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과 2013년 방송됐던 SBs 다큐멘터리 <최후>시리즈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최후의 제국, 최후의 권력 등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됐던 이 다큐는
신 자유주의 이후 고장난 자본주의 체제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최근 이 다큐 제작진이 내놓은 책 <권력이란 무엇인가>는 이 방송내용과 방송에 싣지 못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프로그램과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하는 것은
권력의 주인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알고 자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이 있지만
실상 이를 체감하고 살아가는 국민들이 몇이나 될까요.
저 자신부터, 우리 주변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는 이 명제를 가슴으로 느끼고 몸으로 실천하고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책의 상당부분은 권력의 본질이 국민, 즉 ‘나’에게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산마리노의 소박한 국회의원들, 스위스의 직접정치에 참여하는 주민들
물론 국내에도 작은 성공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특히 감곡마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흐뭇한 웃음이 나옵니다.
심지어 70넘은 어르신들임에도 귀여우시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요.
한편 황금의 제국이 된 미국의 사례는 가슴이 답답해져옴을 느낍니다.
세계 최강대국, 최고의 민주주의를 누린다지만
돈이라는 권력과 목적 앞에서 가장 잔인한 삶을 겪고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합리성과 자주성으로 뭉친,
그런 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졌다는 나라가
어찌 이 지경까지 왔을까 하는 답답함도 느껴집니다.
책 내용들 중 일부입니다.
46페이지
권력이 자신에게 집중되기 시작하자 권력자는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나왔다는 독자적인 논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왕의 권력은 신이 내린 것이며
신에게만 책임진다는 왕권신수설이 있다.
장 보댕 등이 주장한 이 이론은 유럽의 절대왕정이 교황과 봉건 제후들 및 민중들의 저항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한
국가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다.
108페이지
모든 왕들이 두려워한 것.
현재의 왕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왕이더라도 민심을 외면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민심은 파도와 같고 왕은 그 파도위에 떠 있는 배와도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파도는 배를 순항시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배를 침몰시킬 수도 있음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변질되어 가고 있는 최후의 권력. 책에서 이렇게 묘사된 나라는 미국입니다.
금권천하. 미국의 모습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을까요.
120페이지
정치는 돈과 권력의 결혼입니다/ 로베르트 웅거 하버드 로스쿨 법학 교수.
정권과 금권의 결탁.
매년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의 돈이 각종 기업과 이익단체로부터 흘러나와
워싱턴으로 유입되었다.
악명높은 보수적 로비단체 알렉(ALEC 미국 법안 대체협의회)은 돈과 권력의 결탁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알렉에 속한 정치인들은 기업의 하수인이 되어 기업의 이익을 위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121~123
미국의 정치1번지 워싱턴DC는 연간 3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돈이 움직이는 로비의 도시이기도 하다.
한때 미국 정치계에서 명성을 날린 거물 로비스트였던 잭 아브라모프는
로비활동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적절한 로비가 필요하도록 만드는 미국의 정치 현실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너무 자주, 그들의 국민들을 대표하지 않습니다.문제는 이런 관행이 너무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부패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돈이 없는 정치인은 살아남기 힘들다. 선거가 돈의 힘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129
현재 미국에서 치과보험이 없는 사람은 약 1억명에 달한다. 3명중 1명이 이가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양쪽 어금니 아래위가 모두 썩은 6살 제이다의 경우 충치 치료비만 총 400만원이 든다고 했다.
제이다의 부모는 도저히 그돈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제이다 가족의 한달 수입은 80만원. 아빠는 꿀, 소금물 등
알고 있는 민간요법을 전부 동원해 보지만 역시 아이의 고통을 줄여줄 수는 없다.
136
미국의 의료보험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이유는 어디 있을까.
지난 100년 동안 미국에서는 공공의료보험을 도입하기 위한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1930년대 프랭클린 루즈벨트. 수익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의료 이익단체들은 대규모의 로비를 벌였고
결국 그의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1962년 케네디. 역시 로비단체의 저지로 젊은 대통령의 꿈은 끝내 좌절되었다.
1992년 클린턴 부부가 멈춰버린 국가의료보험 개혁에 시동을 걸기 위해 나섰지만 마찬가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08년. 오바마 정부의 의료개혁은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138~140
티파티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시장주의적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오바마 대통령의 온건한 의료보험 개혁 자체가
사회주의이자 파시즘이라고 주장하며 맹렬히 공격했다.
이러한 움직임에는 AFP(americans for prosperity)라는 거대단체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었다.
AFP는 미국의 대표적인 에너지 기업인 코크인더스트리의 공동소유자인 코크형제가 지원하는 보수단체다.
코크형제와 AFP의 관심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모든 산업에 걸쳐 있었다.
코크 형제는 굉장히 지능적이고 악랄한 방법으로 여론을 조작했다.
코크형제는 또한 자신들의 이념을 설파하기 위해 대학을 오염시키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다음 세대들의
사상을 조작하기 위한 거였다.
143
극단적 시장주의는 여전히 미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미국의 민낯을 그린 3장을 읽다보면 뭔가 치밀어 올라옴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게 좋다며 달려가고 있는 현 정권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울컥한 분노를 억지로 눌러야 합니다.
겨우 읽어내지만 내내 절망적인 상황이 이어지지요.
그렇지만 이 책은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할 것을 권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 한사람이 되겠어?'라는 생각을 경계하는 것. 권력은 내게 있다는 것을 각성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우리들이 모이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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