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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스코프

영화 <킹스맨>에서 바그너까지.... 이런 생뚱

by 신사임당 2015. 2. 27.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스타일, 타란티노의 감성을 합쳐놓은 독특 유쾌한 스파이 영화 <킹스맨>.

웬만한 영화는 그저 시큰둥하던 저를 요 근래 가슴설레고 기분좋게 한 영화입니다.

콜린 퍼스가 생애 첫 액션을 선보인다는 이야기에 사실은 반신반의했습니다.

본 시리즈 찍을 때의 맷 데이먼도 아니고,

쉰 중반 넘어 시도하는 첫 액션을 어떻게 소화할꺼나... 되도 않은 걱정과 긴장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가 연기 했던 해리 하트!!!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서 다시 보고 싶어지지 않나요.

영화도 재미있지만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서라는.

맞습니다. 저 뻑갔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여성분들도 비슷한 마음 아니신가요.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그를 살려내 꼭, 반드시, 언젠가는 2탄을 만들어 주길 바라는 마음.

사심 가득한 저만 그걸 바라는 건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21세기 영웅담을 완성시켜줄 악당으로  IT업계의 거물 자본가가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스냅백과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IT재벌(이러면 누군가 떠오르긴 합니다만), 여기에 빅맥세트까지.

몰락한 공산권의 군부세력이나 아랍 출신 테러리스트를 대신하는 그 자리에

그동안 이들과 대척점에 있던(엄밀히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그려지던) 미국,

즉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이 있다는 점도 말입니다.

게다가 더 재미있는 것은 그의 목표가 돈과 권력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과 가치의 실현이라는 점입니다.

어줍잖고 민망한 설교가 아닌, 통렬하고 재기넘치는 풍자를

이 스파이 영화에서 얻을 수 있을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습니다.

지구 온난화 해결을 위해 바이러스 같은 인간의 개체수를 줄인다는 발상이라니...
 

영화는 보고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사실 어마무시한 살육장면을 이렇게 표현하기는 좀 거시기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키치하면서도 굉장히 세련되게 표현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백미는 불꽃놀이처럼 머리가 펑펑 터지는 장면일겁니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에 맞춰 하나씩 터지는 머리, (앗.... 이거 쓰고 보니 정말 그로테스크하긴 하네요.)
 

 

 

 

위풍당당 행진곡은 누구나 다 들어본 곡일겁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 아따맘마에서도 자주 쓰여 꼬맹이들까지 흥얼거렸을 정도니까요.

왕이 행진하거나 대통령급 거물이 등장한다거나 할 때 반드시 깔리는 힘찬 음악이지요.

실제로 엘가도 에드워드 7세 대관식을 위해 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엉뚱하게도 전 이 장면을 보면서 바그너의 음악 발퀴레가 떠올랐습니다.

니벨룽겐의 반지의 두번째 편(? 확실치 않습니다만) 발퀴레 3막 앞부분에 나오는 ‘발퀴레의 기행’.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살육장면을 더 섬뜩하게 만들었던 이 음악에 대한 첫인상과 기억은,

특히 어린 시절 봤던 영화인지라, 섬뜩한 살기와 냉정한 광기입니다.

만약 음악으로만 접했다면 이런 오싹함은 없지않았을까 싶네요.

장엄하지만 유쾌하고 밝은 위풍당당행진곡이 주는 것과는 정 반대의 느낌 때문인지

이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뚱맞은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바그너 음악은 웅장하고 장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게 엄청난 무대 스케일과 합쳐지면서 사람 혼을 완전히 빼놓을만큼 압도합니다.

듣는 것만으로도 절로 무릎이 꿇어질만하다면 좀 설명이 되려나요. 종교적인 압도감같은 느낌이랄까?

니체가 바그너 음악을 강한 무대효과를 통해 사람들을 최면에 빠뜨리고 세뇌한다며 혹평했었는데

그 최면이니, 세뇌니 하는게 뭔지 충분히 알것 같다는 거지요.

들어보신 분이라면 공감할 듯 합니다.

 

 

*요 사진은 영화 <니벨룽겐의 반지>의 한 장면입니다.

 

중학생 때였습니다.

결혼행진곡만 알고 있던 제가 제대로 처음 들었던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서곡.

그 웅장한 카리스마라니...  짜릿짜릿하게 압도하던, 겁나겁나 장중하던 그 순간들.... 

기가 팍 눌리는 것 같은 느낌까지.

그리고 이후에 봤던 지옥의 묵시록에서 사용됐던 OST, 히틀러와의 인연 등이 겹쳐지면서

저는 바그너 음악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됐지요.

뭐랄까, 한번 빠져들면 절대 헤어나올 수 없으므로 가까이 가지 않는게 좋겠다는.... 

그래서 일부러 안들으려 하기도 했지요.


그러고보면 음악의 첫인상은 정말 무서운 것 같습니다.

사람의 첫인상이야 차차 교감하는 과정을 통해 바뀌어질 여지가 있겠지만

음악은 듣는 사람과 처음에 어떻게 만나는지가 평생을 좌우하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이 가진 이성보다는 본능적 감성과 먼저 만나는 대상이고

감성에 새겨지는 그 강렬함은 마치 타고난 유전자처럼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베토벤 교향곡 7번도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을 통해 처음 접했던터라

지금도 이곡을 들으면 어디선가 피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ㅠㅠ.

음악입장에선 얼마나 억울할까요.

자유의지가 있다면 배우 이상으로 ‘자신’이 출연할 장면을 깐깐하게 따져보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가 끝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혼동의 전쟁터에서 맹렬히 활동하는 여전사들의 모습을 묘사한 발퀴레의 기행을

그냥 원래의 '기획의도'대로 들었더라면

더 할 수 없는 섬뜩한 살기의 느낌 대신 

금관악기의 소리가 매력적인 비장하고 장엄한 곡으로 평생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