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혹자는 제목보고 기겁하고 외면할 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오랫동안 그랬다.
2차대전, 수용소, 가스실. 
인류가 겪은 가공할 불행의 시대, 그 시대를 견뎌낸 개인이 쓴 불행과 고통의 기록.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들을 되새기는 것이 싫어서 한쪽으로 치워두고 있던 책이다. 
그런데 우연찮게 펼치면서 한숨에 휘리릭 읽게 되는 책. 건조하고 담담한 필체로 써내려간 글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들여다보듯 눈앞에서 머리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리고는 자꾸 생각난다. 고민스러울 때,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 막막할 때, 답답할 때 이 책을 다시금 들춰보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좀 차분해지면서 정리가 된다. 
 
이 시기의 비극을 기록한 글들, 영상물들은 많다. 이 책 역시 개인의 체험을 기반으로 한다. 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다. 기대고 싶은 누군가가 필요할 때 이 책에 손이 가는 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삶의 본질을 고민하고 되새겨보는 자세가 바탕이 되어있기 때문인 것 같다. 특별한 어떤 극한 상황의 경험이지만 개인 누구나 자신만의 상황과 굴곡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그 상황과 굴곡을 대하는 삶의 자세와 감정, 의미의 본질이 갖고 있는 색깔과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그 성분은 동일할 것이다. 몸뚱이 외에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환경을 기반으로 한 저자의 기록들은 그래서 오롯이 그 본질에 집중하게 만든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수용소 생활을 주로 다룬 1부는 매 순간과 상황에서 낚아 올린 아포리즘들을 발견할 수 있다. 2부는 정신과 의사라는 그의 직업을 바탕으로 좀 더 실질적인 마음관리의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묵직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동시에 요즘 넘쳐나는 심리, 인간관계, 처세에 대한 기술을 늘어놓은 그 어떤 책보다도 실용적인 지침을 준다.  

책의 몇 대목들을 옮겨본다.  " " 안이 책의 구절들이다.

우선 짐작하다시피 필자가 머물던 세계는 2차 대전당시 나치가 만든 수용소다. 
그 세계는 "인간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이 지닌 가치가 더 이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세계, 인간의 의지를 박탈하고, 그를 단지 처형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세계"다. 
그 세계에는 이들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소수의 개같은 무리들이 있고, 다수는 양떼처럼 감시당하고 고통받는다. 그리고 양떼인 그들은 "오로지 두 가지 생각만 한다. 어떻게 하면 저 무서운 개들을 피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이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세상도 이곳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 이성이 없게 만드는 일도 있다" 라는 표현이 적합한 곳.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정상적인 것이다". 그런데 평시에 겪어보지 못한 고통과 공포가 이어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에 대해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현상이 가속화"된다.  피떡이 되도록 폭력과 비명이 난무하는 "그 참담한 광경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감정이 무뎌져서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단계가 된 것이다".  배고픔을 못 이겨 수프를 먹고 있던 저자는 우연히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병으로 죽은 말라비틀어진 누군가의 몸을, 6인치 높이의 계단을 올라갈 힘도 없는 다른 재소자들이 힘겹게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방금 전에 밖으로 옮겨진 시체가 동태같은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시간 전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곧 다시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이런 불안하고 불확실한 현실에 던져진 인간들은 어떻게 되나. 오직 하나의 과제에 모든 노력과 감정이 모아진다. 바로 자신의 생명과 친구의 생명을 보존하겠다는 과제. 이런 긴장상태는 수감자들의 정신세계를 원시적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그것은 이성이 제어하지 못하는 원초적 욕망과 의지로 꿈 속에서 드러난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가장 자주 꾸는 꿈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빵과 케이크와 담배 그리고 따뜻한 물로 하는 목욕이었다. 이런 단순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꿈 속에서나마 소원을 이루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중 가장 강력한 욕구는 식욕이다.
"대다수 수감자들이 어쩌다 서로 가까이서 일을 하게 되면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무엇을 하는지 아는가? 당장 먹는 얘기를 꺼낸다. 배수구에서 일하는 친구가 옆에 있는 친구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글고 서로 조리법을 교환한다. 머지 않은 장래에 여기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가는 날, 다시 만나게 되는 그날을 위해 식단을 짠다."
인간의 3대 원초적 욕구라는 성욕은?  식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수감자들에게 성욕이 없었던 원인도 아마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남자 수용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영양실조밖에는 없다. 남자들만 있는 다른 집단 예를 들어 군대와는 대조적으로 수용소에서는 성도착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꿈에서도 섹스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증거들이다.   
 "나같은 의학도가 수용소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우리가 공부했던 교과서가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이었다. 교과서에는 사람이 일정한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정말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
 "수용소에서 우리는 이를 닦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두 심각한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잇몸이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했다. 셔츠 한 벌을 가지고 반년 동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될 때까지 입었다. 흙일을 하다가 어쩌다 찰과상을 입어도 상처가 곪는 법이 없었다. 밖에서 생활할 때 잠을 제대로 못 잤던 사람이 있었다. 옆방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잠이 깰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수용소에서는 그런 사람이 동료의 몸 위에 엎어져서 귀에서 불과 몇 인치 떨어진 곳에서 나는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주 깊이 잠을 잤다."

바스라진 영혼을 담은 육체는 하루하루 연명하듯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들의 영혼은 바스라지지 않았다. 이들의 영혼을 지탱한 것은 사랑이었고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 유머였다.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도록 피곤한 몸으로 막사 바닥에 앉아서 수프 그릇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 동료 한 사람이 달려왔다. 그리고는 점호장으로 가서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보라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아주 희미하고 몇 초 혹은 몇 분 동안만 지속되지만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후 절망과 좌절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전해 왔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을 이야기했을 때 한 지인이 물었다. 그렇고 그런 불행 포르노 아니냐고. 단언컨대 절대 아니다. 

종류는 좀 다르지만 이 책에서 발견한 또 다른 생각거리를 많이 주는 부분이 있다. 
어떤 불행을 당한 사람들의 이후 삶. 명백히 규정된 그 불행에서 구해졌기 때문에 괜찮아질거라고 타인들은 생각해버리게 마련이지만 우리 사회의, 다수 대중의 그런 생각들이 이전의 불행보다 당사자에게 더 큰 불행을 안겨줄 수 있다. 이 점을 다시 깨닫게 됐고 그래서 이 부분을 자주 곱씹어 본다.

"원색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야만성의 영향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 자유를 마치 특허를 받은 것처럼 잔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정신적 억압에서 갑자기 풀려나게 되었을 때 도덕적 결함을 보이는 현상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성격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두 가지 기본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때 겪게 되는 비통함과 환멸이다. 비통함은 그가 살던 마을로 돌아왔을 때 그가 부딪치게 되는 여러가지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면 그저 어깨를 으쓱하거나 상투적인 인사치레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는 점점 비통해지면서 자기가 과연 무엇 때문에 그 모든 고통을 겪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