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악이 모든 것을 다했다. 100%, 200%도 더 해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누구나 퀸의 음악에 대한 ‘조갈’을 느꼈을 거다. 집으로 오는 길에 음원사이트에서 계속 퀸의 음악을 들었고, 돌아와서는 유튜브를 틀어놓고 퀸의 실황 공연과 뮤직비디오를 밤새 반복했다.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어 결국 차를 몰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70년대 밴드이지만 현재 10대나 20대에게도 친숙한 노래들, 게다가 굳이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 아니어도 웬만하면 다 아는 노래가 그들의 노래다. 음악사적 의미가 어쩌고 이 따위 거추장스러운 설명 필요 없이 전 세대의 직관에 와 닿는, 본능을 자극하는 음악이 퀸의 음악이니 말이다.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이야기는 좀 분분한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음악이 모든 것을 다했기 때문에 영화적 완성도를 운운하는 것이 그다지 확산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닥치고 음악’, 그리고 ‘음악이 열일’했으니 그 음악적 감동을 즐기고 싶어 다시 보고 싶긴 하다. 특히 스크린X 상영장의 가운데 앉았기 때문에 웸블리 현장에 내가 있는 듯한,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듯한 카메라 워킹이 주는 짜릿함을 다시 느끼고 싶긴 하다
2. 음악과 별개로 영화를 보고 난 뒤 찜찜함, 짜증스러움 같은 감정들이 찌꺼기가 되어서 남는다.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 나는 그가 동성애자였고 에이즈로 죽었다는 것 정도를 그저 관념적으로, 피상적으로만 알았다. 인간적 모습 보다는 가공할 무대와 음악 때문에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전설로 내 머리속에 강하게 각인돼 있었다.
영화는 퀸의 음악적 성공과 프레디 머큐리의 인간적 고통과 고뇌를 적절히 표현하려 한 것 같으나 어중되게 휘젓고 간 느낌이 든다. 영화 제작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최대한의 봉합책이 현재의 결과물인지 모르겠다. 아예 퀸의 음악적 성공 과정, 프레디 머큐리가 그려온 음악적 궤적과 서사를 좀 분명히 보여주면서 그를 추억하는 과정에 집중했더라면(그의 인간적 고통은 상징적으로 살짝녹여내는 정도로), 그게 아니라면 그의 인간적 고통과 고뇌에 좀 더 진지하고 깊은 접근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자연인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 여러가지 부분을 묘사했지만 내 기억의 표면에 남는 건 그의 핸디캡 중 하나였던 불규칙한 치열이다.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배우가 그의 역할을 함으로써 오히려 희화화한 것 같은 느낌적 느낌. 그게 내 찜찜함의 실체인 것 같다.
3. 영화를 보고 나면 반드시 찾아보게 될 내용이 ‘파르시’(parsi)다. 프레디 머큐리는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이란계 인도인으로 영국 이주자다. 복잡다단한 세계사가 그의 가계도에 녹아 있다.
파르시가 뭔가. 파르시라는 단어는 페르시아어, 즉 이란어다. 이란어로 파르시는 페르시아 사람을 뜻한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사전적 설명은 인도에 있는,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페르시아 혈통의 사람이다.
파르시를 알려면 고대 페르시아부터 살펴야 한다. 고대 페르시아는 바빌론에서 유대인을 해방시켜 본국으로 돌려보낸,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에게 패한,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망한 그 나라다. 영화 <300>의 크세르크세스 황제가 페르시아 황제다. 즉 지금 이란이 페르시아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아랍=이란’인 줄 아는데 완전히 다른 민족이다.
아무튼 고대 페르시아 사람들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다. 그런데 7세기경에 이슬람 제국이 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 이슬람교로 개종을 거부한 페르시아 사람들이 인도로 이주했다. 가뜩이나 여러 민족이 많이 섞여 살던 인도에선 현재 파키스탄과의 접경 지역인 구자라트 지역에 이들이 살도록 했다.
이들은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기 민족끼리 결혼하면서 혈통과 문화를 유지했다. 그러니 인도에서 주류는 아니었다. 그러다 17세기 들어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영국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인도를 경제적으로 먼저 지배했다. 파르시 역시 영국에 협조하면서 상업과 무역에 종사했고 경제력을 쌓았다. 대충 여기까지 놓고 보니 유대인과 비슷한 느낌이 들긴 하다. 실제로 파르시를 지칭하는 별명이 인도의 유대인이라고 한다.
동인도회사를 따라 이들이 몰려 살았던 뭄바이는 인도 최대의 경제중심도시이고, 이들은 현재 인도의 경제엘리트다. 인도 최대 기업인 타타그룹도 파르시 가문이 오너다.
4. 프레디 머큐리는 잔지바르에서 태어났다. 잔지바르는 현재 탄자니아에 있는 도시다. 왜 인도에서 살던 사람들이 탄자니아까지 갔나.
프레디 머큐리는 1946년생이다. 그가 태어나던 당시 잔지바르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프레디 머큐리의 아버지는 영화에도 나와 있듯 공무원이었다. 파르시가 거주하던 인도 구자라트 출신인데 식민지 관리로 잔지바르에 파견됐고 거기서 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는 가족들과 인도에 살았던 것은 아니고 인도 뭄바이, 그러니까 파르시들의 거점 도시인 그곳으로 유학가서 10년간을 공부했다.
프레디 머큐리의 가족이 영국으로 온 것은 1964년. 영국연방에서 독립한 잔지바르가 탄자니아로 새롭게 탄생한 때였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을 지배했던 아랍, 인도계를 쫓아냈다. 프레디 머큐리의 가족도 영국으로 이주했다.
잔지바르에는 프레디 머큐리 하우스가 있다고 한다.
5. 조로아스터교는 어떤 종교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조로아스터교는 영어식 발음, 독일어로는 차라투스트라 라고 발음한다. 조로아스터는 고대 페르시아의 현자로 , 이 종교 창시자다.
이란에서 나온 종교지만 현재 이란에도 신도 수가 3만명 정도에 그쳐 흔적이 희미해져가고 있는 종교다.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를 숭배하는데 그 핵심 교리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는 마구스(magus 복수형은 마기 magi)라고 불렸다. 마법을 뜻하는 단어 ‘매직’이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가 찾아왔다고 한글 성경에는 나와 있지만 서구권 성경에는 마구스라고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면 동방박사에 Magi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배화교라고도 불린다. 이는 페르시아와 교류했던 중국인들이 지칭했던 말이다. 조로아스터교가 불을 숭배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가 특별히 불 자체를 숭배한 것은 아니고, 불이 영원히 빛나는 아후라 마즈다를 상징한다고 하여 성스럽게 여겼다는 것이다. 이것이 외부인에게 불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서해문집) 에서/
중세 이슬람 제국이 강성해지고 페르시아 지역을 정복하면서 조로아스터교를 배척했다고 하는데 그런 현상과 흔적은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도 꽤 볼 수 있다. 사악한 종교라고 하기도 하고 조로아스터교를 믿다가 알라의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는 그분을 통해 받은 신앙을 계속 지켜 나가고 거짓 신 나르둔과 불의 숭배를 혐오해 왔습니다. 그런데 삼년 몇개월 전, 갑자기 도시 전체에 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무도 또렷하여 주민 전체가 한마디도 빠짐없이 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민들이여! 나르둔과 불의 숭배를 버릴지어다! 긍휼의 유일한 하느님을 경배할지어다!>”
/앙투앙 갈랑 <아라비안 나이트> (열린책들)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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