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그리고 식품.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조합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값싸고 품질 떨어지는 농산물과 가공 식품=중국산이라는 인식은 디폴트값이다. 이름 모를 술을 먹었는데 그 다음날 눈이 멀었다는 둥 하는 괴담도 상당히 설득력을 얻어왔다. 실제로 표백제에 담근 닭발, 쥐약 먹고 죽은 쥐로 만든 양꼬치 따위의 뉴스도 심심찮게 전해졌으니 중국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이 우리의 지나친 편견만은 아니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얼마전 그렇게만 생각해선 안된다는 꽤 흥미로운 단서를 얻었다.
10월25일부터 11월4일까지 진행됐던 <서울국제음식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을 보고서다.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영화제이나 포스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랭 뒤카스는 미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프랑스의 셰프다. 폴 보퀴즈, 조엘 로부숑과 함께 프랑스 출신 스타셰프, 전설 등으로 함께 거명된다. 안타깝게도 폴 보퀴즈, 조엘 로부숑 이 두 분은 올해 작고하셨다. 알랭 뒤카스는 이 분들에 비해 연배는 어린 60대 초반. 전세계에 23개의 레스토랑을 갖고 있다. 그중엔 베르사이유 궁전에 오픈한 ‘오레’도 있다.
알랭 뒤카스 : 위대한 여정 /서울국제음식영화제 홈페이지
사실 셰프를 설명하고 이해하긴 무척 어렵다. 명성이 높다지만 그의 음식을 직접 먹어보지 않고 어찌 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겠나 말이다. 미술 작품은 구경할 수 있고 음악은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들을 수 있다지만 도대체 음식은 돈 주고 먹어보지 않는 다음에야 당췌 알 방법이 없으니 공허하기 그지없다. 그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알랭 뒤카스는 정점에 있고 충분히 안주할 법하지만 그는 여전히 계속 실험적인 레스토랑을 열고, 요리학교를 세우면서 진화를 멈추지 않는 삶을 산다. 그 때문에 셰프를 꿈꾸는 이들의 멘토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은 2년간 그를 따라다니면서 밀착해 취재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앞서 말했던 베르사이유 궁전에 오픈한 ‘오레’의 준비 과정이 영화의 앞뒤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활기 넘치는 주방의 모습이나 눈이 즐거운 요리 등 볼거리도 볼거리지만 그의 치열한 장인 정신과 고민, 노력하는 과정들이 무척 흥미롭다.
그중에서도 특히 재미있었던, 눈길을 끌었던 부분이 있다. 바로 알랭 뒤카스가 중국의 캐비어 양식장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그는 그곳에서 생산되는 캐비어의 품질에 감탄한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 중국산 식재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실제로 찾아보니 유수의 레스토랑에서 중국산 캐비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구글을 뒤져보니 지난해 9월19일 블룸버그에서 쓴 기사가 있다. 제목은 The World’s Best Caviar Doesn’t Come From Russia Anymore.
캐비어하면 카스피해를 끼고 있는 러시아와 이란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인데 이 기사를 읽어보면 지금 세계 최고 품질의 캐비어를 생산하는 곳은 중국이라는 것이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회사이자 알랭 뒤카스가 찾아간 회사는 칼루가 퀸(Kaluga Queen)이라는 곳이다. 실제로 파리에 있는 미슐랭 3스타 식당 26곳 중 21곳이 이곳의 캐비어를 쓴다. 물론 알랭 뒤카스의 레스토랑도 포함돼 있다. 또 뉴욕에 있는 에릭 리퍼트의 르 베르나르딘, 루프트 한자의 퍼스트 클래스에서도 이 캐비어를 낸다.
이 양식장이 있는 곳은 절강성 항저우 근처의 천도호라는 곳이다. 품질도 좋을 뿐 아니라 생산량도 많다. 현재 세계 캐비어 생산량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칼루가 퀸 홈페이지/사진 출처
궁금해서 천도호를 찾아봤더니 중국에서 인기 있는 여행지라고 한다. 그러나 난 처음 들어본다ㅠㅠ.
황산과 항저우 사이에 있는 인공호수인데 1000여개 섬이 모여 있는, 싱가포르 보다 규모가 큰 호수다. 그냥 호수가 아니고 인공호수라는 것이 경악스러울 지경이다. 대륙의 스케일이 상상을 초월한다. 1959년 수력발전소를 만들기 위해 조성한 인공호수라고 한다.
여행 정보 사이트에 나와 있는 설명을 보면 그 풍경이 천연 산수화를 보는 듯 아름답기 그지 없다고 한다. 특히 아무 처리를 거치지 않고도 물을 그냥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최고의 수질을 자랑한다. 수질 관리나 환경 보호를 위해 관광객을 어떤 식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고품질의 철갑상어 뿐 아니라 다양한 물고기가 양식되고 있지 않을까... 궁금하긴 하다.
예전에 방송했던 <미녀들의 수다>라는, 비정상회담 여성 버전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서 ‘은동령’이라는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중국인 출연자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중국산이라고 다 싸구려가 아니다. 중국에서 만드는 것 중에서도 비싸고 좋은 제품들이 많다. 싼 것만 찾으니까 제품이 나쁜거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편견에 매몰돼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일종의 의구심 같은 게 선뜻 접어지지는 않는다. 그게 말로 해서 되는게 아니라 오랜 시간 신뢰가 쌓여야 하기 때문이니 말이다.
재미있는 건 앞서 언급한 블룸버그 뉴스에도 그런 언급이 돼 있다. ‘중국 식품’ 하면 일단은 좀 신경이 곤두선다고. 그러면서 스캔들의 사례로 든 것이 표백제로 염색한 고기, 부동액을 섞은 사과쥬스 등등이다. 우리만의 편견은 아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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