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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토크

두산그룹 뉴스로 보기

by 신사임당 2013. 7. 29.

최대의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차기 회장으로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이 추대됐습니다.

박 회장이 추대되면서 두산가는 상의와 대에 걸친 인연을 갖게 됐습니다. 두산 창업주인 고 박두병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을 맡았고

박용만 회장의 형인 박용성 회장이 오랜기간 상의 회장을 맡았었지요.

 

 

박용만 회장

 

 

OB맥주, 두산베어스 등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두산그룹 이야기를 그동안의 주요 뉴스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어린시절엔 OB맥주, OB베어스라는 정도로만 막연히 알던 두산이란 이름을 제대로 각인하게 된 계기는 1991년 초 대학에 입학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입니다. 그전까지 현대나 삼성, 럭키금성 등의 이름에 익숙했었죠. 두산의 첫인상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바로 두산 페놀 방류사건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낙동강에 페놀을 방류한 것이 적발되면서 전국이 떠들썩했던 기억이 납니다.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두산전자가 페놀 폐수를 흘려 보내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았고 대기업들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르면서 다른 기업들도 바짝 긴장했었죠. 이후 두산은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막대한 비용을 환경개선, 사회공헌 등에 내놓으며 이미지 개선에 공을 들였습니다.

당시 이 사건으로 두산은 창립 이래이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고 각지에선 불매운동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신문마다  하천 환경정책에 관한 시리즈물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당시 두산그룹 회장이던 박용곤 회장이 퇴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뒤 다시 복귀했습니다)

 

국내 재벌기업 중 두산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1896년 서울 종로구 배오개에 세워진 박승직 상점을 모태로 탄생한 두산그룹은 초대 박두병 회장, 2대와 4대 정수창 회장, 3대와 5대 박용곤 회장이 재임했습니다.

그리고 6대 회장으로 1996년 박용오 회장이 취임했습니다.

 

두산그룹은 1997년 말 닥쳤던 외환위기 당시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던데 비해 상대적으로 먼저 구조조정에 나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이를 설명했던 재미있는 기사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서울경제 1998년 11월3일

지난 95년말부터 국내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구조조정에 나선 뒤 가시적인 결실을 거두고 있는 두산. 성공의 배경 가운데는 두산을 이끌고 있는 오너들의 확고한 개혁의지도 뻬놓을 수 없다.「개구리론」은 박용곤(朴容昆) 명예회장이 구조조정 작업에 나서면서 강조한 개혁론이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담그면 살겠다고 튀어 나오지만 찬물에 담근뒤 서서히 열을 가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고 만다는 것. 변화에 둔감한 개인이나 기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다.
창업 100년을 맞은 두산이 「왜 개혁에 나서야 하는가」를 분명히 했다. 재계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경영론이다.
『평소 강연에서 「나한테 걸레는 남에게도 걸레」라고 말했다. 그러나 솔직히 (계열사를) 정리하면서 눈물이 난 적이 많았다.』 지난달 청와대 만찬에서 박용오(朴容旿)회장이 구조조정의 아픔을 표현한 말이다. 朴회장이 체험적 경영론인 동시에 다른 기업들에 주는 따끔한 「충고」가 「걸레론」.
『장사가 안되는 기업, 적자(赤字)기업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내놓지만 이런 기업은 남들도 사지 않는다. 돈되는 기업, 적자(適者)기업을 팔아서라도 손해를 줄이는게 급선무다』
박용성(朴容晟)OB맥주 회장도 구조조정에 관한한 분명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 지난 5월 금융감독위원회가 주최한 「기업구조조정 설명회」의 강의에서 그는 『사업을 키울 때 그 사업에서 이익이 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옛날 기준이다. 이제는 당장 현금을 만질수 있는가를 알아봐야 한다. 나중에 들어올 돈은 돈이 아니다. 현금 유동성이 왕이다』며 OB맥주의 체험적 경영관을 제시했다. 그는 또 『「이 땅을 내가 어떻게 샀는데…」라는 식으로는 안된다. 기업주 자신이 만든 고정관념이나 아집에서 벗어나야 기업을 정리할 수 있다』며 감상주의를 버리라고 충고했다.
「쓰레기론」도 관심을 끈 내용. 『한정식집의 쓰레기는 종류가 많고 양도 많다. 이런 쓰레기를 치우려면 돈도 그만큼 많이 든다. 곰탕집처럼 단순해야 한다. 여러 사업을 잡탕식으로 해선 곤란하다. 핵심역량이 없는 곁가지 사업을 하게 되면 엄청난 낭비와 비용이 따르게 된다』

 

이 당시 재계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 5남인 현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입니다. 당시 그룹 기조실장이었습니다.

 

 

문화일보 1998년 3월31일
 

 

 두산그룹이 계열사 수를 95년 12월말 29개에서 작년말 23개로 줄인 데 이어 올해말까지 다시 4개로 축소하는 숨가쁜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미국 위스키업체 씨그램으로부터 약 5억달러의 자본을 유치하고 벨기에 인터브루사를 OB맥주 주주로 끌어들이기로 했다.
마치 마라톤 주자가 단거리 경주를 하듯이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이 그룹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朴容晩(박용만·44) 그룹 기획조정실장인 것으로 밝혀졌다. 故(고) 朴斗秉(박두병·73년 타계) 회장의 다섯째 아들이자 현 회장인 朴容旿(박용오)씨의 넷째 동생인 朴실장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의 아이디어를 대부분 내고 작업을 직접 지휘하고 있다.
두산그룹의 한 관계자는 31일 “朴실장은 지난 50년 작고한 할아버지이자 창업주인 朴承稷(박승직)씨의 ‘콩을 쌓아 산을 만들라’(斗山)는 유지를 지키면서 그룹을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구조로 개편하기 위해 29개 계열사들을 매각하거나 서로 뭉쳐서 강력하고 탄탄한 4개의 ‘메주’를 빚는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朴실장이 95년초 당시만해도 멀쩡하게 잘 굴러 가던 그룹의 계열사들을 대거 처분하자고 제안하는등 구조조정을 하자고 했을 때 朴容昆(박용곤) 명예회장과 朴容旿 회장, 朴容晟(박용성) 부회장등 형제 뿐 아니라 대다수 임직원들이 반대했었다”며 “만약 이 때부터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시대의 한파를 맞아 그룹 전체가 큰 위기를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朴실장은 73년 경기고,78년 5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보스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곧바로 두산건설에 입사했다.
두산건설차장,두산식품 부장 이사 상무를 거쳐 94년 12월 그룹 기획조정실 부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형제들에게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창업주의 3남인 박용성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으로 취임한 것은 2000년입니다. 아버지에 이어 두번째 인연을 맺게 된 셈입니다.

박용성 회장은 거침없는 말로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가 말하는 것이 논란을 불러일을키며 화제가 됐던터라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행사만 있으면 그가 무슨 발언을 할 지 늘상 기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웠었지요.

 

 

 

 

당시 그의 취임 인터뷰입니다.

 

한겨레 2000년 5월16일    

 

임기 3년의 제17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한 박용성(60) 오비맥주 회장은 '기업구조조정의 전도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구조조정은 이제 선택 문제가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지난 9일 취임식에서 "굴뚝산업에 정보통신의 날개를 달아 로켓처럼 날도록 하자"고 역설한 박 회장이 특유의 뚝심으로 아직 인터넷의 불모지인 중소 굴뚝산업에 정보통신 마인드를 성공적으로 접목시키고, 70년대 이후 국내 최대.최고 경제단체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온 대한상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높다.
12일 낮 서울 남대문 대한상의 빌딩에서 취임인사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박 회장을 두시간 남짓 만나 상의의 위상회복 방안과 바람직한 기업 구조조정의 방향 등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김상하 전임 회장의 후임으로 몇분이 물망에 올랐던 것으로 압니다만, 어떻게 회장을 맡게 됐습니까?
=김 회장께서 재계원로들과 상의한 결과 맡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사양 않고 수락했어요. 처음부터 내가 맡겠다는 뜻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어른(고 박두병 두산그룹 회장)이 60~70년대 상의 회장직을 맡으셨고, 저 자신 88년부터 서울상의 부회장직을 맡아와서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 하는 마음의 준비는 있었습니다. 사양 않고 바로 맡겠다고 해서 김 회장이 좀 섭섭하셨을 겁니다.(웃음)
-취임식 때 앞으로 경제단체장이 모이는 기사를 쓸 때는 대한상의를 맨 앞에 넣어달라고 여러 번 주문하셨습니다. 전경련이 서운해하지 않을까요?
=역사로 보나 대표성으로 보나 가나다 순으로 보나 대한상의가 제일 먼저 아닙니까? 지난 몇년 동안은 대기업 구조조정이 뉴스의 초점이 되면서 전경련이 앞에 섰지요. 누가 잘나고 못나서가 아니라 원칙은 있어야 합니다. 상의는 회원기업이 14만개를 넘고, 62개 지역상의를 기초로 해서 전국의 상공업체를 망라하고 있는 최대 조직입니다. 세계 어디를 봐도 상의가 제일 앞입니다.
-상의가 정체돼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2003년부터 임의가입제로 전환되면, 가만히 앉아서 회비만 가지고 적당히 운영하는 방식으로는 어려움이 클 텐데요.
=상의가 먼저 바뀌어야겠지요. 취임 전 지방상의를 돌면서 회원사들로부터 '우리가 낸 회비로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을 많이 들었습니다. 전에는 금은방이나 약방까지 다 회원이었는데 .. 반성할 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회원사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는 것이 열쇠입니다. 상의 나름으로는 회원들을 위해 열심히 하는데 그들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상의가 한 일을 알리는 채널이 부족한 것도 한 요인입니다. 앞으로 상의의 공식업무 관련 서류와 메일은 모두 인터넷으로 공개하겠습니다.
-내부개혁에 대한 직원들의 기대도 적지 않은데요. 직원들이 붙인 대자보는 보셨습니까?
=그런 게 있었어요? (옆에 배석해 있던 임원에게 확인하더니, 나중에 보고하라고 지시한 뒤) 이번주 안으로 잘게 쪼개져 있는 조직을 대팀 체제로 정비를 할 생각입니다. 또 회원을 위한 조직으로 바꾸겠습니다.
-취임식에서 '5대 과제'를 제시하면서 전통산업에 정보통신을 접목시키겠다고 했습니다만, 다소 막연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막연한 게 아니라 가장 구체적인 문제입니다. 전통산업을 해온 사람들이 정보통신 기술을 도입해 효율을 높이면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빨리 찾아내고, 판매 특히 기업간 전자상거래(B2B)에 활용하자는 것이지요. 굴뚝산업에 정보통신의 날개를 달아 로켓처럼 날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방 중소상공인들에게 물어보니까 서울의 테헤란밸리가 이란의 테헤란보다 더 멀더라고 해요. 회원사들 중 전자우편이 가능한 기업은 아마 10%밖에 안될 겁니다. 또 우리나라는 기업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조차 제대로 없습니다. 단순히 업체 이름이나 주소, 연락처뿐만 아니라 업종과 제품정보 등을 아울러 기업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작업을 시작할 겁니다. 정부도 지원을 해야 합니다.
-최근 북한이 세계상업회의소에 가입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 경협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상의 나름의 구상이 있으십니까?
=솔직히 대북경협 문제는 아직 '맨땅'입니다. 남북경협은 절대 한탕주의 가지고는 안되고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해야 합니다. 처음 소개하는 일입니다만, 상의 실무자들이 5월초 부다페스트 세계상업회의소 총회에서 평양상의 대표들과 처음 만나 연락처를 확보했습니다. 먼저 정부 방침이 서야겠지만, 평양상의와 서로 도움되는 게 뭐가 있을지 접촉해 볼 계획입니다.
-박 회장께서는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습니다. 또 구조조정의 산 경험을 바탕으로 한 명강연으로도 유명합니다. 우리는 아직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미흡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정부와 재벌그룹 간에 갈등도 있습니다. 재벌개혁과 구조조정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지요.
=(정부가)가만히 놔둬도 기업들 스스로 살기 위해서라도 구조조정을 할 것입니다. 정부가 이미 원칙은 다 정해주지 않았습니까? 외국인들도 모두 정부가 제시한 방향이 옳다고 말합디다. 대통령도 최근 만났을 때 앞으로 3년간 열심히 개혁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구조조정은) 정부보다도 세계가 원하는 일입니다. 다만 기업쪽에서는 너무 다그치지만 말고, 완급을 가려달라는 얘기일 겁니다.
-국내기업들의 구조조정 성적을 점수로 매긴다면 몇점이나 주시겠습니까?
=70~80점은 될 것입니다. 아직 과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구조조정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평소에 대기업들의 선단식 경영이나 문어발식 경영에 비판적인 견해를 보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재벌 경영체제에 대한 평소 소신이 있으십니까?
=오너의 경영스타일에 따른 성패는 이미 그 결과가 다 나온 것 아닙니까? 오너가 큰 줄기를 잡으면, 전문 경영인이 중심이 돼서 추진하고.. 기업인에게 무서운 호랑이는 이제 정부가 아니라 금융기관이고 증권시장입니다. 오너가 무모한 투자를 하려는데 어느 은행이 돈을 꿔주겠습니까? 금융기관들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일부 재벌그룹이 2세에게 비상장 계열사 주식거래 등 편법수단을 통해 재산과 경영권을 넘겨주려는 시도를 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만?
=자기가 번 돈을 세금 덜 내고 자식한테 물려주고 싶어하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요? 기업인들에게 성인군자의 도덕률과 양심을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법과 제도로 막아야지요.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넘기려 했다면 국세청이 나서서 세금을 물리면 될 것입니다.
-두산그룹은 3대를 이어온 기업입니다. 특히 재계에서는 형제간 우애가 좋은 기업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욕심을 내지 않으면 됩니다. 지난 95년 구조조정에 착수할 때 형제들이 모여 29개 계열사 가운데 내것 네것 안 가리고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아 우선 살아남자고 합의했습니다. 그 때 서로 책임을 미루었다면 그날로 그룹은 끝났을 것입니다.

 

두산은 형제들이 지분을 나눠 나란히 우애좋게 경영활동을 하는 기업으로 유명했습니다. 형제들의 우애경영과 '권력 이양' 과정에 잡음이 없어 재계에선 늘 화제가 됐습니다.

 

이 가계도는 현재 상황은 아니고 2009년 11월 상황입니다

 

 

 

 

2001년 11월 22일 매일경제

 

한말 한말 모아서 산을 쌓는다’는 그 룹(斗山)이 최근 재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남들보다 한 발 앞서 구조조정을 단행, IMF 파고를 무사히 넘긴 두산. 여세를 몰아 지난 연말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 재계를 놀라게 하더니 올 해 6월엔 그룹 모태나 다름없는 OB맥주를 매각하는 강수를 뒀다.
최근엔 재계 최초로 ‘4세 CEO’(박정원 두산 상사BG 사장) 시대를 밝혀 한국 기업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이런 아이디어는 누구 머리에서 나왔을까 . 최근 밝힌 ‘뉴스타트 전략’을 통해 21세기 초우량 기업을 선언한 국 내 최고(最古) 기업 두산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두산을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는 누가 될지 ‘실세 명단’을 점검해봤다.
1896년 창업, 국내 가장 오랜 기업역사를 지닌 두산그룹은 현재 3세 경 영인이 주축을 이룬다.
창업자 박승직씨 2세인 박두병 초대 회장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69), 차남 박용오 회장(64), 3남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61), 5남 박용만 두 산 전략기획·관리본부 총괄사장(46) 등 4명이 그들이다.
여기에 최근 박용곤 명예회장 장남인 박정원씨(39)가 두산 상사BG 사장, 차남인 박지 원씨(36)가 두산중공업 부사장으로 4세들의 경영 수업도 한창이다.
그러 나 아직까지 ‘실권’은 3세들이 꽉 쥐고 있고 4세들은 이제 막 경영 일 선에 파고드는 ‘차세대 주자’라는 평가가 정확하다.
용오-용성-용만 3인방 실세 두산그룹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파벌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후계를 놓고 형제끼리 다퉜다는 얘기가 들리지 않는다. 창업 100주년인 지난 96년 당시 박용곤 회장이 후계를 동생 박용오 현 회장에 물려줄 때 도 잡음이 없었다. 박승직-박두병-박용곤으로 내려온 장자 승계 원칙도 이 때 깨졌다. 그룹 안팎에선 “두산은 형제간 우애가 깊은 기업”으로 정평이 나있다. 지금도 3세들 모친인 명계춘씨 자택인 서울 성북동에 한달에 한번씩 집 안 모임을 가질 만큼 형제간 우애를 과시한다. 그룹 실세가 누구냐고 물으면 두산 측은 “105년 역사동안 학연·지연이 없는 회사”라면서 “사장은 전부 실세”(김진 두산 상무)라 말한다. 70 년대만 해도 최고 월급을 주는 회사로 소문나 그룹 주력 사장단 17명 중 11명이 서울대 출신이란 점을 빼면 특정 인맥은 없다. 그룹 장손이자 4세인 박정원 사장의 부상을 놓고 “4세 경영체제의 신호 탄 아니냐”는 주장에 두산 측은 “상사 BG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한 계 단 승진한 것 이외엔 의미가 없다”고 애써 의미를 축소한다. 분명한 사 실은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33층에서 두산그룹 전략과 경영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YO(박용오 두산 회장)-YS(박용성 두산중 공업 회장)-YM(박용만 사장)으로 구성된 ‘용’자 돌림 3세 3형제가 33 층에 집무실을 두고 두산그룹 경영 전권을 행사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박정원·박지원씨 등 4세가 상사BG와 두산중공업에서 경영 수업을 쌓고 있고 각 사업부 전문 경영인들이 보조를 맞추는 위계구조로 질서가 잡혀 있다. 이를 그룹 안팎에선 박용만 사장이 ‘머리’를 짜고 박용오 회장이 ‘결 제’를 하며 박용성 사장이 이를 ‘후원’해주는 3각 역학 구도라 말한다. 전문 경영인은 박씨 3형제가 결정한 업무를 맡아보는 ‘발’ 노릇을 하는 셈이다. 그룹 경영의 정점엔 박용오 두산 회장이 올라있다. 박 회장에 직접 보고 하는 ‘핫라인’ 역은 박용만 사장이 맡는다.
여기에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이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박용곤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일 단 물러나 ‘보고’만 받고 있다는 게 두산 측 설명이다. 전문 경영인은 말 그대로 ‘발’ 노릇 회장 취임 후 박 회장은 지금까지 “주력사업이 뭐냐”는 질문을 가장 싫어한다.
그는 “내가 갖고 있는 사업은 전부 핵심 주력사업”이라 말 한다. 그는 특히 후계구도와 관련, “나도 더 늙으면 못한다” “나도 좀 쉬어 야 할 것 아니냐”는 말을 해왔다. 또 “재임 기간 중 매출액이 아닌 이 익 순위로 10위에 들겠다”고 강조해왔다. 딱 꼬집어 언제까지 하겠다는 말은 없지만 때가 되면 물러나겠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밝힌 셈이다. 이와 관련, 지난 10월 16일 밝힌 ‘뉴스타트 전략’에 그 시점(?)에 대 한 윤곽이 나온다. “2006년까지 사업별로 매년 EBIT(영업이익) 30%씩 성장해 영업이익 2조원, 매출액 15조원을 달성하라”는 지시가 그렇다. 그는 평소 “나한테 돈을 벌어다 주는 직원이 최고”라 밝혀왔다. 이는 최근 뉴스타트 전략에서 밝힌 이익 위주 경영 방침과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오너 입김에 눌린 ‘관리자형 CEO’보다는 주인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가형 CEO’를 선호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부터 그의 지시로 실시된 ‘중역 평가 보상제’(중역 연봉제)에 박 회장의 ‘CEO 용병술’이 녹아있다. 두산 한 임원은 이를 “목표 성 과를 2년 연속 달성하지 못하면 물러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힌다. 그만큼 박 회장은 이익 경영을 강조한다는 뜻이다.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이기도 한 그는 바쁜 일정을 쪼개 일주일에 2 ∼3회씩은 도곡동 사무실에 꼭 나타난다. 체 관리를 위해 지난 77년부 터 매일 아침 5km씩 조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두산 그룹 실세를 말할 때 박용만 사장(46)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직함은 2본부8BG(사업그룹)로 구성된 두산의 전략기획본부와 관리본부 총 괄사장. 한마디로 두산의 ‘전략통’이자 그룹 살림을 맡고 있는 ‘안방 마님’이다. “두산 머리는 박용만 사장에서 나온다” 그룹내 CEO들도 알게 모르게 그를 가장 무서워(?)한다. 각 사업부 CEO들 이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 반드시 박 사장 ‘재가’를 거쳐 회장 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중역 인사도 그가 좌장으로 있는 전략기획본부가 담 당하고 있다. 즉 두산 의사결정의 ‘중간 정거장’역을 맡고 있는 이가 박용만 사장이다. 그는 박두병 초대 회장의 5남이자 박용오 회장의 셋째 동생으로 그룹내 핵심 참모다.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에서 2년간 사회 경험을 쌓은 그는 미 국 보스턴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땄다. 82년에 입사, 현장 경험을 거친 후 OB맥주-두산식품-두산음료-두산동아 등에서 경리-마케팅 업무를 보며 경영 수업을 거쳤다. 95년 11월 그룹 기조실장에 취임한 이후 줄곧 그룹 살림을 살펴온 그는 두산그룹에 현금 위주 경영 방식을 정착해놓은 주인공으로 꼽힌다.  특히 OB맥주 매각, 한국중공업 인수 등 박용오 회장의 주요 업무 실적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98년 9월 기획조정실을 폐지하고 독립사업부문제 (BG)를 도입, 9개 계열사를 두산 1개사로 통합케 한 주역이다. 10년 후 직책을 물으면 “CEO”라 답할 만큼 그는 일 욕심이 많다.  요즘 도 하루 평균 14∼15시간씩 업무를 본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는 기본 일과이고 야근도 잦다는 게 비서팀장 얘기다. 그는 요즘엔 두산의 미래 성장을 위한 중장기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특 히 최근 그룹 5년 후 청사진을 밝힌 뉴스타트 전략의 밑그림을 마무리짓 느라 밤일도 잦다. 일각에서는 박용만 사장을 현 박용오 회장에서 4세 체제로 넘어가는 중 간 과정에서 ‘큰일’을 할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박용성 회장(61)은 그룹에서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말한다. 현직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그룹에선 두산중공업 회장을 맡고 있다.
국제 스포츠 무대에선 지명도가 높은 유도연맹회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기업 구조조정 전도사’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구조조정 과정에 서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는 이른바 ‘걸레론’을 유행케 했던 인물. 특히 지난해 5월 대한상의 회장에 취임, 116년된 상의 조직 에도 ‘칼’을 댄 경영자다. 그는 ‘한번 맡은 일은 반드시 해낸다’는 특유의 집념을 갖고 있다는 게 재계 평가다.
그의 집념은 95년 9월 국제유도연맹회장 선거에 출마했 을 때 단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일본 도쿄에 선거 캠프를 차리고 선거에 임박해 박 회장이 “선거 에서 이기지 못하면 서울 갈 생각들 말아! 모두 호텔 창 밖으로 뛰어내 리고 말자구…”라고 독려한 말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요즘 그는 주로 대한상의 집무실에서 업무를 본다. 그러나 두산타워 33층 집무실에 도 일주일에 3∼4회씩은 꼭 들른다.
잠깐 들러 눈도장만 찍는 수준은 아 니다. 방문 때마다 반나절씩 머물며 중공업 관련 보고와 결재를 받고 회 의도 직접 주재한다.
그룹 일을 챙기는 데는 동생 박용만 사장보다 덜하고 있지만 위계구조가 명확한 두산 분위기상 박용오 회장에 이어 서열 2위의 실력자라는 게 두 산 관계자 설명이다.
한편 박용곤 명예회장(69)은 96년 12월 박용오 회장에게 대권을 넘겨주 며 이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98년 8월부터 두산건설 회장직 을 겸임중이지만 이름만 걸어놓은 직책이라는 게 세간 평가다.
그러나 그룹 경영을 좌우할 큰 일에는 반드시 박용만 사장 등을 통해 꼭꼭 보고 를 받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굵직한 M&A에 성공하면서 두산의 재계 서열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진두지휘했던 이가 현 박용만 회장이죠. 그래서 이 때부터 박용만 회장이 재계에서 더더욱 주목받았고 박용만 회장에 힘이 실리는 구도가 차근차근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한국일보 2005년 5월2일 

최근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재계 서열이 급부상하고 있는 두산그룹에서 박용만(50·사진) 부회장이 경영 핵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1일 두산그룹에 따르면 그룹 초대 회장인 고 박두병 회장의 여섯 형제 중 5남인 박 부회장은 올 초 그룹 지주회사격인 ㈜두산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한데 이어 지난달 29일 두산인프라코어㈜(구 대우종합기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이에 따라 박 부회장은 ㈜두산과 두산인프라코어㈜의 대표 이사직을 포함, 두산산업개발과 두산중공업, 오리콤, 삼화왕관 등 두산그룹 6개 상장사의 등기 이사직을 모두 맡게 됐다.
반면 장남인 박용곤 회장은 그룹의 명예회장, 차남인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은 ㈜두산과 두산산업개발의 이사직만, 3남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은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및 ㈜두산의 등기 이사를 맡고 있다. 이에 따라 박 부회장이 두산그룹 주요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최고경영자(CEO)역할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4남인 박용현 전 서울대병원장은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6남인 박용욱씨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박 부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두산건설에 입사한 뒤 두산식품 부장, 두산음료 상무, OB맥주 부사장 등 그룹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쳤다. 특히 95년 핵심부서인 두산그룹 기획조정실장, 98년 ㈜두산 전략기획본부 사장, 2002년 ㈜두산 총괄사장 등을 맡으면서 OB맥주 매각과 두산중공업 및 대우종기 인수 등 M&A에 깊숙이 관여해 두산그룹의 덩치를 키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두산그룹이 박용오, 박용성, 박용만 ‘3형제 경영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박 부회장이 실무를 전담하는 체제로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용오 회장이 이미 60대 후반에 들어선 데다 박용성 회장이 한국야구위원회(KB0) 총재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등 다양한 외부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두산그룹이 두산중공업과 대우종기 인수를 계기로 ‘중공업 그룹’으로 탈바꿈을 선언한 만큼 박 부회장이 그룹 내부를 챙기면서 ‘뉴 두산’의 선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두산 관계자는 "박 부회장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룹을 대표하는 것은 여전히 박용오 그룹 회장"이라며 "다만 박용오·박용성 회장이 여러 외부활동도 하고 있어 박 부회장이 그룹을 실무적으로 책임지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해 7월 두산그룹 새 회장으로 박용성 회장이 취임합니다.

잘나가는 형제경영으로 분위기가 계속 좋은 줄 알았죠.

그런데  갑자기 떡하니 난리가 난겁니다. 그것도 박용성 회장 취임하고 그 다음날 일이었지요.

전임 회장이던 박용오 명예회장이 검찰에 형제간의 비자금과 외화 밀반출 등을 고발하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그 동안 사이 좋게, 갈등없이 잘 지내온 듯한 두산 형제가의 갈등이 얼마나 곪아터져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른바 두산가 형제의 난이지요.

그 때 저 역시 산업부에서 근무하며 재계를 담당할 때라 두산의 이같은 사건은 충격이었습니다. 막장 드라마같다며 기자들끼리 이야기했던 기억도 납니다. 

 

 

서울경제 2005년 7월21일

 

109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두산그룹이 형제간 경영권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박용오 두산 명예회장은 박용성 회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한 최근의 그룹 인사에 반발, 그룹의 내부 경영내용을 담은 투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두산가는 이에 맞서 박 명예회장을 가문에서 퇴출시키는 조치까지 포함, 초강력 대응자세를 취하고 있어 양측의 갈등이 최악의 수순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검찰은 특히 투서내용의 진위 여부를 검토한 후 본격적인 그룹 수사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져 형제간 갈등이 두산그룹 전체의 생존위기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 들다.
20일 박 명예회장은 “큰형인 박용곤 명예회장 등의 종용으로 그룹 회장직을 3남인 박용성 회장에게 넘긴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검찰에 박용성 회장의 비자금 조성내용 등을 담은 ‘두산그룹 경영상 편법활용’ 투서를 제출했다. 두산그룹은 박 명예회장의 반발에 대해 경영일선에서 완전 퇴출시키고 박 명예회장의 두 아들에게도 두산 보유지분에 대해서만 인정할 뿐 경영에는 전혀 간섭하지 못하도록 제재조치를 내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박 명예회장이 올초부터 계열사인 두산산업개발을 자신의 직계가족 명의로 계열분리할 것을 강하게 요구해왔다”며 “이 같은 요구가 거부당하자 반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두산산업개발은 박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중원 두산산업개발 상무가 0.7%를 보유하고 있을 뿐 박 명예회장과 장남인 박경원 전신전자 사장의 지분은 전혀 없다.
두산은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으로서 박두병 초대회장의 별세 이후 지난 73년 이후전문경영인에 이어 3세 경영인들이 경영하고 있는 기업이다. 두산은 그동안 형제간의 재산다툼 없이 19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매출 11조원, 자산규모 12조원의 그룹으로 성장해왔다. 특히 장남에 이어 차남과 3남으로 이어지는 형제경영이 순조롭게 이뤄져 재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두산의 초대회장인 고 박두병 회장은 ‘공동소유와 공동경영’의 원칙을 강조해왔으며 이에 따라 실제로 96년 12월 박용곤 당시 그룹 회장이 동생인 박용오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이양했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게 그룹 회장을 이양한 것도 이같은 그룹의 전통과 확립된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고 두산그룹은 설명했다

 

경향신문 2005년 7월22일

 

두산그룹에 두산판 ‘왕의 난’이 벌어졌다. 불과 4일 전까지만 해도 그룹 총수로 일한 박용오 전 회장이 그룹과 형제들에게 칼을 겨누면서 형제간 이전투구로 번지고 있는 것. 형제끼리 경영권을 넘겨주며 재계에서 우애있는 집안으로 소문났던 두산그룹은 이번 경영권 분쟁으로 그룹은 물론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이미지 손상이 불가피하게 됐다.
◇박용오 명예회장의 반란=박명예회장이 극단적인 폭로전에 나선 정확한 배경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는 이날 밤 성명서를 통해 "박용성 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무효"라며 "박용성.용만 형제가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 반성은커녕 형을 회장직에서 축출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룹측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박명예회장은 장남이 운영하는 케이블TV 제조업체인 전신전자의 경영상태가 악화되자 자신의 지분까지 거의 팔아가며 뒷바라지해왔지만 '밑빠진 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명예회장은 이 과정에서 두산 계열사 지분 대부분을 처분했다. 설상가상으로 장남이 친구들과 함께 두산산업개발을 인수합병(M&A)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박명예회장의 장남이 두산산업개발이 지주회사격인 두산의 최대주주인 점을 이용해 두산산업개발을 인수한 뒤 그룹 전체를 장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산 일가가 포착했고 집안의 장자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박용오 회장에게 책임을 물어 그룹회장직에서 물러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박명예회장은 그러나 "그동안 형제간의 우애를 생각해 참아왔으나 회사가 부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량회사인 두산산업개발만이라도 독자경영을 건의했을 뿐"이라며 "검찰수사를 계기로 그룹이 새출발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회장직 복귀 의사를 분명히했다.
◇최악의 경영권 다툼=박명예회장은 그룹회장 승계에 반발한 채 구조조정을 성공리에 이끈 공로를 들어 두산산업개발을 자신 가족의 소유로 계열분리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두산 일가는 이를 일축했다. 두산산업개발이 지배구조상 두산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데다 박회장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두산그룹이 갈갈이 찢어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두산 일가는 지난 18일 가족회의를 열어 그룹회장직을 동생인 박용성 회장에게 넘기기로 결정했다. 아름다운 형제간 승계라고 홍보했지만 사실은 형제간 갈등의 포장이었던 셈이다.
박명예회장은 마지막 요구마저 거부되자 '다같이 죽자'는 식으로 나섰을 것이라는 게 두산측의 해석이다. 그가 검찰과 언론사에 투서까지 뿌린 데는 박명예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ㅅ씨가 일정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박회장 부인이 돌아가시면서 의지할 데가 없어진 것도 극단으로 치달은 한 요인이 된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실추되는 그룹 이미지=이번 경영권 분쟁으로 두산그룹의 이미지 실추는 불가피하다. 그동안 '클린 이미지' 때문에 대학생들 취업 선호도에서 선두권을 달려온 두산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뒤집어쓴 셈이다.
또 미스터 '쓴소리'로 더 유명한 박회장도 치명상을 입을 처지다. 대한상의와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그는 국제사회에서도 신망도 높다.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정부의 각정 정책에 대해 거침없는 반론을 쏟아낸 것도 박회장 특유의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쌓아온 그의 이미지가 이번 사태로 큰 손상을 입게 됐다. 박용오 야구협회 총재 역시 그간 활발한 대외적인 활동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제출 진정서내용 충격적
박용오 명예회장이 검찰에 낸 진정서 내용은 충격적이긴 하지만 진위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양측이 워낙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박명예회장이나 박용성 회장 중 어느 한쪽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박명예회장의 진정서는 비자금 조성수법이나 액수가 상당히 구체적이다. 박회장과 박용만 부회장 형제가 위장계열사를 설립하고 가공매출을 만들어 분식회계는 물론 외화를 밀반출한 혐의도 포함돼 있다. 사실로 밝혀질 경우 두산그룹이 뿌리째 흔들릴 중대 사안이다.
진정서를 낸 주인공이 그룹의 전 회장이라는 점도 무시 못할 변수다. 그룹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 알기 어려운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정황 때문이다.
박회장이 자신의 과실로 부도난 ㅇ기업의 회계분식 중 1백75억원을 그룹 계열사에 떠넘겼다는 내용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반강제적으로 부실을 떠안는 바람에 부도 위기를 맞았고 이후 다른 계열사에 강제합병됐다는 게 진정서의 내용이다.
박회장이 위장 계열사인 ㅌ사의 이권에 광범위하게 개입한 뒤 3백50억∼4백50억원의 비자금을 챙겼다는 주장도 구체적이다. 박회장은 같은 방법으로 두산그룹의 경비 용역과 건물관리업체인 ㄷ사를 통해 20년간 2백억원을 유용했다는 혐의도 포함돼 있다.
박부회장 역시 계열사를 사금고화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그는 수의계약을 통해 2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박진원 상무와 함께 거액의 외화를 밀반출했다는 게 박명예회장의 주장이다. 또 친구들을 회사 투자에 끌어들였다가 손해를 보자 계열사를 통해 이를 대신 갚아줬다고 한다.
박명예회장은 "용성.용만 형제가 측근들을 통해 비자금을 관리토록 한 뒤 이를 사조직 운영이나 노조 관리비에 사용했다"면서 돈의 사용처도 명시했다.
그러나 진정서 내용의 신빙성 여부는 현재로선 오리무중이다. 물론 당사자인 박회장과 박부회장측이 이를 전면 부인했다.
두산 관계자는 "박명예회장이 진정서에서 밝힌 비자금 조성 및 사용처는 모두 엉터리"라며 "검찰조사 과정에서 진상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명예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밀려난 뒤 계열사 지분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게 두산측 얘기다. 두산측은 "비자금을 만든 적도, 만들 이유도, 해외로 빼돌릴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외화 밀반출에 동원된 것으로 돼 있는 회사 건만 해도 지난해 이미 당국의 조사를 받고 무혐의처리됐다는 설명이다. 진정서 제출 시점도 오해를 살 여지가 없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진정내용은 좀 더 살펴봐야 알 것 같다"면서 "그러나 외견상 진정내용이 그리 정밀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05년 7월23일

 

두산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비자금 조성 및 외화 밀반출 혐의를 뒤집어 쓴 박용성 현 회장이 박용오 전 회장을 ‘경영권 탈취범’으로 규정짓고 정면 대응에 나서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박회장의 ‘강공’으로 두산발 제2의 ‘왕자의 난’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게 주된 분석이다. 검찰도 조만간 수사팀을 지정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어서 검찰수사 결과가 이번 사태의 종착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격 나선 박회장=형인 박전회장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박회장이 이번에는 반격에 나섰다.
박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사태의 본질을 "두산산업개발 경영권 탈취 미수사건"으로 규정했다. 박전회장이 두산산업개발을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다 실패하자 검찰에 형제들을 무고했다는 것이다. 박전회장을 '파렴치범'으로 몰아 분위기 반전을 꾀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두산그룹은 가족회의를 열어 박전회장을 설득했지만 결국 최악의 자충수를 뒀다는 설명이다. 또 박전회장의 둘째 아들인 박중원 두산산업개발 상무를 해임한 것도 '불씨'를 남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박전회장은 두산산업개발을 손에 넣기 위해 본인이 지정한 인사에게 그룹의 주식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두산은 박전회장측의 이같은 낌새를 알아채고 줄곧 수성작전을 폈다고 설명했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주)두산 상사BG 사장을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으로 승진시킨 것도 경영권 방어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기선 잡은 박회장=검찰 진정서 제출로 코너에 몰렸던 박회장은 형인 박전회장의 부도덕성을 집중 공격하며 정통성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룹 전체 분위기도 박회장에게 유리한 국면이다. 무엇보다 집안의 장자인 박용곤 명예회장과 동생인 박용만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우군세력의 지원이 든든한 방패막이 노릇을 하고 있다. 두산의 '법통'을 공식 인계 받은 정당성 역시 박회장의 무기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박회장이 이미 그룹의 경영 전권을 넘겨받아 실질적인 장악력을 확보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박전회장의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권'을 의미하는 지분구조 면에서도 박전회장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박전회장은 (주)두산 지분 1.4%가 고작이고 둘째 아들 박중원 상무는 (주)두산 0.3%, 두산산업개발 0.63%, 삼화왕관 0.19%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박회장은 단일 지분 면에서도 형을 앞서는 데다 '우군'을 합치면 박전회장을 압도한다.
박회장의 일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반격의 전면에 등장한 것도 이같은 자신감을 뒷받침한다.
◇숨 고르는 박전회장=박전회장측은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야구위원회(KBO)에 나와 업무를 봤다고 한다. 다만 장남인 박경원 전신전자 사장과 박중원 두산산업개발 상무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채 모처에서 대책을 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대 관건은 검찰수사다. 박회장이 "터무니없는 모함"이라며 "검찰수사에서 적극 협력할 용의가 있다"면서 자신감을 표명했지만 향후 검찰수사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진정서 내용이 사실무근이라 하더라도 수사과정에 의외의 '불씨'가 나온다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다.

 

 

 

 

경향신문2005년 7월26일

 

■'비자금 의혹' 본격 수사착수
검찰은 25일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측이 제기한 두산그룹의 비자금 조성 및 분식회계 의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박전회장측이 제기한 진정서 내용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박용성 현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 등은 배임 및 횡령, 재산국외도피 혐의 등으로 사법처리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이 과정에서 두산그룹의 정.관계 로비 부분이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박용성 회장측은 진정서 내용 자체가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고 진정서에도 혐의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증빙자료가 없어 검찰 수사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검찰은 우선 진정서의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부터 수사를 시작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검찰은 이르면 이번주 내에 진정서를 제출한 박전회장측의 손모씨를 불러 조사하고 보다 상세한 증빙자료를 요구할 방침이다.
검찰이 박전회장을 직접 소환해 조사하는 방안도 배제할 수 없다.
진정서에는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위장계열사를 통해 지난 20년 동안 총 1천7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이중 8백억원을 해외로 밀반출했으며 이 과정에 수백억원대의 분식회계가 있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같은 주장은 우리나라 재벌들의 전형적인 비자금 조성 방식이다.
특히 2003년 SK에 대한 검찰 수사 내용과 상당히 유사해 주목된다.
당시 검찰은 SK그룹의 천문학적 규모의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 혐의 단서를 포착했고 이를 바탕으로 결국 불법대선자금 제공 혐의까지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손길승 전 회장 모두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수사가 SK 수사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우선 SK 수사 때 검찰은 그룹에 대한 전면적인 압수수색을 통해 분식회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자료를 모두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두산 수사에서 검찰이 갖고 있는 것은 15쪽 분량의 불명확한 진정서뿐이라는 한계가 있다.
진정서의 내용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도 문제다. 박용성 회장측은 "진정서에 거론된 기업 모두를 합쳐도 연간 매출이 7백억원에 불과한데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만든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며 "해외밀반출 부분도 이미 금융당국에서 조사받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 "제기된 의혹 곧 공개해명"
검찰의 비자금 의혹 수사 착수와 함께 두산그룹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두산은 일부 임직원들이 예정됐던 휴가를 가는 등 외견상 평온함을 되찾는 분위기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검찰 수사에 대비, 해명자료를 만들고 대책 회의를 갖는 등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25일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에 배정됐지만 검찰이 당분간 내사를 벌인 뒤 소환조사를 할 것 같다"며 "당장 검찰에 불려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로선 구체적으로 밝힐 만한 것이 없다"며 "조만간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해명하는 자리를 갖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산은 이미 내부적으로 박용오 전 회장이 제기한 의혹들을 검토한 결과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박용만 부회장은 이날 점심시간 중 기자들과 조우하자 황급히 자리를 뜨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다. 일부 기자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따라붙었지만 두산 직원들의 육탄 제지로 무산됐다.
박용오 전 회장측의 진정서에 따르면 박부회장은 외화 밀반출과 함께 친구들을 투자시켰다가 부실이 난 엔세이퍼를 두산중공업 등 계열사에 넘겨 80억원의 손실을 입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의혹의 한 가운데 서있는 박부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기 전 기자들과 직접 만나 얘기해봤자 좋을 게 없다는 속내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두산 홍보실 관계자는 "박용성 회장이 이미 검찰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제시한 마당에 박부회장이 말을 아낄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두산은 '형제의 난'에 따라 검찰의 그룹 수뇌부 소환이 임박해짐에 따라 이달 중 발표하기로 했던 '두산웨이'도 무기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두산측은 "두산 고유의 경영철학을 집대성한 두산웨이의 일부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올 봄에도 연기한 적이 있다"면서 "이번 사태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두산은 오너들의 검찰 소환에 대해서도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조직이기 때문에 회장단이 소환되더라도 경영 공백은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회장의 회장 승계 작업은 검찰 수사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향신문 2005년 8월 9일

 

두산산업개발이 2천8백여억원 규모의 분식회계 사실을 자진 고백했다. 두산그룹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책임 문제가 불거질 경우 자칫 '칼끝'이 박용오 전 회장에게 향할 수 있다. 박용성 현 그룹회장이 반격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전회장의 검찰투서로 발발된 '형제의 난'이 분식회계 고백으로 '2라운드'에 접어드는 양상이다.
◇두산의 분식회계 고백=두산산업개발은 1995∼2001년까지 매출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2천7백97억원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8일 공시했다.
해당연도의 진행중인 공사 진척도에 따라 매출을 계상해야 하는데 공사 진행이 실제보다 더 이뤄진 것으로 회계처리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매출채권과 잉여금이 과다계상됐다는 것이다.
지난 5월 대한항공이 분식회계를 자진 고백한 이후 2번째 사례다.
두산산업개발은 02∼04년까지 87억원을 털고 남은 과다 계상분 2천7백97억원을 금년 결산에 전액 반영해 자진해소할 방침이다.
두산산업개발은 이번 조치로 부채비율이 일시적으로 약 650%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홍구 두산산업개발 사장은 "당시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공식 사과했다.
◇동생의 반격?=두산은 이번 분식회계 자진고백이 '형제의 난'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그룹회장에 취임한 박용성 회장이 두산산업개발의 업무보고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즉각 해소토록 지시했다는 것.
두산 관계자는 "박회장이 분식회계 사실을 보고받고 노발대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형제의 난'과는 전혀 별개의 사안으로 다른 계열사들에선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식이 박용오 전 회장의 재임기간 중 발생한 일인데다 '형제의 난'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자진고백했다는 점을 들어 박전회장측을 압박하기 위한 고도의 전술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검찰수사를 앞두고 먼저 먼지를 털고 박전회장의 책임론도 부각시키는 일석이조의 승부수라는 것이다.
두산그룹 주변에서는 최근 박전회장이 2차 자료공개를 검토중이라는 얘기도 나돌아 긴장감은 더 높아지고 있는 국면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현직 회장간에 '진흙탕 싸움'으로 사안이 더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박전회장과의 화해 분위기는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면서 "지금은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국면"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두산은 자진고백 형식을 빌려 금융감독위원회 감리는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검찰 수사는 다르다. 현재 두산그룹의 비자금 조성 및 외화 밀반출 혐의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이번 분식회계 역시 어떤 형태로든 검찰 수사망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형렬 기자 rhy@kyunghyang.com
■'분식' 두산 처벌하나
금융감독원은 매출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2천8백억원대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8일 자진 공시한 두산산업개발에 대해 증권집단소송제 유예조치를 적용, 과거분식에 관해 금감원 차원에서 제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감리 전에 분식회계를 자진신고한 기업은 두산산업개발이 처음이다. 금감원은 증권집단소송제 시행을 내년 말까지 유예하면서 지난 3월 외부감사에 관한 규정을 고쳐 분식회계와 관련해 내년 말까지 분식회계를 자진신고한 기업은 감리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감리전에 고백하면 감리면제, 즉 사실상의 제재 감면을 하고 감리중 고백하면 제재수위를 2단계 낮춰주기로 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날 "두산산업개발의 공시는 감리전 고백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식회계와 관련해 집단소송제와 민.형사 소송은 원래 구별돼 있다. 따라서 현재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중인 만큼 이 과정에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위반 등에 따른 처벌은 별개 사안이다

 

경향신문 2005년 8월11일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두산그룹 박용오 전 회장측이 10일 상대인 박용성 회장측의 비리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물을 갖고 있다"고 밝혀 두산가 '형제의 난'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두산그룹이 박전회장 재임기간 중의 분식회계를 공개하자 박전회장측이 두산그룹 오너 일가의 1백30억원대 대출이자 선납 사실 폭로로 '맞불작전'을 펼치면서 양측 분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형의 대반격=박전회장의 한 측근 인사는 "박용성.용만 형제의 비리를 입증할 장부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판 X파일'의 존재를 내비친 것이다.
그는 "검찰 진정서에 제기된 의혹들을 입증할 증빙서류를 이미 검찰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검찰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관련 문건을 언론에 공개할 수 있다는 의중도 내비쳤다. 또 다른 측근도 "아직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해 추가 폭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제기된 의혹들을 전면 부인한 가운데 박전회장측에서 의혹 입증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재역공에 나선 것이다.
◇막가는 폭로전=박회장이 형 재임기간 중 생긴 분식회계를 공개하자 이번에는 형이 재반격에 나섰다. 박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들이 그룹사 유상증자 과정에 은행 대출금에 대한 이자 1백38억원을 회삿돈으로 대납한 사실이 새로 불거졌다. 2000년 이후 두산그룹 오너 일가 28명이 금융권에서 대출받은 2백93억원의 유상증자대금에 대한 이자를 두산산업개발이 대신 지급해줬다는 것. 이들 중 박전회장을 제외한 일부는 시빗거리를 피해 최근 이 돈을 갚았다고 한다. 두산은 "회사구하기에 참여해준 보상차원에서 이자를 대납해줬다"는 해명이지만 재계에선 "대여금 형식이 아닌 단순 대납이라면 명백한 배임.횡령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1995∼2001년까지 적자 상태였는데도 분식회계로 장부상 흑자를 만든 뒤 3차례에 걸쳐 약 53억5천만원의 배당금도 지급했다. 배당금 중 오너 일가에 절반 가량인 25억원이 돌아갔다.
◇위기의 두산=양측의 폭로전은 점입가경이다. 이 바람에 회사만 죽을 맛이다. 두산그룹이 공개한 분식회계 건이 당장 문제다. 두산산업개발이 지난해 3월 고려산업개발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합병비율 문제가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당시 고려산업개발과 두산건설(현 두산산업개발)은 당시 주가를 기준으로 0.76대 1의 비율로 합병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에 당시 두산건설의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면서 고려산업개발이 상대적으로 합병비율 상 손실을 봤다는 얘기다.
당시 주주들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경우 법정소송도 피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또 기업평가기관인 한국기업평가는 분식회계 건이 문제가 된 두산산업개발을 '부정적 검토대상'으로 분류했다. 신용도 하락에 따른 향후 손실은 예측키 어려울 정도다

 

 

경향신문 2005년 8월12일

 

두산그룹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박용오 전 회장측이 '전세'를 뒤집고 대반격에 나서 탄력이 붙는 모양새다. 기선을 잡고도 수성에 실패한 박용성 회장측은 "우리가 폭로할 게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반격 채비를 서두르고 있어 양측의 폭로전이 더 혼탁한 양상으로 번질 조짐이다.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이번 진흙탕 분쟁은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판가름이 날 공산이 커졌다.
◇형의 뒤집기=박전회장측은 최근 큰아들인 박경원 전신전자 대표의 오랜 친구를 언론담당관으로 내세워 언론과의 직접 접촉에 나서고 있다.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뒤 한때 언론을 기피했던 것과는 영 딴판이다.
여기에 법무법인 로고스 소속의 변호사도 합류해 기존의 손병천 전 춘천CC상무, 안기부 출신의 송재혁 KBO 총재 특보와 함께 '공격진'을 꾸렸다. 이들은 박경원 대표를 주축으로 대외전략을 수립하는 한편 그룹 내외에서 각종 제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 오너일가의 도덕성에 타격을 가한 두산산업개발의 이자 대납 건도 이들의 합작품이다. 박전회장측은 검찰 수사를 예의주시하는 한편 추가폭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시기를 조율 중이다.
◇박용만 부회장에 쏠리는 화살=박전회장측은 박회장과 박부회장의 동반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양자에 대한 공세수위엔 차이가 있다. 한 측근은 "박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IOC 위원으로 대외활동에 전념하면서 구체적인 사실은 모를 수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반면 박부회장에 대해선 "10년간 그룹실무를 총괄하는 등 이번 사태의 핵심인물"로 지목했다. 실질적인 타깃을 박부회장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한 측근은 "위장 계열사인 넵스를 통해 두산산업개발의 주방가구 물량 및 목공사, 마루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독식하는 형식으로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직공했다. 그는 또 "몇년간 꾸준히 주식을 매입해 지분율을 늘려왔는데 자금출처도 의심스럽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넵스 외에도 뉴트라파크(NPI), 엔 세이퍼, 일동 여행사도 박부회장과 연관이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저쪽에서 박부회장을 가장 무서워하는 것 아니냐"며 "자신 있으면 뒤에 숨지 말고 떳떳하게 나와서 말하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도 박전회장 일가의 비리에 대해 폭로할 자료가 있지만 참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경우에 따라선 맞불작전으로 나설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경향신문 2005년 8월13일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은 그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미스터 쓴소리'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사회 전반에 대해 거침없었던 그의 직설화법이 통할 수 있었던 것은 "박회장은 깨끗할 것"이라는 도덕적 신뢰가 깔려 있었다.
'형제의 난' 속에 드러난 두산 오너 일가의 부적절한 행태는 '미스터 쓴소리'는 다르겠지 하던 사람들의 믿음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수신제가(修身齊家)'에 눈감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는 공허할 뿐이다.
그는 입만 열면 시장논리를 강조했다. 회사가 오너 일가의 은행대출 이자까지 대신 내주는 게 시장논리는 아닐 것이다. 그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창했다. 적자를 내고서도 분식회계를 통해 흑자로 만든 뒤 배당을 받은 사실은 세계시장에서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두산의 한 임원은 "두산에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부정을 저지르면 바로 퇴출"이라며 깨끗한 기업문화를 자랑한 적이 있다. 그 깨끗한 문화도 오너 일가엔 예외인 듯하다.
해명과 변명은 있어도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는 그의 '쓴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109년간 쌓아온 두산그룹의 도덕성과 '미스터 쓴소리'의 자부심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박회장은 내부적으로 "진실은 하나이고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면서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형인 박용오 전 회장 측근들을 향해 '분노의 칼'을 휘두르는 모습에선 '3족을 멸할 듯한' 살기까지 느껴진다.
두산은 현재 위기다. 그 열쇠는 박회장이 쥐고 있다. 국민들에게 사랑받았던 그의 참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제 박회장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진흙탕 사태가 지속되면서 결국 박용성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직을 사임하게 됩니다.

 

국민일보 2005년 11월 5일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이 그룹 회장직 및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사임했다고 두산그룹이 4일 밝혔다. 박 회장의 동생인 박용만 두산그룹 부회장도 동반 사퇴했다. 박 회장의 사퇴는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사법처리가 임박함에 따라 회사 경영의 부담을 더는 동시에 검찰의 기소 및 법원의 재판을 앞두고 호의적인 여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산측은 “박 회장이 오늘 오후에 소집한 긴급사장단 회의에서 그룹 회장직 및 대한상의 회장직을 사임한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IOC 위원,국제상업회의소(ICC) 회장 등의 국제적 직위는 향후 법적 처분에 따르기로 했다고 두산측은 덧붙였다.
다음주 중 검찰의 불법 비자금조성 관련 수사발표를 앞두고 있는 박 회장 형제가 동반 퇴진함에 따라 회사는 당분간 계열사 사장단 중심의 비상경영위원회 체제로 운영된다고 두산측은 밝혔다. 비상경영위 위원장은 유병택 ㈜두산 부회장이 선임됐다.
비상경영위는 다음주 초 세부적인 그룹 경영방침을 논의할 예정이며 향후 그룹차원의 현안을 결정하는 한편 선진적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수립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경향신문 2005년 11월 10일

 

검찰이 수백억원대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두산그룹 총수 일가를 전원 불구속 기소키로 결정함에 따라 힘있는 자에게 약한 검찰이라는 비판이 다시 일고 있다. 정상명 검찰총장 내정자가 검찰 지휘봉을 잡은 뒤 처리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향후 검찰의 칼날이 무뎌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국익 위해 불구속' 논란=검찰이 박용성 전회장을 불구속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모두 수사외적 요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과 국제상공회의소(ICC) 회장을 맡고 있는 박전회장이 구속될 경우 현재 진행중인 현안이 국익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박전회장은 IOC위원으로서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와 IOC총회 부산 유치를 위해 활동중이다. 또한 세계 138개국의 경제단체와 기업이 가입한 ICC회장의 국제적 명성과 영향력을 감안해야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체육계와 경제계, 부산시로부터 박전회장에 대한 선처 요청이 쇄도했고 이는 검찰로서도 감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용성.용만씨 형제가 지난주 두산 회장.부회장직에서 사임한 것은 검찰의 '불구속처리'를 위한 수순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최소 3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 총수 일가의 주식인수대금 이자 등에 대납하는 등 지극히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에 대해 불구속 기소를 한 것은 다른 재벌비리 사건과의 형평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투병중인 김우중 전 대우회장과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회장,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 박건배 전 해태그룹회장 등 이른바 '끈 떨어진 재벌'에 대해서는 구속수사를 한 전례가 있다.
◇삼성 이회장에도 영향?=검찰이 박전회장의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하면서 IOC위원이라는 신분을 적극 고려했다고 밝힘으로써 안기부 도청사건과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의 피고발인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수사에도 영향을 줄 것인지 주목된다.
이회장도 역시 IOC위원이다. 또 이회장이 국제 경제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박전회장을 능가한다. IOC위원은 스포츠계 최고의 명예직으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자 없이 입국이 허용되는 등 최상급 예우를 받고 있다. 따라서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이회장이 귀국 후 검찰 조사를 받고, 고발 내용이 형사처벌을 받을 만큼 사실에 부합된다 하더라도 검찰이 이회장에 대해 박전회장과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두산사건 처리가 다른 사건의 기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간 검찰의 수사 전례는 유사한 사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처리는 향후 이회장 조사와 처리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아울러 두산과 삼성 이외의 많은 재벌 총수들이 체육계, 예술계 등 각 분야에서 민간 외교 사절로 활동하고 있고 국가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검찰이 '자충수'를 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형제간 분쟁에 검찰조사 등을 겪고 파문을 일으켰던 두산가는 경영일선에서 퇴진하며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 했으나 2년여 지나면서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하게 됩니다. 

 

 

경향신문 2007년 7월24일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사진)의 경영 일선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두산그룹은 다음달 열릴 주주총회에서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을 두산중공업 등기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횡령 및 분식회계 관여 혐의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사면된 지 불과 보름 만의 경영복귀 발표다.
박용오 전 회장과의 '형제의 난' 이후 불거진 수백억원대의 회삿돈 횡령 혐의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점을 감안할 때 섣부른 경영복귀 아니냐는 비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 전 회장은 이달 초 사면 이후 "대주주로서 권한과 책임을 다하겠다"며 두산중공업 이사회 의장직 수행의사를 밝힌 바 있어 이번 주총을 통해 이사로 등재되면 조만간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은 또 고(故) 박두병 초대회장의 5남인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을 두산중공업과 (주)두산 등기이사로, 제임스 비모스키 (주)두산 부회장을 (주)두산의 등기이사로 각각 선임할 예정이다.
이번 선임안이 다음달 중순께 개최될 주주총회에서 통과되면 두산그룹은 박용성 전 회장(3남)과 대립했던 박용오 전 회장(2남)만 빼면 사실상 '형제의 난' 이전의 경영체제로 돌아가게 되는 셈이다.
최근에는 그동안 그룹경영에 참가하지 않았던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4남)까지 두산산업개발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돼 맏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을 수장으로 용성, 용현, 용만 오너 3세 형제들이 두산 주요 계열사 경영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당장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이날 박 전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전면 경영복귀에 반대하며 직접 주총에 참석, 두산중공업 등기이사 선임안 반대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히는 등 또다시 거세지는 반대여론이 변수다. 경제개혁연대는 주총에서 두산중공업 소액주주들을 상대로 의결권 위임 운동을 벌이는 등 등기이사 선임 무산을 위해 필요한 법적 절차를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두산측은 "계열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고 박 전 회장 등은 등기이사로서 글로벌 경영과 지주회사로의 전환 등 그룹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만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가 싶더니 또 다시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듭니다. 박용오 전 회장의 자살소식이 전해진거죠. 스트레스에 경영난

등이 겹치면서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피를 나눈 형제간이 원수가 돼 갈라서고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셈입니다.

 

경향신문 2009년 11월 5일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4일 가족들과 두산그룹 직원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평소에도 인적이 드문 박 전 회장의 서울 성북동 빌라촌 자택에는 경찰 수사팀만 분주히 오가는 등 종일 적막감이 흘렀다. 취재진 등 외부 인사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됐고, 정오쯤 경찰 과학수사팀과 형사들이 도착해 2시간여 동안 내부 감식작업을 벌이고 돌아갔다.
박 전 회장은 2004년 부인과 사별한 뒤 이곳에서 혼자 살아왔다. 매주 월요일 성지건설에 출근해 회사 일을 점검하고, 하루 이틀씩 지방으로 등산을 다녀오곤 했으나 대체로 집에 머물러온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회장을 병원으로 이송했던 빌라 경비업체 관계자는 “이송 당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평소 운동도 자주 하시고 아주 건강한 분이셨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침통한 분위기 속에 가족과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형제 중 맏형인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은 오전 11시쯤 지팡이를 짚고 장례식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어 동생인 박용현 현 두산그룹 회장, 박용만 (주)두산 회장,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 등도 굳은 표정으로 들어섰다.
중국 출장 중 급거 귀국한 동생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밤 9시40분에 빈소에 도착,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절을 한 뒤 박 전 회장의 두 아들과 악수하고 내실로 들어갔다. 그는 앞서 공항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만 한 뒤 홍보실을 통해 “놀랍고 착잡하다”고 밝혔다.
구속 중인 둘째아들 박중원 성지건설 전 부사장은 법원으로부터 구속집행정지 허가를 받아 오후 4시20분쯤 빈소를 찾았다. 그는 고인의 영정 앞에서 묵념한 뒤 형 박경원 성지건설 부회장을 끌어안고 끝내 오열했다.
이어 유영구 KBO 총재, 구본무 LG 회장, 이수영 경영자총협회 회장, 신창재 교ㅂ보 회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등이 차례로 빈소를 찾았다. 고건 전 총리, 원혜영 의원, 이종찬 전 의원 등 정치인들도 빈소를 찾았다.
박 전 회장의 시신은 6일 오전 부인 최금숙 여사가 묻혀 있는 경기 광주시 선영에 합장될 예정이다

 

이런저런 사태를 겪은 뒤 두산그룹은 현 회장인 박용만 회장 체제로 개편됩니다.

 

경향신문 2012년 3월31일

 

박용만 두산 대표이사 겸 두산인프라코어 회장(57·사진)이 두산그룹 총괄회장에 선임됐다. 두산그룹은 30일 “이사회를 열고 이사회 의장에 박용만 회장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두산그룹을 이끌어왔던 박용현 회장은 두산그룹 연강재단 이사장,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을 맡아 사회공헌활동에 주력할 계획이다.
박용만 신임 그룹 회장은 그룹 창업주인 고 박두병 회장의 6남1녀 중 5남이다. 박용현 회장은 4남이다.
두산그룹은 형제들이 번갈아가며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는 것을 전통으로 삼아왔으나 2005년 7월 ‘형제의 난’이 발생하면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당시 장남이던 박용곤 회장은 3남인 박용성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넘기려 했다. 이에 차남인 박용오 회장이 반발했다. 박용오 회장은 이사회 전날 검찰에 ‘그룹 비자금 조사의뢰’ 내용이 담긴 진정서를 제출했고, 이후 양측은 골육상쟁을 치렀다. 하지만 그룹 회장직은 당초 계획대로 박용성 회장에게 넘어갔다. 이후 박용오 회장은 2008년부터 아들과 함께 성지건설을 운영하다 2009년 자살했다.
박용현 회장은 2009년 박용성 회장으로부터 그룹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박용현 회장은 이날 “2009년 취임 이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한 후 물러나 사회공헌활동에 좀 더 시간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지주회사 전환으로 경영체제가 안정되었고 이제는 글로벌 기업으로 본격 성장시키는 데 최적임자가 맡아야 할 때라고 생각해 결정을 내렸다”고 말한 것으로 두산그룹 측은 전했다.
두산 측은 이번 회장 선임이 자다스럽게 이뤄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용만 회장이 이미 대표이사로 그룹 내 의사결정에 상당 부분 참여해왔기 때문에 업무에도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박용만 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 보스턴대학교 경영학석사(MBA)를 졸업하고 외환은행에 근무하다 1982년 두산건설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두산음료, 동양맥주, (주)두산 전략기획본부,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거쳤다. 특히 두산이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소비재 그룹에서 글로벌 인프라지원 기업으로 변모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현재의 사업구조 변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M&A) 등 굵직한 역할을 수행해 형제간에도 상당히 신뢰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OB맥주 등 주력사업을 매각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미국 밥캣 등 주요 인수·합병을 진두지휘하면서 두산을 소비재 기업에서 중공업 그룹으로 변신시켰다. 이 과정에서 두산의 산업재 비율은 1998년 33%에서 지난해에는 90%까지 높아졌다. 매출도 같은 기간 3조4000억원에서 26조2000억원으로 7.8배 성장했다. 해외매출 비중도 12%에서 61%까지 높아졌다.
기업인으로서 사회적 이미지도 좋은 편이다. 박용만 회장은 “기업의 의사결정은 고독한 영웅이 밤을 지새우며 내리는 결정이 아니다”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격의 없는 소통, 인재 경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임직원들과의 허물없는 소통을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을 만들었다. 트위터 팔로어는 13만명을 넘어 기업인에 대한 경직된 이미지를 깼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광고 카피를 직접 쓸 정도로 인재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대학생 등 젊은 세대와의 소통에도 능하다.
박 회장은 오는 5월 ‘두산 웨이(way)’라는 새로운 그룹 철학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리고 2013년 7월29일, 박용만 회장은 대한상의 차기 회장 후보로 추대됐습니다.

 

경향신문 2013년 7월30일자

 

 대한상공회의소 차기 회장으로 박용만(59·사진) 두산그룹 회장이 추대됐다. 서울상공회의소는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긴급 회장단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박 회장을 서울상의 신임 회장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서울상의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을 겸임해 온 관례에 따라 박 회장은 대한상의 신임 회장직도 맡게 된다.
 박 회장이 후보를 수락하면 다음달 12일 열리는 서울상의 의원총회에서 회장에 취임한다. 대한상의 회장은 다음달 21일로 예정된 의원총회를 거쳐 공식 취임한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이날 “전체 부회장 16명 중 10명이 참석해 회장단 회의를 열고 박 회장 추대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면서 “경제단체 대표로서의 충분한 자질과 위상을 갖춘 분이라는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후보로 거론된 김영대 대성그룹 회장은 연세가 71세로 많아 회장 직은 후진에게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며 고사했다”고 밝혔다.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5남이자 박용성 회장의 동생인 박 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보스턴대를 나온 뒤 1982년 두산건설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두산그룹 회장에 오른 뒤 서울상의 회장단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며 회원사들의 관심사를 논의해왔다.
 대한상의 회장의 임기는 3년으로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박 회장은 중도 사퇴한 손경식 전 회장의 잔여 임기를 채우게 되며, 잔여임기는 연임 임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손 회장의 잔여임기는 2015년 3월까지로 1년7개월 가량이 남았다.
 박 회장이 상의 회장에 추대됨으로써 두산그룹은 고 박두병 초대회장, 전문경영인이던 정수창 전 회장, 박용성 전 회장 등 4명의 상의 회장을 배출하게 됐다. 박 회장은 강력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으로 소비재 중심이던 두산그룹을 중공업 기반 기업으로 바꾸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카피를 직접 쓰기도 한 그는 매년 대학가를 돌며 직접 취업설명회에 나설 정도로 인재 선발과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6만명이 넘는 팔로어를 보유한 ‘파워 트위터리언’이기도 하다.

 

 

파워트위터리언으로 알려진 박용만 회장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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