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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토크

못다한 이야기/ 김제동 윤도현

by 신사임당 2011. 8. 31.

 

 

지난 8월중순 이뤄진 인터뷰입니다.
늦은 시간 만나는 바람에 하품하며 대화를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둘은 닭살스럽다가도 때론 티격태격하는 것이 마치 톰과제리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이해하는
그전에 서로를 너무나 좋아하는
인생의 동반자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윤도현씨는 이날 다리가 좀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약간 절길래 왜그러느냐 했더니
머리가 너무 무거워 소파에 머리를 체중을 실어 기댔는데
그만 소파가 뒤집어 졌답니다.
그래서 무릎을 세게 찧어서
이날 내내 절룩거리며 다니고 있었습니다.
설명을 듣고 상황이 잘 이해가 안가긴 했지만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데
김제동씨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소파가 뒤집어질 수 있느냐고
궁금해했습니다.

서로 궁금한게 뭐가 있냐며,
알고 싶은게 없다고
튕기는가 싶더니
이내 10년의 세월을 되짚어보고
옛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김제동씨가 인맥 넓기로 유명하고
마당발인것으로 소문났는데
곁에서 보노라면
좌도현 우승엽 ...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을 살며 진정한 자기 편 하나만 만들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데
제동씨가 그런 면에서는
참으로 부요한 인생을 산다고 느껴졌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체 내용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지면 기사는 이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왜 돈이 없지?
“결혼을 해. 여자가 있어야 관리해주지”
-알거든.
“궁금한게 뭐야?”
-궁금한 거 없어. 아무것도. 형한테는. 오늘 바빴어?
“아침 7시에 나왔어. 뭔지 모르고 갔는데 알고보니 경기도 행사던데. 기자회견도 하는. 그거 잘 알아보지도 않고 갔는데 완전히 공식 행사더구만. 미안해 죽는 줄 알았네”
-그래도 파주 세탁소집 아들로 출발해서 경기도가 부르는 가수로 컸네.
“파주 찬가도 불렀어. 2년전에 록으로 버전 바꿨었는데. 그전엔 파주 찬가가 교가 같았거든. 뭔지 알지?”
-응. 알죠.
“우리가 록으로 바꿔 불렀지”
-교가도 록으로 바꾸면 어떨까?
“요새 추센가봐.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부산노래지, 목포는 항구다는 목포노래, 춘천가는 기차는 춘천노래 됐지. 대중가요 지명에 나온 노래가 있으면 그 지역 노래가 되는 것 같아. 구태의연한 노래를 억지로 만들면 안불러. 불러줘야지. 그래서 요새 추세가 다 바뀌는 것 같아. 지역 노래가.”
-노래는 그렇죠. 사람이 불러줘야 생명력을 가지는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가수다는 많은 생명력을 가졌던 것 같아. 끝났는데 어때?
“즐거웠지. 고마웠고. 난 정말 땡큐야. 잠을 좀 못 잔건 빼고 정말 고마운 일만 안겨줬지. 그래서 앞으로 더 잘해야 할 것 같아.”
-여러가지로?
“그렇지. 행동거지도 조심해야하고. 모든 것을 조심해야지. 사람들이 봤을 때, 얘들 잘돼서 변했다 이런 소리 안들어야 할 것 같아. 그런 소리는 한번 들어봤잖아. 월드컵때. 월드컵으로 떴으면서 월드컵을 부인했잖아.”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안했겠다 싶지?
“그렇지. 그런데 그때는 진짜로 어딜 가든 그 이야기만 하니까 거기에 지쳤던 것 같아. 그래도 계속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만 했어야 하는데 어리광같은게 있었던 것 같아. 우린 그전에도 음악 계속 해왔었다며, 괜히 어리광 투정 부려서 욕만 먹은거지.”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것 같아. 위치가 그렇데 되면 자기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그래지는거지. 다스리지도 못하고. 나도 형한테 욕 많이 먹었잖아요. 정신 못차린다고.
“누구나 한번씩 그런일이 있는거 같아. 처음엔 듣기 싫어도 나중에 반성하잖아. 그때부터 슬슬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그런데 막상 휩싸여 있으면 몰라요.
“그래, 몰라. 너도 몰랐잖아. 그렇게 충고해도.
-어떤 충고였지?
“똑바로 하라고 했지. 넌 너무 답답해., 여자를 만날 준비가 전혀 안돼 있어. 하나를 보면 열을 알거든. 너네 집에 가봐. 냉장고 열면 한달넘은 우유랑 묵은지를 넘어서 곰팡이 슨 김치까지. 뭐 먹을 것 없냐면 내놓는 수준하곤... 집이 크면 뭐해. 너네 집은 집 크기에 비해 내용물이 너무 허접해”
-남자 혼자 사는 집이 그렇지 뭐. 그런 집에 남자 혼자 놀러와서 뭘 바래.
“난 혼자 살아도 그렇게 안했거든. 청소하고 밥해먹고. 사람사는 집처럼 살았어. 넌 집만 커.”
-우리집이 그렇게 더러워요?
“집 자체가 방황이야. 안정이 안돼있고 돌아다녀. 넌 네 집 안에서 방황하고 있고. 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통닭 시켜먹는 것도 매니저한테 물어봐. 매니저가 너네 동네 사는 것도 아닌데.”
-나야 고기를 안먹으니까 평소 닭 시킬 일이 없으니까 그런거지.
“어쨌든 어정쩡해. 집에서도 방황하고. 뭔가 확실해야지. 그래서 여자가 없어.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냐. 여자랑 술먹을 때도 그럴거야. 안봐도 뻔해. 재미없는 이야기만 골라서하고. 자기 안에 있는 이야기만 하는거야. 등산갔던 이야기, 산사갔던 이야기, 좋아하는 책 이야기...”
-아, 나 이거 인터뷰 못하겠다. 대충 끝내자. 그래. 형 이제 나가수 끝났으니 뭐할거야?
“할 것 많지. 앨범 만들어야하고.
-나가수 이전에 하강곡선 그렸다는 이야기도 했잖아.

 

“나는 김제동이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뭐든지 바뀌어. 사랑받으면 방송도 잘돼.”
-인정해요. 나 그런데 사랑받고 있어.
“그런 사랑 말고. 한 여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그래. 인정해요.
“그럼 고칠려고 노력해야지”
-형 오면 라면도 끓여주고 햇반도 주고 하잖아요.
“넌 누가 오면 상차릴 때 보면 모든 허접함이 드러나. 나같으면 과일 하나를 내와도 썰어서 예쁘게 접시에 담아서 소반에 담아서 주는데 넌 뭐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자기집인데 뜨거운 물이 어떻게 나오는지도 몰라. 하수도는 맨날 막혀. 그러면 또 이를 가. 고칠 생각은 않고.”
-무슨 소리야. 하수도에서 쥐가 나와서 이사간거야. 그리고 내가 형 왔을 때 바나나 줬잖아. 그럼 바나나를 까서 주냐?
“진수성찬을 달라는 게 아냐. 자기 인생 정리가 안된다는 거지. 옷도 양말도 팬티도 어디있는지 몰라.”
-요즘은 밥해서 열무김치 놓고 양념까지 다 닦아 먹어. 설겆이 거리가 없어.
“너희집 안간지 한달 반 정도 됐는데 그새 바뀌었으면 다행이고. 나는 니가 토크콘서트 준비하는 것 만큼의 10분의 1만 네 생활에 열정을 쏟아 가꾸라는거야. 니 옷장 열어보니 가관이더라. 겨울 옷이랑 여름옷이랑 섞여있고 어디 뭐가 있는지 정리도 안돼고. 노홍철 100분의 1만이라도 따라가면 좋겠어. 뭐든 가르쳐줘도 맨날 몰라서 맨날 물어봐. 속이터져. 그러니 어떤 여자가 좋아해. 알아서해야지.”
-아우, 담배 좀 줘봐.
“네 어머니도 그러시잖아. 반성안하냐?”
-알았어요. 형도 연습시간에 늦게 나오지 마요. 형이 안나오면 다른 멤버들이 다 기다리잖아. 맨날 연습때마다 20~30분씩 늦는다면서. 연습하다가 컨디션 안좋다고 먼저 들어가고.
“그럼 목소리가 안나오는데 어떡하냐.”
-자기 몸 관리부터 잘하라고. 난 구혜선씨가 살던 집에 그대로 들어가 있는데 거기 인테리어든 뭐든 어떤 것도 손대고 싶지 않아요.
“됐어. 너네 집에 가서 씨디 케이스 열어보면 알맹이가 없거나 엄한게 들어가 있어. 어떻게 된지도 몰라. 자기집인데. 너 한동안 TV도 어떻게 트는지 몰라서 못켜고 살았잖아. 그리고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있는지는 알아? 기부하는 것도 좋아. 그런데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도 봐야지. 그러면서 왜 돈이 없지 이러면 남이 어떻게 아냐?”
-관리해 줄래요?
“니 돈인데 왜 내가 관리해”
-여튼 요즘 우리집은 파리가 미끄러질정도로 깨끗해요.
“그럼 다행이고. 그래야 니 삶이 바뀌는거야.”


-나가수 하면서 나를 안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아. 편집돼서 그런지 내가 형한테 뭐라고 하고 막 대하는 장면만 많이 나오니까. 댓글 보니까 동생한테 함부로 한다는 댓글도 있어. 내가 형인줄 알아요. 그러면서 동생한테 윽박지르지 말라고 그래요. 분명히 방송에서 계속 도현이형이라고 했는데. 그리고 대기실에 있는 다른 팀들은 서로 묻고 재미있게 많이 하는데 우린 별로 할 말이 없잖아요. 일주일에 4, 5일씩도 붙어 있다보니까.
“궁금한게 없는 건 아니고 그냥 얼굴만 봐도 다 아니까. 그래서 굳이 말로 안하는거지. 방송은 서로 에너지를 주고 받아야 하는데 우린 방송이라고 그걸 주고 받기보다는 얼굴만 봐도 너무 잘 아니까 그걸 안한거지. 말로 했어야 하는데. 난 그래서 제동이 너한테 많이 미안해. 나가수가 제동이 너한테 별로 득이 된게 없는 것 같아서. YB가 잘된 것에 비하면. 시간도 많이 할애했고 고민도 많이 했는데, 그거에 비해 방송분량이 좀 그랬지. 우리 잘못인거야. 어떤 날은 우리가 욕심내면 많이 나오기도 해. 그리고 초반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면서 의욕을 잃었던 것 같아. 사실 그런 것 때문에 너한테 미안해.”
-형이 그런 생각 갖고 있다는 게 형한테 미안하지. 가수를 위한 프로그램인데 가수가 돋보이는건 당연하죠. 그런데 끝나서 기분은 어때요?
“후련하지. 좋고. ”
-난 YB가 너무 좋았어요. YB로 인해 그렇게 행복한 것도 좋았고. 승엽이가 스리런홈런 쳤을 때의 느낌같았거든.
“음악적으로 네가 진지하게 접근했어. 그러다보니 재미가 덜 해서 부각이 덜 된거야. 넌 웃겨야 한다고.”
-못 웃기겠어요.
“뜨거운 사랑을 해야 가능해. 그래야 웃음으로 들었다 놨다 할 거아냐. 체 게바라 같은 혁명가도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는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고. 박노해 시인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 사랑이 제일 중요한거야. 사랑이 있을 때 그 사람이 빛이나거든. 네가 음악하는 사람처럼 음악으로 사랑을 노래하고 가사를 쓸것도 아니잖아. 넌 에너지가 넘쳐야 사람들을 웃길 수 있어. 그러니 사랑해야해.”
-사랑하면 음악도 잘됐어요?
“잘 됐지. 그럼. 결혼하면 외로움이 없어져서 슬픈 노랠 못 부를 것 같다는 사람들이 있어. 안해봐서 그래. 결혼을 하고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외로운건 외로운거야. 사람이 있다고 외롭지 않은 건 아냐. 다른 부부들도 마찬가지지. 연예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왜 우울증을 겪겠어. 사람이 항상 주변에 넘쳐나는데. 어쨌든 너는 사람을 만날 긍정적인 준비가 없어. 너 미래를 생각할 때 어떠니? 미래에 대한 계획 이런것 말야.”
-저 나름 열심히 살아요.
“멀리 보고 살아, 가까이 보고 살아? ”
-멀리보고 살진 않는 것 같아요. 솔직히 큰 욕구나 의욕은 없어요.
“그게 문제야. 의욕이나 욕구가 없으면 감사도 없어. 그게 있어야 감사가 생겨. 없으면 무슨 감사야. 안주고 안받자는 마음인데.
-그렇게 무기력하다는 건 아닌데 힘들긴 힘들어요.”


“러브레터 봄개편때. 월드컵 전에 들어갔잖아. 그때 제동이 넌 서울에 막 올라왔고. 전혀 유명하지 않았을때고.”
-대구에선 좀 유명했잖아.
“YB는 6년 무명 거치고 2001년에 라디오 DJ처음했잖아. 문세형이 잠시 맡아 달라고 해서 하다가 문세형이 안하면서 눌러앉게 된거고 러브레터도 소라누나가 갑자기 그만두게 돼서 임시로 들어갔다가 눌러앉은거지. 거기서 제동이 너를 사전 MC로 추천해서 시작했지”
-서울올라와서 서울에 있는 축제 사회를 보려고 했었지.
“그때 기억나냐?”
-형은 기억나요? 서울 내가 왔을 때 형은 붕 떠 있었어. 그런데 심성이 워낙 착하니까 버틴거지 아니면 매장됐을 거야. 순진해 형. 그렇게 세상 못 살아. 지금도 그렇고. 아는 사람에게 돈 떼이고. 지금도 그래. 형수한테도 말을 못하겠어. 어쨌든 형 그땐 완전히 연예인 같았어. 지금은 친해서 잘 모르겠는데. 그땐 화와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 있는 연예인이었어. 그런데 지금도 상황은 그때랑 같은데 지금은 그때 표정하고 달라. 형이 계속 감사하다고 그러고.
“그 당시엔 공연을 앰뷸런스 타고 다니면서 했어. 하루에 서너개씩. 무슨 벼슬한다고 앰뷸런스 타고 삐뽀거리며 가니. 안에서 그런 가시방석이 없더라고. 끝나고 나서도 멤버들끼리 대판 싸웠잖아. 멤버들도 다 힘들어했지. 이런 식으로 우리 음악과 맞지 않는 행동 하는 것에 대해서 말야. 그래서 이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음악과 맞지 않는 행동하면 더 이상 못한다고 하니 또 한쪽에선 누군 좋아서 하냐고 이러면서 싸웠지. 해체하겠다고까지 했었으니까.
-다들 이해돼. 추구하는 음악세계와 사는게 너무 달랐으니까.
“그게 뭐야. 앰뷸런스 타고 신호 다 위반하고 가고.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래도 지금 역시 그때만큼 바쁘잖아.
“바쁘지. 그렇지만 그때처럼 그렇게 무식하게 살지는 않잖아. 그땐 다들 정신없었고.
-게다가 그땐 감사를 몰랐지.
“그렇지. 감사를 몰랐지. 짜증만 나고. 끔찍하다. 생각하면.”
-고맙기도 했잖아.
“그렇지. 월드컵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뜬건데. 그러니 우리가 욕을 먹은 이유를 알지. 사람들이 월드컵 질문만 하면 확 차올랐지. 그만하라고 짜증내고. 사람들이 왜 그러나 했거든. 그저 감사하고 고마운 상황인데도 우리가 어렸던거야. 어리광부리고. 그거 알아달라고 했으니 비호감이지. 그래도 덕분에 많이 컸어. 그때보다 성숙해졌고.”
-지금 나가수에 대한 생각은 어때.
“힘든 상황은 비슷했지만 이젠 그렇게 안하지. 그리고 무조건 감사한것 밖에 없어. 이제 나가수도 그만하게 됐으니까 창작에 몰두하고 싶어. 곡 써서 앨범 내고.”
-써놓은 건 많아?
“응”
-파격적인 것도 나온다며?
“어. 거기까지만. 나가수하면서 음악적으로 자유를 얻은 것 같아. 빙글빙글부터 여러 곡을 리메이크했잖아. 거기서 얻은 영감이 많아. 이 곡들이 다들 이렇게 훌륭하고 좋은 곡들이었구나 싶고. ”
-어떤게 제일 좋았어.
“꼬집을 수 없지. 다 좋았어. 새벽기차도, 빙글빙글도. 특히 우리가 해왔던 음악들이 아니니까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맛본거야. 그래서 그런 노래를 만들고 싶어. 틀에서 벗어나자는 거지. 록밴드는 이래야 한다, 저항성 있어야 하고, 뭔가를 깨야한다는 이런 식의 정형성에서 벗어나고 싶은거야. 덕분에 소재도 다양해 졌고 해학과 풍자도 알게됐고, 여러가지에 대해 더 많은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아.”
-난 음악은 잘 모르지만 내가 들어 좋으면 청중평가단도 좋을거라 했잖아.
“우리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 한 최대한 다양하게, 특히 가사의 소재를 다양하게 하고 싶어. 편곡은 우리 정체성이 있어야겠지만. 가사와 멜로디는 자유롭게 만들고 싶어.”
-제방둑에 갇히지 않은 물살 같은 느낌이 들어. 예전엔 주위 사람들이 하는 평가에 신경쓰고 상처받고 그랬잖아. 그런 면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
“여러면에서 자유로워졌어. 누가 욕을 해도 그런가보다 하고.”
-도가 튼건가?
“늙었지. 나이 들었다는거야.”
-형은 그런데 표가 안나. 진짜 동안이야. 사람들이 자꾸 나보고 형이래. 내가 노안이라서 그런지. 어쨌든 내가 옆에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록밴드를 하기 때문인 것 같아. 그게 전부야. 노인분들이 일을 안하시면 갑자기 늙는거랑 똑같은 거야. 재미있는 일을 하며 의욕적으로 사는 삶이 젊음을 유지시켜주거든. 나 맨날 정이한테 얘기해. 정이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공부 잘하고 어쩌고 다 필요없고 정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재미있게 성취감 느끼고,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그걸로 됐어.”
-내 목표도 그건데.
“넌 불같이 뜨거운 사랑을 해야해.”
-난 성향이 우울한 편인것 같아. 물론 내가 여자친구가 있을 때도 그렇게 밝진 않았어. 그런데 이런 건 있었지. 뭘하든 그 애한테 보여줘야겠다는 것. 사람들 속에 있지만 사람이 늘 그리운 건 사실이야. 그런데 이런 이야기 하면 욕먹을 것 같아.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욕을 해.”
-아니 뭐, 어쨌든. 요즘 형 보면 진짜 배워야 할 점이 옛날에는 티격태격 하는 형이었는데. 우린 대판 싸우면서 보지 말자 이러고 싸운건 없는 것 같아.
“내가 착하니까 그렇지.”
-그 이유하나밖에 없어?
“내가 권위있는 사람이면 달랐겠지.”


-사랑이 없어서 그런가봐. 박노해 시인 시중에 비슷한게 있어. 혁명이란게 별거냐. 따뜻한 사람과 둘러앉아 저녁 밥 먹고 사랑하는 여인의 품안에서 잠들고. 그게 혁명이다. 뭐 다른게 필요하냐고.
“그래. 박노해 시인 멋있다니까. 변했다는 사람들도 꽤 많은데. 노동의 새벽 때랑 최근 시집은 많이 다르거든. 그렇지만 사람은 변할 수 있어.”
-맞아요. 누구나 변한다고 봐요.
“개인적으로 김민기 선생님이나 박노해 시인을 좋아하는데, 그분들은 우리가 아는 상식선에서 80년대 민주화시대에 민중가요를 쓰셨고, 시인이자 혁명가로 활동하셨던 분이잖아. 그런데 그분들이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시는게 사랑이야. 전에도 내가 어떤 발언을 하거나 어떤 곡을 발표하거나 했을 때 그분들이 가끔 조언을 해주시는데 정말 의외의 조언을 해주시는거야. 이 노래에 사랑이 없다, 너의 발언에 사랑이 없다. 포용해라, 감싸라. 이해가 안갔지. 왜 이런 이야기를 하실까 했어. 상대방이 주먹질을할 때 주먹으로 맞서는게 아니라 보자기로 감싸주고 잡아주는 이런 온화한 카리스마를 느꼈다니까. 난 그게 너무 멋있는거야. ”
-난 이철수 선생님한테 비슷한 느낌을 가졌어. 선생님 작품전에 갔다왔는데 선생님 대표작이 새는 온몸으로 난다는 거잖아. 사람들 삶과 동떨어진 곳에서 절대 혁명은 있을 수 없다는 거야. 사람들이 칭찬하든 비난하든 결국 그 말이 나 자신을 띄우거나 가라앉히거나 할 수 없다는 거야. 나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하시더라구. 형하고 같은 이야기야.
 맞아 형 말이. 나 사실 좀 외로워.
“좀이 아니라 많이 외로워. 보면 모르냐. 넌 천성이 그렇지 않아. 초창기에는 안그랬어.”
-러브레터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아.
“맞어. 밝았어. 5분에 한번씩 터졌어. 그런데 지금? 안터져. 어쩔 땐 내가 터뜨려.”
-맞아. 형이 터뜨려. 얘기해줄까? 그당시에? 형이 그때 지금 나 같았어. 내가 대기실에 들어가면 형은 의자에 축 늘어져서 힘없이 ‘응 왔냐’ 이라고 한숨내쉬고. 맥주 반병 마시고 피아노 건반에 머리 박고 울고 이랬어.
“그걸 봤으면서 답습하면 안되지.”
-오 필승 코리아 아니었어도 됐다고요. 우리 노래가 그동안 그렇게 아니었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욕을 해. 왜 이렇게 인터넷만 보면 욕을 많이 하는거야... 이랬어.
“어제 경규형이 나한테 그랬어. 요새 보니까 재미있어한다고. MC하는거 재미있어 하던데? 이러시는거야. 맞아 재미있어.”
-러브레터 할 땐 그렇게 바빠도 재미없어했어. 버거워했어. 그런데 재미있어지면서 열과 성을 다하자고 하고 있었는데.
“응. 재미있어 지면서 좋은 음악프로그램 만들겠다는 사명감 갖고 끝까지 가겠다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었지. 그럴 때쯤 하차한거지.”


“구룡마을 또 갔어?”
-혼자 집에 있으면 뭐해. 재미있어. 그래서 가. 모여서 일하고 마을회관 공터에 모여 막걸리하고 오는거야. 옛날 살던 동네 당구장 사장님도 오시고. 가면 한 5분정도는 연예인 취급하다가 나중엔 함께 뒹굴며 막 뭐라고 하시고 화도내셔. 난 그런게 좋아요. 살 부딪히고 잔도 부딪히고. 미연이 알죠? 베이비복스 간미연. 언제는 보니까 미연이가 말도 없이 내 뒤를 귀신처럼 따라다니면서 일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별명을 지어줬잖아. 미크레인이라고. 진짜 거짓말 않고 일을 대박 잘해. 침수피해입은 주택들 도배해줘야 한다니까 도배까지 배우러갔어. 진짜 대단해.
“미연이 어떻게 생각해? 흐흐흐”
-참, 나. 밀어붙이지 마. 걔가 왜 날 좋아하겠어.
“넌 그게 문제야. 효리하고도 봉사활동 갔다왔다며. ”
-유기견 보호소가 침수 피해 입어서 같이 갔는데 개집 벽돌 새로 깔고 그랬지. 오전에는 너무 힘들더라고. 벽돌이 너무 무거운거야. 내가 태어나서 개집 벽돌 까는 건 처음이잖아. 그런데 오후부터 갑자기 일이 즐거워졌어. 은진이가 왔거든. 심은진. 갑자기 벽돌이 너무 가벼운거야. 한번에 하나씩도 힘들다가 여섯개씩 들어지던데.
“은진이는 몇살이야?”
-걔도 누가 있겠지.
“그러니까 넌 문제라고.”
-됐고. 봉사활동은 어쨌든 보람이 있고 구룡마을에서 복구하면서 거기 커플도 탄생했어. 신기하지않아.?

“넌 딱 초등학생 수준이야. 맘에 드는 여자애들 놀 때 고무줄 끊듯이”
-난 끊지 않아. 다시 잇지 못하도록 고무줄을 잘게 썰었어.
“그러니 초딩 마인드라는거야.”
-형한테는 이야기 안했지만 만나고 싶지.
“그런데 넌 다가가질 못하는거야. 자기르 ㄹ사랑하고 자신감이 있으면 멋있게 대시할텐데 그게 없는거지. 토크콘서트만 잘해. 무대에서 보면 너 진짜로 여자 만나면 정말 잘할 것 같아. 그런데 내려오면 완전 쭈구리해져. 훈수는 잘하면서. 제대로 좀 해봐. 이번 기회에. ”

-이거 인터뷰가 계속 왜 이러는거야. 내가 형한테 물어보는거거든.
“됐어. 아무나 물어보면 어때. 오늘 네가 대답하면 되지.”
-아니 형 인기 많다고 이것도 빼앗아 갈려구? 윤도현의 똑똑똑 하겠다는거야? 나가수 준비한만큼 음반이나 잘 준비하시죠.
“해. 나는 하거든.”
-그런데 이번에 나가수에 발표했던 곡들은 다들 새 음반 곡내듯이 했잖아.
“그렇지 . 12곡인데 방송나가면 어차피 계속 음원으로 남을 곡이잖아.그러니 어떻게 아무렇게 할 수 있겠어. 꼴찌를 하더라도 음악은 잘만들어야지.”
-내가 형 이번 공연할 때 게스트로 두번 갔잖아. 사실 형 공연을 2000년부터 바람잡이 하면서 봤는데 2007년부터는 형 공연을 제대로 안봤어. 뭘 할지 알겠고, 뻔했거든. 마지막에 다 아는데 뭐. 이런 느낌? 그런데 이번 공연은 달랐어. 게스트 하면서 죽 본 뒤에 내 순서 끝나고도 계속 보고 싶더라고. 형 원래 음악색에 나가수에서 보여줬던 모습들이 추가되면서 완전히 시너지효과가 난거지. 날개를 달았다는 느낌이랄까. 사람들 평도 그렇고.
“나가수를 하면서 이게 우리 레퍼토리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 정체성을 가지면서 색깔을 다양하게 하는것.”
-맞아. 가끔씩 변화 준다고 엄한 것 넣었다고 실패했지. 객석에서 듣는데 좀 그랬거든. 뭐야 저거... 이러면서.
“맞아. 우린 그런데 꼭 된장인지 뭔지 찍어먹어봐야 안다니까.”
-그전에 형이 나 없으면 예능 못나간다 했잖아. 항상 끌고 나갔는데 이젠 훨씬 잘해., 자신감도 많아졌고.
“자신감이라기보단 편해진 것 같아. 예전에 TV에 어떻게 나올까 이게 너무 걱정되고 신경썼지. 그런데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어.”
-그런데 내가 지금 그런 것 같아. 주위 시선 지나치게 의식하고. 나 환자야. 인정해.
“환자는 아니고 누구나 살면서 그런 시기가 오는 것 같아. 이 고통의 시간이 오래가고 있어. 이젠 깨질때가 됐지. 그 때부터 넌 날개를 다는거야.”
-형이 러브레터 그렇게 되고 바닥으로 갈 때가 있었어. 그런데 그때 느꼈지. 가족의 힘, 밴드의 힘이 정말 대단하구나 하고. 내가 유일하게 형한테 잔소리 안했을 때가 그때일거야. 형 눈치본 적 없이 살았는데 그때 옆에서 입 꾹 다물고 눈치보며 조용히 있었지.
“그런 시간이 뭔가를 깨게 만들어준다니까. 정말이야. 그러면서 내 속에서 뭔가가 깨지기 시작할 때 MBC <놀러와>에 너랑 나갔잖아. 러브레터 하차 후에 처음으로 공중파에 나간거였지. 뭔가 깨져서 그랬는지 그때 방송은 정말 재미있었어.”
-그때 형 헤어스타일 때문에 내가 막 뭐라고 했잖아. 돈을 던지면서 당장 미용실 가라고. 그런데 그런식으로 깐죽거리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나한테 뭐라고 해. 우리 도현이 오빠한테 왜 그러느냐고.
“난 나한테 욕하고 이런 거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편인데 너한테 욕을 하는 경우 말야. 댓글이든 뭐든. 그럴땐 그 사람을 붙잡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싶기도 해. 그렇게 갈등하다가 안하는게 낫겠다 싶어서 참고. 트위터에도 그런 글 올리는 사람들한테 일일이 설명해주고 싶고.”
-형 마음 알죠. 그런데 난 남이 형한테 뭐라고 하는 걸 잘 못참겠어. 그리고 그게 형한테 폐를 끼치고. 괜히 욱해. 나 장비스타일인가봐. 형한테 고마운게 너무 많지. 내가 욕먹은 걸로 치면 에베레스트 3좌 정도는 정복한 것 같아. 일련의 사건들로. 그런 것들 겪으면서 형한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거지. 내가 형 팬이거나 방송으로만 보면 싸가지 없어 보일 수 있어. 우린 장난인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게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해도 되고. 그래도 형이 항상 사람들앞에 ‘저만한 놈 없다’고 이야기하잖아. 난 그 말 한마디면 끝이에요. 어쨌든 이번에 팬덤은 든든하게 생긴거잖아.
“든든하지. 열렬히 사랑해주시는 분들도 많이 늘어났고. 내가 어떻게 보답해야겠어. 일일이 밥을 사줄 수도 없고. 음악, 팬들이 우리 음악 가지고 어디 가서도 꿀리지 않게 해주는 것이 우리 임무지.”
-그 멘트 멋있는데.
“우리가 인기 있고 없고를 떠나 팬들에게 음악만으로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는 것. 그게 보답하는 거야. 다크서클이 내려와도 그런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지”
-그래야죠. 형.
“그래서 나는 가수다 끝나고 창작의욕이 불타올라. ”
-스콧도 그러던데. 술먹으면서. 드디어 우리가 카피를 멈췄다고. 나 이 이야기 영어로 했어.
“스콧 한국말 못하는거 다 알거든. 리메이크 하면서 알게 모르게 오리지널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던거지.”
-마지막에 불렀던 곡은 너무 좋았어. 형이 가슴으로 불렀다고 했는데 정말 들으면서 울었지. 난 김광석 노래를 형이 부르는 것을 늘 보고 싶었는데 그게 딱 걸려서 너무 좋았어.
“곡이 너무 좋으니까. 2절 부를 땐 이를 악물고 불렀어.”
-그런데 막상 무대에 서는데 사람들은 그 노래를 아무도 모르고, 순위도 종합 꼴찌. 이러니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내가 트라우마가 있었잖아요. 재도전 그 때 이후로 어떤 말도 자신있게 못 뱉는거야.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내내 따라다니니까 자꾸 위축이 되면서 가만히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그거 생각하면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는 답답했어. 화면과 현장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싶었어. 현장에선 그럴법했다고 생각했는데 화면은 삐끗하게 나가더라고. 그런데 그거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또 설명하는 순간 미궁속으로 빠지잖아. 견디는 수밖에 없지. 그래서 난 네가 잘 버텨주길 바랬고 무조건 열심히 하자였어. 얼마나 힘들었겠어.”
-괜찮아요. 형. 난 그날 형이 1등했는데도 그것때문에 묻혀서 정말 미안했거든. 입방정때문에.
“아냐. 아는 사람은 다 알아. 그래서 그거 묻힌 것 알고 더 챙겨줘서 박수도 많이 받았어. 팬들 사랑도 훨씬 많이 받았고.
-형하고 이야기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형 노래도 그렇고 내 말도 그렇고 입에서 나가고 전해지는 순간 우리를 떠나는 거기 때문에 늘 판단은 그분들 몫인 것 같아. 우리는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지. 허준(YB기타리스트)도 그랬잖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활시위를 당기는데 온 힘을 기울이는 것. 그 다음은 우리 손을 떠난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