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를 몰아보다 음악 하나에 꽂혔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극중 박차오름, 즉 고아라가 고등학교 시절 연주하는 곡이다. 중간에 엘(임바른)이 피아노학원에서 연습하는 장면에서도 이 곡을 친다.
받아들이는 순간의 심리 상태나 여러가지 환경에 따라 각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론 이 곡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슬픔이 너무나 강렬하고 아프다. 라벨의 곡을 즐겨 듣는 편은 아닌데 이 곡은 자주 듣는다. 피아노 독주곡으로 연주를 많이 하지만 관현악으로 편곡된 것이 그 정서를 더 잘 살리는 것 같아서 좋아하는 편이다. 라벨도 피아노곡으로 썼다가 나중에 관현악으로 다시 편곡했다.
라벨이 이 곡의 영감을 얻은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녀 마르가리타’의 모습에서다. 이 그림은 굉장히 유명하다. 미술책에도 나왔고 웬만한 곳에 워낙 많이 등장했기 때문에 모르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시녀들/ 출처 위키
바로 이 그림이다. 작품 제목은 <시녀들>. 1656년 작품이다. 가운데 누가 봐도 공주님인걸 알 수 있는 귀여운 소녀. 그가 시녀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다. 왼쪽옆에 붓을 든 사람은 벨라스케스 자신이고.
아무튼 이 사랑스럽고 귀엽게 생긴 공주가 저렇게 귀여운 모습만을 남기고 어린 나이에 죽다니... 그래서 복받치는 감정, 아름다운 그림이 주는 감동에 라벨이 이 곡을 썼나보다 생각하고 말았었다. 실제로 이 곡이 수록된 앨범 재킷에 이 그림이 나온게 여럿 있다. 그리고 나서 한참 뒤에야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마르가리타는 이 모습만을 남긴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 자라감에 따라 그의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그가 천수를 누렸다는 것은 아니다. 고작 스물 두살에 죽고 말았다. 그리고 자녀를 무려 넷이나 낳았다..ㅠㅠ
근친혼이 만연했던 당시 유럽에서 스페인 공주로 태어난 마르가리타는 오스트리아 왕가로, 그것도 외삼촌에게로 시집가기로 되어 있었다. 사진이 없던 시절이라 자라감에 따라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예비 시집에 계속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다 갑자기 저 음악에 꽂히면서 마르가리타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그의 모습이 어떻게 그림으로 남아있는지 궁금해졌다. 아닌밤중에 홍두깨도 이런 홍두깨가 없다. 아무튼 그래서 그림을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위키를 찾아보니 그의 생몰기간이 나온다. 1651년~1673년.
가장 어렸을 때인 2살 때의 마르가리타. 비엔나 미술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벨라스케스의 작품. 이하 모든 사진 출처는 위키다.
이것은 4살 때 모습.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시녀들>이라는 제목의 그림에 등장하는 마르가리타는 5살이다. 작품은 현재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모셔져 있다.
8살때의 마르가리타.
그리고 9살.
뭔가 좀 변해가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여러 책에서는 당시 합스부르크가의 심각한 근친 결혼으로 아래 턱이 많이 나오는 유전병이 심각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아래는 12~13살 때의 마르가리타다. 작가는 미상. 비엔나에 있다
14살 때의 마르가리타. 아버지 펠리페 4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에서 상복을 입은 모습이다. 후안 델 마조의 작품.
그리고 스무살 때. 딸과 함께 한 마르가리타. 벤자민 블록 작. 비엔나 호프부르크 왕궁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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