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드라마에는 영어 대사가 심심찮게 나옵니다. 간간이 일본어나 불어, 중국어 등이 나오기도 하는데 등장하는 배우들이 영어대사를 멋들어지게 소화하고 나면 으레 인터넷은 배우 아무개 영어실력 어쩌구 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명품영어니, 완벽한 영어실력을 뽐냈다느니, 유창한 영어구사 화제라느니, 발영어가 뭐예요 라느니 온갖 찬사가 동원됩니다. 그런데 그런 기사들 보면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 되는 것 보면 짜증도 나구요.
뭔가 대단한 노력이라도 기울여 얻어낸, 본받을 만한 것이라면 마땅히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그렇지도 않은 일에 대해 지나친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며 온갖 찬사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노라니 씁쓸하기 그지 없습니다. 영어에 대한 극심한 컴플렉스와 비굴할 정도의 문화사대주의를 드러내는 것외에 달리 다른 설명을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유학도 갔다오지 않고 늦은 나이에 신토불이 방식으로 혼자서 외국어 공부를 했다거나 본인의 피나는 노력으로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면 당연히 노력에 대한 평가를 받을만하고 화제를 모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교포이거나 어릴때 이민간 경우, 오랜 기간 유학한 경우라면 영어 못하는게 화제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네요.
얼마전 탤런트 이지아의 영어실력이 화제가 됐습니다. 원어민도 울고갈 실력이니 유창한 발음이니 하는데 초등학교 졸업하고 미국 이민가서 대학까지 다녔다면 그렇게 못하는게 이상한 것 아닌가요. 소녀시대 제시카나 티파니, F(x) 크리스탈 이런 친구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영어 인터뷰가 즉석에서 가능하다느니 원어민 수준의 영어실력이라느니 이런 설명을 붙이는 것 자체가 이 친구들을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이 친구들이라면 한국에서 활동한지 몇년은 됐지만 지난해 큰 인기를 모았던 슈퍼스타 K의 존박 같은 경우는 한국에 머무른지도 얼마 되지 않은, 완전 미국인이나 마찬가지인데도 존박이 유창한 영어실력을 뽐냈다, 출중한 영어실력을 보여줬다는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실소가 나오더군요. 미국서 태어나 미국서 자란 사람들이, 그럼 영어를 잘하지 한국말을 잘하겠습니까. 그들이 한국 학교만 다니고 한국인 커뮤니티에서만 어울리고 한국 TV만 본 게 아니라면 영어를 못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 아닌가요. 오히려 교포 출신들이 한국말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는 것을 화제삼고 칭찬해줘야 하지 않나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배우 장동건씨나 원빈씨가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화제가 될 이야기도 아닌, 당연한 사실일텐데, 이렇듯 한국서 태어나 한국말 잘하는 것과 미국서 태어나거나 오래 살아서 영어 잘하는 게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어를 잘한다고 지칭된 그들 입장에서 자신의 영어실력이 화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물론 나이 들어 간 경우라면 오래 살아도 영어 잘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본질이 아니니 무슨 말인지는 아실테고...
이렇게 교포나 유학파 출신들의 영어가 대단한 능력으로 과대포장되는 일이 지속된다면 나중엔 특정인 아무개가 한국에서 7년, 10년을 살았는데도 영어 잊어버리지 않고 여전히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러다가 정말 미국 애들은 사교육 안해도 영어 잘하고, 미국 사람들은 거지들이라도 양담배 피우니까 부럽다는 농담같은 생각이 간절하게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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