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읽은 전쟁, 좀 더 구체적으로는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 두 권. 역사 스릴러의 대가로 불리는 켄 폴릿의 <바늘구멍>, 그리고 일본 소설가 후카미도리 노와키의 <전쟁터의 요리사들>이다. 일단 잡으면 한번에 휙,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두 소설은 성격이나 스타일이 사뭇 다른데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연결돼 있다. <바늘구멍>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이뤄지기 직전까지 독일 스파이와 영국 정보당국의 대결, <전쟁터의 요리사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유럽 전장에 발디딘 미군 병사들의 파란만장 전쟁기다.
<바늘구멍>은 ‘바늘’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신출귀몰 활약한 독일 스파이 헨리 페이버의 행적을 중심으로 그를 끈질기게 추격하는 정보요원, 그리고 먼 외딴섬에 사는 강인한 여성 루시. 세 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전개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몇 챕터를 읽다 보면 구조와 전개방향이 충분히 예상되는, 고전적인 스파이 영화 한편을 보는 듯 하다. 압도적인 흡인력을 자랑하는 서스펜스 스릴러의 대가라는 명성만 듣고 기대하기엔 구성이 단순한 편이지만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촘촘히 짜낸 솜씨는 훌륭하다. 지금부터 40년 전이라는 발표시점을 생각해도 그렇고. 이 작품은 저자가 가진 현 명성의 시작이 됐다는데 이후에 나온 그의 대표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나리오를 보는 듯한 이런 소설이라면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도널드 서덜랜드 주연으로 1981년 영화화됐다.
<전쟁터의 요리사들>은 ‘전쟁’과 ‘요리사’라는 조합에 이끌려 읽게 됐는데 어릴때 흠뻑 빠졌던 소년물 만화의 추억을 생생하게 되살릴만큼 흥미롭고 매력적이었다.살과 피가 튀는 참혹한 전장 묘사가 기본 배경으로 깔리고는 있지만 생기있고 개성넘치는 등장인물들 덕분에 마치 판타지적인 만화를 보는 듯 경쾌함과 발랄함이 스며 있다. 살과 피가 튀는 전장과 경쾌한 판타지라니. 무척이나 안 어울리는 조합이지만 이런 말도 안되는 조합을 잘 엮어내는 기발하고 참신한 작품이다.
흐름상 대단히 중요한 대목은 전혀 아닌데 <바늘구멍>에서 나온 표현 중 재미있었던 것 하나.
-그녀는 그의 고향을 알지 못했다. 그의 억양에는 단서가 없었다. 뭘 해서 먹고 사는지도 언급조차 없었다. 전문적인 일, 이를테면 치과의사나 군인 같은 직업을 가졌을 것 같기는 했지만. 사무변호사 정도로 따분한 유형은 아니고, 기자이기에는 너무 지적이고, 오분도 못 가 직업적 비밀을 털어놓는 의사와도 거리가 있었다.-
70년대 영국 사회에서 기자의 이미지가 대략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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