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는 94학번 새내기의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작품을 연출하는 신원호PD도 94학번, 대본을 쓰는 이우정 작가도 94학번입니다.
KBS 남자의 자격으로 유명세를 얻은 그는 2011년에 CJ E&M으로 옮겼습니다.
그가 이적 후 냈던 첫 작품 <응답하라 1997>은 큰 인기를 얻으며 그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당시엔 스타급 연기자도 캐스팅 되지 않았던 상태라 그의 작업은 큰 모험이다시피 했었죠.
현장에서 촬영당시 만났던 그는 피곤에 쩔어 있던 모습이었습니다.
부암동 촬영장이었던걸로 기억나네요
밤 11시 30분에 힘들게 짬을 내 인터뷰에 응해줬던 신PD의 눈밑에서 시작된 다크서클은
거의 무릎까지 내려와 있었습니다.
당시 그와 촬영장 옆의 편의점에서 요구르트를 마시면서
심야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그전에 KBS에서 남자의 자격을 연출하던 당시에도, 또 KBS 기자, 피디들이 파업을 하던 현장에서도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응답하라 1997>당시 제가 신PD와 했던 인터뷰입니다.
경향신문 2012년 8월13일자임다..
호평을 받고 있는 드라마 tvN <응답하라 1997> 연출자 신원호 PD(37·위 사진)는
지난해까지 KBS에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을 만들었다.
‘남격합창단’ 신드롬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8월 CJ E&M으로 자리를 옮겼다.
“10년 넘게 예능만 한 ‘선수’가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말을 건네자 그는
“예능은 대사 한 줄 한 줄이 재미있고 장면마다 밀도가 높아 압축적인 재미를 살릴 수 있는 점이 특징”이라며
“드라마를 해본 경험은 없었지만 예능의 특징을 살린, 매회가 영화 같은 연작 드라마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소재와 표현 방식이 큰 호응과 공감을 얻고 있다. 어떻게 구상하게 됐는지.
“지난해 우연히 홍대 앞 ‘밤과 음악사이’라는 카페를 간 것이 계기였다. 음악이나 분위기가 딱 1990년대 스타일인데
그곳을 채우고 있는 20대들조차도 1990년대 노래를 ‘떼창’하며 ‘그땐 그랬지’라는 식으로 그 시절을 추억하더라.
처음엔 ‘어, 이것 봐라’ 싶었는데, 단편적 현상이 아니라 20, 30대를 관통하는 정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흔히 ‘복고’하면 1970, 80년대라는 특정 시대로 국한시키기 마련인데, 복고 그 자체도 진화하고 세월을 먹고 있구나 싶더라.”
-첫회에 등장한 “아빠의 복고는 쎄시봉이지만 우리 세대의 복고는 H.O.T”라는 대사는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재미있는 표현인 것 같다.
“우리 작가 중에도 소위 H.O.T ‘빠순이’(극성팬)가 있다.
그전까지는 그들이 ‘팬심’으로 공유하는 철학, 논리, 추억들을 웃어 넘겼는데,
막상 1990년대 콘셉트를 잡고보니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제대로 다뤘던 적도 없고.
그래서 ‘빠순이’의 이야기를 대표적인 코드로 삼아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보고 싶었다.”
-소품 고증이 상당히 꼼꼼하다.
“장판 DDR 같은 건 전국을 뒤져 찾느라 4개월이 걸렸다. 그래도 그런 건 괜찮다.
제일 힘든 건 문희준 사진 한 장을 두고서도 ‘그 사진은 1997년이 아니라 2000년 헤어스타일이다’라는 식의 지적들이
엄청나게 쏟아진다는 거다. 관심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건축학개론> 때문에 아차 싶었을 것 같다.
“지난해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내심 조급한 마음도 있었다. 까딱하다간 ‘1빠’(1등)를 놓칠 수 있겠다는.
개봉하고 작가들과 단체 관람 갔다가 거의 패닉상태에 빠졌다.
영화 카피부터 게스 짝퉁까지 준비하고 있던 거랑 거의 비슷해서 내내 욕하면서 봤다(웃음).
그래도 영화가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서 방향성에 대한 확신은 가졌다.
시청자들의 ‘기시감’이 가장 큰 걱정이었는데 다행이다.”
-신인들을 파격적으로 기용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처음엔 톱 배우를 쓰고 싶었지만 잘 안됐다. 그래서 점점 눈높이를 낮출지,
아니면 아예 등급조차 매겨지지 않은 신인을 쓸지 고민했다.
예능 하면서 김태원씨나 김C처럼 의외의 사람을 통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낸 적이 있기 때문에
후자를 밀고나가기로 했다. ‘PD가 미쳤어요’라는 말이 나올 만했지만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굳이 1997년인 이유는 뭔가.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코드를 갖고 있던 해다.
현재의 젊은이들은 절대 알 수 없던 호황의 절정기이자 그 거품이 터졌던 해이고,
문화적으로도 아이돌, 뉴미디어 등 새로운 형태가 생겨나는 격변의 시기였다.
게다가 현재의 모습과도 닮아 있는 부분이 많아 드라마적으로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 마음속에 남겨주고 싶은 건 뭔가.
“제목의 1997년이 갖는 의미가 꼭 그 해가 어떠했다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지 않나.
누구나의 마음속에 있는 ‘시절’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즉 내가 젊었던 시절, 행복했던 시절, 첫 사랑 하던 시절 등 각자의 ‘시절’을 생각하며
아련하고 짜릿한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1997년은.
“군대에 있었다. 게다가 여자친구가 고무신 거꾸로 신어서… 별로였다(웃음).”
서울대 화학공학과 94학번인 그는 <1박2일>로 유명세를 떨친 나영석 PD와 동기입니다.
나PD역시 연세대 행정학과 94학번입니다. 그래서 이번 <응4>에 94학번 신입생으로 카메오 출연하기도 했지요.
나영석PD역시 신PD가 cj로 이적한 뒤 같은 곳으로 옮겨 <꽃보다 할배>로 역시 대박을 냈습니다.
KBS 시절 현장에서 만났던 그 역시 항상 피곤과 격무에 쩔어 있는 모습이었죠.
예전에 나PD가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 중 기억나는게 있습니다.
동료나 선후배 PD들 부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남편이 오든지 돈이 오든지 둘 중 하나는 집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격무에 시달리고 가정을 돌보지 못한다는
PD라는 업의 특성을 설명해주는 농담섞인 하소연이겠죠.
그와 진지하게 인터뷰를 했던 것은
몇년전 김제동씨와 함께 했던 <김제동의 똑똑똑>이라는 코너를 통해서입니다.
수많은 무도빠들에게 천재로 칭송받고 있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역시 94학번입니다.
고려대 신방과 출신인 그는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를 안착시킨 주인공이기도 하지요.
아쉽게 그와 몇차례 전화통화, 문자는 주고 받았으나 진지한 인터뷰는 해본적이 없어
기사는 없습니다.
정말 어찌나 바쁘신지 요청하기가 엄두가 안날 지경입니다.
보통 인터뷰를 요청하면 언제까지 안된다는 식인데
제가 경악했던 것은
김PD께 인터뷰를 여러차례 요청했는데 도저히 시간을 내기가 힘든 상황이라며
자신의 촬영스케줄이 적힌, 정말 바늘 하나 꽂아 넣을 틈도 없어 보이는
주간 , 월간 스케줄 표를 촬영해
문자 첨부파일로 보내주기도 하셨답니당... ㅎㄷㄷ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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