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요계는 근 십수년간 가장 힘든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세월호 참사로 가수들의 앨범 발매나 페스티벌 등이 취소되고 연기됐습니다.
음악방송도 한참을 쉬어야 했고요.
평시같았으면 탄력을 받았을법한 많은 프로젝트들 역시
속절없이 사그라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게 어디 가요계 뿐인가요. 문화계 전반에 걸쳐 이 영향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어쨌든 그런 중에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곡들은 꾸준히 있었습니다.
통합가요순위 차트인 가온차트를 살펴보니
3주간 1등을 했던 곡은 한곡도 없었습니다.
물론 음악이 단기 소모상품이 된 거야 어제 오늘 일은 아니겠지만요...
그래서 1위 자체에 그리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상위권에 꾸준히 머무르면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던 곡은
두드러지게 있었으니까요.
그럼 올 상반기의 가수와 노래를 꼽아 볼까요.
가온 차트 성적을 기본으로 제 맘대로 정했습니다.
1. 정기고 & 소유 <썸>
올 상반기를 대표하는 노래이자, 노래 제목 '썸'은 상반기 대중문화 코드를 꿰는 키워드였습니다.
친숙하게 잘 섞인 멜로디, 공감 팍팍 되는 가사, 감각적인 목소리와 연출, 젊은 층을 휘감은 감성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대박을 낸 경우입니다.
3달 가까이 차트 상위권을 지켰고 지금도 20위권에 머물 정도로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노래입니다.
이 곡을 통해 인디신에서 활동하던 정기고는 일약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고
시스타에서도 가장 주목을 덜 받았던 소유의 매력이 부각됐습니다,
2. 걸스데이 <섬씽>
3. 에이핑크 <미스터 츄>
아이돌 걸그룹 지형도에서 이 두그룹의 위치는 어정쩡한 편이었습니다.
굳이 따지면 작년까지만 해도 에이핑크가 인지도나 팬덤 면에서 좀 더 앞서 있고
'군통령'이라 불리기는 했지만 걸스데이눈 그에 좀 못 미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 차이가 있다해도 이 두 걸그룹을 소위 '1군'으로 분류하기에는
망설어지는 편이었죠.
그런데 이 두 그룹은 이 곡을 통해 명실상부 1군의 자리로 올라섰습니다.
걸스데이의 변신과 도약은 더 드라마틱했습니다.
4. 악동뮤지션 <200%>
지난해 오디션 프로그램이 낳았던 최대의 수확 아니었을까 싶네요.
이 아이들이 선보이는 청정 컨텐츠는
음악이 어떤 역할까지 할 수 있는지, 음악의 힘이 얼마나 큰지
느끼게 해줬습니다.
실제로도 이 친구들과 30분 남짓 이야기했을 뿐인데
맑은 숲속에서 삼림욕을 하고 나온 듯한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에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5. 아이유
노래 잘하는 여자가수들 많이 있죠.
20대 초반의 그 또래 중에서 효린, 에일리 등 폭발적인 성량의 가수들과 비교할 때
아이유는 좀 더 다른 기준으로 놓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내놓은 리메이크 앨범에서
아이유는 이런 가수였나 싶을 만큼
성숙하고 깊이 있는 내공을 보여줘서 정말 놀랐습니다.
언뜻 목소리 들었을 때
이게 아이유냐고 되물으며 음반 재킷을 뒤적여볼 정도였으니까요.
드라마틱한 감성을 담아내는 보컬이라거나, 감정 표현을 잘 한다고 하는 설명으로
아이유를 표현하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을 통해
그는 뭔가를 표현하려 애쓰는게 아니라
노래가 가진 감성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빠져들었구나,
음악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공감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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