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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스코프

정확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by 신사임당 2020. 12. 15.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리베카 솔닛 

 


맨스플레인이라는 단어를 제시했던 리베카 솔닛의 책이라는 이유. 그렇게 집어들었다가 머리말부터 당장 읽지 않고는 못 배길정도로 흡인력있던 책.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무대책, 무관심, 망각을 눈감아주고 완충해주고 흐리게하고 가장하고 회피하고 심지어 장려하는 거짓말들을 끊어낸다. 호명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호명은 분명 중요한 단계다."

호명은 정말 중요하다. 이름을 제대로 찾는 것은 해당 주체나 대상의 성격, 본질, 근본적 의미를 드러내주는 것이고 그것이 역사를 통해 받는 평가이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만 들어도 그렇다. 지금이야 4.19 혁명으로 불리지만 수십년간 4.19의거로 불렸고 5.16 군사 쿠데타는 역시 수십년간 5.16 혁명으로 불리지 않았던가. 지금도 정리되지 않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용어는 4.3이다. 이념의 잣대로 난도질되면서 아직도 이름을 찾지 못한 4.3은  사건, 사태, 봉기 등등의 단어가 스리슬쩍 붙어 불려왔다. 지금은 그냥 4.3이다. 정명(正名)되지 못한 역사인 셈이다.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숨겨져 있던 잔혹함이나 부패를 세상에 드러낸다. 혹은 어떤 중요성이나 가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

어떻게 호명하고 이름짓느냐에 따라  그 대상이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이미지는 천양지차다. 본질을 완전히 분칠해 바꿔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을 쥔 이들은 이름에 집착해 왔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리베카 솔닛이 제시한 예만 봐도 쉽게 이해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가족 상봉' 이라는 상서로운 표현을 불길하고 꼭 전염평처럼 들리는 '연쇄 이주'라는 표현으로 바꾼 것을 떠올려보라. 조지 부시 행정부가 '고문'을 '선진 심문'으로 재정의했던 것'. 많은 언론사가 고분고분 그 표현을 따라썼던 것을 떠올려 보라."

실제로 우리는 뉴스를 통해, 역사를 통해 이같은 사례를 수없이 봐왔다. 걸프전 당시에 자주 등장했던
콜래트럴 데미지(collateral damage)가 그것이다. 영어 번역만을 놓고 보면 부수적 피해. 
마치 좁은 골목길에 난 불을 끄러 소방차가 들어가면서 주차되어 있던 몇몇 차를 긁었다는 정도의 느낌아닌가. 부수적 피해. 하지만 그게 아니다. 그 실상은 경악스럽다.
걸프전 당시 미국 부시정부는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군사 시설을 공격했다. 하지만 완벽하게, 의도하던 목표물만 명중시킬리가 없다. 인명 피해가 엄청났다. 그것도 민간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사상을 당한 것이다. 명백한 이름으로 부르면 민간인 학살. 그런데 이걸 부수적 피해라고 부른 것이다. 목적은 군사시설 타격이었는데  폭탄이 민간인들에게도 좀 튀었나 보다... 라는 사고의 수준이 아니라면 이런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당시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살상행위를 호도하는 말장난이라고 비난했었다.

정확한 이름 뿐 아니라 묘사하는 단어들도 중요하다. 리베카 솔닛은 이 책에서 정보를 왜곡하거나 불균형하게 지세하는 방법으로 본질을 호도하는 방법도 지적한다.

"가령 백인 아이등른 그냥 어울려 노는 것이지만 흑인 아이들은 어슬렁거리고, 슬금슬금 돌아다니는 것이 된다. "

인종적 문제도 그렇고 젠더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자들에게만 자주 쓰이는 형용사들이 있다.
남자에게는 거의 쓰이지 않지만 여자에게만 비난의 뜻으로 쓰이는 표현은 수없이 많다. 드세다, 새되다, 헤프다, 히스테릭하다 등. 실제로 이 단어가 들어간 텍스트를 조금만 검색해보면 대부분 수식의 대상, 묘사의 대상은 여성이다. 

"기억도 사람처럼 죽을 수 있지만 계속 살아 있도록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누가 기억되는가, 어떻게 기억되는가, 그 결정을 누가 내리는가 하는 문제는 극도로 정치적인 문제다. 우리가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은 동상이나 지명이나 표현을 통해서 과거를 통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