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커버커베이글이 인스타그램에서 올린 문구에서 눈길을 끌던 것은
40년간 베이글 반죽을 한 롤러 장인의 비법을 전수받았다는 것이다.
40년간 반죽이라. 우리나라에도 수십년간 칼국수를 반죽하거나 수타면을 만들어온
장인이 있는 것처럼 베이글의 고장 뉴욕도 마찬가지일터.
손으로, 몸으로 에너지와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이 노동은
기계로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힘든 길을 고수하는 것은
그만큼 맛과 가치의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계에서 나오는 균일한 질감과 맛
사람손이 빚어내는 저마다의 모양과 탄력적인 질감.
뭐가 좋다 나쁘다 할수는 없는 문제다.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는 차이일 뿐.
균질한 대량생산이냐 나름의 개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느냐는 것은 선택의 문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티장'.
이런 장인들을 찾는 것은,
그들이 일하는 가게 앞에 줄을 서는 것은
나름의 개성과 정체성을 가진 맛에 반한, 그 가치에 공감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이다.
손으로 만드는 베이글, 기계로 만드는 베이글. 어떤 것이 좋을까.
국내에서 베이글의 인기가 뜨겁다. 다양한 토핑과 크림치즈, 각종 충전재로 화려하게 치장한, 독특한 특징을 내세운 베이글 사진들이 인스타그램에 넘쳐난다. 베이글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많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고민해 보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동그란 베이글 모양을 만드는 롤링(rolling)은 베이글의 본질에 관한 문제다. 북미에 정착한 유대인들에 의해 세계로 퍼진 베이글. 본고장에서 이 문제는 꽤 중요하게 다뤄져 왔다. 오랫동안 어떤 베이글이 좋은지 논쟁이 벌어져 왔으나 손으로 롤링한 베이글이 더 좋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뉴욕 베이글 축제 ‘베이글 페스트’ 창립자이자 베이글 전문가로 알려진 샘 실버만에 따르면 손으로 롤링한 베이글은 기계로 만든 것보다 더 강한 글루텐 구조를 만들어 쫄깃한 식감을 낸다. 미국의 베이글 브랜드 고담베이글은 블로그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베이글이 가진 식감의 차이는 들어가는 성분이나 재료보다 베이글 롤러의 기술 차이라는 요인이 더 크다. 이 때문에 뉴욕에는 ‘베이글 롤러’라는 독특한 직업군이 있다.”
베이글 본고장 미국 뉴욕에서는 손으로 빚는 베이글을 선호한다. 뉴욕 니커버커 베이글의 롤링 장인 샘이 밀가루 반죽을 말아 베이글을 만들고 있는 모습.
19세기 후반 베이글이 뉴욕에서 만들어지면서 유대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전통적인 반죽과 롤링법이 전승되었다. 이후 10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베이글은 대량 생산을 위해 자동화됐고 상당수가 기계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정통성을 표방하는 곳들은 ‘장인’으로 불리는 베이글 롤러의 기술력과 노동력에 의존한다. 뉴요커들 역시 손으로 롤링한 베이글을 선호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도 알려진 유명 베이글 전문점들은 기계를 사용하는 대신 베이글 롤러가 새벽부터 만든 베이글을 내놓는다. 오랜 기간 숙련되어야 하고 고된 육체노동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좋은 기술을 지닌 베이글 롤러가 점점 희소해지고 있다는 점은 현지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샘이 10일 서울 니커버커 베이글 주방에서 베이글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서울 잠실에 문을 연 니커버커 베이글은 미국 뉴욕에 본점을 둔 곳이다. ‘40년간 베이글을 반죽한 롤러 장인의 비법을 직접 전수받았다’는 것이 니커버커 베이글이 내세우는 최고의 차별 포인트. 이 장인에게서 3년간 교육받으며 뉴욕 매장에서 일했던 이광원씨가 현재 니커버커 베이글 2호점의 베이글 롤러로 일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베이글 롤러 장인 샘을 지난 10일 니커버커 베이글 매장에서 만났다. 태국 출신(태국 이름 노라차트 혼가마타)으로, 1980년대부터 뉴욕에서 베이글을 만들었다. 니커버커 베이글이 뉴욕에서 문을 열면서 당시 에싸베이글에서 롤러로 일하던 그를 스카우트 했던 것은 관련 업계에서 꽤나 화제가 됐을 정도다. 그의 이번 한국 방문은 일종의 ‘마스터 클래스’를 위해서다. 니커버커 베이글은 다음 달 서울 성수동에도 3호점을 연다.
10일 매장을 찾았을 때 그는 주방에서 베이글을 빚고 있었다. 옆에서 그의 작업을 지켜봤다. 널찍한 탁자 위에 올려진 큼직한 반죽 덩어리에서 칼로 잘라낸 반죽 조각을 손으로 굴려 가래떡처럼 길쭉하게 한다. 반죽을 순식간에 손으로 감싸며 동그란 고리 모양을 만드니 베이글 하나가 뚝딱 탄생한다. 홀린 듯 그의 손놀림을 보고 있노라니 순식간에 스무 개가 완성됐다. 그는 지금도 하루에 3000개 정도의 베이글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한창 시절엔 7000개 이상씩 만들었다.
40년간 베이글 롤링을 해 온 니커버커 베이글의 롤러 샘
-베이글 만드는 것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지금도 베이글 롤러를 구하기 어려워 인력난에 시달리는데, 제가 처음 시작했던 1980년대에도 비슷했어요. 뉴욕으로 이민 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누군가 그러더군요. 베이글 롤링은 수요가 많지만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안정적인 데다 돈을 벌기도 쉽다고요. 지금은 없어진 작은 빵집에서 일을 시작했지요.”
-그때만 해도 유대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기술이 전승됐다고 들었어요.
“어려웠죠. 가르쳐주지 않으려 하니 곁에서 어깨너머로 배울 수 밖에요. 끈질기게 부탁하고 굽신거리면서 뭐라도 하나 배우려 애썼어요. 반죽 한 덩이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어서 한두 시간만 자고 연습하던 날이 많았습니다.”
-어리석은 질문이겠지만, ‘장인’의 비법이 뭔가요.
“기본적인 재료는 비슷하지만 물, 공기, 온도, 숙성시간 등 많은 외부적 요소들은 매장마다, 만드는 사람마다 다 달라요. 그 반죽을 가지고 롤링을 하는 것도 연습과 숙련의 차이겠죠. 계속 만들고 맛보면서 손으로 그 차이를 느껴야 하는 건데 정답은 없어요.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거죠.”
-한국에선 요즘 베이글이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베이글을 맛보셨나요?
“요 며칠 동안 잠실 일대에 ‘베이글’이라고 간판이 붙은 여러 곳을 가봤어요. 뉴욕 스타일을 기준이라고 한다면 대부분은 베이글 모양을 한 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질감이나 밀도, 밀가루의 끈기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많거든요. 하지만 맞다, 틀리다 이런 문제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외부에서 받아들인 문화를 저마다의 특색에 맞게 소화해서 ‘한국식 베이글’로 발전시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일본도 일본 스타일의 베이글이 발달한 것 같아요.”
-베이글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어느 음식이나 그렇겠지만 좋은 사람들과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먹는 것 아닐까요? 제 가족들에 비해 저는 베이글을 자주 먹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며 함께 먹는 베이글만큼 맛있는 건 없죠.”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모양이 조금씩 다른 베이글 . 니커버커베이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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