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그 어느 때보다 심한 시련이 닥쳤습니다.
좀더 명확히 하면 재벌들에게 전례없던 변화와 개혁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진작 있었어야 할 개혁이고 바로 잡아야 할 점들입니다.
경제민주화라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입니다.
잘못된 점을 바로 잡자는 것.
아마 지금까지의 관성에 젖어 지내왔던 재벌들에게는
큰 시련이고 고통일 수 있고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객관적, 상식적으로 보면 그게 아니라는 점을 그들이 좀 알아줬으면 합니다.
오랫동안, 그리고 최근에 그 강도가 더 강해진 것이지만
외부에서는 끊임없이 그들의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최근 몇년새 있었던 기업들의 유의미한 변화들은
그런 외부의 자극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끔 궁금하기도 하고 답답한 점은
그들은 물론 그들의 리그에서 살고 있지만
인터넷과 언론과 여론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세상이 원하는 목소리를 듣고
내부에서 자성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능할까 하는 것입니다.
.
기존의 방식이 옳다며 그렇게 젖어서 살아왔더라도
양심이 있다면 스스로 이게 아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걸까요.
전 그래서 올 들어 벌어진 효성가의 사태를 보며
아마 이것이 어떤 변화와 자성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 초 경영권을 버리고 자리에서 물러난 효성가의 둘째 아들 조현문 전 사장 말입니다.
어떤 팩트를 확인한 건 아니지만
아마 그가 그 자리를 버린 건 이게 아니다,,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
하는 생각이 드는거죠.
현재 효성그룹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형제간의 분란으로 보일법한 일이,
밖으로는 검찰수사와 국세청 조사를 받으며 오너 일가가 출국금지를 당한 상태입니다.
시작은 올 2월 조 전사장의 사퇴 부터입니다.
그는 당시 효성 중공업퍼포먼스 그룹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로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며 퇴사했습니다.
그전까지 조 회장의 세 아들이 그룹을 나눠 맡음으로써
후계구도가 어떻게 될지가 관심사였는데
그가 갑작스럽게 사임하면서 후계구도는 장남과 3남의 경쟁으로 좁혀졌습니다.
당시 그는 효성 중공업 PG사장직을 사임하고
법무법인 현의 고문변호사로 취임해 법률사업을 주도하겠다고 공식발표했습니다.
그는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하버드 법학박사를 거쳐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활동한 바 있습니다.
당시 그의 갑작스러운 사임이 놀라움이나 의혹어린 시선 보다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일각에서는 그가 조 회장의 눈밖에 나 있어서
진작에 떠날 준비를 했다는 이야기도 돌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그가 중공업 파트를 맡은 뒤
실적이 부진해 책임을 진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형제간의 갈등설과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퍼진 것은
그 며칠 뒤입니다.
조 전 사장이 가졌던 지분을 전량 매도하면서입니다.
당시 조 전 사장은 가졌던 지분 대부분을 기관투자자에 넘겼습니다.
다른 형제들도 있는데 제 3자인 기관투자자에게 지분을 매각한다는 건 좀 이례적인 일이죠.
오너 일가가 좀 더 많은 지분을 가져야 경영권이 더 탄탄해질 수 있는데
이렇게 많은 물량을 그냥 시장에 내놓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넘긴다는 것은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조 전 사장은 자신의 가족인 대주주 일가가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자연히 아버지나 형제들과의 갈등설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습니다.
그리고 이후 장남과 삼남간의 지분 매입 경쟁은 지속됐지요..
그리고 얼마후 조회장 동생 일가가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는 사실이
뉴스타파의 보도로 드러났습니다.
그 뒤엔 효성그룹에 대한 세무조사가 벌어졌고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어지면서 효성 일가는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조회장과 삼형제가 모두 출국금지 상태에 있습니다.
효성가의 혐의로 거론되는 것은 탈세와 분식회계, 각종 위법행위 등이
그룹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앞선 세무조사 결과 수천억원대의 추징금이 부과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효성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해외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하자
이를 감추려고 10년 이상 분식회계를 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겁니다.
이 규모만 1조원으로 추정됩니다.
또 1000억원이 넘는 차명재산을 관리하면서 양도세를 탈루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이 외에도 역외탈세나 국외재산도피, 위장계열사를 통한 내부거래등
다각도로 위법여부를 들여다본다는 계획입니다.
조 전사장은 사임이후 지분을 파는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효성도요타 등 계열사 4곳을 상대로 회계장부 열람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그룹에 대해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또 효성 일가의 사금고 의혹을 받고 있는 효성 캐피탈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차명대출이 이뤄졌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일련의 사태를 보면 아마 조 전 사장은 내부에 있으면서
그간 벌어졌던 일들을 견디기 힘들어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부적으로 경고의 목소리를 냈으나 묵살되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을테고
그 과정에서 갈등을 겪으며 눈밖에 났을 수 있고, 급기야 사퇴하기에 이르지 않았을까.... 하는 거죠.
앞으로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전모가 드러나고 결과가 나올겁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다른 가족들과 상당히 엇갈리는 진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어떤 조사 결과가 나올지, 앞으로 효성일가의 운명과 희비가 어떻게 엇갈릴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앞서 가졌던 제 생각과 추측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요.
재벌가에서 나고 자라 잘 교육받고 그들만의 완벽한 인간관계와 네트워크를 쌓으며 살아온 그들,
아버지가 쌓아놓은 업적속에서,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에서 편하게 살아 왔을지 몰라도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그 세계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으로 서서 주어진 몫을 감당해내야 하는 과정에서
그가 많은 내면의 싸움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조 전사장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가 했을 고민과 마음에 쌓아 놓았을 짐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사족 하나 붙이자면
조 전사장은 1988년 유명세를 치른 적이 있습니다.
당시12회 대학가요제에 <무한궤도>라는 팀으로 나와 대상을 탔습니다.
아이돌문화가 형성되기 전이던 그 때 대학가요제는 청소년들에게 선망과 환타지의 대상이었죠.
멋진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나와서 노래하는 모습이 낭만과 동경 그 자체였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무한궤도는 좀 더 특별했죠.
그룹사운드로 무장한, 꽃미남 오빠들,
게다가 학벌도 후덜덜한 그들은 대상 뿐 아니라 당시 수많은 여고생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들이 불렀던 노래 <그대에게>는 지금도 응원가를 비롯해 각종 비장한 무대에서 사랑받는 레전드로 자리매김했죠.
지금 들어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은, 세련된 곡 아닌가요.
신해철씨가 리드보컬을 하던 이 팀에서 조현문씨는 키보드를 쳤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함께 다닌 친구들이고, 대략 강남에서 자랐고,
심지어 조현문씨의 경우 효성가의 둘째아들이고...
순정만화 속의 꽃돌이들이 현실로 걸어나온 것이다보니 어찌 십대들의 감성을 그냥 둘 수 있었겠습니까...
당시 무한궤도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가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통해 그때의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택림, 김은주 두 사람의 사회로 진행됐던 대학가요제에서
'마왕' 신해철은 깎아놓은 밤톨같은 귀여운 꽃돌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추억을 돋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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