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잼있게 살기

이탈리아 피렌체. 르네상스 시대의 상징이기도 한 이 도시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관광지다. 역사와 문화예술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알쓸신잡> <뭉쳐야 뜬다> 같은 TV 예능 프로그램에 이 도시가 소개되면서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은 부쩍 늘었다. 문화예술 여행에 먹방 여행까지 더해진 모양새다. 피렌체가 있는 토스카나 지역은 미식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도 특히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조토의 종탑에서 바라본 피렌체 시내 전경

 

우피치 미술관, 두오모, 베키오 다리, 피티 궁, 조토의 종탑, 미켈란젤로 광장... 피렌체를 다녀왔다면 떠올림직한 장소들이다. 음식에 관심이 많다면 피렌체식 스테이크인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전문 레스토랑을, 쇼핑을 좋아하면 더몰, 산타마리아노벨라 약국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많은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은 곳임에도, 최근 몇년새 갈 수 없던 곳이 있다. ‘바사리 회랑’ (Corridoio Vasariano)이다.  2016년 안전 보수를 이유로 관광객 입장이 통제됐기 때문이다. 이 회랑은 피렌체의 중심부인 베키오궁에서 우피치미술관을 지나 아르노강에 놓인 베키오 다리를 건너 피티궁전까지 연결되는 길이다. 약 1km에 이르는 이 길을 따라 수백점의 진귀한 르네상스 시대 미술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 바사리 회랑은 2021년 대중들에게 다시 개방된다. 우피치미술관은 올 초 공식 홈페이지(https://www.uffizi.it/magazine/presentazione-vasariano-2019)를 통해 2021년에 이 회랑이 다시 대중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바사리 회랑은 메디치 시대에 만들어진 ‘비밀 통로’였다. 비밀 통로라고 하면 지하에 숨겨진 길을 생각하기 쉬운데, 이곳은 공중으로 연결된다. 베키오 다리 위를 지나는 길이다. 지도상으로 본다면 다음과 같다. 

즉, 이 주요 공간들이 공중에 설치된 회랑을 통해 연결된다고 보면 된다. 

이 사진은 우피치 미술관에서 바라본 베키오 다리 모습이다. 베키오 다리 위에는 금세공 가게들이 모여 있는데 그 위층으로 길쭉하게 연결된,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이 바로 바사리 회랑이다. 오른편 아래 쪽 우피치 미술관에서 뻗어나간 회랑이 아르노강을 따라 이어지다 직각으로 꺾어지며 베키오 다리 위를 지나게 되는 셈이다. 

 

베키오 다리 위에서 바라본 회랑 
건물 사이로 연결된 공중 회랑 


비밀회랑이라 불린 것은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지만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중세 건축물처럼 보일 수도 있을 법한 이 공간은 르네상스를 이끌고 귀중한 문화 유산을 남긴 메디치가가 몰락하게 된 계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350년 동안 세상을 지배한 메디치가 이야기를 흥미롭게 서술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김상근 지음)에는 바사리 회랑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바사리 회당을 만든 인물은 16세기 메디치가를 지배했던 코시모 1세(1519~1574)다. 즉, 그로부터 메디치가가 쇠퇴의 조짐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5세기 영광의 메디치 역사를 일군 선조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 그리고 ‘위대한 자 로렌초’(1449~1492)와는 자질이나 품성에서 많이 비교가 되는 인물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사돈을 맺은 그는 자신이 마치 황제가 된 것처럼 행동하면서 피렌체 시민들의 원성을 샀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딸을 며느리로  맞으면서 자신이 살던, 피렌체 중심부에 있던 베키오궁을 아들 부부에게 사용하도록 했다. 대신 자신은 아르노강 건너편에 있는 피티궁을 웅장하게 재건축하여 옮겨갔다. 1565년 코시모 1세는 건축가 조르조 바사리에게 명령을 내려 자신이  살고 있는 피티궁과 베키오궁을 연결하는 비밀 회랑을 설치하도록 했다. 베키오궁과 당시 정부 청사였던 우피치미술관(우피치는 이탈리아어로 오피스라는 뜻이다), 베키오다리, 피티궁이 공중으로 연결됐다.  땅에 발을 딛지 않고도 옮겨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가 이 회랑을 만들도록 한 것은 시민들의 폭동이나 정적의 위협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안에서는 바깥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선 안을 볼 수 없도록 창문을 설계했다.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자기만의 세계에서 비밀스러운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메디치 가문과 세상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선조들이 추구하던 리더십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시민들로부터 분리되고 배척되는, 게다가 원성의 대상이 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폰토르모가 그린 코시모 데 메디치(왼쪽)   지롤라모 마키에티가 그린 위대한 자 로렌초 (오른쪽)  ㅣ위키피디아
브론치노가 그린 코시모 1세,   볼테라노가 그린 코시모 3세  ㅣ 위키피디아


현재 이 회랑에는 어마어마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예술작품들이 놓이게 된 것은 18세기 초반, 급기야 메디치 가문의 문을 닫게 만든 직접적인 장본인 코시모 3세(1642~1723)의 ‘의지’ 때문이다. 코시모 3세의 통치기간은 리더십 부재와 무능으로 일관했다. 피렌체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고 개인적인 삶 역시 무절제한 주색잡기에 빠져 있었다.  비만과 같은 질환에 시달린 그에게 주치의는 규칙적으로 걷기 운동을 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그가 걷기 운동을 위해 선택한 장소가 바로 이 바사리 회랑이다. 왕복하면 2km에 이르는 길이다보니 운동장소로 적합했다. 그런데 밋밋한 길을 걷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는 메디치가가 소장하고 있던 조각품과 초상화를 이곳에 전시하도록 했다. 로마의 메디치 저택에 소장돼 있던 고대 조각품, 피티궁 보볼리 정원에 있던 장식품, 600점이 넘는 초상화 등이 이 때 바사리 회랑의 긴 벽을 장식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저자는 바사리 회랑이 코시모 3세의 ‘전용 피트니스’가 됐다고 표현했는데, 실제로도 역사상 남아 있는 최고 호화판 개인 피트니스 센터로 꼽히지 않을까 싶다.  

어찌보면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조성된 공간이지만 이 공간은 현재인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유산이자 선물이 됐다. 피렌체라는 도시 역시 메디치 가문 덕에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전세계에서 피렌체를 찾는 관광객 역시 막대한 문화 유산을 보고 즐길 수 있다. 코시모 3세의 딸이자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직계 후손인 안나 마리아 코시모는 1743년 임종 직전 이 막대한 유산을 피렌체 시에 기증했다. 그가 붙인 조건은 단 하나, 예술품을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인페르노>에도 이 회랑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