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 소식을 전하거나 접한 것만 해도 여러차례입니다.
국내 최초 극장인 단성사말입니다.
2008년 부도가 난 뒤 이리저리 부침을 겪다
경매시장에까지 나왔고
결국 오늘 열린 3번째 입찰에서도
주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극장으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화려한 나날들을 보내며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던 이곳이
이런 기구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
서글프기만 하네요.
단성사는
1907년 문을 열었습니다.
좌포도청이 있던 자리에 2층 목조건물로 세워졌습니다.
처음에는 일반 연회장으로도 쓰이다가
1918년 영화전문 상영관으로 탈바꿈합니다.
1919년 10월27일에는 한국영화의 효시로 꼽히는 <의리적 구토>가 개봉됐습니다.
이날은 현재 영화의 날로 지정돼 있지요.
단성사는 일제 강점기시절부터 한국대중문화의 터전이었습니다.
1924년 단성사 촬영부가 제작한 <장화홍련전>이 개봉됐고
1926년 한국 영화사에 획을 그은 나운규의 <아리랑>도 이곳에서 상영됐습니다.
나라잃은 민족에게 민족혼을 불어넣어 준 영화 <아리랑>이 개봉된 날이 1927년 10월1일이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조선총독부 청사 낙성식이 열린 날이기도 합니다.
1955년 단성사의 모습
<역마차> <애수> <대부> <벤허> <쿼바디스> <셰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고전 걸작 영화들도
단성사에서 국내 팬들을 만났습니다.
단성사키드, 즉 단성사에서 상영되는 헐리우드 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던 이들은
현재 한국영화계의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90년대 단성사 모습
단성사는 한국영화의 역사라고도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한국영화를 이끌었고 이후에도 한국영화의 버팀목이 됐습니다.
특히 196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절정기를 구가했다고 합니다.
<겨울여자> <장군의 아들> <서편제> 등이 이곳에서 상영됐고
한국영화의 흥행 기록을 쓰며 역사를 만들어 왔지요.
1965년 상영됐던 <역도산>은 32만명
1977년 상영된 <겨울여자>는 58만명
1990년 상영된 <장군의 아들>은 67만명
이렇게 한국영화의 흥행 신기록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1993년 <서편제>
이 작품은 국내 최초로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한국작품이었지요.
그리고는 불과 10년만에 한국영화는 1000만 시대를 열었습니다.
1990년 영화 <장군의 아들>이 관객 60만을 돌파한 신기록을 기념해 배우와 관계자들이
단성사앞에서 자축행사를 하고 있다.
1993년 <서편제>가 상영되던 단성사 앞에 인파가 몰려든 모습.
2005년 멀티플렉스로 재단장한 단성사
하지만 한국영화의 성장과는 반대로 단성사는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멀티플렉스 바람이 불면서 단성사의 입지는 좁아집니다.
결국 2005년 멀티플렉스로 단장하지만
많은 멀티플렉스가 생겨나면서 단성사를 찾는 관객은 줄어들었고
급기야 2008년 부도를 맞기에 이릅니다.
이듬해 새 주인을 맞아 재기를 위해 발버둥쳤고
리모델링에 들어가지만 방치된 채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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