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막 응답하라 1994 본방 사수 마쳤습니다.
등장하는 배우들이 어쩜 그리 하나같이 연기파 배우들인지...
아놔... 저 드라마 100회까지 했으면 좋것네요...
드라마 보면서 저의 집착병 또 작렬...
먼저 하숙집을 이끄는 푸근한 안주인, 나정이 엄마, 미모의 중년
이일화씨입니다.
중년이라기엔 너무 고운 얼굴...
흐미... 그렇습니다... 저보다 1살 많은 43세 밖에 안되셨네요.
나이에 비해 넘 노령의 배역을 맡으셨네요.
이일화씨는 예전에 1990년대 후반에 <출발 비디오여행>에서 MC를 봤었는데
그때의 빛나던 미모가 기억납니다.
2005년 드라마 <서동요>에 출연하던 당시의 인터뷰입니다.
그의 데뷔 시절부터 당시까지의 간략한 그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스타뉴스 2005년 7월9일
이일화(34)가 돌아왔다. 지난한 결혼 생활 때문에 대중 곁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던 그는 오는 9월 방영되는 SBS 드라마 ‘서동요’로 3년 만에 안방극장에 선다. 이일화는 지난 2002년 2월 종영된 SBS 드라마 ‘이브의 화원’ 이후 몇몇 단막극과 EBS 드라마 ‘엄마와 함께 쓰는 동화’에 출연했다. 그는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뒀건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또 겸손했다.
“예전에는 내 직업을 아주 쉽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이 일이 너무 소중하고 어떤 역이든 감사해요.”
이일화는 ‘서동요’에 주인공 무왕(조현재)의 어머니 연가모 역을 맡았다. ‘서동요’ 연출자 이병훈 PD가 예전 ‘허준’에 예진 아씨 역을 부탁했던 인연으로 출연하게 됐다. 그는 연가모가 왕의 눈에 띌 정도로 춤을 잘추는 궁녀 역이라 현재 대학 교수에게 사사하고 있다.
“오랜만에 미니 시리즈에 출연하는 터라 춤도 춤이지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라는 그는 “극 중에 왕과 베드신도 있어 무척 긴장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90년대 가장 인기있었던 여배우 중 한 명이지만 그는 “열심히 해서 박정수 선배님처럼 되는 게 목표”라고 막 입문한 신인배우처럼 수줍게 말했다.
이일화는 1991년 SBS 공채 2기 탤런트로 데뷔해 ‘한지붕 세가족’ ‘바람의 아들’ 등 인기드라마에 출연했다. 특히 MBC ‘출발! 비디오 여행’의 진행을 맡아 차분하고 상냥한 이미지로 뭇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가수 강인원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호주로의 긴 여행으로 대중 곁에서 차츰 멀어져갔다. 아픔이 채 가라앉지 않아서일까, 인터뷰 내내 밝았던 그는 힘들었던 과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잘못된 판단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다”고 입을 연 그는 “지나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세례를 받았다는 이일화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세우기 위해 시련을 준 것 같다”고도 했다.
올해 초 한성디지털대학교 미용예술과에 입학해 만학의 꿈을 키우고 있다는 그는 “(차분한) 이미지 때문에 비슷한 역만 제의가 온다”며 “악역 뿐만 아니라 코믹 연기도 자신있다”며 미소지었다. 그 미소에는 14년차 연기자이면서도 여전히 겸손하고 아름다운 이일화의 모습이 함축된 듯 했다.
1994년 출연작 <그리움엔 이유가 있다>
1996년 경향신문 자료사진입니다
1997년 사진입니다
요거이 1995년 사진으로....
2002년 드라마 <해바라기 가족>에서
서동요입니다
2008년 ocn 드라마 메디컬 기방 영화관
무슨 드라마인지 모르겠는데 발레하는 장면이네요.
엘지 쌍둥이 감독, 하숙집 아저씨, 걸쭉한 전라도사투리를 구사하는 코믹한 아저씨 성동일.
성동일씨를 처음 본 드라마는 1998년 <은실이>입니다.
데뷔한지 거의 10년만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 드라마였는데
이 작품에서 어찌나 코믹한 신 스틸러의 역할을 해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네요.
이 드라마로 이름을 알린 뒤 그는 KBS 주말드라마 <유정>에 재벌 2세로 출연했습니다.
박진희를 좋아하는 재벌 2세로 나와 말끝마다 'anyway'를 입버릇처럼 말하며
살짝 느끼한, 매너남으로 나왔는데... 반응은 그저 그랬던 것으로 기억이 나네요.
당시 이 드라마 출연진은 노주현, 이휘향, 박진희, 류진, 김찬우, 김윤진, 최지우, 성동일, 정준 등등이었습니다.
1999년 2월 2일 경향신문 기사입니다
몸에 안맞는 파란 바탕 흰 줄무늬 양복에 유독 눈에 띄는 빨간 양말을 신고 포마드 기름으로 머리를 한껏 넘긴 「똥멋쟁이」. 배꼽잡게 하는 질펀한 전라도 사투리와 「빨간 양말」로 기억되는 사내. 바로 SBS TV 월.화드라마 「은실이」의 성동일(30)이다.『 누님, 괴롭히는 놈들 있으면 지한테 연락허씨요. 지가 손봐줄것잉께』
60년대 중소도시 읍내 한복판 극장 언저리엔 꼭 이런 사람이 한둘 어슬렁거렸다. 「빨간 양말」 양정팔도 그런 사내. 큰 사고는 못치면서 항상 그만그만한 싸움에 끼여들고, 오라는데는 없어도 참견할 일은 많은 극장 기도 날건달. 짝사랑하는 길다방 마담 길례의 연인인 간판쟁이를 질투해 극장간판에 페인트를 끼얹고 「관첩신고는 릴릴삼」이라고 극장벽에 써붙이는 어리숙한 이 인물이 드라마의 인기몰이에 가장 큰 역할을 할줄은 작가도, PD도, 성동일 자신도 몰랐다. 애초 드라마 대본엔 남자1로 기록되어 있다가 8회에 가서 양정팔이라는 이름을 얻은 그 덕분에 남자2, 3, 4로 출연하던 후배들도 춘식, 칠복 등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다.
『 성준기 PD가 재미있는 설정을 해보라고 해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대본에는 모두 서울말로 되어있었죠. 처음엔 이금림 작가께서 「대본대로 안했다」며 꾸중을 하시다가 나중엔 전라도 말로 대본을 써주셨죠』
세살때부터 3년간 전라남도 화순에서 지내긴 했지만 사투리가 기억날리는 만무했다. 부모님 고향도 경상도. 화순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로 「속성 사투리 과외」를 해야했다. 빨간 양말 역시 그의 아이디어. 500원을 주고 길거리에서 산 빨간 양말을 신고 한달 넘게 촬영을 하다 동대문에 가서 또 한켤레를 샀다.
『 아마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진짜 양정팔처럼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벌써 10년이 되었네요』
우연히 대학로에 갔다가 연극 「금관의 예수」에 출연하게 된 그가 첫 작품으로 5개월동안 받은 돈은 1만5천원. 부천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그는 전철비가 없어서 집에 갈 수 없었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친구집을 전전하며 「왕빈대」 노릇을 한 그는 자신의 공연때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으로 신세를 갚을 수밖에 없었다.
『 그때 입버릇처럼 친구들에게 「성공해서 너희들 배신하는게 소원이다」라고 농담을 했죠. 그러면 친구들은 「배신해도 좋으니 제발 그래달라」며 넌더리를 냈죠. 요즘은 「너 배신하면 안돼」하더라구요』
91년 SBS1기 탤런트 공채에 합격한 날을 그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비가오는 여의도 거리를 걸으며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효도하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믿었다.
『 웬걸요. 그때부터 더 끔찍한 고생이 시작되었어요. 아마 제게 다른 밥벌이가 있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겁니다』
공채1기 대신 타방송의 스타들이 주연자리를 꿰차고 들어왔고, 그에겐 남자3, 행인3과 같은 대사 한두마디짜리가 고작. 남자1은 그나마 가장 대사가 많은 단역이어서 고마웠을 정도였다. 어려웠던 살림살이에도 전혀 보탬을 주지 못했다. 95년엔 어머니 심장수술비를 대려고 코미디와 아침프로그램 리포터로 출연하기도 했다.
『 이름대신 「빨간 양말」로 불리우는 것이 아쉽기는 해도 절 알아보는 팬들이 있다는 것이 눈물나게 고맙죠』
하루 500원 용돈으로 서울과 인천을 오가던 어려웠던 옛 이야기를 하면서도 연신 반웃음을 짓는 성동일. 『 지금 소원은 농협CF 같은데 출연해서 장가갈 밑천 만드는 것』이라며 꼭 「빨간 양말」같은 이야기를 한다.
요거이 그때 신문입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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