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세대. 그들을 강한 결속력으로 묶어주는 화두가 최근 등장했습니다.
바로 ‘김영만’, 일명 ‘종이접기 아저씨’로도 알려져 있는 분이시죠.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이신 이 분은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KBS <TV유치원 하나 둘 셋> 등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유치원생이던 어린이 친구들을 대상으로
종이접기를 하며 꿈과 희망을 키워줬습니다.
40대 이상이나 20대 이하에겐 생소할 수 있으나 19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현재의 2030세대에겐 동심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인물인 셈입니다.
얼마전 이 분이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뒤
실시간 검색어를 비롯해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와 각종 게시판은
이분에 대한 이야기로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방송화면 캡처입니다.
방송 당시 서버가 다운될 정도의 폭발적인 접속이 이어졌고
방송이 끝난 뒤에도 일주일 내내 ‘김영만 아저씨’는 뜨거운 화제가 됐습니다.
인터넷이나 SNS 사용에 익숙한 2030 세대에게 그는
지나버린 유년의 그 순간들을 눈앞에 형상화시켜줬고
이를 공유하는 이들을 강한 유대감으로 묶어줬습니다.
실제로 방송 창에 접속해 소통했던 많은 시청자들에게
그는 단순히 반가운 존재가 아닙니다.
향수와 추억을 자극하며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방송에 나타난 채팅창에는 눈물이 난다는 메시지가 넘쳐났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코딱지’라는 표현에서 추억을 공유하는 시청자들은 더 무너졌습니다.
코딱지는 그가 예전 방송에서 어린 친구들을 불렀던 말입니다.
“저를 잊지 않고 반겨준 우리 코딱지들” “우리 친구들 코딱지만했는데 이렇게 커가지고....”.
어엿한 성인이 되고 가장이 된 어른들이 그
때의 김영만 아저씨 앞에서 코딱지 시절로 돌아가고, 아
저씨가 불러주는 코딱지라는 이름 앞에서 떨리는 가슴으로 아릿한 추억을 꺼내봅니다.
방송에 나타난 아저씨의 얼굴에도 감격스러운 표정이 가득합니다.
코딱지만큼 작았던 어린 친구가 자라서 장가는 갔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종
이접기가 어려우면 엄마한테 도움을 요청해보라고도 합니다.
여전히 아저씨에겐 꼬꼬마 코딱지들과의 즐거운 수업입니다.
김영만 아저씨를 바라보는 2030 세대의 마음은 영화 <국제시장>을 만난 장년세대,
예능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통해 3040세대 등
각각의 세대가 느끼는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른바 2030세대의 복고인 셈이지요.
김영만 아저씨를 통해 유년기를 회고하는 것입니다.
사실 복고 바람은 영화 <건축학개론>이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등으로 촉발되며
몇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대를 달리해, 장르별로 각각의 분야에서 다양한 복고 콘텐츠가 생산돼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복고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50대 이상 세대가 청춘을 추억하는 정도로 생각됐습니다.
1970~80년대의 대중음악 등이 복고 콘텐츠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었지요.
그러다가 <건축학개론> 등에서부터는 복고의 소비층이 30, 40대로 내려옵니다.
이들이 청소년기나 대학시절을 보냈던 90년대는 대중문화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시기이고,
이 시절을 누렸던 3040 세대는 현재 대중문화의 주도적인 생산자가 돼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김영만 아저씨로 상징되는 2030의 복고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복고를 누릴만한 나이라기엔 이를 뿐 아니라,
이들이 추억하는 것은 세상물정 모르고 순수함 그 자체이던 유년의 그 시절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자신의 문화로 공유하는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제 생각엔 이 세대를 둘러싼 현실의 문제와 이들이 느끼는 상실감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뜨겁게 달려가고 미래를 생각하는 열정만으로 타올라야 하는 이들이 왜
유년기를 돌아보며 그 추억에 잠기고 눈물을 흘리며 위안을 얻는걸까요.
일반적으로 복고 문화가 부상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가 암담한 상황에서 위로의 대상을 찾으려는 욕구가 강할 때 입니다.
혹은 일가를 이루고 난 뒤 과거를 추억하는 정도의 문화로 누릴만한 대상일 수 있지만
이들의 복고에는 모질고 신산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좌절과 절망이 스며있는 것 같습니다.
김영만 아저씨 말처럼 코딱지만했던 시절을 벗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가정을 이룰 나이가 되었음에도,
밝고 빛나는 꿈의 주인이 되어 있을 것으로 그리며 자랐던 미래는 전혀 다른 현실이 되어 ‘코딱지’들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취직도 어렵고 독립도 어렵고 가장이 되는 것도 두렵습니다. 제
한 몸 건사하고 살아가는 것도 팍팍하고 고됩니다.
위로받을 곳도 없고 해답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누구에게 이 어려움을 털어놓고 이해받고 위로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88세대니 삼포 혹은 오포세대니 하며 지칭되고 있는, 어른이 됐지만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
이들에게 철없고 마냥 까불어도 괜찮았던, 종이접기가 잘 되지 않아도 문제없었던 그 때의 아저씨가 찾아왔습니다.
아저씨는 여전히 “괜찮다” “잘 한다” “할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기성세대가 인스턴트 상품처럼 건네는 영혼없는 격려가 아니라
추위에 떨며 잠든 성냥팔이 소녀의 꿈에 나타난 할머니의 따뜻하고 포근한 품같은 위로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저씨와의 만남은 반가움의 크기만큼 서글픔도 느껴집니다.
능숙한 솜씨로 열심히 종이를 접으며 아저씨는 말합니다.
“여러분 이제 다 컸으니까 잘 할 수 있죠?”.
그 순간 채팅창에 떠오르던 수많은 ‘오열’ 이모티콘을 보셨는지요. 저 역시 ㅠㅠ...
다 자란 그때의 ‘코딱지’들.
이들이 웃으며 “이제 다 커서 잘 하고 있다”고 와글와글 채팅창을 채우는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이글은 SK이노베이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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