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지난 4월부터 경향신문에서 연재하고 있는 시리즈는 '여성 일자리'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와 이에 동반되는 어려움과 개선책을 다뤘던 기사들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이번 시리즈는 산업화, 민주화 세대를 거쳤던 부모, 선배 세대가 아니라 90년대에 10대, 20대를 지내온 30, 40대 여성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느껴지네요)



산업화 시대를 겪어온 부모님 세대가 말하는, 소위 '바뀐' 세상을 살아온, 현재 30, 40대 여성들의 이야기지요. 저 역시 이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으로, 내 상황이기도하고 내 친구, 후배, 동료들의 상황이기도 합니다.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자는 시대에 태어나 여성의 교육이나 대학진학이 당연한 시대를 거치며 미래의 꿈을 설계해온 90년대 학번들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자라왔지만, 그 때 바라봤던 엄마의 삶으로 다시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사와 육아라는 중대한 과제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회의 미래를 일궈가는 그 중대한 과제는 여전히 여성들의 몫이라는 사회인식이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겠죠.

 


수많은 뛰어난 여성들이 이 문제 때문에 경력단절을 겪습니다. 혹여 사회생활을 이어간다해도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는 여성들은 불완전체 취급을 받기 십상입니다. 독신이나 자녀가 없어야 남자와 똑같은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증언이 아니더라도 많은 통계 숫자들은 그 현실을 설명해 줍니다.



부부가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가사와 육아는 아내의 몫입니다. 남편이 할 때는 '도와준다'는 표현을 쓰죠. 그건 가사와 육아가 여성의 몫이라는 전제에서 나오는 결론이기도 합니다.



학교나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하는 각종 행사나 각종 학부모 동원 프로그램들은 평일에 누군가가 항상 집에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교사도 대다수 맞벌이하는 엄마인 경우가 상당수인데 자신의 반 학생들의 엄마가 집에 있다는 것을 당연시 하는데서 오는 당혹감을 느낀 분들이 주위에 많지요. 물론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접고 전업맘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하는 말도 이 연장선상에 있는 일일테고요. 비정상적인 사교육 과열 경쟁도 결국 따지고 보면 고학력 여성들의 자아실현이 막히게 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고백하자면 저 역시 아이와 관련된 행사에 아빠들이 와서 열심을 내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고 부럽다는 생각보다는 "참 유난도 떤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이같은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가사와 육아는 여전히 아내의 몫이겠죠.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며 가슴을 치고 공감했던 것은 시리즈 첫 회에 나왔던 저랑 같은 91학번 여성들의 이야기때문입니다. 같은 시기에 대학에 들어가 18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각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가움과 그리움으로 읽기 시작했던 기사는 먹먹하고 '우리한' 아픔으로 여운을 남깁니다.



어찌보면 저는 무척 운이 좋은 편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자신을 접어야 하는 많은 여성들과 비교한다지금까지 단절없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해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바탕엔 친정엄마의 노고와 땀이 말못할 두께로 깔려 있고 덩달아 아버지, 여동생 등 제 가족들의 막대한 희생이 동반됐습니다. 누군가의 처절한 희생을  밟지 않고선 제 이름 석자 내놓을 수 있는 사회인으로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회사일과 가정일을 동반하면서 여전히 아침마다, 밤마다, 주말마다 갈등과 고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엄마랑, 기자 둘 중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며 얼마를 지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올초 읽었던 조주은씨의 <기획된 가족>이라는 책은 저같은, 맞벌이 여성들의 시간을 다룬 책입니다. 같은 시공간을 살고 있는 이들의 하루의 밀도를 두고 조주은씨는 '압축적 시간경험'이라고 명명하지요. 이 압축적 시간경험이 무엇인지는 책을 보면 곧바로 무릎을 치며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은 이 시리즈를 이끌고 있는 박용채 경제에디터가 썼습니다. 첫 부분에 언급된 2년차 여기자는 이 시리즈 기획 취재팀에 속해 있는, 에너지와 의욕으로 넘치는 팀의 막내입니다.



남녀평등을 넘어서 '알파걸'로 자라온 요즘 20대 여성들에게 기대와 꿈으로 발디딘 이 현실이 큰 회의와 고민을 던져주리라는  내용으로 시작된 이 칼럼은 바람직한 남녀 일자리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다름은 인정하되 성이 아닌 동료로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해법은 남성에게 달려있다고 끝을 맺습니다.


 

누구나 공감하고 알고 있는 그 해법은 의지와 실천의 문제일 겁니다. 18년차 기자인 제가 입사하던 당시만 해도 여자선배는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있다고 하더라도 싱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강산이 두번 가까이 변해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 저를 비롯해 직장과 가정일을 병행하고 있는 여성 동료 선후배들은 이전에 비해 훨씬 많이 늘어났습니다.



집안 일을 조금 해주며 '도와준다'고 생색내던 우리 세대 남편들과 달리 남자후배들 중에는 육아휴직도 하고 집안일과 육아도 철저하게 분담하는 경우가 보입니다.


 

입사초기의 제가 가졌던 생각과 고민은 18년이 지난 지금 이 후배 역시 당혹스럽고 답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개미걸음같은 속도의 이 변화가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미래를 만들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지금 이 후배가 느끼는 고민들이 중학생인 제 딸이 사회생활을 할 때도 해야할 고민이 되리라는 불길한 생각은 그저 기우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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