황 때문에 정회장이 불법정치자금 제공 사실이 드러나면서 돈을 건네받은 '누군가'를 털어놔야 한다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북사업에 따른 경영난 악화=정회장이 주도해온 금강산 관광사업 등 대북사업이 '북핵사태' 등으로 벽에 부딪혀 경영난 악화로 이어진 것도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된다. 1998년 첫 발을 내디딘 금강산 관광사업은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현대아산은 무리한 사업대가 약속으로 자본금이 완전히 잠식되는 등 심각한 자금난에 허덕였다.
정부의 금강산 관광 보조금 2백억원도 '북핵위기'로 올해는 국회의 승인을 얻지 못해 자금난을 더욱 가중시켰다. 현대아산은 4∼6월까지 3개월간 임직원들이 월급의 20∼50%를 반납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자살직전 행보 - '12시간씩 3차례' 검찰조사 받아
정몽헌 회장은 4일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 검찰에서 세차례 조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회장은 '현대비자금 1백50억원' 사건 수사와 관련해 피내사자 신분으로 지난달 26일과 31일에 이어 지난 2일 대검 중수부에 불려갔다. 세차례 모두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2시간씩 강도높은 조사가 진행됐다. 정회장은 정식 조사실이 아닌 대검 중수1과장 옆방 사무실에서 남기춘 중수1과장이 신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회장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조사에 임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조사는 대담형식으로 이뤄졌으며 대질신문은 없었다. 법무법인 김&장 소속 변호사 3명이 날짜별로 번갈아가며 정회장과 동행했다. 정회장 조사과정에서 기존의 1백50억원 외에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한 또다른 비자금 '알파'(α)의 존재에 대한 추궁도 있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은 "월간조선을 포함한 모든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 부분에 대해 캐물었으나 정회장의 진술내용이 특검 조사때와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었다"고 말했다.


정회장은 조사과정에서 진술을 거부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여느 때처럼 넥타이에 정장 차림이었던 그는 조사내용 외 사적인 문제는 단 한번도 거론하지 않았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검찰은 구체적 날짜는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회장을 곧 다시 소환할 참이었다. 수사팀은 "고인 사망에 애도는 표하지만 그렇다고 검찰 수사 때문에 자살했다고 봐서는 안된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정회장에게 가해진 심리적 압박은 비단 검찰 조사뿐만이 아니다. 검찰 조사일인 7월31일과 8월2일 사이에 낀 1일에는 법원에 출석해 대북송금 의혹사건과 관련한 재판을 받아야만 했다.


정회장은 지난달 4일 첫 공판이 시작된 이래 이날 가장 많은 진술을 쏟아냈다. 그
는 특검과 재판부의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했으나 간혹 당황해 말을 더듬기도 했다.


그는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을 주선만 했으면서 왜 네차례나 그 자리에 참석했느냐"는 특검팀 추궁에 "북측 요청에 따라 그렇게 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기도 했다.

 

 

■정몽헌회장 누군가 - '왕자의 난'서 王회장 후계로 대북사업 총괄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 창설자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5남으로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대북사업을 총괄해왔다.


1948년 서울에서 출생한 정회장은 서울 보성고.연세대를 거쳐 75년 11월 현대중공업 차장으로 현대그룹에 발을 들였다. 이후 현대건설 부장, 상무를 거쳐 81년 현대상선 대표이사 사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된다.


고인은 이후 98년 그룹 공동회장 취임에 맞춰 금강산관광 등 대북사업을 관장하면서 고 정명예회장의 후계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현대그룹 분열의 시발점이 된 2000년 3월의 이른바 '왕자의 난'에서 둘째형인 몽구(夢九)씨(현대차그룹 회장)를 제치고 대외적으로 현대그룹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고인은 2000년 6월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 취임, 대북사업에 전념해오다 지난해 9월 제기된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특검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


정회장은 최근까지도 개성공단 개발 본격화 및 금강산 육로관광 사업을 위해 미국, 일본을 잇따라 방문하는 한편 육로를 통해 북한을 다녀오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해왔다. 그는 평소 "현대가 아니면 개성공단, 금강산사업 등의 대북사업에 나서는 데가 없었을 것"이라며 대북사업에 남다른 애정과 강한 집착을 보여왔다.


현대그룹 관계자들은 "정회장은 선친의 뚝심을 빼닮아 생전에 선친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가 열정을 쏟은 금강산 관광사업이 현대아산과 현대상선 등 계열사의 경영을 위기로 몰아넣고 대북송금 수사의 진원지가 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검찰에 수시로 불려다니는 범법자 신세로 전락하면서 그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고, 대북사업도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결국 '비운의 기업인'이 되고 말았다.


유족으로 부인 현정은씨와 1남2녀를 남긴 고인은 아버지의 평생 꿈인 대북사업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선친의 곁으로 돌아가게 됐다.

 

 

 

고 정몽헌 회장의 사망 당시 빈소 모습입니다

 

 


 

 경향신문 2003년 10월28일자

 

현대그룹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으로 선임된 현정은 신임 회장이 27일 첫 출근, 본격적인 그룹 경영에 나섰다. 현회장은 이날 아침 서울 혜화동에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서울사무소 회장실로 출근해 각 부서 소개와 인사를 주고받고 중역회의를 시작으로 업무 파악에 들어갔다.현회장은 중역회의에서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 등 일부 그룹 계열사 사장단과 그룹 경영전략팀 임원진 등의 보고를 받았다. 현회장은 최근 몇차례 서울사무소를 방문, 각 부서를 돌아보고 현안을 보고받기도 했지만 정상 출근은 이날이 처음이다.


현회장은 아직 고 정몽헌 회장 100일 탈상이 끝나지 않아 공식적인 취임행사는 갖지 않기로 했다. 또 당분간 대외활동보다는 그룹내 주요 현안에 대한 파악과 현대그룹 일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측은 그룹본사 건물인 계동 현대본사에 별도의 집무실을 마련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쪽에만 사무실을 두기로 했다. 현회장의 집무실은 8평 규모로 단출하게 꾸며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회장이 여성인 점을 감안해 처음에는 다소 아기자기하게 회장실을 꾸미려고 했지만, 현회장이 고 정회장 집무실 스타일을 선호해 가구를 재배치하는 등 최대한 검소하게 꾸미기 위해 노력했다"며 "회장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다"고 밝혔다.


현회장은 지난 21일 현대그룹 이사회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신임회장으로 전격 선임됐으며, 대주주인 어머니 김문희씨 지분(18.6%)에 대해서는 이미 위임절차를 마친 상태다.


한편 고 정회장의 맏딸인 지이씨도 다음달 현대그룹에 입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지이씨가 아직 정식 발령이 나지 않아 출근을 하지 않고 있지만 11월에 인사발령이 나는 대로 현대상선 경력직 평사원으로 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외국계 광고회사에 다니던 지이씨가 부친 사망 이후 회사를 그만두었다"며 "이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상선에서 새로운 경영수업을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이씨는 기획이나 회계관련 부서 등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 2003년 11월6일자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2.82%를 매집한 사모펀드 투자자가 KCC 등 범 현대가(家)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5일 알려졌다. 현대그룹측은 아직 펀드의 주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으나, 범 현대가가 펀드를 결성해 지분을 사들였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이에 따라 현대엘리베이터는 정상영 KCC 명예회장 등 범 현대가가 많은 지분을 사들인 이유에 대해 다각적인 분석에 나서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범 현대가, 왜 매입했나=KCC 고위 관계자는 이날 "지난 8월 엘리베이터 지분을 매집했던 범 현대 9개사가 공동으로 펀드를 결성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9개사는 KCC와 금강종합건설 등 KCC그룹 2개사와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H&S, 현대지네트, 한국프랜지, 울산화학, 현대시멘트, 현대종합금속 등이다. 일단 현대엘리베이터측은 KCC 명예회장측이 확보한 지분을 우호적인 것으로 분류하고 있는 분위기다. 정명예회장이 그동안 현대그룹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다. 최근 고 정몽헌 회장의 장모이자 현대엘리베이터의 1대 주주인 김문희씨가 정명예회장측의 '섭정발언'에 거부감을 표출한 것과 관련해서다.


당초 정명예회장은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현대그룹을 이끌어나갈 생각이었지만, 김문희씨측이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딸인 현정은씨가 경영권을 승계토록 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정명예회장은 그동안 김문희씨측의 현대그룹 독자경영 방침에 줄곧 난색을 보여왔다"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현대그룹 경영권은 정씨 가문이 지켜야 한다는 데 집착이 강해 이번 지분매집도 이런 상황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범 현대가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이번 매집지분을 포함하면 30%에 육박, 현정은 회장측보다 많게 됐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확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정명예회장측은 현재로서는 경영권 인수 가능성에 대해선 부인하고 있다. KCC 관계자는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험에 노출된 현대그룹의 지주회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명예회장이 당초 계획대로 현대그룹을 섭정하기 위한 조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정명예회장은 현재 중국 출장중이다.


◇긴장이 고조되는 현대그룹=현대그룹은 정명예회장 주도의 범 현대가가 사모펀드의 주인이라는 얘기가 나돌자 사실확인 작업에 들어가는 한편 왜 은밀하게 지분을 매집했는지를 파악하느라 긴박하게 움직였다.


현대그룹측은 외국인 등 제3자의 지분 매입에 맞서 현대그룹의 경영권 지킴이를 자처했던 현대가의 지원이 현대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적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돌변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이번 지분매집 사태로 지난 1일 출범한 '현정은 체제'가 흔들리지 않을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경향신문 2003년 11월15일


KCC(금강고려화학)가 현대그룹의 새 주인이 됐다. 또 KCC는 현대그룹의 현대아산이 하고 있는 대북사업을 재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12면정종순 KCC 부회장은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신한BNP 사모펀드가 매입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2.82%는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단독으로 사들인 것"이라며 "정명예회장을 비롯한 KCC 계열사와 범 현대가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50% 이상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정명예회장과 KCC, 현대종합금속 등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44.39%를 확보했으며, 현대증권 등 다른 현대 계열사의 지분까지 합치면 5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부회장은 "현대그룹의 계열편입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자료를 제출했다"면서 "현대그룹의 정상화는 더이상 미룰 수 없고 대주주로서 소명에 부응하여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혀 현대그룹 경영권 접수를 공식 선언했다.


또 KCC측은 현대상선 지분도 KCC 계열사를 통해 3.95%를 추가로 매집해 기존의 2.98%와 합쳐 총 6.93%의 지분을 확보, 현대엘리베이터 최대주주이자 현대상선의 2대주주로 올라섰다고 밝혔다.


정부회장은 "정명예회장을 비롯한 범 현대가가 현대그룹을 사실상 접수한 이상 그동안 현대그룹이 중심이 돼 진행해온 대북사업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재고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당장 현정은 체제를 바꿀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그동안 적대적인 인수.합병으로부터 현대그룹을 지키겠다고 말한 KCC측의 주장이 허위로 드러났다"며 "현대그룹이 KCC에 접수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이날 "정명예회장이 지분변동 보고의무를 위반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제재 여부에 대한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증권거래법은 지분이 5%를 넘을 경우 5거래일 이내에 공시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금융감독위원회는 해당 지분에 대해 처분명령까지 내릴 수 있다. 금감원은 그러나 의결권 제한 여부는 당사자간의 소송에 의해 법원이 판단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명예회장측이 갖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중 20.63%에 대한 의결권 제한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해 귀추가 주목된다.

문화일보 2004년 1월1일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상선, 현대증권 등 현대그룹 계열사가 지난 26일 사장단 인사에 이어 31일 대대적인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현정은 회장 체제의 기반을 닦고 조직을 재정비하기 위해 예년보다 큰 규모로 실시됐다.

이번 인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의 변화다. KCC의 적대적 인수합병(M&A) 공세 중심에 서있는 이 두 계열사는 장기전 국면에 접어든 경영권 다툼에 대비, 재무 파트를 강화했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 전략지원부문장인 안홍환 전무를 관리본부장으로 영입, 부사장에 임명했고 현대엘리베이터는 재무부문담당(CFO)인 한승준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안 부사장은 지난 90년대 현대상선 노정익 사장과 함께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에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재무와 회계에 정통하다는 평을 얻고 있다.


현대그룹측은 조만간 경영전략팀을 해체하거나 계열사중 한 곳으로 축소, 편입시키는 것을 끝으로 그룹 재정비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경향신문 2004년 3월31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에서 KCC에 완승했다.현회장은 30일 경기 이천시 현대엘리베이터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이사로 선임됐다. 이로써 8개월간 끌어온 경영권 분쟁이 끝나 현회장 체제 굳히기 작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회장 압승=이날 주총에서 현회장은 출석의결권수 3백21만7천7백9주 중 찬성 77.8%, 반대 22.2%로 신임이사로 선임됐다. 최용묵 엘리베이터 사장의 이사 연임안도 통과됐다. KCC는 현회장과 최사장의 이사선임이 결정되자 정몽진 KCC 회장 등을 이사후보로 추천한 주주제안을 철회, '백기'를 들었다.


현회장측이 압승을 거둔 것은 '범현대가'가 대부분 주총에 불참, 사실상 중립을 표방한 데다 소액주주의 상당수가 현회장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KCC측은 일부 현대가 계열사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았으나 위임장을 제출하지는 않았다.


현회장은 주총이 끝난 뒤 "소모적 지분경쟁에서 벗어나 다행"이라면서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통해 현대그룹의 재도약을 꾀하겠다"고 말했다.


KCC측도 주총 결과 승복을 선언했다. KCC측 대리인인 김문성 상무이사는 "보유중인 엘리베이터 주식의 대량 처분에 따른 주가 급락을 막기 위해 현대측의 장외매도 제안에 협조할 수도 있다"면서 "더이상 그룹 경영권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할일 많은 현회장=현회장의 그룹 장악력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현회장은 현대상선과 엘리베이터 이사 선임에 이어 조만간 엘리베이터의 이사회 의장직도 맡게 될 예정이다. 명실상부한 그룹 총수로서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핵심계열사인 현대상선을 중심으로 하는 그룹 재편작업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중으로 회장 집무실도 서울 적선동 현대상선 사옥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그러나 남겨진 과제도 만만찮다. 향후 본격적인 주가하락이 예고돼 있어 주가 방어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KCC가 보유중인 자사주식 매입문제도 부담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오늘 주총에서 작년 결산이 승인되면서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는 한도가 2백억원에서 1천6백억원으로 늘어났다"며 "주가방어 차원에서 자사주 매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향후 인수합병(M&A) 가능성에도 대처해야 한다.

 

 

 

2005년 현회장이 맏딸 정지이 전무와 함께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문화일보 2007년 11월 5일

 

*함께 평양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현 회장의 분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31) 현대유엔아이 전무가 현 회장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그룹내 영향력을 착실히 다지고 있다.


5일 현대에 따르면 정지이 전무는 모친인 현 회장 및 그룹 임원진과 지난 10월30일부터 4박5일간 평양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다.


현 회장은 귀국후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적선동 사옥에서 가진 회견에서 “김 위원장이 딸을 만난 자리에서 이것저것 근황을 많이 물어보더라”고 말해 김 위원장이 정 전무에 대해 각별한 호의를 갖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에 앞서 정 전무는 현대상선 과장이던 2005년 7월에도 현 회장을 수행해 북한 원산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는 등 현 회장의 주요 대북사업 논의 과정에서 항상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5월 실시된 내금강 남북한 공동답사에서도 현 회장과 함께 우의를 입고 보덕암과 만폭팔담을 꼼꼼히 돌아보며 사업계획을 구상했다.


그룹 안팎에서는 정 전무의 지근거리 보좌는 정 전무가 현 회장이 처한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고, 현 회장도 정 전무를 그만큼 많이 믿고 의지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전무는 현 회장이 주관하는 그룹 주요행사및 임원회의에 빠짐없이 배석하는 가 하면 그룹 임원들에게는 깍듯하게 대하고 사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입사 3년만에 평사원에서 전무까지 초고속 승진을 하면서 그룹 경영권 승계자로서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그룹 내부에서는 현 회장의 아들 정영선(23)씨가 아직 어리고 그룹 현안이 산적해 있는 점을 감안할때 정 전무의 향후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 회장이 책임감이 강하고 듬직한 정 전무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면서 “더 많은 경험을 쌓아 점차 모친의 바통을 이어받을 후계자로 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2008년 7월17일

 

ㆍ백두산 관광계획 등 차질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대북 사업에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53·여) 피격 사망 사건을 매끄럽게 풀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는 개성관광까지 은근히 압박하고 있다. 야심차게 추진해온 백두산 관광 준비도 제자리걸음 중이다. 수차례 위기를 뚝심으로 돌파해온 현 회장이 이명박 정부 아래 본격적인 시험대에 섰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금강산 관광사업은 숱한 우여곡절에도 누적 관광객 200만명을 앞둔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이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심상찮다. 박씨 사망 사건이 직접 발단이 됐지만, 남북관계 교착 상태가 장기적으로 더 큰 짐이 되고 있다.


홍양호 통일부 차관은 17일 민주당 금강산사건대책반 회의에서 “금강산 관광 사망 사건 재발방지 대책이 없고 조사도 안 이뤄지는 상황에서 개성관광도 심각하게 생각해달라고 현대아산 측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개성관광을 중단하라 말라 이야기한 적은 없다”고 선은 그었지만 현대아산으로선 부담이다.


당초 현 회장은 이날 개성에 북측과 공동운영하는 ‘평양식당’ 개관식에 참석키로 했으나 취소했다. 올해로 대북사업 10년, 회장 취임 5년을 맞아 10월에 열리는 유경 정주영체육관 개관 5주년 기념행사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지난해 1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으로 얻어낸 내년도 ‘백두산 직항로 관광’ 추진 작업은 남북관계가 냉각되면서 막혔다.


일단 현 회장의 난국 돌파 의지는 확고하다. 현 회장은 지난 14일 현대상선 본사에서 기자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북사업은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북핵 실험에 따른 대북사업의 최대 위기 때도 현 회장은 흔들리지 않고 김 국방위원장과 독대해 정상화시킨 뚝심이 있다. 그동안 태풍과 각종 사고를 포함, 5차례 금강산 관광 중단 사태도 넘었다.


그러나 북한에 우호적인 두 정권과 달리 이명박 정부 아래 현 회장의 활동 폭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기본적 신뢰 구축 없이는 남북 당국 가운데서 외줄타기 해야 하는 대북사업의 숙명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 해결 없이는 금강산 관광 재개는 없다”고 못박았다.


현 회장도 현재 “방북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윤만준 사장도 전날 2차 방북 결과 발표 회견에서 현 회장의 방북 가능성에 대해 “추후에 검토될 일이 아닌가 싶다”며 늦춰질 가능성을 내비쳤다.


현 회장으로선 남북간 교착 상태를 마냥 지켜볼 수도 없는 처지다. 현대그룹 매출에서 대북관광 비중이 45%를 차지할 만큼 금강산·개성 관광사업은 중요하다. 금강산 관광 1개월 중단시 120억원 이상 손실이 추정된다. 특히 현 회장은 ‘대북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앞세워 현대건설까지 인수, 그룹에 날개를 달겠다는 포부여서 현 국면을 방치할 수 없다. 현 회장이 난국을 돌파한다면 명실상부한 ‘대북 창구’로서 입지가 커질 수도 있다. 금강산 사건 충격 속에도 개성관광은 매일 약 400~500명씩 다녀오는 등 큰 흔들림이 없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는 10년 동안 쌓아온 교류협력의 성과로, 현 회장이 의지할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일지 모른다.

 

경향신문 2009년 8월17일

 

현정은 회장이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는 소식에 현대그룹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들은 구체적인 협의사항은 확인할 수 없지만 현 회장이 김 위원장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대북사업이 재개되기를 희망했다. 


현대그룹은 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초조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현 회장의 체류일정이 또 하루 연장되자 “혹시 대북사업이 잘 안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불안감은 이날 늦은 밤 두 사람의 면담이 이뤄졌다는 소식에 순식간에 기대로 바뀌었다. 


현대그룹은 현 회장의 평양방문에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 현대그룹의 사활이 걸린 ‘개성공단 및 남북경협 활성화’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등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다.
특히 지난 13일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가 북한 억류 136일 만에 풀려나자 대북사업이 다시 활기를 띠는 것 아니냐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북한 핵포기 원칙 고수에 무게를 둔 대북 정책을 내놓고, 북한군 판문점대표부가 17일부터 시작되는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합동 군사연습을 맹비난하는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현대그룹 안팎에는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일각에서는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등 통 큰 합의는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대북사업 고비 때마다 성과를 가져온 현 회장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현 회장이 앞서 김 위원장을 3차례 만나는 동안 백두산·개성관광 정착과 내금강 관광 추진, 비로봉 관광합의 등 굵직한 결과물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현대그룹은 현 회장이 당장 금강산관광 재개 등 큰 성과물을 가져오지 못하더라도 꽉 막혀 있던 남북대화의 창구를 열었다는 점에서 남북경협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금강산관광은 당장 합의를 한다고 해도 사고재발 방지 등 시일이 걸리지만 개성관광은 당장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휴일인 데도 비상근무에 들어갔던 현대그룹 주요 부서 직원들은 밤새 북측으로부터의 연락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조만간 재개될지도 모를 대북경협 준비를 시작했다.

 

경향신문 2009년 9월1일

 

이명박 정부 들어 전면 단절의 위기까지 치닫던 남북 관계가 전환 기회를 맞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10~17일 방북이 잘하면 출발점이 될 듯도 하다. 여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김기남 조선노동당 중앙위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이 포함된 특사조문단이 지난 21일 서울을 방문, 1박2일 체류하는 등 현재의 대결 구도를 대화 구도로 바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현 회장은 지난 16일 묘향산에서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 4시간 동안 오찬을 겸한 면담을 갖고 중단된 금강산관광 등 현 정부 들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던 남북 경제협력 사안들을 활성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측 인사가 김 위원장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측의 경협 재개 의지 확인


합의 사항은 현대그룹과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지난 17일 발표한 공동보도문에 집약됐다. 공동보도문은 △금강산 관광의 조속한 재개와 비로봉 관광 개시 및 북측의 관광에 대한 편의와 안전 보장 △육로통행과 북측 지역 체류 관련 제한 해제 △개성관광 재개와 개성공업지구 사업 활성화 △백두산 관광 개시 △추석 때(10·3)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을 담고 있다. 남북간 경제협력과 관련된 쟁점들을 망라하고 이에 대한 이행 의지를 확인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비록 당국 간에 체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합의가 남북관계 경색을 해결하고 대립구도를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합의 이행을 위해 남북 당국간 협의와 동의가 필수적인 만큼 끊어졌던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될 단초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남북경협을 지속시킬 의지가 있느냐’는 의심을 받았던 북측의 경협 지속 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실제 북측은 그동안 정부의 대북 적대시 정책 등을 이유로 남북 경협의 문을 하나하나 닫아왔다. 개성공단 체류 및 통행을 제한하는 ‘12·1조치’를 단행했으며, “6·15(공동선언)를 부정하는 남측에 6·15의 혜택을 줄 수 없다”면서 개성공단과 관련한 기존 계약 무효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근로자가 벌어들이는 연간 3000만달러보다 주민 15만명(근로자·근로자가족)의 사상 오염을 더 우려한다”면서 개성공단 폐쇄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그랬던 북측이 이번 공동보도문에서 ‘개성공단 활성화’라는 문구를 적시하고 개성공단 육로통행, 체류제한 해제 조치를 취하는 데 동의했다. 공단 운영에 걸림돌이었던 12·1조치를 거둬들이겠다는 뜻으로, 실제 북한은 이 조치를 지난 21일 해제했다. 또 지난해 7월 박왕자씨 피격사건을 이유로 남측이 중단시킨 금강산관광 재개 의사도 밝혔다. 김 위원장은 현 회장과의 면담에서 유감의 뜻을 표한 뒤 “앞으로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남측이 금강산관광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삼은 사과·재발방지 요구를 의식한 발언이다.


현 회장은 귀환 회견에서 “(김 위원장이) 원하는 것 있으면 얘기하라고 해서 다 얘기했다. 그것을 다 풀어줬다”고 말했다. 북한이 경협에 대한 적극 의사를 표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최소한 이번 합의를 계기로 남북경협 전면 중단 등 최악의 시나리오는 상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자연스럽게 남북관계가 방향을 틀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전면대결태세’ 운운했던 북측이 교류협력을 매개로 대화 의지를 타진한 데다 남측도 일단 “긍정 평가”(천해성 통일부 대변인)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대화국면으로 넘어갈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8·15 경축사에서 남북 ‘고위급 회의’ 설치를 제안한 바 있다. 향후 당국 간 대화가 진행되고, 공동보도문대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면서 각종 교류와 경협 사업이 활성화된다면 남북관계는 진전될 수도 있다.


정부는 즉각 공동보도문 합의사항에 대한 이행 여부 검토 등 후속조치에 돌입했다. 비록 당국 간 회담을 통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어렵사리 마련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게 정부의 기본입장이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의 합의문은 절차적 조정이 필요하더라도 원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방침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 금강산관광 재개 검토 착수


당장 대한적십자사는 8월20일 북한의 조선적십자사에 제17차 이산가족 상봉 개최를 위한 남북적십자 회담을 오는 26~28일 금강산에서 갖자고 제의했다. 한적은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방문단 선정 등 실무 작업에 이미 착수했다. 과거 이산가족 상봉 때 준비기간이 2개월 안팎 소요된 만큼 추석(10·3) 이전에 행사를 개최하려면 회담을 지체할 수 없다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2000년 이후 남북 적십자를 통한 이산가족 상봉자는 대면상봉 16차례 1만6212명이며, 2005년 이후 화상상봉(7차례·3748명)까지 포함하면 총 1만9960명이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현 정부 출범 이후 남북 당국 대화가 단절되면서 중단된 상태로, “냉전이데올로기에 빠져 1000만 이산가족의 염원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받던 정부로서도 부담스러워 하던 사안이다.


정부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검토작업에도 착수했다. 아태평화위와 현대 측이 합의한 ‘추석 이산상봉’ 장소가 금강산이란 점을 감안하면 금강산관광 재개와 이산상봉은 사실상 맞물린 쟁점이란 것을 정부도 안다. 당장 정부는 관광 재개 3대 조건으로 내건 △북측의 사과 △진상조사 △재발방지 등 사안들을 재검토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한 것은 나름대로 뜻이 실린 것 아니겠나”고 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을 사과 및 재발방지 다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투다. ‘진상조사’도 당초 당국간 합동조사에서 민간조사도 가능한 진상규명으로 단계를 낮추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금강산에서 이산상봉을 하게 되면 그 지역으로의 통행이 다시 시작된다는 상징성이 있다. 이산상봉이 이뤄진 후에 정부로서도 다시 통행을 중단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며 “북측이 이산상봉의 조건으로 금강산관광 재개를 내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개성공단 활성화 및 개성·백두산 관광 등 다른 합의사항에 대한 점검에도 들어갔다. 지난달 2일 중단된 개성공단 실무회담의 재개 여부를 검토 중이다. ‘토지임대료 31배, 북측 근로자 임금 4배’ 인상 등 개성공단 계약조건 재조정을 주장했던 북측이 ‘개성공단 활성화’ 의지를 밝힌 만큼 실무회담에 적극적으로 응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정부는 그동안 세 차례의 실무회담에서 북측의 인상안이 터무니없다며 일축해 왔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남북간 현안들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고위급 회담 제안을 검토하고 있다. 북측이 ‘경협 차단’에서 ‘경협 활성화’로 급작스럽게 방향 전환을 한 것에 대한 진의를 확인하고 이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밝힌 ‘신 한반도 평화구상’도 함께 논의하자는 차원이다. 정부는 한때 그 시기로 당초 2009 을지연습이 끝나는 지난 20일을 염두에 뒀으나 김 전 대통령 서거로 미루는 분위기다. 정부 당국자는 “당국간 대화를 통해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당장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전환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곳곳에 장애물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회담의 진행을 위해 필요한 당국 간 신뢰가 전혀 없다. 또 남북 공히 남북관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선 북한은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북·미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요구했을 수도 있고, 남측이 북미관계 개선에 방해하는 상황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


남측도 마찬가지다. 남북관계를 우선시한 과거 정부와 달리 현 정부는 동북아 정세 관리의 한 축으로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 국제정치학자인 현인택 고려대 교수를 통일부장관으로 임명한 것만 봐도 그렇다. 또 한·미 공조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남측으로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다시 북에 대해 강경해진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의지도 약해 보인다.


곳곳에 장애물, 낙관은 금물


게다가 남북이 관계개선의 출발점을 달리 생각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북측은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을 요구할 것이 뻔하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따라”라고 남북경협사업 조건의 전제로 단 이번 공동보도문에도 북측의 주장이 반영됐음이 틀림없다. 북측이 김 전 대통령 서거를 고리삼아 6·15선언에 대한 이행 의지를 거듭 촉구할 가능성도 있다.?


남측이 과거처럼 “두 선언의 이행 방안에 대해 논의하자”는 등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면 당국간 대화는 시작부터 암초를 만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남측은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조건=북한 비핵화’라는 원칙이 확고하다. 당장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에 나선다면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북한 주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국제협력 프로그램 실행 등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정치적 주권침해’라며 반발했지만 이 대통령은 ‘비핵·개방 3000’의 명패만 바꾼 정책을 거론한 것이다. 게다가 정부 내부에선 북측이 무력시위를 멈추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것에 대해 “대북 압박책이 먹힌 것”(고위 당국자)이라는 생각이 많다. 반면에 북한은 자신들이 ‘핵 보유국’이 됐음을 기정사실화해 줄 것을 요구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이번 방북을 통해 대화의 여지는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용석 실장은 “핵과 미사일 문제엔 변화가 없고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과 제재는 지속되고 있다”면서 “남북관계는 큰 틀에서는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 실장은 “양측간 합의사항이 실무 협의와 당국간 대화가 필요해 그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작거나 낮은 수준에서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북한의 전술적 유화공세와 전세전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남북간의 전략적 대치와 전술적 유화가 공존하는 국면이 도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남북 당국간 대화가 시작됨을 전제하되 협의 과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경향신문 2010년 4월24일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에 비상이 걸렸다. 북한의 자산압류 조치로 금강산 관광사업의 ‘터전’이 송두리째 날아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국간 대화재개를 바랄 뿐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게 큰 고민이다.
현대아산은 23일 장경작 사장과 주요 간부 및 부서장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한 뒤 남북 당국에 대화를 촉구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북측은 부동산 몰수 및 동결 조치를 철회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금강산관광지구에 투자한 기업들의 재산권 침해는 물론 남북경제협력사업이 심각한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된 만큼 우리 정부도 적극 나서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현대아산은 현재 북측으로부터 남측 자산 동결과 관련한 별도의 공지나 통지문은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이 민간 소유의 남측 부동산도 모두 동결하겠다고 밝힌 만큼 현대아산 및 협력업체의 피해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게다가 정부 사례와 같이 자산이 몰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렇게 되면 현대아산의 대북사업 토대가 모두 사라지는 셈이어서 대북사업을 통째 접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대북사업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지만 정부 눈치만 볼 뿐 마땅한 해법이 없다는 게 현대아산의 더 큰 고민이다. 내부에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쌓이고 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현정은 회장이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난 게 현대아산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였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관광사업이 존폐위기에 놓였다”면서 “금강산관광은 남북화해와 협력, 한반도 평화 증진에 기여해 온 만큼 결코 그 길이 중단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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