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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크

미스 리플리.... 적과 흑... 줄리앙 소렐

by 신사임당 2011. 6. 29.


 드라마 <미스 리플리>를 보면 스탕달의 소설 <적과흑>이 오버랩됩니다.
 드라마가 개연성없이 어설픈 전개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 상당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만, 일단 그부분은 접어두겠습니다. 캐릭터의 특성상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스탕달이 세상에 선보인 <적과흑>의 주인공 줄리앙 소렐 류의 캐릭터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드라마에서는 이다해가 연기하는 장미리, 즉 줄리앙 소렐 류의 인물은 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재능(여기서 말하는 재능이란 지적능력, 외모 등 다양한 재능을 의미할 것입니다)은 뛰어나지만 환경은 따라주지 않습니다. 또 환경의 어려움과 비례해 세속적 성공의 욕망이 엄청나게 큽니다. 결국 이 간극이 주는 괴리감이 불행의 시작이고, 이기적이면서 컴플렉스로 똘똘 뭉친 인간이 되기 마련이지요. 간극이 주는 괴리감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제빵왕 김탁구가 되기도 하고 줄리앙 소렐이 되기도 하는 것일텐데요. (비유가 적합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스탕달



줄리앙 소렐이 살았던 시기는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에서 태어난 그는 똑똑하고 자의식 강한데다 잘생긴 외모를 가졌습니다.  하급군인에서 황제가 됐던 입지전적 인물 나폴레옹을 동경하며 자라지만 줄리앙 소렐이 살던 시기의 프랑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청년이 뜻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비상한 지적 능력을 바탕으로 시장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 시장의 부인인 레날부인을 유혹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이 관계가 탄로날 위기에 빠지자 그 도시를 떠나 파리의 귀족가문에 비서로 들어갑니다. 역시 이곳에서도 비범한 재능을 바탕으로 뛰어난 처세술을 보여주고, 까칠하고 거만한 귀족의 딸 마틸드까지 유혹하는데 성공합니다. 마틸드는 다른 귀족들과 달리 지적이고 열정적인 이 남자에게 끌렸고, 이를 꿰뚫어 본 그는 마틸드의 심리를 이리저리 요리합니다. 특히 그가 마틸드와 벌이는 사랑의 심리전과 미묘한 심리변화를 묘사한 부분은 압권입니다.
그는 마틸드를 통해 귀족의 사위가 되기 직전까지 다가갔습니다만, 어이없이 레날부인과의 옛 스캔들이 폭로되면서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가죠. 분노에 찬 그는 레날부인에게 방아쇠를 당기고,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넘을 수 없는 절망의 벽, 그렇지만 그것이 의외로 엉성한 구석은 소설이나 현실이나 비슷하게 발견됩니다.(학력위조 등을 보면 그렇죠).  자신의 유혹에 상류층 여자가 무너지고,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멍청한 상류층 인사들은 줄리앙과 극적 대비가 되는데, 이 부분이 은근한 통쾌감도 줍니다.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상류층 여인들을 이용했다가 실패하고 만다는 큰 뼈대를 보면 언뜻 극성강한 연애소설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당시의 정치사회적 배경과 모순,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사회의 모순과 불공정에 대해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지금도 이 작품이 생명력을 얻으며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굴레,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불공정한 벽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전제는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오히려 점점 심화되고 고착화되고,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에 대한 절망이 깊어질수록 더 많은 줄리앙 소렐이 생겨나고, 그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생겨납니다. 몇년전 <하얀거탑>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장준혁에게 많은 이들이 열광했던 것도 넘을 수 없는 벽을 보며 절망하고 고통받는 그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겁니다.


 
방송중인 드라마 <미스리플리>가 그래서 더 안타깝기도 합니다. 세상의 장벽과 굴레는 여성들을 더 구조적으로 옭아맵니다. 젊고 아름답고 재능있지만 세상이 요구하는 스펙을 갖지못한 그녀가 야심을 갖는 것은 죄가 되는 현실에 그녀는 살고 있습니다. 막막하고 방법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야망을 실현하고 올라서고 싶은 욕망의 줄타기를 다룬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그녀가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렇게라도 해서 올라가고 싶었다든지 하는 공감의 요소는 터럭만큼도 전달되지 않습니다. 거짓말로 세상을 살아가고, 남들을 속이는 것은 분명한 잘못인데, 왜 저럴 수 밖에 없었는지 이면에 대한 심도있는 접근과 묘사가 없이 자극적이고 작위적인 전개로만 일관합니다. 이는 단순히 전파를 낭비하고 짜증스러운 드라마를 양산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줄리앙 소렐과 같은 사람의 삶이 일그러졌고 뒤틀린 점은 분명하지만 이 세상은 그것 이상으로 뒤틀려졌고 추악하다는 점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그런 세상과 현실엔 눈감게 한 채, 줄리앙 소렐 같은 환경에 처한 젊은이들이 야심을 갖는 것도 죄악이라는 생각이 보편화되는 세간의 인식입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체념하게 만들면서 말입니다.

 엉뚱합니다만, 문득 떠오른 생각은 이같은 사례가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되면 판타지의 대상이 되고, 감정이입을 하는 대상이 돼서 사랑도 받지만, ‘뉴스’의 주인공이 되면 대개가 파렴치범, 철면피 등으로 찍혀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왜일까요.

 사족하나 붙이자면 <적과흑>은 연애실용서적으로도 추천할만한 책입니다. 예전 어느 후배가 ‘밀당’의 테크닉과 수위조절로 고민하고 있길래 <적과흑>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준 적 있습니다. 나름 유명한 소설이라 꽤 읽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 주변에 읽지 않은 사람들이 많더군요. 속는셈치고 보겠다던 그 후배, 나중에 저한테 고맙다고 인사하더이다.
 남녀관계와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심리변화, 갈등을 탁월하게 묘사해 놓은 스탕달의 솜씨 덕분에 어떻게 하면 상대가 나에게 넘어올지, 어떻게 하면 없어보이지 않게 작업할 수 있을지 등 ‘응용’할 부분이 꽤 많습니다. 실제로 스탕달은 여자들에게 인기없고, 아니 퇴짜맞기 일쑤여서 굉장한 상처를 안고 살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소설을 통해 대리만족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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