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씨를 만났습니다.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는데요.
그는 여전히 데뷔 5,, 6년차 밖에 안된 느낌이고 아직도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열정넘치는 뮤지션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가수로 활동하면서 많은 후배들을 양성했습니다.
그의 손을 거친 가수들은 박지윤, 비, god, 2pm, 원더걸스 등 여럿입니다.
그가 쓴 곡은 508곡입니다. 이중 수십곡이 누구나 알만한 히트곡들입니다.
국내 작곡가들 중에서 가장 저작권 수입이 많은 작곡가이기도 하지요.
비닐바지를 입고 파격적인 춤을 췄던 딴따라의 전형.
그와의 이야기 입니다.
-20년을 맞은 소감은?
“5, 6년 밖에 안된 것 같다. 주변에서 20주년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모르고 지나갔을거다.”
-20년을 돌이켜 보면 정말 기억나는 순간들이 많을텐데
“2008년이 세계금융위기 때였다. 회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에 갔을 때가 2004년이었다. 회사에서 지원 한푼 못받았던 터라 고생을 사서했다. 그런데 내 곡이 3년 연속 빌보드 차트에 실리면서 가능성을 봤다. 그제서야 회사에서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리먼 사태가 터졌다. 미국의 4대 메이저 음반 주인이 금융자본인데 그런 사태가 터지다보니 위험성 높은 프로젝트는 모두 중단한다는 방침이 섰다. 그들 입장에서 위험성 높은 프로젝트가 뭐겠나. 임정희, 지소울 등 준비했던 걸 다 접었다. 그때 처음으로 절망이라는 걸 느꼈다. 하늘에 대고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댄서들과 무대뒤에서 춤을 연습하는 모습.. 뭔가 범상치 않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이라고 할만한 일이었겠다.
“그렇다. 그전에도 좌절하고 힘든 일이 있었지만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이 일은 도저히 내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 상황이더라. 한국에 돌아왔더니 나에 대한 평가는 무모한 도전으로 회사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거였다. 내가 잘됐더라면 놀라운 도전을 했다고 격려하고 성원했겠지만 그렇게 돌아오니 왜 쓸데 없이 미국가서 고생했냐는 식이었다. 무모한 도전과 용기에 박수를 쳐준다는 건 성공했을 때나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인생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3대 기획사로 승승장구하다 그 이후 좀 주춤했던 것 같다.
“그 때 잘됐더라면 아마 한국을 넘어서는 회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돌아와서 많은 고민과 고뇌를 하다 이를 기회로 삼자는 생각을 했다. 3등일 때만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게 여러가지 실험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메이저 음반사들이 회사를 키우고 운영하는 방식, 사고방식 등을 많이 접했는데 그것을 우리 회사에 접목해야겠다고 생각한거다. SM이나 YG와는 다른 접근 방식으로 10년 뒤를 내다보자고 했다. 그 고민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콘텐츠의 대량생산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으로 한다면 한달에 1팀을 내더라도 1년이면 12팀이 고작이다. 이같은 방식으로는 시가총액 1조원을 넘는 대형회사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유니버셜이나 워너, 소니처럼 시스템을 통해 대량생산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것을 위한 첫번째 방법은 나의 감에 의존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개인에 의존하는 것을 시스템이 하도록 만든다는 말인가.
“그렇다. 스티브 잡스가 죽은 뒤 애플 주가가 반토막나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회사, 그 시스템이 효과를 내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지금은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중이다.”
-구체적인 실행은 어떻게 진행되나.
“우선은 내가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3년간 나는 그동안 내가 해오던 것을 거의 안했다. 음악도 안썼고 타이틀곡도 내가 결정하지 못하게 했다. 그전의 방식을 보면 우리 회사는 SM이나 YG에 비해 훨씬 나에게 많은 것을 의존했다. 내가 곡 쓰고 안무짜고 메이크업과 패션까지 다 정했을 정도다. 길게 보고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하다가 모든 결정을 시스템이 하도록 하고 있다. 감각적인 사람들을 많이 키워서 그들이 만든 시스템으로 일을 푸는거다. 연습생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감각있는 사람들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JYP퍼블리싱도 설립했다. 1등을 지켜야 한다는 그런 상황이 아니니 이것저것 실험하기에 부담이 없다.”
무아지경의춤이란 이런게 아닐지...
-JYP가 위기라는 이야기도 많다.
“남들이 보기엔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실험하고 시도하고 싶다. 지금은 많은 것을 축적하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는 과정이다.
-20년 중 가장 뜻깊고 좋았던 순간도 있을텐데.
“2004년 윌 스미스의 앨범에 내 곡이 실렸을 때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아시아 작곡가가 빌보드 톱 10 음반에 곡을 수록했다는, 당시로는 믿을 수 없는 정도의 성과였다. 덕분에 미국 4대 음반사와 함께 소속가수들의 데뷔를 준비할 수도 있었고.”
-한동안 종교에 심취해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2008년의 그 절망 이후 한동안 ‘운이 뭘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이것이 우연인건지, 아니면 신이라는 절대자에 의해 작동되는 것인지 궁금해서 밝혀내고 싶었다. 그러면서 불교, 이슬람교, 사이언톨로지, 증산도, 유대교, 천주교, 기독교 등 주요한 종교를 다 공부하게 됐다. 내가 갖고 있던 질문에 대해 완벽한 답을 준 책은 성경이었다. 그런데 머리로 아는 것과 믿어지는 것은 다르더라. 이 책이 틀렸음을 밝히려고 3년을 붙잡았는데 오류를 밝히지 못했다. 안 믿어질 이유가 없는데 믿어지지는 않더라. 머리로는 답을 내렸는데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항복이 안되는거지. 그래서 나는 현재 무교다. 어쨌든 운은 랜덤이 아니라는 답은 얻었다.”
-구원파와 관련한 루머에 휘말리기도 했었다. (당시 JYP는 박대표의 부인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조카인건 맞지만 박진영은 무교이고 회사에는 단돈 10원도 불법자금이 유입되 사실이 없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때 밝힌 내용이 사실이다. 난 연예계에서 딴따라 생활을 하면서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 다른 사람이 관련됐거나 누군가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말을 하지 않은 적은 있어도 공개적으로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과정이 올바른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난 지금까지 딴따라로 살면서 자랑스러운게 한번의 탈법이나 불법도 없었다. PD사건이니 뭐니 하면서 검찰수사로 들썩였을 때도 우리는 문제 없었다. 소속 연예인이 법적으로 물의를 빚은 것도 닉쿤의 음주운전 하나밖에 없었다. 난 아무리 재능이 있는 친구라도 도덕적인 부분이나 자기관리 등에서 청소년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 같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
-후회되는 일은 없나.
“삶의 기준이 돈을 버는 거라면 많은 후회가 됐을 거다. 그렇지만 난 별로 돈에 관심이 없다. 적금도 부은 적이 없고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도 해본 적이 없다. 보통 돈을 쓰면 차나 시계, 옷에 많이 쓰는데 다 관심이 없다. 1년 내내 고무줄 바지에 티셔츠 입고 다닌다.”
박진영은 지금까지 508곡을 썼다. 그중 42곡이 지상파 음악방송과 멜론 주간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허니’ ‘날 떠나지마’ 등 자신이 불렀던 곡을 비롯해 원더걸스의 ‘텔 미’ ‘노바디’, god의 ‘거짓말’,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 박지윤의 ‘성인식’ 등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곡들이 포함돼 있다.
-음악적으로 많은 성과를 거뒀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감정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곡은 ‘너뿐이야.다. 사실 제일 만들고 싶었던 곡이 모니카의 1집에 실린 ‘Before you walk out of My Life’ 같은 곡이다. 이런 곡 한곡만 쓰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멜로디와 그루브가 기가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곡이다. 처음 이런 느낌을 받았던 내 곡이 ‘난 여자가 있는데’를 할 때였고 이 무대를 하면서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너 뿐이야’가 더 좋더라(웃음). 음악적으로는 하트비트다. 808드럼과 오케스트라라는 이질적 요소를 결합시켰고 그 중심에 심장소리를 넣어서 만들었다. 음악적 실험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다.“
-앞으로 20년 후는 어떨것 같나.
“60대에도 스무살 때와 똑같은 춤실력을 유지하고 노래는 발전을 거듭해 가장 잘하는 상태가 되고 싶다. ‘60살인데 저 정도 추는건 대단해’라는 평가는 싫다. 20대때와 변함없는 실력이다. 그런 목표 때문에 편하게 살 수가 없다. 항상 자기 전에 내가 오늘 최선을 다했는지, 오늘 어떤 부분이 늘었는지를 생각하며 살고 있다.”
***모든 사진 자료는 경향신문 자료실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글은 SK이노베이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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