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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토크

<용팔이>의 황간??? 뮤지컬 스타 배해선 맞습니다

by 신사임당 2015. 9. 9.

드라마 <용팔이>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배해선을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허남설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뮤지컬계의 스타인 배해선의 첫 TV 나들이 소감이 어땠을까요.

한번 들어보시죠.

 

경향신문 9월10일자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해 서울 대학로를 즐겨찾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모르기도 힘든 배우 배해선. 인기 뮤지컬 <맘마미아>의 ‘소피’로 기억하는 팬들이 많지만 그가 대형 뮤지컬의 주연을 맡은 것만 해도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아이다> ‘암네리스’, <에비타> ‘에바 페론’, <시카고> ‘록시 하트’…. 그런 배해선이 최근 대학로 인근의 한 카페에서 기자를 만나 “지구를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배해선은 최근 SBS 드라마 <용팔이>에 출연했다. 20년 동안 연극과 뮤지컬만 해온 그에겐 나름 첫 외출이었던 셈인데, 시청자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시청률 20%를 넘기며 간만에 방송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용팔이>에서 그가 맡은 배역 ‘황 간호사’ 때문이다. 극중 황 간호사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 한여진(김태희)을 마치 자신이 어릴 적 갖고 놀던 인형처럼 아끼는 인물이다. 배해선은 황 간호사의 어긋난 집착을 연기했다.
 “방송 나가기 전까지 정말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어요. ‘황간’이 이렇게 이슈가 될 줄도 몰랐고 그냥 조용히 묻힐 줄 알았어요. 엄마한테만 방송 첫날 ‘SBS에 제가 나올 수 있으니 놀라지 말라’고 귀띔했죠. 나중에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는데 되게 쑥스럽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좋은 평가보다 그걸 많은 분들이 봤다는 게 부끄러울 뿐이었어요.”
 8회까지 간혹 등장하는 조연이었지만, 파급은 컸다. 황 간호사가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한여진에게 곱게 화장을 해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아무도 모르게 한여진을 제거하려했던 주변 사람들에게 “감히 내 아기를!”하며 분노하는 장면들이 인터넷에 퍼져나가 화제가 됐다. 화장실에서 손에 휴지를 감으며 히스테리를 부리는 다소 우스운 장면도 돌아다닌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인터넷을 많이 하지 않아 직접 보진 못했단다.
 “요즘 그런 걸 ‘짤’이라고 한다면서요? ‘실물보다 안 예쁘다, 나이들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전 너무 기분 좋았어요. ‘황간’처럼 내면이 욕망으로 꽉 찬 사람은 표정, 헤어스타일, 화장도 모두 세련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분은 ‘못 생겨서 생긴대로 논다’고 댓글을 달았는데, 악플같지 않고 오히려 좋았어요. 그렇게 욕들을 하시다가 8회에서 ‘황간’이 막상 죽으니까 아직 죽을 캐릭터가 아니라며 싫어하시더라고요. (웃음) 전 연기할 때 오로지 여진이만 생각했어요.”
 연극·뮤지컬과 드라마·영화를 넘나드는 배우가 셀 수도 없이 많은 요즘, 배해선의 첫 대중매체 등장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그 동안 공연 일정이 항상 빠듯했기 때문에 제의를 번번이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극장들이 어쩔 수 없이 휴업을 하면서 비로소 여유가 생겼다. 그때 그를 찾아온 작품이 <용팔이>.
 “드라마는 처음이니까 물론 많이 망설였어요. 촬영장에 아는 사람도 없어서 외롭거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데 날 빼놓고 가면 어쩌지’란 걱정도 할 정도였죠. 그런데 그런 캐릭터와 연기를 반가워해주고, 신선하게 받아들여주시는 것 같아요. 너무 신나고 재밌었죠.”
 황 간호사가 죽고, 요즘 배해선은 다시 공연 무대로 돌아왔다. 10일 개봉하는 연극 <타바스코> 막바지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소극장에서 배우 4명이 연기하는데, 소품·의상까지 배우들이 마련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단다. 배해선은 “아직은 ‘시청자’보다 ‘관객’이란 단어가 더 익숙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공연 배우 배해선을 TV에서 또 볼 수 있을까.
 “장르를 뛰어넘을수록 배우에게 좋은 카드가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좋은 캐릭터와 작품이라면, 그 장르나 매체의 특성에 맞게 접근을 하는 경험이 신선한 자극이 되더라고요. 저에겐 다시 신인이 된 마음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다잡는 계기가 됐어요. 당연히 아직은 서툴 수밖에 없지만, 막상 해보니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도 점점 편해질 것 같아요.”

 

 

 

김기남 기자

 

 

아래는 11년전인 2004년 그가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기사를 쓴 기자가 도입부에

"한국 땅에서 가장 잘 나가는 뮤지컬 배우의 한 사람이 될" 이라고 썼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그는 실제 그렇게 됐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무대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며 아우성치고 있지요.

제가 그의 무대를 봤던 것도 <맘마미아>의 소피를 연기했을 때였습니다.

이후에 본토 뮤지컬을 몇차례 보기도 했으나

그의 소피는 전혀 빠지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2004년 1월 29일자입니다.

 

“바다를 앞에 두고 노래하는 기분입니다. 아니면 콜로세움(고대 로마의 거대 원형극장)에 선 오페라 배우라고 할까요.”
 
한국 땅에서 가장 잘 나가는 뮤지컬 배우의 한 사람이 될 배해선씨. 그가 생애 최초로 대극장 무대에 서고 있다. 그것도 세계 10대 규모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연일 기립박수를 받으며 4월18일까지 선다.
 
그는 6차례에 걸친 ‘지옥의 오디션’ 끝에 뮤지컬 ‘맘마 미아’에서 엄마 도나 역의 박해미씨와 더불어 쌍두마차 주인공인 딸 소피 역에 발탁된 신데렐라다. 학연·지연·명성을 지워버린 블라인드 면접 또는 히딩크식 선수 선발을 연상케하는 영국 원작팀의 오디션에서 그 차수가 변경될 때마다 앙상블→조역→주역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콜로세움’에 섰다. 동화 속 신데렐라는 자신이 신었던 유리구두에 꼭 맞는 발 크기 덕분에 왕자와 결혼했지만 이 신데렐라는 역할에 딱 맞는 이미지와 제작비 80억원에 값하는 실력으로 캐스팅됐다.
 
막이 오르면 그가 있고 그가 첫 노래를 부른다. 솔로곡 ‘I Have A Dream’. 세계 곳곳의 대도시에서 매일 밤 2만여명이 배우와 언어만 달리해서 보고 있는 ‘맘마 미아’의 한국 버전이 제대로 나올지 의구심을 품었던 관객들은 한국대표 소피의 첫 노래를 듣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굳이 런던 버전을 보지 않아도 밑질 게 없다는 안도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가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I Have A Dream’. 그리고 막이 내려온다.
 
그런데 무대가 콜로세움이고 객석이 바다라니. 처음으로 대극장에서 대작 뮤지컬의 주인공 역을 연기하는 감흥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뮤지컬의 극중 배경은 지중해의 조그만 섬. 무대는 온통 지중해 바닷빛이라는 ‘그랑 블루’(거대한 쪽빛)다. 청순하고 가녀린 이미지와는 달리 혼신의 연기와 서정적이면서도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컬트적 마니아’를 확보했던 그의 광적인 몰입에 따른 ‘착시’ 때문이라고 우겨보면 어떨까. 그는 그간 배역을 연기했다기보다는 살아왔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스스로를 “자학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만족과 결핍감의 간극. 그는 최선을 다해도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경지’에의 미달에 대해 끝없이 자책하는 영혼의 불치병 환자다. 불만족은 그의 성격이고, 그 성격이 그의 운명이며, 그 운명은 그를 괴롭힐지언정 관객을 즐겁게 할 터이다.
 
1998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뮤지컬 데뷔작인 ‘의형제’에서 전쟁 후 남편을 잃고 아이들을 키우는 50대 아줌마인 간난이 역을 맡았다. 그는 연습·공연 기간 내내 경기 분당 집과 극장을 오갈 때 몸뻬에 남루한 셔츠를 입었다. 머리엔 수건을 뒤집어썼다. 거기에 소품을 넣은 고무대야까지 들고, 이고 다녔다. 개 눈에는 ‘거시기’만 보이듯 할머니·아줌마만 보았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생각과 말과 행위를 50대 아주머니처럼 했다.
 
‘맘마 미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줍음 타는 내향적 성격인 듯한데 소녀적 모험심으로 뒷감당 못할 일을 저지른 스무살 처녀 역을 맡아서인지 히죽히죽 웃고 깔깔거렸다. 덕분에 그는 관객에게 시선을 꽂는 ‘논두렁 연기’를 한 차례도 하지 않으면서도 정극(正劇)의 밀도에 육박하는 이번 뮤지컬이 소피 배역에게 요구한 섬세한 연기, 복합적인 감정의 표현을 4층짜리 1,500석 객석에 꽂아넣고 있다.
 
그는 관객에게 등을 보인 채 극중 등장인물들과의 ‘관계’에만 몰두하는 ‘불친절한 연기’를 했지만 그의 호흡과 뒷모습을 통해 소피의 감정과 표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연기·노래 실력은 연극동네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는 대사를 노래같이, 노래를 말같이 해낸다. ‘택시 드리벌’ ‘한여름밤의 꿈’ 등 정극을 통해 연기를 배웠다. ‘지하철 1호선’의 선녀, ‘의형제’의 간난이로 뮤지컬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알렸다. 이어 ‘페임’ 등 굵직굵직한 뮤지컬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2002년 말 ‘토요일밤의 열기’ 연습 도중 오른쪽 발목 인대가 늘어나 뮤지컬 배우 인생이 끝나는가 했는데 “의지로 부상을 빨리 극복했다”.
 
그는 “가까워지면 멀어진다”고 했다. 벽을 친구 삼아 대사를 연습하고 춤출 때 몸이 가벼워지라고 평소 양발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연습벌레이지만 “뭔가 하나 깨달았다고 느끼는 순간 어떤 한계나 벽이 또다시 저만치 가 있다”는 고백이다. “그 갈증이 도무지 멈추지 않는다”고도 했다.
 
배씨의 가족에게는 결례이지만 그는 가족의 도움 없이 혼자 컸다. 소녀시절 서울 신촌 부근 노고산동 최고의 노래꾼이자 춤꾼이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은 한번 들으면 따라부를 수 있는 음감을 타고났다. 한 TV 방송국 드라마PD가 그를 탤런트로 캐스팅하려 했다. 이를 전한 그의 엄마는 남편으로부터 소박맞을 뻔했다. 서울예대에도 가족 몰래 합격했다. “배호 아저씨보다 노래를 잘 한다”는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끼와 재능을 물려주었으면서도 왜 배우의 길을 ‘결사반대’할까.
 
그의 아버지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하다. ‘딴따라’에 대해 전근대적 비하의 시선을 보내는 엄숙주의자는 아니고 어쩌면 ‘소싯적’에 대중문화계에 몸과 영혼을 저당잡힌 힘든 세월을 보낸 분일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그런 아버지가 회심(回心)했다. 배씨는 어머니로부터 “서쪽에서 해뜰 일이 생길 것”이란 귀띔을 들었다. 아버지가 극장에 오신다는 뜻이었다.

배씨는 오늘도 “‘I Have A Dream’이 생각만큼 안 나와요”라며 자책할 것이다. 스태프와 일부 관객이 “배해선은 전세계 어떤 소피보다 잘 하는 소피다”라고 말해주었지만 그는 수긍하지 않을 태세다. 한 영국인 스태프가 그랬다. “전세계에서 배해선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배해선 자신뿐이다”라고. 배씨는 늘 스스로를 의심하고 노력으로 벌충하면서 노고산동에서 지중해까지 왔다.

 

박재찬기자


 

배역에 빠지면 앞도 뒤도 안돌아보고 물도 불도 가리지 않는 건 데뷔 이후 계속된 그의 성격인가 봅니다. ^^

돌아가지도, 재지도 않고 그저 모든 것을 던지는 그의 열정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