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카푸치노, 카페라떼, 아메리카노, 아포가토, 마키아토... 커피와 관련된 이 용어들은 세계 어디서나 통한다. 이 용어는 모두 이탈리아어다. 왜 이탈리아어가 커피와 관련한 용어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었을까. 바로 커피의 정수를 추출해낼 수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세계 커피 산업과 트렌드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어가 ‘장악’한 분야는 또 있다. 바로 음악이다. 클래식 음악 악보를 접할 때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용어는 모두 이탈리아어다. 안단테, 포르테, 피아니시모, 크레센도, 칸타타, 디미누엔도, 스타카토, 프레스토, 레가토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왜 그럴까. 우리가 익히 아는 음악의 아버지 바흐를 비롯해 클래식 음악사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이 대부분 독일, 오스트리아 출신이고 현재 세계 클래식의 중심도 이 지역이니 말이다.
그 이유는 11세기의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혁명적 사건에서 찾을 수 있다.
서양 클래식 음악은 교회음악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가 음악의 명맥을 이어와 르네상스를 거치며 이후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우리가 아는 클래식 음악으로 발전했다. 지금이야 악보에 그려진 음표를 통해 음악을 익히는 것이 당연하지만 11세기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당시에 그레고리안 성가 등 교회음악은 악보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구전을 통해 배웠다. 말하자면 교회나 수도원에서 선배 수도자가 이를 부르면 후배들이 따라 부르는 방식으로 익혔다. 기억과 목소리에 의존해 한곡 한곡이 도제식으로 전파된 것이다. 그런식으로 구전, 전승되다보니 많은 사람이 정확하게 배우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배우는 기간도 수년씩 걸렸다.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지극히 비효율적인 방식에 문제제기를 한 이가 바로 11세기 이탈리아의 수사 귀도 다레쪼(Guido d‘Arezzo)였다. 그는 현재 만국 공통어가 된 도레미파솔라시도, 즉 계이름을 만들었다. 음에 규칙이 있음을 발견하고 여기에 고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또 선과 칸을 통해 음높이를 표현하는 기보 체계를 고안해냈다. 그의 작업은 문자가 없던 세계에 문자를 만들어 주었다고 할만한 사건이었다. 물론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음계로 완성되기까지 수정과 보완이 이뤄졌지만 음악이 유통될 수 있는 기본 구조를 그가 다져놓은 것이다. 귀도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기반으로 이후 음악가들은 더 다양하고 세밀한 음악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음악은 교회 음악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서구 기독교 문화의 중심은 로마였다. 또 음악, 미술 등 문화 전반에 거쳐 부흥과 변화가 이뤄진 르네상스 시대에도 유럽 문화의 흐름을 주도한 곳은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지역이었다. 자연히 수많은 음악 용어들이 이탈리아어로 만들어지고 그 규칙이 보편화되면서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피아노, 소프라노, 오페라처럼 음악과 관련한 단어들 역시 이탈리아어에서 나와 일반적인 영어단어로 자리잡게 됐다.
미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행사가 ‘비엔날레(Biennale)’다. 비엔날레 역시 ‘2년마다’ 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지금은 익숙해진, 하지만 초창기엔 생소했을 이 용어가 세계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베니스 비엔날레 때문이다. 1895년 시작된 베니스 비엔날레는 현재 열리고 있는 수많은 비엔날레의 모태이자 세계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고 권위의 전시회다. 공화제 이전 이탈리아를 통치한 국왕 움베르토 1세와 마르게리타 왕비의 결혼 25주년을 기념해 창설된 행사로, 이탈리아 민족주의 시인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구상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레 역시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현재 발레 용어는 프랑스어가 주류를 이룬다. 그 이유는 뭘까.
르네상스 시대 메디치가의 딸 카타리나가 프랑스 왕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이탈리아의 궁정 발레가 프랑스에 전해졌다. 프랑스에 도착한 발레가 자리를 잡으며 왕족과 귀족이 즐기는 문화로 뿌리내리기 시작한 때는 ‘태양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루이 14세때다. 그는 발레를 후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발레를 배우고 무대에 올라서 춤추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제라르 꼬르비오 감독의 영화 <왕의 춤>이 발레를 사랑한 루이 14세의 이야기다. 원래 발레는 여성보다 남성을 위한 춤이었다고 한다.
이 영화에는 발레를 사랑하는 루이 14세가 태양신 아폴로를 연기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는 유럽 최고의 절대왕정 시대를 구가했던 왕으로, ‘태양왕’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절대왕정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이 별명이 붙었겠지만 일설에는 그가 사랑했던 발레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장 밥티스트 륄리의 음악에 맞춰 태양신 아폴로의 이야기를 안무해 스스로 무대에 올라 춤을 췄다. 자신을 태양신에 투사해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것이다. 발레를 절대왕정 강화의 도구로도 사용했던 그는 발레를 육성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1661년 서구 역사상 최초의 발레 전문 교육기관인 왕립 발레 아카데미가 설립됐다. 여기서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면서 발레 용어가 프랑스어로 정리, 정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오페라 아카데미가 설립됐다. 이는 현재 세계 최고의 역사를 가진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전신이기도 하다.
'컬쳐 스코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생 곁에 두고 함께 갈, 벗 같은 책 (0) | 2020.12.15 |
---|---|
8년의 기다림... 다시 그의 시간이 시작된다 (0) | 2019.10.17 |
동양인 최초의 라디오 프랑스 필 악장, 박지윤을 만나다 (0) | 2019.08.23 |
'마약'에 대한 많은 것을 한번에 이해시키는 책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0) | 2019.05.06 |
르네상스 시대에도 어벤져스가 있었다 (0) | 2019.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