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교동 크라잉넛 작업실. 약속시간은 낮 12시였습니다.
정각에 맞춰 갔더니 크라잉넛 실장님이 “지금 오고 있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더라구요.
사실 뮤지션들에게 낮 12시는 새벽입니다.
주로 밤에 공연과 작업을 많이하고 지새우다보면 새벽녘에야 잠들어 오후 서너시에 일어나는 것이 일상이니까요.
10분, 15분 정도씩 각각 늦게 오셨는데 어찌나 미안해하시던지...
평소 무대에서 보던, 방방 뜨고 자신만만하던 악동들이
이렇게 순둥순둥 범생이 청년 코스프레를 하다니... ㅎㅎㅎ 하면서 즐겁게 웃었습니다.
윤식씨는 성우씨를 불대가리, 불대가리... 라고 부르더라고요. 기사 마감시간에 쫓겨서 우선 두분만 뵙자고 했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못뵈었는데 어쨌든 이분들 다른 멤버들을 거의 별명으로 많이 지칭해서 정말 웃겼습니다.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별명도 있고.... 20년을 어울려 지냈던 두 사람에게서 묻어나오는 우정과 믿음, 온갖 ‘애증’이 느껴졌습니다.
기사에 담지 못한, 이들과의 대화를 풀어놓습니다.
사진 김영민 기자
이성우=우리 엄마는 ‘넌 내게 반했어’를 들으시더니 편곡 다시했구나 그래. 자기 아들 목소리도 몰라.
박윤식=우리 엄마는 ‘아름다운 세상’ 듣고나서 너희 신곡이냐고 물어봐.
이성우=우리 엄마는 레이지본이랑 우리도 헤깔려 하셔. 심해.
-합동앨범 낸 계기는요?
박=다니다보면 사람들이 저희들을 참 헤깔려해요. 소리바다같은 사이트에도 태그가 잘못돼 있고,
서로가 뭘 불렀는지 헤깔려 하는 분들도 많고. 노브레인이 영화찍었잖아요.
라디오 스타. 그런데 우리한테 와서 라디오스타 잘봤다고 인사하세요.
그전에도 같이 섞여 노래하고 재미로 곡 바꿔 부르기도 했는데 올 초에 정식으로 공연을 했었어요.
이=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같이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올초 제안이 왔어요.
그때가 미국 오스틴 락페스티벌에 같이 갔을 때였는데 마침 전화가 왔더라고요.
그렇게 공연을 했고 이대로 끝내기가 아쉽다는 생각에 앨범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앞으로 더 재미있는 것도 나올 것 같아요.
어쨌건 그동안 우리가 지내왔던 시간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다음단계를 시작하는 느낌도 들어요.
박=다들 이야기 듣더니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어요. 이런게 어디있겠냐며.
이=에스엔에스에 글을 올렸더니 평소 눈팅만 하던 애들이 댓글을 남기더라고요. 좋다면서.
당분간 귀가 호강하겠다고까지. 그러니 뿌듯하죠.
제가 크라잉넛 멤버 어머니들께 신세 많이 졌거든요.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며 얹혀 살았어요.
그 은혜 보답하고자 만든건 아니지만 그 분들께도 뭔가 선물한 느낌이 들어 좋아요.
-그전에도 많이 바꿔 부르고 공연하고 했을텐데요.
이=공식적인건 이번이 처음이었죠. EBS가. 그전엔 수도 없었어요. 밖에서 얘들 공연하고 있는 거 보다가 막 올라가요.
박=얘네가 하고 있으면 우리도 같이 불쑥 껴들어가죠. 서로 무대 난입하는거예요.
올라가서 노래하고 공연 같이 하는게 아니라 팔굽혀펴기하고 윗몸일으키기 하고.
이=페스티벌에서도 그런짓 많이 했어요. 난입해서 병신짓 하는거죠. 냉면개시 깃발을 들고 흔든적도 있어요.
-부르기로 한 곡은 어떻게 골랐나요.
박=각자팀에서 상대의 곡을 골랐어요.
이=좋은게 너무 많아 힘들었죠. 말달리자는 필연적으로 들어가야 했고 룩셈부르크는 지지고 볶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곡 96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박=처음엔 두 팀이 유명 뮤지션의 노래를 함께 하는 것으로 해볼까 하다가 한경록이 옛추억을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내놨어요.
아마 술먹고 만들었을거에요.
이=그때 단체 카톡방에 올렸는데 반응이 완전 싸늘했어요.
이러저러한 느낌이다 하면서 한경록이 노래를 부른 파일이었는데 노래 더럽게 못한다고 싸한 분위기였거든요.
박=그런데 나중에 다시 합주 해보고 맞춰보면서 괜찮아졌어요. 일단 가사가 너무 좋고.
이=한경록이 다 해먹은거지. 아마 저작권도 다 가져갈거예요. (웃음)
-그전에 저작권이나 수익 배분 이런 문제는 어떻게 했어요.
이=저희는 다같이 나눠요. 4분의 1로.
박=우리도 공평하게 나눠요. 5분의 1로.
이=우와. 니네 멋지다. 그런 밴드가 별로 없어.
-다시 살아서 다 죽자는 내용은 무슨 뜻인가요?
박=죽을 때까지 재미있는 음악하면서 끝까지 재미있게 살자는 거죠.
이=눈물을 삼켜버리고 여기랑, 웬 위 워 영 ... 이 부분 할 때 정말 오글거리면서 울컥했어.
-이번 작업하면서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도 있을텐데
이=굳이 꼽자면 이젠 남자들과 작업을 그만하고 싶네요. 슬슬 장가도 가야 하고 ㅎㅎ.
박=특별히 그런건 없었어요.
-상대 편곡 느낌은 어땠는지.
박=비둘기를 처음 들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더라고요.
우린 장난스러운 맛이 있었는데 얘들거는 고딩 메탈스러운, 경건한 분위기?
원곡보다 마음에 들더라고요. 말달리자는 똑같고, 룩셈부르크는 파워풀한 느낌이 좋더라고요.
이=크라잉넛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재치를 갖고 있어요. 가사나 악기 쓰는게 재치가 장난 아녜요.
힘의 응집력도 좋고. 우리 밴드에서는 찾기 힘든 그런 맛이 나오는데 정말... 바다사나이는 어떻게 저렇게 바꿨나 싶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요.
-서로의 보컬에 대해 이야기한다면요?
박=성우가 저보다 음역대가 높아요. 그래서 한키 낮췄어요.
96을 들으니까 성우가 담배를 더 많이 핀 목소리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 오더라고요.
이=목소리에 본인이 가진 성격이 나와요. 윤식이는 목소리가 참 맑죠. 키 작다는게 목소리에서 티도 안나고. ㅎㅎ
-작업하면서 서로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자기들끼리 정말 잘 하더라고요. 아이디어도 많고. 진짜 기발해요. 누가 말달리자고 하겠어요.
미친거죠. 말이 돼요? 말이 안되잖아요. 말달리자. 왜 난데없이 말달리자야? 그걸 말이 되게 만들었잖아요.
모든 사람들을 납득시킨게 대단하다 싶어요.
-두 밴드가 국내 음악계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해본다면요
이=크라잉넛은 요지경 세상에 위트와 메시지를 재미있게 던지는 팀이죠.
사람들에게 흥겨움과 자학의 재미를 던져주는. 정신없는 세상을 더 정신없게 만들어요.
한국 음악계에서 이런 밴드가 나왔다는 건 축복인것 같아요. 더 이상 이런 밴드는 없을 것 같아요.
박=공연장 가면 노브레인은 관객들을 무뇌 상태로 만들어버려요.
시원하게 성우가 질러주고 다 두드려 부수면 관객들은 정말 집단으로 무뇌상태가 돼요.
당신은 나의 동반자~. 이 노래로 할 걸 그랬나?
-서로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박=노브레인이 후배죠.
이=자극도 되고 같이 늙어가면서 앨범을 함께 만드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해요. 행복한 순간 함께 사진찍은거죠.
-처음 봤을 때 서로 인상이 어땠어요?
박=96년에 처음 만났어요. 녹음실에서 . 우린 섹스 피스톨즈를 카피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있는거예요.
외모가 범상치 않았어요. 빨간머리에. 지금보다 훨신 화려했어요.
이=커트 코베인처럼 단발머리에 힙합바지를 입은 거예요. 하는 음악은 펑크고. 정말 언밸런스했어요.
말달리자라니? 뭐야 싶었죠. 드럼치던 상혁이는 윤식이랑 같은 복장에 신발은 앞코가 큼직하게 뭉툭한 구두를 신었어요.
그 모습 보며 얘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골때린다 생각했을 때도 있을텐데
박=얘들이 노브레인이라고 느꼈던 건 케이블에서 생방송을 같이 했을 때예요.
그런데 성우가 갑자기 우리끼리 하는 쌍욕을 하면서. 이 상태 어떻게 수습하나 싶더라고요.
놀랐죠. 생방송인데 저러는구나 싶어서.
이=다음에 그 피디형이 제 전화 안받더라고요. ㅎㅎㅎ. 그런데 얘들은 더해요.
한번은 공연해야 하는데 경록이가 안왔어요. 말이 안되잖아. 근데 윤식이가 베이스치면서 지들끼리 공연해요.
뭐 저런게 다 있나 싶은 어이없는 상황? 더한것도 있어요. 공연앞두고 있는데 윤식이가 안나타난거에요.
자기 공연 버리고 메탈리카 공연을 보러간거야. 쇼킹했죠. 기가 막혔어요. 우리끼리 땜빵도 많이 해줘요.
우리 드럼치는 친구가 안나타나면 상혁이가 쳐주고.
예전엔 공연 전날 갑자기 게스트 연락이 안돼서 당일날 크라잉넛 부른 적도 있어요. 욕 한바가지 하며 왔더라고요.
-인디계의 맏형인데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이=그건 모르겠고 저희가 바라는건 나이 먹었을 때도 멋있는 록밴드였으면 좋겠어요.
굳건하게 생명력 갖고 멋진 창작물을 들려주면서 멋있게 늙어가는. 두 팀 다 그렇게 되고 싶어요.
박=자신의 색깔을 갖고 있는 후배들이 많지만 앞으로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국카스텐 같은 밴드 보면 정말 잘하잖아요.
그리고 한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더 많은 팀들이 공연하고 진출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이=케이팝에 이어 케이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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