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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힐링

종교와 음식 5 성당 미사주

by 신사임당 2017. 3. 31.


노트르담 성당 미사/사진 출처 가톨릭전례학회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포도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바로 예수의 피를 상징한다. 신자가 성찬을 통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예수의 고난과 부활에 동참하는 것을 뜻한다.


천주교 미사 때 성찬전례에서 사용되는 포도주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의 엄격한 규정에 맞춰 특별 생산되는 미사주만 사용할 수 있다. 현재 미사주는 경북 경산에 있는 롯데주류 공장에서만 독점적으로 생산된다. 로마 교황청의 승인을 얻어 국산 미사주인 ‘마주앙 미사주’ 생산을 시작한 것이 1977년이니 올해로 40년째다.




지난 28일 방문한 경산 롯데주류 공장에선 미사에 사용되는 백포도주를 병에 넣어 포장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하루 생산량은 3만ℓ, 700㎖ 용량 4만2600병 규모다. 연간 생산량은 백포도주와 적포도주 각각 6만ℓ씩이다. 공장의 연간 생산 공정 중 4일(부활절 전 상반기와 성탄절 전 하반기에 각기 이틀씩)만 미사주 작업이 이뤄지는 셈이다. 


지하 저장고로 내려가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스테인리스 숙성통이 가득 들어찬 발효실이다. 발효실 한쪽엔 3만ℓ 규모의 미사주 전용 숙성통이 모여 있다. 포도를 수확해 과육·껍질 분리, 압착, 효모 주입, 여과를 거친 후 숙성 기간은 1~2년으로, 이날 병입을 한 백포도주는 2014년 수확한 것들이다. 공장에서는 한달에 한번씩 숙성통에서 포도주를 조금씩 따라내 품질을 체크한다. 초창기부터 경북 왜관 베네딕도 수도회의 수사들이 꾸준히 품질관리를 해 왔다. 이 공장에서 29년째 일하고 있는 김형수 생산팀 계장은 “입사 당시 베네딕도 수도회 수사님이 하얀 수사복 차림으로 공장을 찾아 오시면 숙성통에서 포도주를 작은 잔에 따라 갖다드렸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현재는 공정과 관리법이 완전히 자리 잡힌 상태라 수사들이 시음을 위해 정기적으로 찾지는 않는다. 대신 매년 8월 해포도가 수확될 때면 공장 강당에서 축복식이 열린다. 천주교 대구교구 전례담당으로 5년째 집전하고 있는 진량성당 최창덕 신부는 “성당 신도와 공장 관계자, 생산농가 등이 함께 모여 본격적인 생산 전에 포도 축복식 미사를 지낸다”면서 “세계적으로 동일한 양식과 축복 기도문에 따라 축복식이 치러진다”고 설명했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일반 포도주는 맛과 풍미를 위해 해외에서 들여온 포도주와 섞지만 미사주는 국내산 포도만 100% 사용한다. 백포도주는 경북 의성에서 계약 재배하는 세이벨 품종으로 만든다. 프랑스 원산 품종을 일본에서 개량한 것이다. 이곳은 일조량이 높고 토양이 좋아 국내 최고의 양조용 포도 생산지로 꼽힌다. 적포도주는 경북 영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MBA 품종을 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위생복을 입고 1층 제품장 입구에 들어서면 후끈함이 감돈다. 포도주를 담기 전에 병을 세척하고 소독하는 공간이다. 일반적인 주류는 재활용병을 세척해 사용하기도 하지만 미사주만은 모두 새로 만든 병에 담는다.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하는 병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는 주입실로 들어간다. 여기서 저장고에 있는 포도주가 병으로 옮겨진다. 주입실에서 나오는 병에는 마개가 씌워진 뒤 ‘마주앙 미사주’라는 주교회의 인증라벨이 붙어 포장대로 이동된다. 


미사주의 도수는 12도다. 일반적인 포도주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사용하는 미사주는 질감이 끈적하고 도수가 높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 신호철 신부는 “고대 근동에서는 포도주를 끓여서 젤리 형태로 만든 뒤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도록 해 미사 때는 희석해서 마시도록 했다”면서 “미사용 포도주에는 물을 섞는 것이 관습이 되어 전해 왔고 이는 신성과 인성이 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럽에서 미사용 포도주는 ‘비노 상토’(vino santo), 즉 거룩한 포도주로 불리는데 경우에 따라 30도 되는 것도 있다”면서 “이 때문에 ‘비노 상토’는 종종 아주 독한 포도주를 일컫는 말로 와전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미사에는 백포도주와 적포도주 둘 다 사용할 수 있다. 전례 규정에 색깔이 명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 성당에서 신부들이 재량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미사 집전 시 튀거나 흘리면 수단이나 제대에 얼룩이 지고 관리도 쉽지 않아 백포도주를 선호하는 편이다.



생산된 미사주를 시음해 봤다. 먼저 적포도주는 떫은맛이 거의 없다. 일반 포도주를 생각하면 덤덤하고 가벼운 맛이다. 색깔도 좀 묽다. 하지만 은은한 단맛과 풋풋함이 입안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감쌌다. 백포도주는 시판되는 제품에 비해 황금빛이 감돌았다. 한 모금 머금자 싱그러운 청량감이 느껴진다. 첫맛은 푸른 사과를 베어 문 듯 새콤함이, 마시고 난 뒤에는 기분 좋은 달콤함이 입안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