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커피 부심’이 가장 큰 나라는 이탈리아인 것 같다. 전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는 커피 브랜드의 대명사 스타벅스가 이제야 겨우 1호점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된 나라. 에스프레소 머신을 최초로 개발하면서 세계 커피 산업과 트렌드를 주도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전으로 거슬러가면 베네치아 상인들이 있었기에 아랍의 커피가 유럽으로 전해질 수 있었을테니 커피 유통 역사에서도 이탈리아가 큰 기여를 했다.
예전에 방송인 알베르토를 만나 인터뷰할 때 에스프레소를 마시던 그는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나를 보더니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에 물 타서 안마셔요”라며 웃었다. 하긴 예전에 시칠리아 갔을 때도 도저히 에스프레소를 입에 대기 힘들어서 룽고를 시켰더니 불특정 다수의 그들은 나를 ‘촌뜨기’... 하면서 놀리는 것 같았다.
커피와 관련된 용어 역시 모두 이탈리아어다. 룽고를 비롯해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아포가토, 카페라테, 카푸치노, 마키아토, 카페모카 등등. 커피 부심 부릴만 하다.
이중 우유거품과 커피를 섞은 카푸치노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전형적인 아침식사다. 카푸치노와 크루아상으로 그들은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얼마전 이탈리아 로마와 피렌체에 여행을 갔다. 아침을 먹으러 들렀던 카페에는 긴 진열대에 사람들이 서서 저마다 크루아상과 카푸치노를 마시고 있었다. 자리가 있는데도 앉아서 먹는 사람이 없었다. 나같은 여행객이나 처음에 눈치 보면서 서서 먹다 어느새 엉거주춤 앉는 것 같았다. 크루아상을 이탈리아 사람들은 꼬르네또라고 하는데 그냥 크루아상이라고 하니 다 알아듣긴 한다.
시칠리아에 갔을 때는 아침마다 카페에서 그라니따에 브리오슈를 먹고 있었는데 로마, 피렌체는 크루아상과 카푸치노가 정석인가 보다. 그런데 이들, 서서 조용히 먹는 법이 없다. 끊임없이 주인장, 혹은 종업원과 떠들면서, 그것도 한손으론 먹고 한손은 열심히 아래 위로 움직이면서 시끌시끌 활기찬 아침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카푸치노와 크루아상. 단순한 조합인데 정말 맛있다. 크루아상은 아무것도 속에 없는 것 부터 겉에 슈가 파우더를 뿌린 것, 슈크림이나 초콜릿 크림을 넣은 것 까지 다양하다. 초콜릿 크림을 빼고 이것저것 먹어봤는데 어쩜 그렇게 다 맛있는지 모르겠다. 겉은 부드럽게 부서지고 속은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것이 식감이 좋았다. 프랑스식 크루아상보다 쫄깃한 식감이 강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프랑스식 크루아상과 만드는 법이 조금 다르다고 한다. 한국에선 카푸치노 한잔만도 5000원이 넘는데 여기선 커피와 크루아상을 함께 먹는데 3유로면 충분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전문 번역가로 활약했던 엘레나 코스튜코비치가 쓴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를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이곳(로마)에는 이탈리아의 다른 어떤 도시나 마을보다 바가 많다. 그리고 최고의 커피와 카푸치노를 판다. 로마인들은 아침마다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듯, 카푸치노를 마신다. 그 외에는 어떤 시간에도 카푸치노를 마시지 않는다. 로마의 바리스타들이 스스로 결정한 이후부터, 즉 다른 시간대에 카푸치노를 주문하는 사람들을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카푸치노는 단지 아침에만 마실 수 있다.”
이른 새벽에 트레비 분수를 독차지하기 위해 호텔에서 나섰다. 트레비 분수를 실컷 즐기고 보고 난 뒤 6시 반정도 되었을까.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일찍 문을 연 바를 들여다보니 다들 사람들이 스탠딩 테이블, 혹은 진열대 앞에 서서 카푸치노와 크루아상을 먹고 있었다. 호텔 근처에 있는 바에 들어가 카푸치노와 크루아상을 주문하면서 물어봤다.
카푸치노는 아침에만 마시나요?
그러자 바리스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시 물었다. 왜 그런가요?
순간 바리스타는 살짝 당황한 듯, 혹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우린 아침에 카푸치노를 마셔요.
깊은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어 일단 멈춤.
그럼 오후엔 뭘 마시나요? 에스프레소? 그러자 그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침에만 카푸치노를 마시는 것이 통습인 것으로 알고 넘어가기로.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자. 피렌체에 갔을 때도 역시 아침에 문을 연 바에선 크루아상을 먹고 카푸치노를 마시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들 틈에 껴서 그렇게 먹고 있으니 나도 이탈리아 사람이 된 듯했다. 이탈리아의 아침을 여는 카푸치노와 크루아상. 매일 먹었는데도 질리지 않을만큼 신통하게 맛있다.
갑자기 드는 엉뚱한 생각. 여기선 근사한 이탈리아식 아침이 왜 한국으로 가면 성의 없는 아침밥상의 대명사가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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