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긴자에 있는 ‘미부’라는 식당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인터넷에서도 정보를 찾기 쉽지 않고 글로벌 미식 트렌드를 꿰고 있다는 푸디들 사이에서도 생소한 이름이다. 현대 일본 요리를 이끄는 양대 산맥 중 하나로 꼽히는 핫토리 유키오(핫토리 영양전문학교 운영자)가 일본 최고로 꼽은, 단 하나의 식당이다.
일본 음식은 세계적으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긴 하지만 서구인들이 일본 음식에 대해 갖는 생각은 대체로 자극 없고 담백한 맛,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모양과 차림새, 날 생선과 같은 재료의 생경함에 머무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랫동안 식문화에 천착해 글을 써 온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마이클 부스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일본 요리 연구가 쓰지 시즈오의 저서 <일본요리:단순함의 예술>은 그에게 참을 수 없는 탐구욕을 부추겼다. 아내,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충동에 가깝게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끊으며 시작된 3개월가량의 일본 맛 기행 결과물이 이 책이다.
고만고만한 맛집 탐방을 겸한 여행기 정도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거리 음식에서 고급호텔의 음식까지 훑어보면서 음식의 맛과 재료, 요리법 등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물론이고 그에 얽힌 문화사적 배경까지 풀어낸 정성이 놀랍다. 여기에 더해 시즈오카현 아마기 산 인근에 있는 고추냉이 산지, 최고의 간장을 만든다는 시코쿠 섬의 가메비시 양조장 등 일본 요리의 맛을 좌우하는 주요 재료 생산 현장까지 찾아가 생생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엮어냈다.
핫토리 유키오 등 셀러브리티로 꼽히는 이들을 포함해 전문가들과 생산자들을 만나 맛보고 체험하고 느낀 저자의 결론이자 이 책의 핵심은 앞서 언급한 ‘미부’로 귀결된다. ‘최고의 음식은 현지에서 생산된 제철 식재료를 가지고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려내는 것’이라는 주장은 요리의 세계에서 당연한 것으로 통용되는 명제다. 저자는 이를 대체로 잘 구현하는 것이 일본 음식이고 그중에서도 그 본질을 보여주는 곳이 이시다 히로시가 30년 넘게 운영해 온 ‘미부’라고 단언한다. 사계절, 열두달을 있는 그대로 환기시키며 순간을 즐기게 만드는 미부의 소박한 음식의 맛과 깊이에 저자는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의 쾌감에 몸서리를 쳤다고 털어놓는다. 그를 미부로 이끈 핫토리 유키오는 “10년간 미부를 다니며 요리를 먹었지만 한번도 같은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면서 “세계 최고의 셰프로 꼽히는 페란 아드리아, 조엘 로부숑도 데려갔는데 감탄해서 거의 울먹였다”고 전하고 있다.
비단 일본 음식에 관한 지식뿐만이 아니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하고 함께 먹으면서 예리하게 관찰해 낸 독특한 문화와 역사, 삶의 모습도 손에 잡힐 듯 그려냈다. 전문영역을 탐구하는 저널리스트적 호기심에 따라 충실한 내용을 담으면서도 낄낄거리며 책장을 넘기게 할 만큼 유쾌하고 재기발랄한 문체와 표현으로 글을 풀어냈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다.
덤으로 음식에 관한 각종 상식과 유용한 팁, 쇼핑·관광 정보도 쏠쏠히 얻을 수 있다. 20년 이상 초밥을 만들어 온 하야시 에이지가 저자에게 알려준 유용한 팁 몇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초밥 요리사에게 좋은 서비스를 받고 싶다면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혹은 “알아서 해주세요”라는 뜻의 ‘오마카세’를 외치면 된다. 식사 초반부터 된장국이 나온다면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일 가능성이 높다. 회전초밥 집에서 골라 먹는다면 흰살이나 밝은 살 생선을 먼저 먹어라. 이런저런 양념을 첨가한 마키는 무시하는 것이 좋다. 간장에 고추냉이를 넣고 섞는 사람은 초밥에 ‘초’자도 모르는 ‘초짜’다.
웬만한 일본인보다 더 일본 음식에 대해 자세히, 제대로 썼다는 평가를 받은 이 책은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면서 20만부 가까이 팔렸다. 또 <영국 가족, 일본을 먹다>라는 제목으로 NHK에서 15부작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방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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