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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스코프

20년간의 아름다운 인연....43세 나이차 넘은 우정

by 신사임당 2019. 4. 25.

거장으로 꼽히는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중 하나인 임동혁이 한 무대에 선다. 5월 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19 아르헤리치 벳부 페스티벌 인 서울’이라는 이름의 공연에서다. 이 공연에서 두 사람이 협연하는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교향적 무곡’이다. 지난해 6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아르헤리치 페스티벌에서도 두 사람은 함께 이 곡을 연주했다.

사진제공 크레디아

 

아르헤리치는 올해 78세, 임동혁은 35세다. 43세의 나이차가 있는 두 사람은 20년 가까이 각별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어린 임동혁을 ‘발견’한 아르헤리치는 오랫동안 그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멘토와 멘티의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어왔다.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2000년이다. 이미 그전에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임동혁의 연주를 들었던 그는 거장의 마음을 울리는 ‘떡잎’을 눈여겨 봤다. 그리고 이 해 프랑스 라로크 음악 페스티벌, 스위스 베르비에 음악 페스티벌 등 유수의 무대에 임동혁을 초청해 그가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본격적으로 임동혁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메이저 클래식 레이블인 EMI에서 데뷔 앨범을 발매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다. 당초 EMI는 러시아 출신의 젊은 피아니스트와 앨범 녹음을 하기로 했지만 아르헤리치의 적극 추천으로 임동혁의 앨범이 먼저 나오게 됐다.

 

아르헤리치가 그의 데뷔 앨범 발매에 발벗고 나서게 된 이유는 또 있다. 임동혁은 2000년 9월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 나갔다. 그는 이 콩쿠르에서 1, 2차 예선을 각각 2위와 1위로 통과했다. 하지만 유럽계 심사위원들의 석연치 않은 결정으로 결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임동혁을 지켜봤던 아르헤리치는 심사의 부당성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현지 언론들도 심사 결과에 의혹을 제기했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듬해 콩쿠르 조직위원회는 심사위원을 전원 교체하면서 전년도 대회의 부당성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아르헤리치,  임동혁

이같은 결과는 아르헤리치가 임동혁의 앨범 발매를 주선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던 셈이다. 그전에도 아르헤리치는 재능있는 젊은 피아니스트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1980년 쇼팽 콩쿠르 심사위원이었던 아르헤리치는 참가자였던 이보 포고렐리치(당시 유고슬라비아)가 본선에서 탈락하자 편파적인 판정이라 항의하며 심사위원직을 내던졌다. 포고렐리치의 천재성을 알아본 아르헤리치 덕분에 오히려 그 대회 우승자였던 당 타이손보다 포고렐리치가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더 명성을 얻었다.

 

 

2001년 임동혁의 EMI 데뷔 앨범 녹음은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큰 뉴스거리였다. 피아노는 강하고 성숙한 타건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악기에 비해 10대 연주자의 메이저 레이블 녹음이 흔치 않은 편이다. 그때까지 EMI와 녹음했던 10대 피아니스트는 예브게니 키신, 헬렌 후앙 정도였다.  쇼팽의 스케르초 2번, 발라드 1번, 슈베르트의 즉흥곡, 라벨의 라 발스 등이 수록된 그의 데뷔 앨범은 호평을 얻었고 이듬해 프랑스 유력 음악전문지인 디아파종이 선정하는 ‘황금 디아파종상’을 수상했다.

 

 

부조니 콩쿨의 아픈 기억을 씻어줄 낭보는 2001년 말 그를 찾아왔다. 세계 10대 콩쿠르로 꼽히는 프랑스 롱 티보 콩쿠르에서 그는 당당히 우승했다. 이후 그는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공동 3위, 2007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공동 4위에 오른다.

 

 

세계 최정상의 피아니스트였지만 아르헤리치는 40대에 접어든 뒤엔 화려한 독주 무대보다는 실내악에 집중했다. 또 재능있는 젊은 아티스트 발굴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이런 노력이 결집된 것이 ‘아르헤리치 벳부 뮤직 페스티벌’이다. 실내악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이뤄지는 이 페스티벌은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 20년 넘게 그가 총감독을 맡고 있다.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후배들과 소통하고 젊은 연주자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009년, 그는 이 페스티벌의 일부를 한국에서 선보이는 무대를 가졌다. 이 때 임동혁과 함께 내한했지만 두 사람이 협연하는 무대는 볼 수 없었다. 오는 5월 내한 공연 역시 이 뮤직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르헤리치와 임동혁이 협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올해 워너클래식을 통해 발매되는 임동혁의 새 앨범에도 이번에 협연하는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교향적 무곡’이 수록된다. 경향신문 인터뷰 기사(2018년 2월14일자)에 다르면 이 앨범 녹음은 아르헤리치가 임동혁에게 주는 ‘결혼 축하 선물’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 임동혁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