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옥, 버거보이, 쇼니노 이끄는 박재현 대표 인터뷰
최근 1년 새 ‘핫플’로 떠오른 지역은 삼각지에서 신용산역까지 이어지는 용산 일대다. 오감을 사로잡는 맛과 감성, 기발한 아이디어로 인파를 끌어모으는 맛집들이 부쩍 늘었다. 그중에서도 용산역과 신용산역 사이, 낡은 주택가가 밀집해 있는 은행나무길.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 하나를 꼽자면 ‘미미옥’이다.
한강초등학교 앞에서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서자 카톡이 울렸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마침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나오던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 여성 한 분이 “미미옥은 저쪽”이라고 손을 뻗어 가리킨다. 평일에도 웬만큼 웨이팅을 각오해야 할 정도의 맛집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휴대전화 들여다보는 행색만으로 ‘아묻따’(아무것도 묻거나 따지지 않고) 식당을 가리킬 정도라면 입소문의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근사하고 멋스러운 기와지붕 아래 간판을 단 미미옥은 ‘서울식 쌀국수’를 표방한 곳이다. 베트남 음식인 쌀국수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했다고 보면 된다. 닭고기와 소고기, 표고버섯으로 낸 육수에 고수 대신 영남 지방에서 애용하는 방아를 넣어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맛을 냈다. 곰탕을 먹는 듯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는 쌀국수, 밥 말아 먹을 수 있는 쌀국수로 다양한 연령층에 인기를 얻으면서 이 일대를 대표하는 식당이 됐다.
미미옥과 연결되는 바로 옆 건물에는 수제버거 전문점 ‘버거보이’가 자리 잡고 있다. 캠핑장을 구현해 놓은 듯한 인테리어의 버거보이는 캠핑장에서 즐기는 버거를 콘셉트로 한 버거 전문점이다. 투박한 야생성이 느껴지는 매장 분위기와 클래식한 버거 맛이 재미있는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미미옥 맞은 편 골목 안쪽으로는 화사한 레몬빛 담벼락이 시선을 끈다. 벽을 따라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리스 장식이 된 진청색 문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쇼니노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싱그러운 레몬향이 맞이하는 매장은 순식간에 이탈리아 바닷가의 어느 레스토랑으로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큼직한 테이블을 놓아 일행이 아닌 사람들과도 함께 식사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이곳에선 접시 하나, 무심한 듯 올려놓은 소품 하나에서도 이국적 에너지가 느껴진다.
미미옥 등을 운영하는 외식 업체 로프 컴퍼니 박재현 대표
은행나무길 일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이들 레스토랑은 동일인의 작품이다. 외식사업가이자 셰프인 로프컴퍼니 박재현 대표다. 올해 서른넷인 그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3년 전 미미옥을 오픈하면서다. 다소 무미건조하고 이렇다 할 변화가 없던 동네에 활기를 돌게 한 그를 두고 ‘동네를 접수했다’는 이야기가 돌만큼 관련 업계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외식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는 이들은 여럿. 그중에서 박 대표의 이력은 좀 남다른 편이다.
10대 시절을 태권도 선수로 보내고 체대에 진학했던 그는 입학 직후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투병과 학업을 병행하며 보냈던 4년간의 시간은 아찔할 정도로 혹독했다. 20대 초반의 빛나는 시간을 잃었다는 생각에 그는 졸업 후 뉴욕으로 떠났다. 이렇다 할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보상받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뿐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해 스포츠 경영을 공부하고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며 여느 유학생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중 뒤늦게 그의 관심을 사로잡은 건 요리였다. 비싼 물가 때문에 집에서 해 먹는 것이 불가피했던 그에게 주방일은 의외의 재미를 줬다. 식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드는 것도 즐거웠고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친구들을 보는 것도 행복했다. 큰 병을 이겨냈던 그에겐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게 한 끼를 나누어 먹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다”는 삶의 철학이 뿌리내리는 계기가 됐다.
미미옥 쌀국수와 버거보이의 버거(오른쪽). 미미옥·버거보이 인스타그램
“어차피 해 먹어야 할 거라면 제대로 배워보자 싶었어요. 퓨전 한식당 ‘곳간’에서 데이비드 리 셰프님께 일을 가르쳐달라고 졸랐죠. 거기서 재료를 손질하는 것부터 여러 가지를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셰프님은 지금 한남동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시는데 그때의 인연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요.”
학업을 마친 뒤 그가 향한 곳은 이탈리아 피렌체였다. 이때도 특별한 계획을 가졌던 건 아니다. 뉴욕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고향이라 한 번쯤 머물러보고 싶은 게 전부였다. 호텔경영과 요리를 공부하던 그는 현지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투어 가이드 회사도 만들었다. 이탈리아에 여행 오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알려지면서 사업이 꽤 번창했다. 3년 반 정도의 이탈리아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요식업을 이어가기로 한 것은 “에너지와 재미” 때문이었다. 초창기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계획했으나 베트남 여행 중 맛본 쌀국수에 꽂혀 ‘미미옥’의 콘셉트를 구상했다. 한국식 국물맛을 내고 재해석하는 과정에도 데이비드 리 셰프의 도움이 있었다. 가족이 있던 울산에서 먼저 문을 연 뒤 이듬해인 2020년 서울로 왔다.
“토박이로 오래 살아온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더라고요. 식당을 성공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먼저 이웃을 끌어안고 동네에서 인정받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동네 청소도 자주하고 음식도 나누면서 주변 어르신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는데 이제는 감사하게도 아들처럼 대해주세요.”
미미옥과 쇼니노(오른쪽)
외식업계의 공통적 고민으로 떠오른 구인난도 그의 레스토랑은 비껴갔다. 50여 명 직원들의 평균 근속 기간은 2년 정도로 업계 평균에 비하면 긴 편이다. 구체적인 보상과 피드백을 원칙으로 삼는 그는 세심한 부분도 챙기려 노력한다. 일상을 침범할 수 있는 카카오톡 대신 스타트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 툴 ‘슬랙’으로 소통하고 외식업계로서는 드물게 직원 휴게실도 별도로 두고 있다. 일정 직급 이상이 되면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이탈리아어 및 와인 공부도 지원한다. “직원들이 오래 일하고 싶은 일터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는 그는 외식업계 경영 관련 포럼이나 각종 강연에도 연사로 자주 초대된다. 취미생활인 캠핑의 재미를 나누기 위해 시작한 유튜브 채널 ‘캠핑맨’으로 6만 명의 팔로워를 둔 유튜버이기도 한 그는 “찾아오는 분들, 함께 일하는 분들이 기분 좋아지고 즐겁게 소통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을 지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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