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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통신

그들의 손을 처음으로 잡아 보았습니다

by 신사임당 2017. 4. 16.





 “죄송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 말 밖에 못했다. 열여덟 꽃다운 자식을 떠나보낸 한 어머니. 노란 티셔츠를 입은 그의 마른 어깨를 감싸안고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이것 밖에 없었다. 그 어머니는 단단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화면과 지면을 통해, 혹은 먼 발치서 그들의 모습은 계속 보아왔지만 이렇게 손을 잡아 본 것은, 끌어 안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누군지도 묻지 못했다. 다가가는 내게 한 어머니는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덥석 쥐자 뜨거운 무언가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숨이 막힐 듯한 짧은 순간. 그리고는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 분께 힘을 드리겠다며 기껏 끌어안아 놓고는 오히려 그 분이 들썩거리는 나를 진정시키느라 휘청이고 있었다. 

 지난 11일 서울 삼일교회에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한 음악회가 열렸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추모하고 노래해온 뮤지션들의 공연이 마무리 된 뒤 세월호 유가족들로 구성된 416 합창단이 무대 위로 올랐다. 단원들이 입은 티셔츠의 노란 빛은 순식간에 교회 내의 공기를 후끈 데웠다. 이들은 그날, 즉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이던 2014년 4월15일로 되돌아갔다. 찬우, 유정이, 재희, 정수네 집. 어느 집이나 그렇듯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은 이것저것 챙기느라 야단법석이 벌어진다. 찬우도 이것저것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고 재희는 엄마의 잔소리에 짜증 섞인 한마디를 던졌다. 다들 아쉬움과 설렘으로 배웅을 했고 그렇게 집을 나섰다. 그날 밤 배에 오른 아이들은 하늘의 별을 보며 서로의 꿈을 나눴다. 요리사가 되고 싶던 찬우, 의사가 꿈이었던 유정이, 별이 되겠다던 정수. 재잘대던 아이들의 목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는다. “다녀오겠습니다”라던 아이들, 며칠 후 다시 볼 것이라 생각했던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별이 됐다. 

 남은 엄마와 아빠는 갈라진 목으로 마른 침을 넘기며 노래한다. “그리워 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 가기를 힘겨워 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 가수 이승철이 불렀던 ‘네버 엔딩 스토리’.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담은 추억의 노래가 이렇게 슬픈 곡일 줄은 예전에 정말 몰랐다. 하나 하나 마음에 와서 콕콕 박히는 단어들은 그대로 눈물 콧물이 돼 얼굴 위로 쏟아진다. 내 앞에 앉은 중년 남성도, 옆자리에 앉은 20대 커플도, 곳곳에서 고개를 떨궜고 어깨를 들썩였다. 

 엄마들은 다시 아이들을 부른다. 

 “딸, 슈퍼스타 정예진. 우리 딸 한번만 안아 봤으면 좋겠다. 넌 엄마의 심장이야. 사랑한다”

 “주현아. 열일곱 해 동안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 줘서 그리고 살아 줘서 너무나 고마워. 그리고 엄마는 너무 행복했단다. 보고 싶다 아들. 우리 주현이. 많이 많이 사랑해”

 눈 앞에 있어 언제라도 안을 수 있는 딸.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아들. 그저 건강하게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나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축복을 누리고 있는 건가. 그렇게 내 곁에 있어 주는, 그렇게 내 말에 대답하는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건가. 왜 엄청난 축복을 나는 매일 잊고 사나.    

 노래하던 유가족들은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 앞에 섰다. 객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조용히 일어섰다. 그들을 향하여 차례로 줄을 섰고 앞으로 나가 손을 잡고 부둥켜안았다. 자석에라도 이끌리듯 내 발걸음도 그들을 향했다. 그들을 위로한다고 했지만, 잊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잊어가고 있던 지난날들. 저 어머니의 손을 잡아 본다면 앞으로 더 생생하게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를 위해 그들 앞에 섰다. 

 세월호는 올라왔지만 아직까지 7시간의 비밀은 밝혀지지 않았고 왜 침몰했는지 진실도 드러나지 않았다. 한 아버지는 말했다. “여러분의 관심이 없어진다면 끝까지 진실을 밝혀내지 않는다면요. 또 다시 세월호의 모든 것이 묻혀지고 잊혀져서 또 다른 처참한 참사로 얼굴만 달라진 세월호가 여러분들 앞에 서 있을 것입니다. 끝까지 함께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미수습자 가족들은 뼈라도 찾지 못할까 간절한 마음으로 애타게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관심이 간절한 때입니다.”

 부활절이다. 예수의 부활을 기억하고 그 의미와 정신을 되새기며 신앙의 기조로 삼아야 할 많은 그리스도인들. 세월호 3주기를 맞은 2017년 부활절 이후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