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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토크

김현정 PD와 나눈 대화

by 신사임당 2014. 5. 2.

김현정의 뉴스쇼를 진행하는 CBS 김현정 PD를 만난 것은 지난 29일 목동 CBS사옥입니다. 

1시간 반가량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래에는 함께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풀 텍스트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사소한 내용이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을 제외하고  기사에 싣지 못했던, 그분의 생각과 이야기들을 함께 올립니다. 


 


 





-요새는 특히 힘드실 것 같아요.

“심정적으로 많이 힘들어요. 제가 직접 현장에 가서 보고 만나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힘들어요. 마음 같아서는 달려가고 싶죠. 현장에서 방송하고 싶은데 기술적으로, 현실적으로 현장 생방송에 한계가 많이 있어요. 그런게 좀 많이 안타깝죠. 라디오의 한계일 수도 있고요. 뭔가 이슈가 터지면 그 현장에서 방송하는 것이 가장 좋은건데.”


-인터뷰이 선정은 언제 이뤄지나요. 방송이라면 보통 일찌감치 정해놓고 준비하게 마련인데 워낙 급박하 사안이 많으니까요. 

“오늘 인터뷰한 유가족 대표도 어제 밤 10시에 확답을 주셨어요. 혹시나 해서 낮에 예비용으로 잡아놓지만 이튿날 새벽 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 밤이나 새벽중에도 판이 갈리는 경우가 많아요.”


-보통 시사프로그램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월요일 나갈 것은 금요일날 다 끝내놓고 주말 보내는 경우도 있고. 

“다른 프로보다는 치열한 편인 것 같아요. 그게 다른 점이자 우리의 경쟁력이기도 하고요. 작은 차이인 것 같은데 그게 모이고 모이면 듣는 분들이 좀 다르구나 하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새벽에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 많이 치열해요.”


-최근 몇년새 듣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어요. 진보적인 시각을 담은 몇 안되는 방송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우리 방송은 진보다 보수다 이런 기치를 건게 아니라 당사자주의예요. 그 사건, 특정 이슈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을 통해 팩트를 전달하자는 거죠. 거기에 우리의 평을 싣거나 우리 생각을 가르치려 하지 말자는 거예요. 청취자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그분들을 가르칠 수 있겠어요. 팩트를 들려주면 되는거거든요. 가장 최전선에 있는 당사자의 입을 통해 들려주고 그게 애초 목표였고 지금도 목표예요. 물론 항상 1순위의 당사자를 섭외하는건 못하죠. 1, 2, 3, 4 순위를 정해놓고 상황에 따라 당사자의 순위가 내려오기도 하는데 어쨌든 좌니 우니 진보니 보수가 아니라 팩트를 들려준다는 거예요. 그리고 청취자들에게 상황을 판단하시라고 합니다.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지금부터 찬반을 듣습니다, 여러분이 판단하십시오 입니다. 비판하면서 듣는 분도 많아요. 팩트에 기본을 둔 것, 그게 대중적 확장성을 가는다고 생각해요. 소통하고 진실을 추구해야지 한쪽을 배척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최근 2년 사이에 청취율이 급격히 늘어났어요. 방송이 시작된 것은 2008년부터이고. 

“거대 공중파에 비해 채널의 힘은 약한편이죠. 특히 텔레비전은 돌려가면서 보지만 라디오는 매체 특성상 한 곳을 고정하면 습관을 바꾸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그래서 청취자를 끌어오는게 쉽지는 않았죠. 몇년 걸린건데 그게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서 폭발한 것 같아요. 제가 느끼거든요. 피부로. 확 늘어났어요. 청취자들의 문자도 훨씬 늘어났고 주변의 반응에서도 많이 느껴요. 


-청취율이 수치로 지금보다 덜 할 때도 시사프로그램 쪽에서는 존재감이 있었어요. 뉴스나 인터넷을 통해 유통, 전달되는 것도 활발했고. 

“우리 프로 자랑같지만 이슈면에서는 이전부터 이니셔티브를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 1, 2년 사이에 청취율로 연결된 것 같고. 작은 매체로 그동안 했던 노력들을 이제 많이 알아주면서 성과가 보이는 것 같아요.”


-진행하면서 연출하시잖아요. 진행만하는 경우와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나요. 

“물리적으로 힘들어요. 방송에 나와 한두시간 그냥 말하는 것 같은데 온 신경이 곤두서서 엄청 집중해야 하거든요. 인터뷰할 때는 인터뷰이와의 기싸움도 있죠.  짧은 7, 8분 안에 뭔가 끌어내야 하다 보니 초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죠. 그래서 끝나고 쉬어야 하는데 바로 포털 전송, 팟캐스트 관리, 회의, 계속되는 섭외 등을 밤 8, 9시까지 계속 해야해요. 그리고 집에 가서 애 보고 숙제 봐주고 이러다가 4시에 일어나고. 1주일이 한덩어리로 붙어가요. 그래서 얼마전에 일반적인 진행자처럼 방송 끝나고 정리한 뒤 낮 12시쯤에 퇴근을 해봤어요. 그런데 제가 확실히 느끼겠더라고요. 하루 종일 작가와 같이 부대끼고 회의하고 몰입하면서 진행하는 것과 진행만 하는 것은 천지차이더라고요. 내가 내용을 장악하고 진행하는 것과 작가나 피디가 써 준 것을 보고 진행하는 것은 정말 달라요. 2주간 일찍 퇴근해 보다가 도로 원래대로 돌아갔죠.”


-6년을 계속 그렇게 하신거네요. 

“2008년 5월에 시작해서 중간에 육아휴직 1년 한 건 빼고 죽 그렇게 한거죠.”


-슈퍼맘이시네요. 누가 도와주시나요. 

“친정엄마가 봐주세요. 큰 애가 9살, 작은 애가 5살인데 매일 밤 9, 10시에 퇴근하는 상황에서 친정 엄마 아니면 못 맡기죠. 저는 거의 방치수준이에요. 숙제 봐준다지만 그냥 알아서 하게 하고. 제가 입덧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두 아이 모두 입덧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했어요. 하루 종일 구역질하면서 방송했거든요. ”


-목소리만 들으면 완전 똑부러지고 대가 세고 그래 보인다고 이야기하는 분들 많으시죠? 워낙 질문을 핵심적으로, 또 집요하게 하시니까. 

“저 감수성 진짜 많고요 휴머니스트예요.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 완전 허허실실 스타일이거든요. 저도 제가 이런 시사 프로그램을 오래 하고 있다는게 놀라워요. 원래도 음악피디 하고 싶어서 들어왔고 음악프로그램 만들었거든요. 제가 이렇게 풀릴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시사는 왠지 냉철한 이성만으로 진행해야 할 것 같잖아요.”


-똑 부러지는 느낌도 있지만 굉장히 푸근하고 인간적인 분위기도 묻어나거든요. 전 그런 부분이 더 신뢰감이 생겨서 좋던데요.

“제가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 제 스타일대로 하고 있는 거죠. 원래는 시사 프로그램 오래 하신 분들처럼 냉철한 느낌으로 해보려고 했는데 라디오는 거짓말을 못해요. 인성이 드러나거든요. 그러니 내것을 굳이 숨기면서 갈 필요 없다, 내 스타일대로 해보자 하고 하는거죠. 그래서 제 질문도 그래요. 잘난척 할 필요도 없고 아는 척 할 필요도 없이 그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사람들 눈 높이에서 물어보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그렇게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선지 전 특히 이웃들 인터뷰에 강점이 있는 것 같아요. ”


-나름 질문의 원칙을 갖고 계실 것 같은데요. 

“가장 쉬운말로 하자는거예요. 어려운 용어를 쓰지 않아요. 내가 궁금한 것, 본능적으로 궁금한 것을 돌아가지 말고 돌직구로 하자는 거죠. 쉬운말로, 본능적으로, 직접적으로. 내가 궁금하면 사람들도 궁금할거야. 난 평범한 사람이니까.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다행히 사람들이 자신의 궁금증과 일치했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같은 때는 생방송 인터뷰 듣는 사람도 눈물이 나는데 직접 대면하면서 감정조절하기 힘들 것 같아요.

“이전에도 유가족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유족이 당사자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울죠. 소리 안나게 울고. 그런데 이번엔 울음이 터지면 주체가 안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방송 전에 마인드 컨트를 엄청 나게 하고 방송 하면서도 몸을 꼬집어요. 터질까봐. 이번엔 2주째 이런 소식을 이어가야 하니 정말 힘들어요. ”


-가장 기억나는 인터뷰가 뭐냐는 질문은 무지하게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좀 달리 표현해 볼게요. <김현정의 뉴스쇼>의 정체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줬던 인터뷰 사례가 있겠죠. 

“그런 질문 받을 때마다 망설이지 않고 이야기하는 한가지가 있어요. 2011년 훈련병이 훈련소에서 두통을 호소했는데 제대로 진료도 못받고 타이레놀 2알인가 처방받고 방치됐다가 급성 뇌수막염으로 사망한 일이 있었죠. 그렇고 그런, 자주 등장하는 군 의료사고 중의 하나라고 볼 수 도 있고 또 전문가나 시만단체 관계자 연결해 그저 그렇게 다룰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보자고 했죠. 머리로만 지적했다가는 사람들이 안 바뀌니까요. 그때까지 사망한 훈련병의 유족들의 목소리가 방송에 나오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그 훈련병의 아버지에게 연락을 해보자고 했죠. 욕먹을 각오하고요. 아버지께선 다 싫다고 하셨어요. 그런다고 우리 아들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나서느냐고. 그런데 아버지께 기다리겠다고 말씀 드렸어요. 하실 말씀이 생길 때 연락을 주십사 하고. 그리고 나서 며칠을 있다가 아버지께서 승낙하셨어요. 그리고는 담담하게 그날의 일을 풀어가세요. ‘아들을 만나러 갔는데 의식없이 호흡기를 끼고 있더라, 감은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고. 내가 손을 잡아주니 아들이 내 손을 꽉 잡더라. 나는 분명히 느꼈다. 아들의 입이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을.’ 담담하게 말씀하시는데 저 울고 스튜디오 밖에서 엔지니어, 피디, 작가 다 울고 수백개의 문자가 들어왔어요. 운전하다 눈물이 너무 나서 차를 세웠다면서요. 포털에 송고했더니 댓글이 수천개가 달렸고요. 그리고 며칠 뒤 군 의료시스템을 전면 검토하겠다는 당국의 발표가 나왔어요. 그리고 나서 아버지게서 저희에게 연락을 주셨어요. 고맙다고, 나를 설득해줘서, 그리고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내 아들이 이제는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아버지 역시 우리가 마이크를 드리지 않았다면 소외됐을 소시민인거죠. 

 그리도 그 뒤에 군에서 비슷하게 자식을 잃은 또 다른 아버지가 연락을 해 오셨어요. 용산 참사 당시에도 그랬고. 그게 바로 선한 영향력인것 같아요. 우리가 추구하는 당사자주의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야기해서 선한영향력을 끼치자는 거죠. ”


-시사프로 진행자로서의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본다면요. 

“부족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원체 똑똑한 분들은 30분만에도 상황을 다 파악하고 방송을 하시는데 전 하루종일 공부하고 자료봐야하거든요.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다보니 평범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질문할 줄 아는게 자산이라면 자산일 것 같아요.”


-프로그램 상복도 많아요. 이번에 pd대상을 받았고 이전에 한국방송대상에서 앵커상, 작품상도 다 받으셨잖아요.

 “사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다른 프로그램으로 바꾸고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옮겨야지 하고 마음을 먹을 때마다 상을 받아요. 상 받아놓고 양심이 있지, 어떻게 옮겨... 하고 말이죠. 상이 발목을 잡는거죠(웃음)”


 -문자 보내거나 전화하는 분 말고 열성적으로 애정을 드러내는 청취자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번에 어떤 노신사분이 이야기하고 싶다며 오셨는데 그전에 선박사고를 조사하는 일을 하셨대요. 그런데 이번 사고를 보면서 매일 우셨대요. 내가 예전에 사고를 조사하면서 제대로 해놓지 못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다는 죄책감에 매일 눈물을 흘리신거죠. 그러면서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데 여기서는 들어줄 것 같다면서 오셨어요. 청취자들의 제보전화도, 직접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TV처럼 영향력이 큰 데도 아닌데 우리 프로그램이 믿음직스럽다고 이야기하고 싶으시다는 분들이 많아요. 제 초상화 그려서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홈페이지 화면에 사진 보고 그려주시는 분들이죠. 한번은 돈 10만원을 보내 주시면서 우리 팀에게 밥 한끼 사주고 싶으니 보태라는 분도 있었죠. 그런 감동적인 반응 보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고 그게 우리들에게 큰 격려가 되고 보람이 되고 힘이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통위에선 균형, 공정 운운하며 잣대를 들이댔어요. 김PD께서 생각하시는 방송의 균형과 공정은 뭔가요.

“박창신 신부 인터뷰때 논란이 됐죠. 변함없이 우리 프로그램은 당사자주의였고 당시에도 당사자주의에 입각해서 그 분을 섭외했어요. 이슈가 되지 않고 사람들이 궁금해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부르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분이 미사에서 한 이야기만 갖고 잘라서 논란이 되는데 그 미사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그분의 이야기를 통해 듣지 않고서는 아무도 진의를 알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결국 그 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거고. 월요일 아침 새벽에도 전화해서 부탁드렸고 결국 이 분이 마음을 열어 주셨어요. 그리고 이분의 인터뷰 뒤 새누리당의 반론과 민주당의 입장도 다 방송했죠. 공정성을 지킨거죠. 공정하지 않으려면 신부님 인터뷰만 했겠죠. 우린 소신이 확실해요. 당사자주의. 신부님 인터뷰를 하고 새누리당, 민주당 의견을 다 전한뒤 사람들이 판단하게 여건을 마련해주는 거죠.  그게 공정과 균형이라고 생각해요. 청취자들은 날카로우시거든요.”

 

-음악프로그램으로 나중에 돌아가고 싶으세요. 

 “다시 하고 싶은 생각 많아요. 돌아가겠다는 꿈도 갖고 있어요. 여건이 된다면. ”


-어떤 음악프로 만들고 싶으세요. 

 “공감할 수 있는 음악프로그램요. 사치스럽지 않고 사람들과 음악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 음악으로 나누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아, 사실 시사프로그램 하면서 저 피폐해지고 폭삭 늙었어요. 저도 그렇고 친정 어머니도 폭삭 늙으시고.”


-막상 안하면 무지하게 생각나실 것 같은데. 사실 예전 육아휴직 기간에 다른 라디오 방송 들으면서 답답해하고 그러셨을 것 같은데요. 왜 질문을 저렇게 하지... 이러면서.

 “굉장히 좋은 인터뷰이가 나올 때 있잖아요. 그럴 때 저렇게 좋은 사람 불러다 놓고 왜 저렇게 밖에 못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은 있죠. 직업병인거죠”(웃음)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나타나시죠? 가족과 대화할때도.

“저도 모르게 그래요. 매일 질문하고 알맹이를 캐내려다보니 누군가 나에게 질문할 때도 뭔가 알맹이를 드려야 할 것 같고. 나도 모르게 캐묻게 되고. 시어머니랑 전화하는데 남편말이 인터뷰하는 것 같다고해서 화들짝 놀란 적도 있어요.”

-원래 시댁이나 가족, 친한사람들끼리 의사소통의 사소한 오해에서 문제가 커지는게 많은데 그럴 일은 없으시겠어요. 



-세월호 관련자 인터뷰는 이 사태가 마무리될때까지 계속 되겠죠. 

“마지막 한사람이 나올 때까지 계속 되어야죠. 얼마전에 유족분을 인터뷰했는데 아이의 시신을 찾아 수습한 뒤 다시 진도로 내려가셨어요. 그분 말씀이 제일 두려운 것이 잊혀지는 거라고, 이게 제일 무섭다고요. 힘없는 부모들인데 국민 관심마저 멀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하세요. 그 분 말씀을 듣고 트윗에 썼어요. 

지켜보기 캠페인을 하자고요. 함께 지켜보기 캠페인 하자고 썼어요. 마지막 까지 어떻게 나오는지 보상 어떻게 받는지 대안이 어떻게 마련되는지 지켜보자 썼는데 2600회 이상 리트윗이 되면서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네요. 저희가 그 어머님께 걱정마시라고, 마지막까지 이 끈을 갖고 가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정말 해도 해도 이런 참담한 사건은 없었어요. 

“이번 세월호가 슬픔 이상의 뭔가가 있는게, 죽은 아이들이 질서 지키고 상식 따르고 룰을 지키고 그러다가 죽은거잖아요. 선장은 룰 지키지 않고 약삭빠르게 살아남았고요. 그게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것 같아요. 사회의 축소판이 세월호 통해 나타난 것 그게 무기력감의 원인이 아닐까싶어요. 단순히 애들 죽어서 슬픔만있는 것이 아니라. 우직한 사람들은 항상 패자가 되어야 하는 그 단면을 딱 보여준거예요. 그래서 우리 프로그램은 그 우직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줘야죠. 소외된 사람에게 마이크를 줘야 한다는 것. 우리의 마이크가 필요한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요. 이야기하고 싶은데 마이크가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조차 모르는 사람들. 그들에게 두드려요. 언젠가 마이크가 필요하실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그 마이크가 되어 드리겠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