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단원들이 모인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악장은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34)이었다. 현재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소속인 그는 지난해 12월 동양인 최초로 이 오케스트라 종신 악장으로 임명돼 음악계에서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악장은 ‘콘서트 마스터’(Concert Master)라 칭한다. 그만큼 책임감이 무거운 자리다. 통상적으로 오케스트라의 가장 앞 줄, 객석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앉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악장이다. 지휘자와 단원 사이를 조율하고 지휘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 명확하게 전달하는 역할로, 리더십과 책임감, 뛰어난 연주 실력이 갖춰져야 한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간판 오케스트라로, 지휘자 정명훈이 15년간 음악감독을 맡은 터라 국내에도 친숙하다. 지난 3일 공연 전 대기실에서 그를 만났다.
-어떻게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게 됐나.
“파리에서 공부한 첼리스트 이원해씨가 지난해 이 오케스트라에 참여했다. 너무나 감동적이고 좋은 경험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기회가 되면 참여해보고 싶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마침 연락이 와서 무척 기뻤다. 시간 맞추기가 빠듯했지만 반드시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스케줄 조정에 어려움은 없었나.
“한국에 오기 직전 남프랑스에서 연주회가 있었다. 공연 다음날 첫 기차를 타고 파리에 도착해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면 리허설 당일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남프랑스에서 출발할 때부터 인천공항에 무사히 내릴 때까지 조바심 때문에 잠도 설쳤다. 기차나 비행기가 조금이라도 연착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악장을 맡아놓고 리허설에 참석하지 못하면 안 되지 않겠나.”
-현재도 악장이긴 하지만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모인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을 맡는다는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다.
“처음엔 걱정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지휘자도 이번에 처음 뵙게 된 분이었고 단원들 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꽤 있었지만 막상 합을 맞추는 순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저마다 고국에 돌아와 함께 한다는 마음만으로도 척척 통하더라. 우리의 지향점을 향한 열정과 긍정적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공유되다 보니 말하지 않아도 한마음이 되어 물 흐르듯 움직였다.”
-80여 명의 코스모폴리탄 오케스트라는 그 구성 자체로 감동적이다.
“서로 한 공간에서 합을 맞춰 본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고 기뻤다. 세계 곳곳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간간이 들어왔는데, 막상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정말 놀랍더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런 시도가 지속될 수 있어서, 많은 분들이 기대와 성원을 해주셔서 감사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할만한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해주셔도 좋겠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지난해 12월 그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종신 악장이 됐다. 8월 실시한 악장 오디션을 통과한 뒤 4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쳐 종신 악장으로 선발됐다. 현재 이 오케스트라에서 종신 악장은 그를 포함해 3명이 맡고 있다. 프랑스 서부 지역의 페이드 라 루아르 국립오케스트라에서 7년간 활동했던 그는 그곳 오케스트라에서도 악장을 맡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을 맡게 됐다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파리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고 동경해 온 오케스트라다. 사실 이런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을 뽑는 공고가 난다는 것은 무척이나 드문 일이다. 수십 년간 뽑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를 만났고 좋은 결과를 얻게 돼 감사하게 생각한다.”
-최초의 동양인 여성 악장이라는 부담감은 없었나?
“그렇지 않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은 굉장히 개방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여성 수석들도 많이 활동하고 있고 현재 나와 함께 종신 악장을 맡고 있는 분도 여성이다. 오랫동안 파리에서 공부하고 활동해왔기 때문에 내 스스로 그런 부분에 대해 특별히 의식하고 있지는 않다.”
-최근 유수의 오케스트라에 입단하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늘었다. 다른 한국인 단원들은 있나.
“제2바이올린 부수석 이은주 씨가 얼마 전 입단했다. 정명훈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커서인지 우리 오케스트라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좋다. 올 2월에는 정명훈 선생님의 지휘로 조성진 씨와 협연을 했는데 그때 단원들의 반응이 무척 흥미로웠다. 지휘자, 악장, 협연자가 모두 한국인이라며 한참 화제가 됐었다.”
4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그는 예원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2000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파리고등국립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는 티보 바르가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클래식 음악 전공자들은 대개 솔리스트를 꿈꾸지 않나.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솔리스트만 보고 자랐고 그것만이 길이라고 생각했다. 파리에서 공부하고 졸업시험을 치를 즈음 처음으로 오케스트라를 경험하게 됐는데 누군가와 하모니를 만들며 함께 연주한다는 것이 그렇게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줄 몰랐다. 하면 할수록 나 자신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개인플레이를 하는 것보다 소속감을 갖고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함께 만들 때 훨씬 즐겁고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더라. 마침 페이드 라 루아르 오케스트라에서 악장 공모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입단하게 됐다.”
-예전과 비교해 분위기가 많이 변한 것 같다.
“최근 후배들을 보면 오케스트라나 실내악 활동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클래식 음악 역사가 길지 않고 솔리스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역사가 오랜 유럽은 오케스트라의 기반이 탄탄하고 활동의 반경도 넓다. 자연히 외국에서 공부하는 친구들 역시 오케스트라의 매력에 눈을 뜨고 단원의 길을 개척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그의 남편 줄리앙 줄만도 바이올리니스트다. 파리고등국립음악원에서 함께 공부했고 페이드 라 루아르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악장으로 활동했다. 그가 지난해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이 된 뒤, 남편 역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이 됐다. 지난해 이들 부부는 내한 연주회도 가졌다. 세 살 된 딸을 둔 그는 연주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가족에게 집중하려 한다. 그는 “가정과 일의 균형을 찾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숙제”라고 토로했다.
-또 도전하고 싶은 꿈이 있나.
“당장 뭘 해야겠다는 건 없다. 지금 드는 생각은 내 마음가짐이 앞으로도 꾸준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면서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연주하는 그 순간이, 이 음악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이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좀 더 많은 분들이 오케스트라의 매력에 빠지게 되시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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