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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크

그때 그시절 드라마/1993

by 신사임당 2012. 5. 15.

1993년 입니다

 

뜬금없지만 NAFTA 이야기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당시 대학 3학년이던 저는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신문을 열심히 보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몇몇 신문을 펼쳐놓고 훑어보는 것이 당시 오전 일과 중의 하나였는데

북미자유무역협정, 즉 NAFTA 라는 용어가 곳곳에 나왔습니다.

TV뉴스에서도 NAFTA가 타결됐다며 앞으로의 경제효과, 그럼으로써 우리가 입게 될 경제득실 등을 따지는

소실들이 꽤 나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당시 분위기는 그것을 부러워하는 쪽이었고 장밋빛으로 채색됐던 것으로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지금은...

 

   당시 기사 입니다.

 

NAFTA제창 살리나스 멕시코대통령(’93뉴스의인물:12·끝)
[한국일보]|1993-12-31|09면 |국제·외신 |기획,연재 |1351자

◎세계최대경제권 엮어낸 “뚝심 사나이”/북­남미 연결고리자처 바빠진 행보주목 카를로스 살리나스멕시코대통령은 94년을 그 누구보다 설레는 가슴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가 제창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우여곡절끝에 비준이 끝나 내년 1월1일부터 공식 발효되기 때문이다.

 살리나스의 93년은 NAFTA를 위한 한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89년6월 이 협정의 창설을 제창한후 그동안 호흡을 맞춰온 미국과 캐나다의 정부수반들이 모두 교체되는 바람에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NAFTA가 미하원에서 부결될것이라는 언론보도가 계속되면서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한해를 되돌아보며 더욱 뿌듯해한다. 
 『멕시코는 더이상 중남미 부채국의 대명사가 아니다. NAFTA가 멕시코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바꿔놓을것이다. 내년부터 멕시코의 변신을 주목해야 할것이다』 살리나스는 이 협정이 미하원의 비준을 얻고난뒤 이렇게 호언했다.

 실제로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단일 경제권으로 묶는 이 협정의 최대 수혜국은 멕시코가 될것이라는데 이견이 거의 없다.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 미국시장을 겨냥한 역외국가들의 멕시코에 대한 투자가 늘어 경제가 급속히 활성화된다는것이다. 멕시코 경제가 10년뒤에는 현재의 캐나다 수준으로 커질것이라는 장밋빛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살리나스대통령이 그린 청사진도 화려하다. 올해 1·1% 성장에 그친 국내총생산(GDP)을 내년에는 5·5%, 95년에는 5·3% 성장으로 끌어올리고 자동차 섬유 철강 시멘트 산업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벌써부터 포드 크라이슬러 GM등 미국자동차의 「빅3」은 물론 일본과 독일 유수의 자동차업계들이 몰려 투자러시를 이루고 있다.

 88년 집권여당 제도혁명당(PRI)후보로 출마, 당시 40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오른 살리나스는 재임 6개월만에 NAFTA 창설을 제창하고 여기에 그의 정치생명을 걸었다. 그로부터 4년6개월만에 인구3억7천만명, 생산규모 6조7천억달러상당의 세계최대 경제권을 엮어낸것이다.

 미하버드대학 경제학박사 출신인 살리나스는 멕시코의 경제부흥을 자신하고 있다. 시간당 2·1달러라는 멕시코의 저임노동력을 미국대기업의 착취에 몰아넣고 있다는 좌파의 정치공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침체된 멕시코경제의 역량을 회복할 때까지 미국 대기업의 자본침략 논의마저 유보해야 한다는게 그의 신념이다.

 그는 앞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더욱 확대, 중남미를 포함하는 미주경제공동체창설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한국과 대만등 아시아수출국들이 멕시코투자를 환영하면서도 멕시코가 이들의 대미우회수출기지가 되는것은 거부한다.

 라틴아메리카와 앵글로아메리카의 경제고리를 자처하고 나선 살리나스의 행보는 새해에 더욱 주목을 받을게 틀림없다.

 

멕시코:하(다시뛰는 중남미:12·끝)
[경향신문]|1993-12-21|11면 |기획,연재 |4264자
◎세계유수의 보세공장 “총집결”/싼임금·풍부한 노동력이 강점/“미산업의 51번째주” 부르기도/외국인투자 올 6월말 현재 555억불… 한국선 현대정공·삼성·금성·대우 등 진출멕시코의 서북쪽 끄트머리, 미국과 맞닿은 국경지대에 위치한 작은 공업도시 티후아나.

멕시코시티에서 비행기로 3시간 거리인 티후아나의 시가지를 벗어나자 민둥산에 둘러싸인 사막지대가 황량한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정공 멕시코현지공장은 불모의 벌판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었다.

티후아나는 멕시코 북부 5개주의 국경지대에 형성된 거대한 산업벨트의 한 점이다. 이곳은 바로 세계를 휩쓰는 지역주의의 바람속에 멕시코와 미국의 산업이 손을 맞잡는 현장이기도 하다. 3백마일에 걸쳐 이어지는 멕시코 북부는 「마킬라도라」라 불리는 보세가공산업지대로 보세공장들이 횡대로 늘어서 있다. 공장의 숫자는 무려 2천75개, 고용인력은 50만5천명을 헤아린다. 현대정공도 그 하나다. 마킬라도라공장들은 인접한 미국에서 부품과 원자재를 실어와 멕시코 노동력으로 제품을 만들어 내고 완성된 제품은 그대로 미국으로 넘어간다. 관세도 없다.

마킬라도라가 자리한 멕시코 국경도시 건너편마다 미국의 도시들이 짝을 맞추어 늘어서 있다. 멕시코쪽에는 생산공장이, 영업본부와 보관창고는 미국쪽에 자리하는 방식이다. 티후아나와 산티아고, 멕시칼리와 칼렉시코, 레이노사와 맥알렌등이 바로 양국의 파트너 도시들이다.

○공장 2천75개나
멕시코 마킬라도라에 진출한 세계 전자업체의 면면만을 봐도 이곳에 부는 투자열기를 쉽게 가늠케 된다. 레이노사에 연간 컬러TV 2백30만대를 생산할수 있는 제니스의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 있는 것을 비롯, 필립스·소니·마쓰시타·도시바·산요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소니는 공장만도 4개에 이른다. 한국에서도 금성사, 삼성전자, 대우전자등 가전 3사가 모두 진출해 있다.

미국기업들의 멕시코 국경지대 남진러시도 빚어져 자동차의 「빅스리」는 물론, AT&T·캐터필라·코닝에서 코카콜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기업들이 「메이드 인 멕시코」가 붙은 미국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때문에 미국기업들은 이곳을 미국산업의 51번째 주라 말하기도 한다.

멕시코 외국인유치의 핵이 되고있는 마킬라도라는 멕시코 경제활력의 근원지가 되고 있다. 멕시코의 전반적인 생산이 둔화되고 있음에도 이지역의 생산은 연 20∼30%씩 늘고 있고 지난해 이지역의 고용은 7.5%가 늘었다.

NAFTA는 마킬라도라의 위상을 한층 높여 놓았다. 제3국기업들의 북미공략 거점지대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취재팀이 찾은 티후아나에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현대정공 현지공장이 들어서 있고 지난해에는 새한미디어가 합류했다.

컨테이너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정공 멕시코공장에서는 매월 첫번째 월요일 아침마다 색다른 조회가 열린다. 1천여명의 멕시코현지 근로자들이 운동장에 도열하면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근로자들은 가슴에 손을 얹는다. 사장의 훈시가 이어지면 스페인어로 근로자들에게 전해진다. 우수사원의 표창도 있다. 박성도 현대정공 현지공장사장이 도입한 독특한 한국식 경영방식의 하나다.

박사장은 멕시코 근로자들을 한국공장의 운영형태에 적응시키기 위해 현지에서는 획기적이랄수 있는 여러 조치들을 취했다. 작업장별로 1일목표와 1개월목표치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면 기본급외에 특별급을 지급하는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한것도 그 하나다. 작업팀이 1일 목표량을 달성했을때 근로자마다 5달러를 추가지급 받는다. 기본급의 30%에 해당하는 큰 돈이다. 자연히 일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작업팀에서 제몫을 못하는 근로자는 동료로부터 눈총을 받게됐다.

○시장점유율 60%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한 것은 멕시코기업의 공통적 고민인 이직률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현대정공도 처음 문을 열었을때 이직률이 월 35%에 달했다. 높은 이직률은 품질저하로 이어졌다. 비슷한 월급수준으로는 해결키 어렵다는 판단아래 과감한 인센티브제를 도입했고 지금의 이직률은 월 7%로 티후아나에서 최저수준이다. 인센티브제는 초과근무를 자청하는 현상까지 불러들였다.

현대정공은 주 5일의 근무일중 1일만 결근하면 본봉외의 복리후생비(주30달러) 모두를 회수, 다른 근로자들에게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회사규정을 고쳤다. 월요일만 되면 결근이 급증하는 「월요병」을 치유키 위한 고육지책이었고 효과는 즉각 나타나 월요일 결근율이 20%에서 6∼7%수준으로 격감했다. 지각을 없애기 위해 업무가 시작되는 오전 7시 정각에 어김없이 정문을 잠그는 강경책까지 동원했다.

박사장은 『제도가 문제이지 사람은 문제가 될수없다』고 말했다.

부지 2만4천평, 연건평 8천평규모의 현대정공 멕시코공장은 90년 착공, 91년 가동에 들어갔다. 티후아나에는 삼성전자에 이어 2번째로 들어선 한국기업의 현지공장이다. 컨테이너는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대표적인 제품. 최대수출시장인 미국으로의 수송비 절감방안을 찾다가 수요·노동력·수송여건·원자재조달능력등을 폭넓게 검토, 미국국경과 접한 티후아나가 적지로 선정됐다는 것이 박사장의 설명이다.

현대정공 멕시코공장은 처음 스틸컨테이너를 주력으로 생산을 시작했으나 중국의 저가공세로 시장여건이 악화돼 올해 4월부터 해상수입이 힘든 고급제품인 알루미늄 컨테이너 생산에 나섰다. 1개 1만달러짜리 알루미늄 컨테이너를 월 7백대씩 생산하고 있으며 스틸 컨테이너는 생산능력이 월 3천TEU이나 1천TEU만을 생산하고 있다. 컨테이너를 싣는 섀시도 월 1천대씩 생산하는데 스틸컨테이너의 부진을 알루미늄컨테이너및 섀시의 판매호조가 벌충해주고 있다. 섀시의 경우 미국의 월 시장규모는 1천5백대로 현대정공의 시장점유율이 60%에 이른다.

현대정공 멕시코공장의 인근에는 4개의 중소협력업체가 함께 진출해 있다. 철판가공공장·소부품 용접공장·섀시부품 용접공장및 철판녹 제거공장등으로 근로자수는 모두 1백명 안팎. 낯선 이국땅에서 이루어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력의 모습이다.

해외로부터의 대멕시코 투자액은 89년 29억달러에서 90년 49억8천만달러, 91년 99억달러로 매년 1백%씩 급증했고 지난해는 83억달러의 투자가 이루어져 총투자액이 5백억달러를 넘어섰다. 올 6월말 현재 멕시코의 외국인투자액은 총 5백55억달러. 우리나라의 총 외국인투자액 1백7억달러의 5배가 넘는 규모다. 적극적인 투자유치책, 미국과 인접한 지리적 여건, NAFTA의 기대감등이 어우러져 멕시코에 세계의 유수기업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진출 25년째로 현지일본기업의 터줏대감격인 닛산자동차의 멕시코공장은 올가을 놀라운 일을 해냈다. 멕시코공장에서 제작한 도시형 밴승용차를 일본 본국에 처음으로 역수출한 것이다. 미국에서 만든 혼다차가 일본에 상륙한 적이 있기는 하나 닛산의 수출은 성격이 달랐다. 일본시장을 겨냥, 일본인 구미에 맞춰 개발한 차를 일본수출용 전용공장에서 만들어 냈다. 닛산은 월 7천대 생산규모의 일본수출용 공장시설을 3년내 월 2만대규모로 확충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멕시코 승용차시장의 18%를 점유하고 있는 닛산 현지공장의 성공이 본국에서의 경쟁력확보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중남미를 돌면서 숱한 일본·일본인얘기를 들어야 했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81년 일본정부가 조성해 기증한 「재팬 가든」이 있다. 연못속에 잉어떼가 노닐고 일본식 탑이 세워졌으며 일본서 날아온 화초가 인상적인 전형적인 일본식 공원이다. 신혼부부들 기념사진 찍는곳으로, 국민학생 단체견학장소로 인기를 끄는 이 명소는 아르헨티나인의 가슴에 일본을 친근한 이웃으로 심어놓고 있었다.

○거대한 개방현장
브라질 상파울루에 자리한 세계최대의 농산물시장 세아제스피의 상권은 일본계가 장악하고 있었다.칠레의 한 교포실업인은 『일본은 팔것이 없으면 사갈것을 생각한다』고 혀를 내둘렀다. 멕시코 일본상공회의소의 가토 사무국장은 『일본기업은 해외투자후 5년까지는 수익을 내는데 조바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남미 취재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의 하나는 개혁과 개방, 민주화로 상징되는 거대한 지구적 물결의 생생한 현장이라는 점이었다. 문민시대를 열면서 정치·사회적 개혁의 거센 돌풍이 나라마다 몰아쳤고 특히 경제회생을 향한 열망은 대단했다. 중남미의 개혁과 혁신의 바람은 그 강도가 문민시대개막과 함께 개혁의 깃발을 올린 한국을 압도했고 이같은 변화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시작됐다. 아르헨티나의 메넴이나 멕시코의 살리나스에서 보듯 개혁의 견인차는 젊고 유능한 엘리트지도자들이었다. 곳곳에서 인플레가 잡히고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등 그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하면된다」는 국민적 자신감도 확산되고 있다.

세계는 「10년의 잠」에서 깨어난 중남미의 잠재력과 미래에 주목하고 있다.

국경없는 경제전쟁의 시대, 중남미가 우리의 또다른 경쟁자로 다가선 것이다

 

 

그리고 10여년 후 입니다

 

 

[세계화와 민주화의 현장-21세기 남미를 가다]<3>멕시코-①NAFTA 10년의 명암
[한국일보]|2004-07-23|21면 |10판 |특집 |인터뷰 |3867자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출범 당시 멕시코 살리나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협정은 멕시코가 제1세계로 들어가는 티켓이다." 협정이 발효된 지 10년, 과연 멕시코는 제1세계에 가까이 다가갔는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한OECD 국가이기도 한 멕시코. 인구 1억에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매일 337만 배럴의 원유를 퍼내는 석유부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NAFTA 10년에 대한 자조적인 비평이 내외 언론을 휩쓸고 있다.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의 사회학자 세르히오 세르메뇨는 말한다. "협정 10년은 재앙이다. 우리는 국내 유통, 금융을 거의 외국계 자본에 넘겨주었고, 농촌은 쑥대밭이 되었다. 월마트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60%가 넘는다. 시티은행과 스페인계 빌바오 비스카야 은행, 산탄데르 등이 여수신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석유, 가스 부문을 노리는 미국의 압력도 강력하다."
멕시코의 딜레마는 이렇다. 원유를 대량으로 생산하지만, 국내 정제시설이 부족해서 미국에 원유를 내다 팔고, 정유를 수입한다. 그러니 미국보다 휘발유 가격이 1.5배나 비싸다. 가스전도 지천으로 늘려 있지만, 개발할 자본이 부족하다 보니 결국 미국에서 가스를 수입해서 보충한다. 외국투자와 민간자본을 유치해서 정제설비와 가스 생산에 박차를 가해야 하지만 헌법 27조는 외국자본의 지하자원 개발을 막고 있다. 민족주의 정서가 강한 야당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27조가 개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멕시코인들은 미국에서 정유와 가스를 들여올 수밖에 없다. 한 관료는 이렇게 푸념했다. "멕시코 기업인이 텍사스에 가서 천연가스 생산에 투자를 하고, 이를 멕시코에 팔지만, 자기 나라 멕시코에서는 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답답한 심정일 것이다.

협정 10년간 성과도 있었다. 대외무역은 지난 10년간 8백 80억 달러에서 3,600억 달러로 4배나 증가했고, 멕시코는 오늘날 미국의 제3위 무역 파트너가 되었다. 수출에서 공산품 비중이 88%나 되고, 그 가운데 자동차가 23%, 전기전자 제품이 30%나 차지한다. 하지만 10년간의 거시경제적 성과는 저조하다. 평균성장률은 2.3%, 일인당 GDP 성장률은 0.9%에 머물렀다. 고용창출, 복지향상, 산업구조 고도화 모두 한계를 내보였다.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한 마킬라도라(조립가공형 공장) 공단이 전국에 늘어났지만, 거의 노임과 전력요금만 따먹는 저부가가치형이다. 최근에는 그것도 중국의 저가품 공세에 흔들리고 있고 아시아 지역으로 옮기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한 컨설팅 회사의 계산에 따르면 대미 근접성이 중국 상품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은 1달러 당 5센트에 불과하다. 마킬라도라 전략은 폭스 대통령조차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략"이라고 폄하한다.

살리나스 정부(1988∼94) 이래로 이제껏 경제관료들과 기업인들은 FTA를 만병통치약으로 받아들였다.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경쟁력이 높아지는 자동조절 메커니즘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 10년간 30개에 이르는 FTA를 체결했고, 지금도 일본과 최종 마무리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력은 FTA의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시경제 주체의 능력과 생산비에 영향을 주는 정부의 행동에 달린 것이다.

<세계경쟁력연보>는 1998년에 34위를 차지했던 멕시코가 2002년에 41위로 떨어졌다고 보고했다. 연보는 인프라의 후진성이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텔레커뮤니케이션 산업의 민영화는 민간독과점을 초래했고, 나아가 과도하게 높은 요금체계는 거래비용을 높였다. 석유, 가스, 전력 등 에너지 부문의 투자 부족은 역시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연결되어 생산비에 나쁜 영향을 준다. 지식기반경제의 기초인 교육 부문의 후진성도 큰 골칫거리이다.

현지에서 인력회사를 운영하는 박성근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멕시코는 노동인력이 풍부하지만 정작 능력 있는 기술인력이나 사원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낮은 예산으로 운영되는 고등교육 기관과 공교육 부문은 대단히 후진적이어서 양질의 노동력을 민간부문에 공급하지 못한다. 몬테레이 공대와 같이 교육비가 비싼 사립학교들이 산업 및 경영인력을 공급하지만, 이들의 초임은 국제적 기준에서도 너무 비싼 수준이다."
인프라와 교육 부문에 엄청난 재원이 투입되어야 하지만, 멕시코 국가재정은 가난하다. 세수는 GDP의 11% 수준에 불과해 OECD 평균인 27%에 크게 뒤진다. 그나마 공적채무의 원리금 상환에 투입하면 정말 쓸 돈이 없다. 그 동안 원유수입에 기대어 재정을 꾸려왔지만, 세수를 획기적으로 증대시키는 세제개혁이 시급하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의회는 3년간 허송세월을 보냈다.

NAFTA는 고용문제를 악화시켰다. 농촌은 더욱 피폐화했고, 남부의 치아파스 원주민과 농민들은 아직도 무장저항을 하고 있다. 오늘날 멕시코의 청년실업은 유래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 2년간 미고용 경제인구는 2백만 명이 넘었다. 이중 30만∼40만 명 정도가 매년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고, 그 덕분에 멕시코 성인 노동력의 25%인 400만∼500만 명 정도가 미국에 불법적으로 체류한다.

결국 NAFTA 모델은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한 상품 수출 단계를 넘어서 미국 남부로 불법 노동력을 직접 송출하는 시스템으로 이행하고 있다. 2003년 미국의 멕시코인들은 130억 달러나 송금했고, 석유수입에 버금가는 실적을 올렸다.

 

 

'나프타 12년' 세미나...FTA 허상 경고 / "실패한 멕시코 왜 따라하나"
[경향신문]|2006-07-12|05면 |45판 |종합 |뉴스 |1470자
“북미자유협정(NAFTA) 12년, 멕시코는 실패했다.” 한·미 FTA 반대 움직임이 거세지는 가운데 NAFTA 12년 멕시코의 현실을 되짚어 보는 세미나에서 “실패한 멕시코 모델을 내세워 한·미 FTA를 체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멕시코는 NAFTA 체결 이후 일부 수출은 증가했지만 공공사회 부문은 후퇴했고, 빈곤층이 양산됐다는 것이다.

11일 열린 'NAFTA 12년 멕시코의 현실' 세미나에서 멕시코 국립 자율대 카를로스 우스캉가(Carlos Uscanga) 교수는 NAFTA 이후 멕시코는 '패자'만 양산해왔다고 일침을 놓으며 한.미 FTA 체결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초기 멕시코의 살리나스 행정부는 '미국 시장에 수출이 쉬워지면 세계 시장도 쉽게 열릴 것이고, 해외직접투자(FDI)가 멕시코로 물밀듯 들어와 고용도 증진될 것'이라는 호언을 했다. 당시 중산층 등 국민 80∼90%가 NAFTA 체결을 적극 지지했다. 카를로스 교수는 "이 부분은 한국 정부 주장과 유사하지만 멕시코는 NAFTA 이후 빈곤층의 급격한 증가, 실업 증가, 농업 붕괴 등 사회가 극단화됐다"고 강조했다. 극소수의 기업만 국제화됐으며, 일부 계층만 백만장자 대열에 올랐다는 설명이었다.

카를로스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1996년에 이미 빈곤층이 5천1백만명을 넘어서면서 전체 인구의 55%를 차지했다. 비정규직 역시 2천만명에 달했으며 5백만명 이상이 미국 불법이민을 택해 멕시코를 빠져나갔다. 멕시코 은행의 99%를 해외 기업이 장악했다. 카를로스 교수는 이를 '멕시코식 후유증'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제 멕시코는 더이상 기초식품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다"라며 "수입면에서 쌀 242%, 옥수수 112%, 밀가루 84% 정도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한일장신대 이남섭 교수는 "NAFTA 후 멕시코의 경제적 실익은 불분명한 반면, 사회적 충격과 손실은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지난 12년 동안 대외무역 양적변화, 외국인 투자 팽창 등의 거시지표는 자세히 살펴보면 속빈 강정"이라고 지적했다. 또 "의료부문에 대한 정부지출이 국내총생산의 3% 감소, 97년 실질임금은 94년에 비해 60% 이상 감소하는 등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멕시코의 실패 이유를 외채에서 찾았다. 엄청난 외채를 갚느라 사회공공부문은 외면했다는 분석이다. 멕시코와 국내 사정을 100% 비교하기는 무리지만 이교수는 "외형적인 무역개방으로 인한 효과를 일자리 창출, 임금 상승만 내세우면 멕시코의 실패한 12년과 다를바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벌어진 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한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정부는 멕시코처럼 수출이 늘고, 외국인 직접투자도 증가된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 이익은 누구의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교수는 "결국 멕시코처럼 극소수의 기업이 이익을 가져갈 것"이라며 "멕시코 살리나스 정부가 10년 전 실패한 정책을 우리 정부는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오랫동안 EC체제로 유지되던 유럽이 EU로 변화되기 위한 모든 채비를 마친 해이기도 했습니다. 유럽의 경제 통화 정치 통합을 규정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회원국들이 비준하면서 공식 발효됐고 단일 유럽을 위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의미가 부여됐지요.

당시 기독교계의 일부에서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말세지말의 적그리스도가 EU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국내에선 문민정부 초기에 개혁이 한창 진행됐었죠. 재산공개, 사정, 금융실명제 등이 당시 지면을 장식한 뉴스였습니다.

대중문화계에선 연예인 커플들의 결혼 소식이 많았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최수종 하희라, 이봉원 박미선, 임백천 김연주씨 등의 연예인 커플 탄생이 큰 뉴스가 됐었죠.

 

또 서편제라는 영화가 신드롬을 일으키며 대중문화계에 활기를 불어너었습니다. 당시 우리 영화 산업은 빈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관객동원도 그렇고 제작되는 편수도 형편없었죠. 쥬라기 공원과 같은 헐리우드 영화가 국내는 물론 세계 영화시장을 휩쓸던 당시 우리나라 영화는 5만명 이상 관객 동원한 영화가 5편정도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지요. 심지어 백한번째 프러포즈는 쥬라기 공원 때문에 상영되던 극장에서 중간에 쫓겨나기도 했고요.

그런 상황에서 서편제는 1백만명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한국 영화사에 새로운 기록이 됐던 첫 1백만 돌파 작품이었죠. 그 때문에 영화인들의 상처받았던 자존심은 회복됐고 사회적으로도 서편제를 통한 국악, 우리문화는 신드롬이 될 정도로 이상열풍을 몰고왔습니다.

당시 주인공 오정해씨 역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가요계에선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이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대로 산다... 이렇게 진행되는 트로트 풍의 노래였지요.

당시 탤런트로 활동하던 신신애씨는 이 노래 하나로 빵 떴습니다. 전국의 레코드 가게, 길보드 차트를 휩쓸었고 업소 무대에서도 그를 모셔가기 경쟁이 벌어졌고 그의 음반은 25만장이 넘게 팔렸습니다. 당시 대중문화, 가요 전문가들은 사회현상과 맞물려 이 신드롬을 해석했습니다. 새정부가 사정을 강화해서 과거 비리와 모순 부조리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사례가 많았는데 그것이 요지경이라는 풍자적인 대중가요를 통해 대중들의 바람과 공감을 자극했고 인기로 이어졌다... 뭐 이런 분석들이었지요.

 

그럼 이제  당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그 시절의 청춘스타들을 살펴볼까요.

 

**걸어서 하늘까지

 최민수 김혜선 손지창 주연이었습니다. 최민수와 김혜선은 불우하게 자란 의남매였는데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던 사이였고 나중에 김혜선은 손지창과 결혼하나 이후에도 최민수를 못잊어 하는 뭐 그런 내용이었죠. 황미나의 만화 우리는 길잃은 작은새를 보았다와 비슷한 구도였던 듯...

김혜선씨는 80년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습니다. 채시라 김혜수 하희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때만해도 그랬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동년배 배우 중에서 가장 먼저 아줌마의 정형화된 모습으로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미지가 굳어져버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다시한번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따라 불렀지요. 나중에 나온 캔의 내생에 봄날은 이라는 노래는 이 곡과 분위기나 창법이 비슷했던 기억이 납니다.

 

 

 

 

**폭풍의 계절

김희애와 최진실의 연기대결이 화제가 됐던 드라마입니다. 사촌이었던 이홍주 이진희 두 자매의 이야기지요. 판이한 성격과 환경에서 태어난 이들의 성장과 인생 사랑을 그렸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 주인공의 이름인 '이홍주'에게 꽂혀서  몇년후 제 아이의 이름도 홍주로 짓게 된

개인적인 인연이 있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엄마의 바다

 고현정 고소영 최민수 이창훈.. 그리고 김혜자씨가 출연햇습니다.

 유복하던 집안이 가장의 죽음으로 갑자기 주저앉게 된 뒤 남은 가족들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를 그렸지요.

 생활능력이 없는, 온실속 꽃같이 살아온 엄마가 차가운 세상에 어떻게 맞닥뜨리게 되는지, 그리고 성실하고 착한

큰딸 영서와 철딱서니 없는 작은딸 경서 등 가족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졌던, 인기드라마였습니다.

 아마 고소영씨는 이 드라마로 스타덤에 올랐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파일럿

 최수종 이재룡 한석규 김혜수 채시라

 지금은 도저히 한자리에 모으기 힘든스타들이지만 그당시엔 한드라마에서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제목처럼 파일럿인 주인공과 공항에서 일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일과 사랑을 발랄하게 그렸던 드라마입니다.

 

 

 

 

 

 

**여자의 남자

 초히트를 기록했, 김한길 의원의 소설 여자의 남자를 드라마로 만들었던 작품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김주승씨가 출연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미남스타였던 분이지요. 이와 함께 정보석 김혜수씨가 나왔습니다.

 

 

 

 

 

**결혼

 최명길 조민수 유호정이 세자매로, 그 파트너로 임채무 이효정 윤동환씨가 나왔습니다.

 유복한 가정의 세딸, 교양있는 아버지, 결혼 잘시키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극성스런 엄마

 이정도면 지금은 빤할 내용인데 그땐 본방사수하며 열심히 봤습니다.

 

 

 

 

 

 **그리고 두 편의 청소년 드라마입니다.

 공룡선생과 사춘기.

 이정재 김희선 이민우 박지윤 김남주 이의정 안연홍 이제니 김소연 등을 배출했던 드라마들입니다. 톱스타들의 풋풋하고 앳된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아래는 사춘기입니다

    

 

 

 

 **그리고  두둥..... 일지매

 

  봤던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그당시 일지매에 출연했던 드라마는 장동건 염정아였습니다.

 초절정 비주얼 커플이었기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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